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는 그 책을 가지고 있다.
40년전 일본 동경대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갖다주지 못하고 귀국했기 때문이다.
무심코 책꽂이에 꽂혀 있는 오래된 그 책을 뽑아 펼친다.
농업경제학 서적이다.
생각보다 가볍다. 파리똥이 앉아 있는 표지는 빛이 바랬고, 본문의 종이는 부석부석하고 누렇다.
마치 잘 마른 생선 같다. 밑줄 친 흔적도 간간이 보인다.
내가 언제 이 책을 읽었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판권을 보니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책이다. 뒤표지 안쪽에 참으로 반가운 게 눈에 띈다.
갑자기 뭉클해진다.
노란 봉투 속에 빳빳한 종이가 한 장 끼어 있는 것이다.
도서대출기록표!
이 책의 주인이 도서관이라는 표시다.
내가 도둑질한 범인이다.
지금은 바코드로 책을 인식한다.
예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면 이 도서대출카드에 반드시 기록을 남겨야 했다.
대출일자, 대출자, 반납일자를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적어 넣었다.
도서관에 책이 입고된 후에 어떤 사람이 대출했는지 시간대별로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책이 유전한 기록이었으므로. 대학도서관의 도서대출카드는 학과명을 적게 되어 있었다.
먼저 책을 빌려간, 얼굴 모르는 여학생의 전공과 이름을 유심히 들여다본 적도 있다.
약간은 존경 어린 눈빛으로, 알 수 없는 흠모의 마음으로. 그리고 맨 밑에 내 이름 하나가 얹혀 있는 걸 바라볼 때의 뿌듯함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