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커녕 올림픽 출전 경험도 없던 86년 월드컵 맴버들과 달리
90년 맴버들은 86월드컵과 88서울올림픽을 경험했던 맴버들.(최순호,김주성,변병주,박경훈등)
86 상대국 보다 한 수 아래팀과의 대결이라, 국민들은 기대했지만 최악의 결과. 3전전패에 1골 6골 실점.
1. 정부 지원이 없어져
87년 6월 항쟁과 직선제 그리고 연말 대선으로 6공화국 출범. 88서울올림픽까지 치뤄
더 이상 3s 정책을 취할 이유가 없어져
(86은 유럽과 평가전 추진, 여의치 않자 서독 원정. 분데스리가 1부리그 5팀과 평가전
멕시코 지진 원조와 멕시코 대표팀과 두 차례 평가전, 외교력 동원 알제리,헝가리와 평가전등을 정부가 지원한 것과 대조)
2. 김우중 축협 회장의 방임
초,중,고,대학 그리고 실업과 프로 대우로얄즈을 운영하던 축구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던 재계의 대표이기에
축구계는 큰 기대를 했었지만
김회장은 당시 경영 위기를 겪던 대우중공업 사업장에 상주. 기업 경영에만 총력
축협 간부들이 결제를 맞기 위해 옥포에 내려가야 할 정도로
3. 축협의 무능과 문제점
월드컵 출전국중 유일하게 전임 감독제가 이루어 지지 않아
이회택감독은 포항 감독에, 허정무 코치 역시 포항 코치
(이들은 대표팀과 소속 팀 이중으로 신경써야 했어)
또 감독에게 선수 선발권이 없이 협회가 가져
일 년간 27명의 맴버 교체.
상대팀 전력 분석 조차 하지 않아. 벨기에 스페인 우루과이에 대해 백지 상태에서 그들과 상대해
(86년은 감독과 선수들을 상대방 평가전에 직접 관람 시키는등의 노력과 정반대 )
4. A매치급 평가전 없었고 . 그리고 어처구니 없는 스페인 전지훈련
스페인과 월드컵에서 경기를 하는데
스페인에 가서 3부리그,2부리그 팀과 경기(86은 분데스리그 1부리그 팀과 경기)
시차 적응도 안 된 상태에서 경기. 각 1팀과. 스페인에 그대로 전력을 알려주는 결과
(스페인 감독과 언론들
"우리에게 전력 알려주러 왔나?" 라며 "알수가 없는 미지의 동양인들!" 이라며 어리둥절해)
소련 클럽 스파르타와 두번, 독일 분데스리가 팀과 모두 국내에서 평가전.
1차전 벨기에전은 98년 프랑스 월드컵전 네델란드 5대0 경기보다 더 앞도적으로 밀린 경기.
2차전 스페인전은 한국 선수들 움직임이 1차전 보다는 좋아 졌고
특히 황보관의 프리킥(당시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의 슛이라는 찬사를 받아)
하지만 미첼에게 3골을 내주고 미드필드진에서 앞도 당해
3차전은 가장 선수들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우루과이와 거의 대등한 경기
1,2차전 모두 시차적응에 문제였음이 드러나
대표팀은 92년 바로셀로나 올림픽 대표팀 부터 대표팀 전임 감독제를 시행하게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