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912
■ 3부 일통 천하 (235)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25장 하나가 되는 천하 (11)
돌이켜보면, 주(周)왕조는 주무왕(周武王)에 의해 일어났다.
그 이전에 하나의 시작이 있었고, 하나의 끝이 있었다.주무왕은 그 끝에 이은
또 하나의 시작이었다.제 2대 주성왕과 제 5대 주목왕 대까지 주(周)나라는 크게 번성했다.
제 12대 주유왕(周幽王)에 이르러 포사가 등장했다.여기서 시대의 어지러움이 시작되었다.
제 13대 주평왕 때에는 도읍을 동쪽으로 옮겼다.이것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시작이었다.이른바 춘추시대(春秋時代).
춘추시대 초기를 장식한 나라는 정(鄭)나라였다.간웅 정장공(鄭莊公)의 출현.
그로 인해 새로운 형태의 힘을 우리는 보았다.이어 동쪽에서 제(齊)나라가 일어났다.
남쪽의 초(楚)나라도 일어났다.북쪽의 진(晉)나라도 힘을 길렀다.
힘을 겨루는 시대 - 이것이 춘추시대다.
제환공(齊桓公), 진문공(晉文公), 초장왕(楚莊王)이 연이어 등장하여 마음껏 그 힘을 뽐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다.그 후 새로운 강자가 등장했다.오(吳)나라와 월(越)나라였다.
오왕 합려(闔閭)와 월왕 구천(句踐)은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져갔다.
그들의 출현과 몰락은 한바탕의 꿈만 같았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약자는 멸망하고 강자만이 살아남는, 더욱 치열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힘을 겨루는 시대가 아니라 힘에 의해 죽고 사는 시대가 되었다.
진문공의 후손은 조(趙), 한(韓), 위(魏)로 갈라져 새롭게 태어났다.제환공의 후예는 동해
바닷가에서 쓸쓸히 죽어갔다.대신 전씨(田氏)가 제나라를 다스렸다.정의도, 도덕도, 윤리도
무너져 내려갔다.초(楚), 연(燕), 진(秦)은 생존의 싸움에서 살아남았다.
이 일곱 개 나라가 전국칠웅(戰國七雄)이다.힘 없는 나라들은 하나씩 둘씩 멸망해갔다.
송(宋)나라가 사라졌고, 노(魯)나라가 멸망해갔다.800년 주(周)왕조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전국칠웅 중 가장 먼저 멸망한 나라는 한(韓)나라였다.이어 조(趙)나라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위(魏)나라, 초(楚)나라, 연(燕)나라도 멸망했다.동방의 대국 제(齊)나라도 스러져갔다.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나라.이제 중원 천하는 진(秦)나라의 것이 되었다.
일통천하(一統天下).주평왕 이래 550년간 이어온 열국(列國)의 시대는 이렇게 끝이 났다.
사람.
사람의 삶.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각자 삶을 살다가
저 세상으로 사라져갔다.수천 년, 수만 년 전에도.어떤 사람은 격정적으로, 또 어떤 사람은
조용하게.또 어떤 사람은 아름답게, 어떤 사람은 추악하게.
지금까지 보아온 550년 간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는 별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이고, 흔적이고, 방식이다.이것은 비단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오늘의 우리, 내일의, 우리들의 삶이다.영웅, 호걸, 재상, 말단 관리, 충신, 간신, 그리고
이름 모를 백성들.이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른다.사람 또한 끊임없이 흐른다.아, 그 끝은 과연 어디인가.
끝인 줄 알면 또 다른 시작이 있다.그것이 사람의 삶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리들의 삶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천하(天下)가 하나로 됨과 동시에 또 다른 시대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을 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통일된 진(秦)나라 최초의 자객이 등장하고 있었다.그 이름은 바로 고점리(高漸離).
913편 열국지(列國志)의 마지막이 이어집니다.
열국지 [列國誌] 913 (마지막편)
■ 3부 일통 천하 (236) 마지막
제13권 천하는 하나 되고
제 25장 하나가 되는 천하 (12)
고점리(高漸離). 그는 형가(荊軻)의 막역지우이자 축(筑)의 명인이다.
전국시대 마지막 자객 형가(荊軻)의 죽음 소식을 들은 고점리(高漸離)는 홀연 연(燕)나라를 떠났다.
성도 이름도 바꾸었다.진시황으로부터 수배령을 받았기 때문이다.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송자(宋子)라는 땅이었다.지금의 하북성이라고 하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그 곳에서 그는 한 상인(商人)의 머슴으로 들어갔다.'복수를 하리라.'
막역지우였던 형가(荊軻)의 복수인지 고국인 연(燕)나라에 대한 복수인지 그 자신은 명확히 알지 못했다.
그저 진왕 정(政)에 대한 원한과 울분이 가슴 가득히 끓어오를 뿐이었다.그럴 때마다 그는 축(筑)을 탔다.
머슴살이를 하는 동안 어느덧 그가 축(筑)의 달인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주인 상인과 그 손님들은
고점리(高漸離)를 상객으로 모시고 번갈아가며 그의 축 솜씨를 감상했다.
- 송자(宋子) 땅에 축(筑)의 명인이 출현했다.이러한 소문은 함양궁 안의 진시황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진시황(秦始皇)은 음악을 좋아했다.그 즉시로 '축(筑)의 명인' 을 궁으로 불러들였다.
과연 고점리(高漸離)의 연주 솜씨는 신기(神技)에 가까웠다.진시황(秦始皇)은 단번에 그 소리에
매혹되었다."궁에 머물며 늘 짐(朕)을 위해 연주하라."그런데 이를 어쩌랴?
그 곁의 신하 중에 고점리의 얼굴을 아는 자가 있었다.
"이 자는 자객 형가(荊軻)의 막역지우인 고점리(高漸離)라는 자입니다. 가까이 두면 위험합니다."
진시황(秦始皇)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마음에 든 악사가 하필이면 꿈에서 나타날까 두려운 형가(荊軻)의 막역지우(莫逆之友)라니.
그러나 그는 고점리(高漸離)를 죽이지 않았다."그 솜씨를 묻어버리기에는 아깝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어찌 짐(朕)을 해칠 수 있으리오!"그러고는 불에 달군 쇠막대기로 고점리의
두 눈을 지졌다.이제 고점리(高漸離)는 장님이 되었다.그러나 축(筑)을 타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 날부터 그는 함양궁 안에서 진시황을 위해 축(筑)을 연주하며 지냈다.
장님이 된 이후로 그의 솜씨는 더욱 빛을 발했다.소리가 한층 더 그윽해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고점리(高漸離)는 몰래 축(筑)의 몸체 속에 쇳덩어리를 숨겼다.
"곡을 연주하라."진시황의 명에 고점리(高漸離)는 가까이 다가가 축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곡조가 절정에 이르렀을 무렵, 고점리(高漸離)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동시에 쇳덩어리가 든 축(筑)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 진시황이 앉아 있는 의자를 향해 내리쳤다.
그러나 고점리(高漸離)는 앞이 보이지 않는 장님이었다.
진시황의 의자가 놓여 있는 곳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다.
쇳덩어리가 든 축(筑)은 진시황이 있는 바로 앞에 내리꽂혔다."아!"누군가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죽여라!"고점리(高漸離)는 분노에 찬 진시황의 음성을 마지막으로 그 자리에 쓰러졌다.
세상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형가(荊軻)가 전국시대의 마지막 자객이라면,
고점리(高漸離)는 통일된 진(秦)나라의 최초 자객이다.그로부터 며칠 후, 진시황(秦始皇)은
허공으로부터 한 외침 소리를 들었다.- 하늘을 보아라!그 소리에 끌리듯 진시황(秦始皇)은
고개를 쳐들었다.그때 그는 보았다.
하늘 저편 끝에서부터 온 세상을 덮칠 듯 빠른 속도로 밀려오고 있는 시커먼 먹구름을.
그것은 또 다른 시대를 알리는 서막(序幕)이기도 했다.
913편(1부 344편, 2부 333편, 3부 236편)의 글을 끝으로 13권의 '열국지(列國志)' 는 막을 내립니다.
그동안의 성원에 깊이 감사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첫댓글 지난 2022년 6월 1일부터 동우회 카페에 연재를 시작하여 오늘(2024년4월17일)까지
거의 2년... 긴 시간을 함께 애독해주신 회원님들께 감사 드립니다.그동안 조회수가 적어
연재 중단도 검토 하기도 했습니디만, 열심히 애독 해주시는 성원에 힘을 얻어.... 오늘 913회로
무사히 막을 내리게 되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동안의 성원에 깊이 감사 드립니다.
지난 2년간 열국지가 있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유려한 필치, 군더더기 없는 표현, 적절한 타이밍!
작가님과 이준황님에게 깊이 감사드리며, 기회가 되면, 다른 역사물로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두 분의 영육간의 건강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