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성 전 국무총리가 연말 대통령선거 출마를 위해 추진하는 신당이 오는 30일쯤 창당된다. 이 전 총리가 뒤늦게 대권도전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또 그의 대권 레이스 가세가 원내 정당 후보를 기준으로 '1강(이명박) 1중(정동영) 3약(이인제·권영길·심대평)' 구도로 진행되고 있는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전 총리의 대권행보는 그동안 '호시우보(虎視牛步)'를 연상케 했다. 눈빛은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는 것처럼 날카롭지만 특유의 성격대로 결코 조급하지 않았다. 주변에선 "시간이 없다"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두 달이면 기적적인 '국민혁명'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며 오히려 서두르지 말라고 참모들을 다독거렸다. 국민들이 정치에 등을 돌리고 정치인을 경멸하고 있는데 선거운동에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지난 8월 대선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뒤에도 2개월가량 전면에 나서기보다 암중모색하는 소극적 행보를 보였다. 일각에선 과연 '대권의지'가 있는지 조차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기간 동안 이 전 총리는 많은 준비를 해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 꾸준히 접촉을 가졌고, 그를 돕는 참모들은 '국민혁명공약'으로 이름붙인 획기적인 대선공약들을 준비해 왔다.
'이수성 신당'은 지난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발족식을 가진 '화합과 도약을 위한 국민연대'가 모태다. 기존의 한나라당이나 대통합민주신당 등과는 완전히 다른 제3의 정치세력을 결집하는 게 목표다.
이 전 총리는 20일 기자와 만난 자리서 "분열과 당파 정쟁의 중심에 섰던 사람, 도저히 곤란하다는 사람이 아니면 건전한 개혁세력, 건전한 보수세력을 다 함께 아우르며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특히 범여권후보 단일화 논의에 참여할 여지도 완전히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나라가 잘되고 화합하는 길이라면 문을 닫아두지는 않겠다"면서 "다만 정쟁의 중심에 섰던 사람들은 결코 화합의 지도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합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말했다.
반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의 연대에 대해선 "지금까지 강자와는 비굴하게 손을 잡고 연대하지 않았다. 무릎 꿇고 사느니 서서 죽는 길을 택하겠다"는 말로 가능성을 완전히 닫았다. 이 후보의 대운하 공약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산지를 뚫고 만들려면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안게될 것인데, 물류수송 수단으로서 그만큼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오히려 그 비용과 시간에 도로를 더 많이 내는 것이 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 전 총리가 만들 신당에 참여할 인물들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소문만 무성하다. 영남 출신이 주축이 될 것이란 관측 때문에 '영남신당'아니냐고 비꼬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전 총리는 "비열한 정치적 수사"라고 펄쩍 뛰었다.
그는 "두 번 다시 그런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며 "북한에서 태어나 광주와 서울에서 자라고 칠곡이 고향인 나를 영남신당의 맹주나 노리는 사람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악의적인 모함"이라고 일축했다.
실제로 그동안 이 전 총리가 접촉해 온 사람들의 정치적 기반은 전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정가에선 김병준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고령)·김혁규 전 경남도지사 외에 호남 출신인 강운태 전 내무부 장관, 충청권의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이원종 전 충북도지사, 그리고 김진선 강원도지사 등이 신당과 함께 할 수 있는 인물들로 거론되기도 한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의 대선주자 '9룡'으로 각광 받은 뒤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을 맡는 등 비교적 조용히 지내오던 이 전 총리가 뒤늦게 대선출마를 생각하게 된 것은 왜일까.
그는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많은 분들의 권유가 있었다"고 했다. 또 "지금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는 분열과 갈등, 쇠락의 길로 가면서 큰 위기가 닥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방관자가 될 수만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전 총리는 조만간 대구·경북지역을 찾아 주민들이 잘 살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지역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