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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서는 "자신을 등명으로 삼아 스스로 귀의할 곳으로 삼되 남을 귀의할 곳으로 삼지 않으며, 법(法)을 등명으로 삼아 법을 귀의할 곳으로 삼되, 다른 곳을 귀의할 곳으로 삼지 말지어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것을 줄여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이라고 하며 귀의란 말을 살려서 '자귀의 법귀의(自歸依 法歸依)' 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뜻의 글이 장아함의 유행경(遊行經)과 잡아함에도 나와 있다.
등명에 대항하는 '디파(dipa)'는 주(州)나 섬(島) 등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에서는 후자를 취하고 있다.
이 '자등명 법등명'은 팔리 성전이나 장아함 등에 의하면 이미 80세로 늙고 쇠약해져 임종이 가까워진 부처님이 아난다의 간절한 소원에 따라서 설교하였다는, 유언이나 다름없는 몇 가지 말씀 중의 하나이다.
내용인즉 자기 자신 및 불법에만 종교적 실천의 귀의를 구해야지 절대로 남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 자신에게만 의지하여야 한다는 말은 <법구경> 을 통해서도 설해지고 있다.
자기 마음을 스승으로 삼아라
남을 따라서 스승으로 하지 말라
자기를 잘 닦아 스승으로 삼으면
능히 얻기 어려운 스승을 얻나니
너는 너의 귀의할 곳을 만들라
부지런히 힘쓰고 지혜로워라
마음의 더러움이 없는 사람은
거룩하고 빛나는 하늘에 날 것이니
나는 나를 주인으로 한다
나 밖에 따로 주인은 없다
그러므로 마땅히 나를 다루어야 하나니
말을 다루는 장수처럼
현실 속의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우리는 약하고 덧없고 동요하며 앞뒤를 살피고 부화뇌동(附和雷同)하기 쉬운 존재이다.
우리는 무리를 지어서 움직이고 무리의 힘을 빌려서 행동한다.
이것은 결국 자기가 약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러한 자기의 약함과 주체가 없음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자기에게 부처님은 모든 종교적 실천의 짐을 지게 한 것이다.
여기서 불교가 너무 엄격하다든지 가혹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누구에게 기댈 것인가.
우리는 고독할 때 자기 자신을 가장 잘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고독을 가장 깊이 느낄 때는 죽음에 임했을 때다.
자기의 고독, 자신의 죽음은 어느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슬픔도 자기의 몫이며 고독도 자기의 몫이다.
이렇게 말하면 불교가 닫혀진 인간관에 기초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오해할 소지가 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 즉 법을 통해서 타인과 열린 관계를 맺는다.
예컨대 우리는 승가공동체 안에서 단독자인 자아에서 벗어나 에고이즘에서 탈출할 수 있다.
즉 타인 속에서 자기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불법(佛法)인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의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이 우리들의 의지처가 된다.
타인에게서 귀의할 곳을 구할 것이 아니라, 자기와 법을 등명으로 삼을 때 불교적 삶을 사는 것이다.
#불교방송 #불교강좌
첫댓글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요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붇닷서! 존귀하신분, 공양받아 마땅하신분,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께 귀의합니다.
자등명 법등명ᆞ
자귀의 법귀의 하라ᆢ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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