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소령 문턱 용쏘에서 발걸음을 멈춘 산행이었지만, 아침에 바라본 눈덮힌 설경은 가슴 터질 듯 시원함을 안겨줬습니다.
산 아래쪽에는 생각만큼 눈이 많이 온 것은 아니었지만 간만에 내린 폭설에 안전을 생각해서 마천에서 음정 용쏘가든까지만 올라가고 그곳에서 술한잔 기울이며 놀다가 내려왔습니다.
많은 분들 염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특히 장이님, 이상과현실님 애정어린 걱정 감사드립니다^^*
걱정해 준 마음이 너무 고맙게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하는 산행이라면 모를까 여럿이 하는 산행이기에 무리하게 정상으로 올라가자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산에 오를 수 있는 날은 많이 있기에 미리 공지했다고 꼭 날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금요일 늦게 등구자연학교에 도착했습니다.
눈내리는 고속도로를 버스안에서 맘 졸이다 도착한 함양. 얼굴이라도 보겠다고 늦은 시간 터미널까지 나와주신 꺽정이형님이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꺽정이님의 정이 따뜻하면서도 감사하게 느껴지더군요. 다음날 아침, 눈이 내리는 와중에도 부탁한 계란까지 한줄 사가지고 들어오실 때는 미안한 마음이 더 많았답니다. 이리저리 신경써 주신 꺽정이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밤 12시가 넘어 자연학교에 도착했기에 늦잠을 잔후 늦은 아침을 먹고 나서도, 쉼없이 내리는 눈에 점차 산행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며 산행보다는 등구에 눌러 앉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답니다.
눈이 쌓이는 와중이었지만 덕분에 재미있는 눈싸움 구경도 할 수 있었습니다.
미술관님과 저와 함께 내려온 미술관님 친구가 눈싸움 하는 광경이었는데, 아무리 여자들끼리의 눈싸움이라고 해도 그런 일방적인 눈싸움은 처음 봤습니다. 한쪽은 일방적으로 눈을 상대방에게 퍼붓고 한쪽은 화장이 지워질 정도로 얼굴이 눈에 범벅이 되고... 미술관님의 완전한 KO승 이었습니다. 그 눈싸움을 보며 미술관님이 조금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ㅎㅎ 친구분 이야기에 따르면 학창시절 팔씨름에 당할 자가 없을 만큼 팔힘도 세다던데... 앞으로 미술관님 앞에서는 매우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눈싸움이 끝나고도 줄기차게 내리는 눈은 점심때 쯤이면 그만 그치겠지 생각했지만 전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눈은 계속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못 오겠다는 사람들의 전화에 '네 무리하게 오지는 마세요'라고 말하며, 계속 잠만 잤던 것 같습니다. 산행보다는 잠이 더 필요한가 보다라는 생각도 들었고...
간만에 등따숩게 자는 낮잠은 꿀맛 같았습니다...^^
지글지글 끓는 온돌방에서 등으로 따뜻한 열이 전달되어 오며 온몸이 탁 둘리는 것 같은게 눈만 감으면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왜 이리 잠만 오는지, 전통찻집에 마실갔다오자는 미술관님의 제안도 사양한채 아침부터 오후까지 그렇게 따뜻한 등구자연학교에서 줄곧 뒹굴었습니다.(등구에 가면 왜이리 잠이 잘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늑해서 그런건지,,, 변강쇠의 기운이 있다고 해서 그런건지... ^^*)
그런데 4시 30분쯤 넘어서 꿀맞같은 낮잠을 깨우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테러리스트님이었습니다. 테러리스트님 목소리가 원래는 상당히 고운데, 제 단잠을 깨워서인지 정말 시끄럽게 들리더군요... 목소리도 큰것이..ㅋㅋ
연하천을 목적으로 하는 방장산 일행이 함양에서 4시 40분차를 타고 마천에 온다네요. 단잠을 깨운 전화는 야속했지만, 전화를 끊은 직후 눈덮힌 지리산으로 전진해 오는 무리있다는 소식에 등구에서 잠이나 푹 자자는 마음이 새롭게 다져지며 두눈이 번뜩였습니다. 이때다 싶게 멀리 눈쌓인 지리산이 저를 얼른 오라고 부르는 것 같더군요^^*
걱정하는 목소리로 "빨치산님 가지마세요~~" 하며 말리시는 미술관님의 애절한(??) 요청을 과감히(?) 뿌리치며(혹 조금만 강하게 더 붙잡았으면 붙어 있었을려나...ㅋㅋㅋ) 차도 안다니는 등구에서 마천까지의 길을 눈발을 헤치며 걸어나가기 시작해 40여분만에 마천에 당도했습니다.
10여분 정도 기다리니 방장산을 필두로 따르라님과 주절이 테러리스트가 버스에서 내립니다.
음정에서 연하천까지 가자고 계획은 세웠지만, 술한잔 걸친 마천택시 아저씨가 음정까지 올라가지 않겠다고 해서, 결국 마천에서 음정까지를 2시간정도 걸어서 올라가야 했습니다.
저녁을 해 먹고 연하천으로 올라가자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용쏘가든에 도착하니 따듯함이 몸을 확 덮쳐오는게 더이상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버러 그냥 그곳에 짐을 풀어버렸습니다.
연하천이나 벽소령으로 못간 아쉬움은 있었지만 주절이님이 가져온 맛난 물김치와 떡, 고구마, 그리고 거기에 함께 구워먹는 삼겹살. 곁들여지는 소잔한잔과 매실주 등은 긴긴 겨울밤의 정취를 북돋우며 행복한 밤을 선사해 줬습니다.
시간이 흘러 늦게 들어오시는 보헤미안님과 삼팔광땡님...
등구로 오라고 유인하고는 몰래 지리산으로 날라버린 저를 응징하기 위해 용쏘까지 차를 목고 올라와 어려운 걸음 하셨는데...ㅋㅋㅋ 덕분에 함께 술한잔 기울이며 즐거운 시간이었고, 용쏘주인장의 사는 이야기도 꽤 구수하게 들리며 재미있었습니다. ^^*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눈썰매 탄 사람들도 있었고(주절이님 눈썰매 잘 못탄다는데...), 누군가는 서까래도 부러뜨렸다고 하더군요(보헤미안님이 그러신거 아니죠?ㅎㅎ).
언제나 그을린 듯한 얼굴로 듬직하게 보이는 반달곰과 데자부, 그리고 미국에서 잠시 나온 무적이...
데자부님과 무적님은 2001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영화제 기간내내 함께 영화를 봤기에 가까와졌고, 카페 분들중 유일하게 영국간 제 여자친구의 사진을 노출시킨 분들입니다.
지난해 말없이 미국으로 간 무적님이 잠시 들어왔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진주까지 얼굴을 보러 갔었답니다.
멋진 반달곰이 지리산을 가는 데자부님과 무적님의 의 보호자(!) 자격으로 따라와서는 많은 고생을 한 듯 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화엄사골로 노고단 갔다가 대설주의보 때문에 다시 올라간 길로 내려왔다네요.
오랜만에 보는 전설의 부산 핑클 4인방중 두 요정, 멋진요정 무적님의 얼굴이 미국물을 먹은 탓인듯 한결 고와져 있었고, 착한 요정이라 불리는 심성 고운 데자부님 또한 언제나 반갑게 느껴지는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중인 반달곰은 두여인을 데리고 힘겨운 산행을 했으면서도 담담한 표정으로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게 곰처럼 우직하게 보이더군요^^
오랜만에 만난 분들인지라 함께 늦은 점심을 먹고 미국에서 사는 이야기, 산행이야기 등으로 소담을 나눴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더군요. 아마 오랜만에 보는 지리산님들의 모습이 반가웠기 때문인가 봅니다.
차시간에 쫓겨 헤어지기는 했지만 그냥 진주를 뜨기 아쉬운 마음에, 저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당직근무중이던 진주지구장 졸린마녀를 슬쩍 불러냈답니다.
벽다방 커피를 한잔씩 빼들고는 둘이서 남강가에 앉아 겨울 남강의 정취를 구경하는데 느낌 좋더군요^^*
강바람이 꽤 차가웠지만, 제가 옆에 있어 든든했던지(?)ㅋㅋ 졸린마녀님 시외터미널까지 배웅나와주셔서 심심하지 않았습니다...ㅋㅎㅎㅎㅎ
1월 첫 주말. 계획했던 벽소령으로의 산행은 못했지만, 눈내리는 밤은 언제나 참기힘든 지난 추억으로 남는 듯 합니다.
옛날에는 화톳불에 밤도 구워먹고 고구마도 구워먹었다던데, 비록 불판에 구워먹기는 했지만 오순도손 둘러앉아 한잔 술에 곁들인 고기맛과 함께 얹어먹는 고구마와 잘게 썰은 떡은 쫄깃쫄깃한게 맛이 그만이더군요^^
혹 눈내리는 날이 있음 지리산 자락에서 고기와 고구마를 곁들여 먹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진한 추억으로 남을 겁니다.^^*
맛난 먹을 거리들 많이 싸가지고 오신 주절이님과 테러리스트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바쁜 가운데도 나와주신 졸린마녀님도 고맙구요^^
미처 못 간 벽소령 산행은 1월 18일 다시 추진하려고 합니다.
보름이 이틀 지난날이기에 날만 밝으면 달빛이 고울 듯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