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전문에 “5·18 민중항쟁”으로 수록해야 한다.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최초로 표현한 사람은 5·18의 가해자인 노태우이다. 5·18은 일반적인 민주화운동이 아니므로 “민중항쟁”이라고 정확하게 명명해야 한다.
1987년 6월항쟁으로 쟁취한 민주헌법에 따라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가 당선되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전에 구성한 민주화합추진위원회의 최종보고서는 5·18에 대한 성격을 “민주화운동의 일환”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면서 피해 당사자와 함께 큰 아픔을 겪은 광주시민에게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광주의 아픔을 치유해야 한다고 노태우에게 건의했다. 이에 따라 노태우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 광주의 아픔을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가 국정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그러자 노태우는 정부 부처에 “광주민주화운동 치유방안”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그에 따라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새로운 행정용어가 탄생하여 공직사회에서 전반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또한, 1990년에는 노태우의 지시에 따라 민자당이 입법발의한 법안으로 날치기 통과시킨 5·18 관련 최초의 법률명도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등에관한법률”이라 제정하여 새로운 법률용어로까지 확장되었다. 이렇게 노태우는 두 번씩이나 5·18을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명명한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5·18정신을 헌법전문에 수록하자면서 이러한 내력으로 만들어진 5·18의 명칭에 대한 아무런 고민과 검증도 없이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표현한 그대로 수록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오히려 숭고한 5·18의 정신에 반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5·18의 성격에도 맞지 않은 명칭일뿐더러 5·18의 가해자가 지은 이름을 그대로 헌법전문에 수록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은 민주화를 염원하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전개하는 일반적이고 지속적인 모든 활동을 뜻하는 것이다. 반면에 ‘민중항쟁’이란 특정 지역이나 전국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국민들이 동일하고 뚜렷한 민주적 가치를 주장하면서 일정한 기간 동안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벌 때처럼 일어나 저항하는 사건이라 하여 ‘민중봉기(民衆蜂起)’라고도 표현한다. 이런 의미에서 1980년 당시 외신들은 5·18을 보도하면서 ‘Kwangju people’s uprising’이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리고 공직사회가 아닌 학계나 시민사회 및 5·18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주저 없이 “민중항쟁” 혹은 “민중 민주항쟁”이라고 표현해 왔다.
이재명 대통령과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번 6·3 지방선거 때 여야가 이미 공감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만이라도 개헌하자면서 ‘부마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을 헌법전문에 수록하자고 거듭 주창하고 있다. 이 같은 개헌논의와 추진에 대해서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환영하는 바이며, 기필코 성사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에 부산과 마산에서 5일간 전개되었고, 5·18민중항쟁은 1980년 5월에 광주와 전남에서 10일 동안 전개되었다. 이렇게 전개된 두 사건은 그 규모나 희생의 정도, 그리고 이후에 계승된 정신적 가치 등의 면에서 현격히 차이가 있지만 공적인 명칭에 있어서는 5·18이 격하된 채 사용해온 그대로 헌법전문에 까지, 수록되지 않을까 하여 심히 우려된다. 이 일을 추진하는 모든 관계자들은 진정으로 5·18의 정신을 가슴에 되새기면서 이렇게 해도 되는 것 인지를 한 번쯤 되돌아봤으면 한다. 만약 이번 기회에 공적 영역에서 널리 통용해 온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잘못된 명칭을 본연의 성격에 맞도록 “5·18민중항쟁”으로 바로잡아서 헌법전문에 수록한다면 후세에 길이 빛나는 영광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야만 5·18 영령님들께도 부끄럽지 않게 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주지역 5.18 광주민중항쟁 동지회장 이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