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 보조금 '말도 안 되는 소리' 취급하는 미국, 국제적 신뢰는 아랑곳하지 않나 / 11/29(금) / 한겨레 신문
내년 1월 임기가 시작되는 2차 트럼프 행정부에서 중심 역할을 하게 될 장관 후보자가 삼성전자 등이 미국에 반도체 생산공장을 만드는 대가로 지급하기로 한 보조금을 '낭비'라고 부르며 재고할 뜻을 밝혔다. 반도체 등 첨단기술 산업에서 중국의 도전을 뿌리치려면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이 뭉쳐야 한다고 했다가 정권이 바뀌자 어이없는 소리라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처럼 약속을 어기면 미국의 국제적 신뢰는 크게 실추되고 기업들은 어렵게 준비한 투자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게 되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차기 행정부를 강력히 설득해 서로 불필요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제2차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론 머스크와 함께 '정부효율화부'(DOGE) 수장을 공동으로 맡게 된 비벡 라마스와미는 26일(현지시간) 자신의 X(구 트위터)에 "미국 인플레이션 억제법(IRA)이나 CHIPS법(반도체 및 과학법)에 따른 낭비 보조금이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는 2025년) 1월 20일 이전에 급하게 지급되고 있다며 이 같은 모든 막판 수법을 재검토하고 감찰관에게 마지막 순간에 이뤄진 계약을 면밀히 조사하라고 권고한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의 낙후된 반도체 생산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초당적 법률까지 만들어 낸 약속을 차기 행정부 장관 후보자가 조사를 필요로 하는 부적절한 것이라고 단정해 번복할 수 있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힌 셈이다. 미국을 믿고 어려운 투자 결정을 내린 동맹국과 주요 기업을 배신하는 것과 같다.
트럼프 씨는 앞서 CHIPS법에 대해 가난한 나라들에 돈을 뿌리는 아주 나쁜 딜(거래)이라며 고관세를 부과하면 그들이 와서 공짜로 반도체 공장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시장이 크게 출렁이자 지나 레몬드 상무장관이 나서 "이임하는 날까지 모든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 목표"라며 강한 견제구를 던졌다.
미 상무부는 4월 삼성전자와 보조금 64억 달러(약 9700억엔), 8월에는 SK하이닉스와 보조금 4억 5000만 달러(약 690억엔), 정부 융자 5억 달러(약 760억엔)를 지급하는 예비거래각서를 각각 체결했다. 예비거래각서는 현 시점에서는 법적 효력이 없다. 이에 미국 인텔과 대만 TSMC는 이달 법적 효력이 있는 최종 계약을 맺었다. 이대로 방치하면 한국 기업이 가장 먼저 표적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