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conte)>
『우연의 일치』
靑山 손병흥
어느 단체나 모임에서 총무의 역할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그 열정과 능력의 차이에 따라 당해년도의 활성화가 천차만별로 차이가 날만큼 무척 중차대하고 중요한 직책이기도 하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어쩔 수 없이 회장의 지명이나 회원들의 추천과 천거에 의해 그 직책을 맡아 직무를 수행하다보면, 가끔씩 마음속에 남아 있는 사명감에 비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과 능력의 간격과 한계가 점차 좁혀져 온다는 생각이나 허무감, 나름대로 바쁜 일상사로 인해 미처 직분을 원활하게 수행을 하지 못하는 부담감과 미안함 등으로 인해,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함을 느껴서 홀로 심각하게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그 모임이 혈기왕성했던 까까머리 청소년 시절에 함께 운동장에서 축구와 농구나 배구를 하며, 서로 부대끼고 나뒹굴어 가며 온몸으로 다투거나 싸우기도 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고등학교 동기회의 모임이라고 한다면 더욱 애착이 다를 것임은 물론이거니와, 늘 변함없이 모교와 동기생들에 대한 자부심을 갖은 채 언제나 꿋꿋이 살아왔던 교정에 서린 지난날의 온갖 추억들을 되새겨가면서, 이제는 서로 간에 아낌없이 따스한 우정과 나눔을 가질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도 무척 보람이 있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지만 <배 상문> 씨가 아닌 말로 돌아가면서 마치 고교시절 한 번씩 학급의 당번을 맡아 보았듯이, 막상 ㅇㅇ고 ㅇㅇ회 동기회의 총무라는 직책을 맡고 보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어서, 나름대로 심각한 고민과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하는 후일담을 뒤늦게 사 듣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보더라도 반평생을 그저 공무원 신분으로 주어진 자기의 업무만 열심히 하며 살아왔던 데다, 그 동안 동기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만큼 적극적으로 동참을 한다거나 앞장을 서서 나서는 타입이 아닌 다소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던지라, 전체를 아우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조금씩 못난 자존심을 꾸겨가며 듣기 싫은 소리도 들어가면서 참여를 독려하고 회비납부를 종용하며 각종 길흉사시에 동참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분명히 그 고충도 무척 많았을 것임은 주지의 사실임에 틀림이 없긴 하였다.
하지만 어디 그렇던가. 소위 말해서 학교 우등생이 사회 열등생이라고 하는 말도 있듯이, 정들었던 교정을 떠난 지 어언 수십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동기생들 간에는 학창시절과는 달리 너무나 뚜렷해진 직장에서의 직위와 신분의 격차들로 인해, 평상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작은 경쟁심과 시기와 질투심에 빠져있는 사람들도 있는데다,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는 생활방식과 사고방식 외에도 스타일과 성격과 취미생활마저도 현저한 차이가 날만큼 크게 층이 지고 벽이 있다 보니, 못내 서로 서먹하게 지낼 만큼 우정의 친밀도와 교류관계가 달라서 목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일단 총무를 맡은 이상 그까짓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 하며 꼬깃꼬깃 구겨서 내다버렸던 자존심을, 이후 다시 쓰레기통에서 뒤져 잘 펴서 안주머니에 재차 넣기 위해서 무척 힘들었던 시간들을 보냈었다고 하던 것이었다.
또한 동기생들에게 총동문회 회보와 수첩 발간에 따른 스폰서와 개선의 건, 동문회비 납부의 건과 동문회 체육행사와 등반행사시 참여의 건 외에도, 여러 건의사항 등에 대해 더불어 다함께 생각해 보고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류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그 만큼 중간 매개체와 조정자의 역할이 더욱 중차대하였기에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 동기생들로 부터 별 대수롭지 않게 시리 농담 삼아 하는 무척 당황스런 말을 듣고 부터는, 온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갈 정도의 느낌이 들어서 한동안 심한 고민에 빠져들기도 하였다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닌 자기의 이름과도 정말 우연의 일치로 맞아 떨어지는, 가슴 아픈 무슨 악몽과도 같은 일들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 내용인즉슨, 하필이면 그가 총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첫 역할을 수행한 것이 길사가 아닌 동기생 부모님의 흉사통보와 장례에 따른 관련 일이었던 데다, 그 해 연말까지도 여느 해와는 달리 일반적인 예식장이 아닌 장례식장을 찾는 일만이 너무나 수도 없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그러하였다.
왜냐,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아직까지도 눈치가 없고 아둔해서 도대체 무슨 말인지 그야말로 잘 알 수가 없는 센스가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어디 한 번 그 총무의 이름을 거꾸로 뒤집어서 읽어보라!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문상 배'. 다시 말해서 쉽게 말하자면 문상을 두 배로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들 이건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들 하면서 난상논의 끝에 그 다음해에도 총무만큼은 다시금 거듭 연임을 시켜봤다고들 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그도 그럴 것이 말이 씨가 될 만큼 연초부터 연말까지 문상할 일들만 더욱 더 많이 발생하더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