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효무만만고란야(曉霧滿滿古蘭若)하고
반봉잔설산조제(半峰殘雪山鳥啼)하니
수연불시도화동(雖然不是桃花洞)이지만
춘래유화개오계(春來柳花開五溪)하네.
새벽안개는 옛 절 마당에 가득하고
아직 덜 녹은 눈은 산허리에 걸려 있으니
비록 여기가 도화동은 아니지만
봄이 오니 온 산에 꽃이 가득 피는구나!
봄입니다. 꽃이 피는 봄이요, 만물이 소생하는 봄입니다.
저 아랫마을에는 이미 봄이 지나갔다고들 합니다만 이곳은 그래도 아직 봄이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시간은 부르지 않아도 자연히 그렇게 찾아오고
보내지 않아도 지가 때를 알아 스스로 지나갑니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섭리입니다.
결국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그 속에 있는 자기의 모습과 10년, 20년 전의 모습을 한 번 비교해 보세요.
얼마나 많은 시간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까?
거칠어진 피부와 파인 주름살, 어두워진 눈과 시원찮은 어금니,
그리고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육신들이 바로 시간의 흔적입니다.
얼마나 빠릅니까?
지난 몇십 년의 세월이 바로 눈앞에 선한데
벌써 그 몇십 년을 살아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사는 삶입니다.
죽고 나면 어떻게 될지 생각도 못 하고 앞만 바라보고 살아온 시간 들입니다.
그 시간 동안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행복과 참자유에 대해 설법하셨고,
그렇게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따른 제자들은 곧 깨달음을 얻어 최고의 행복과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 이후에도 헤아릴 수 없는 제자들이 이 길을 따라 극락과 열반의 땅에 들어섰습니다.
지금도 부처님의 말씀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따르는 자가 없습니다.
세상이 혼탁해지니 자꾸만 삿된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져
부처님의 이 길을 따르는 자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마치 졸부가 되기 위해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처럼
항상 위태위태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뿐입니다.
돈주머니 싸 들고 국회의사당만을 바라보는 사람들처럼
허명과 위선에 가득 찬 사람들뿐입니다.
이 모두가 어디서 생겨난 병일까요?
바로 욕심에서 시작되는 병입니다.
가지고자 하는 욕심, 얻고자 하는 욕심, 오르고자 하는 욕심, 잘나보고자 하는 욕심.
바로 이런 욕심들 때문에 우리 사회는 삿됨에 빠져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제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삿된 욕심에 빠져서 허우적대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의 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정말 어려운 인연으로 사람 몸을 받아 나왔습니다.
수많은 윤회를 거치고 선업(善業)을 쌓아서 사람 몸을 받았는데
이 좋은 기회를 하잘 데 없는 곳에 낭비한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욕심내고 허망한 곳에 기대하며 옳고 바른 길에서 점점 멀어져만 간다면
우리는 다시 지옥이나, 축생의 과보(果報)를 받아
참다운 행복과 자유를 찾을 기회에서 자꾸만 요원해지는 것입니다.
옛 조사께서 말씀하시길
‘금생미명심(今生未銘心)이면 갱대하생도차신(更待何生渡此身)이리오’
즉, ‘금생(今生)에 태어난 까닭을 명심하지 못하면
언제 또 어느 때를 기다려 이 몸을 구제받으리오.’ 하시며 안타까워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잠도 자지 않고 정진하고, 저녁에 해가 지면
땅을 치고 통곡하며 공부가 나아가지 못함을 아쉬워하였다고 합니다.
그 어렵게 받은 인간의 몸으로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 행하지는 못할지언정
사소한 욕심과 감언이설에 속아 시간을 탕진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리석음의 극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불자님들은 다행히 무슨 인연에 의해서인지 부처님의 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제 부처님의 품으로 들어왔으니,
세상의 헛된 것에 물들지 말고 올바른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사회를 올바른 사회로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개개인이 올바른 생각과 실천으로 이 사회의 당당한 한 구성원이 된다면
여러분의 가족이 그것을 배우고 따라 할 것이며,
그러면 곧 여러분 주위의 사람들이 여러분을 따라서
올바른 세상을 만드는 데 함께 힘을 보탤 것입니다.
그제야 비로소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큰 뜻을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 월정사 현해 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