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이야기에 굶주려 있던 우리에게 이 무용담은 대단히 멋지게 다가왔다. 광주 남구 월산동 뒷산에는 미국 서부시대의 석양 장면이 연상될 법한 무덤들이 있었다. 그 무덤 위에서 일곱 살 때인가, 우리는 난 와이어트 어프 보안관, 너희는 카우보이 무리들 어쩌구 하면서 빵야 빵야 하고 놀았던 것이다. 그 시절 그 무덤은 OK 목장이었다.
넷플릭스에 지난 21일 '와이어트 어프와 카우보이 전쟁'(6부작)이 올라왔을 때 심드렁했다. 다 아는 얘기인데 뭘, 회가 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고 연신 감탄하며 무릎을 치며 봤다. 몰입감이 대단하다.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보다 지쳤는데 이 다큐드라마는 그런 것이 1도 없었다. 다 아는 얘기를 이렇게 재미있게 버무릴 수가 있을까 싶다. 국내 영화 팬들에게도 왠지 서부극에 어울릴 것 같고, '웨스트월드'로도 그런 면모를 살짝 입증하기도 했던 에드 해리스의 내레이션으로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연결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1881년 10월 26일 오후 3시쯤 일어난 일이었다. 앞의 월산동 뒷산 활극 얘기가 1970년쯤이니 미국 서부의 인구 7000명쯤 되는 마을에서 벌어졌던 얘기가 얼마나 생명력을 갖고 굴러가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시리즈는 애리조나주 툼스톤이 어떤 배경에서 탄생한 마을인지, 어떤 이들이 모여 들었는지 등부터 찬찬히 따지고 들어간다. OK 목장의 결투가 일어나기 7개월 전 역마차 하나가 강도들에게 당하는데 웰스 파고 은행의 전신 회사가 이 역마차를 운행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16년쯤 지났는데 여전히 남북의 격차와 분열이 극심했던 사회에서 사람들이 은광에 미쳐 돌아가던 상황을 톺아본다. 요즘 말로 OK 목장의 결투가 일어나기까지 과정을 빌드업해나가는데 그 치밀함에 탄복하게 한다.
실제로 보안관도 아니고 보안관에 고용된 일종의 행동대원이었던 북군 전역병 버질과 와와이어트, 막내 모건의 어프 삼형제와 치과의사 출신 술주정뱅이 총잡이 닥 홀리데이가 정의의 편이 되고, 아이크 클랜튼 형제 등 카우보이 무리가 악한으로 대결한다. 어이 없는 아이크의 허풍 때문에 OK 목장이 아니라 근처 사진관 앞에서 30초란 짧은 시간에 30발 정도의 총알이 발사된 싸움에 불과했는데 1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일을 갖고 이렇게 설왕설래하고 있다.
서부극이 미화하거나 부풀렸던 것과 달리 그들은 모두 불한당이었고, 좋게 봐야 기회를 엿보는 군상들이었다. 정의롭지도 않고, 심지어 총 솜씨도 형편 없었다. 삼형제와 홀리데이 등 4명과 아이크 일당 6명이 2m 거리를 두고 대결했는데 아이크 패거리 가운데 둘이 달아나고 3명 죽고 아이크 혼자 숨었는데 모두 30발의 총알이 낭비됐다.
와이어트가 보안관의 연인과 바람을 피운 것이 삼형제와 카우보이들의 싸움에 불을 지폈는데 이를 재판 과정에서 폭로하지 않고 와이어트가 궁지에 몰렸다가 보안관의 위증이 탄로나는 바람에 삼형제가 살인죄 누명을 벗는 과정도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긴박감이 있었다. 정의와 범죄를 가르는 것은 백지 한 장 차이였다.
두 형제가 아이크의 계략에 희생되는데도 보안관과 손잡은 아이크가 교활하게 빠져나가는 장면도 주먹이 가까운 당시 현실은 물론,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돌아보게 만든다. 서부 개척민들의 사고나 행동 방식을 보면서 이스라엘 유대인 정착민들이 팔레스타인 가자와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벌이는 행동 양식과 상당히 닮아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툼스톤과 OK 목장, 황량한 애리조나 사막의 대결 못지 않게 재미있는 것이 서부의 활극을 멋대로 꾸며 뱃속을 채우는 신문들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 괴담 또는 전설이 서부영화로 재연되곤 했던 것이다. 살아남은 자가 곧 정의이고, 힘 있는 정의가 곧 미국의 정의임을 시사하는 대목도 적지 않았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암살된 지 16년 만에 다시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이 암살되고 체스터 아서 대통령이 승계한 일과 함께 철도회사를 인수하려고 영국 은행 재벌 로스차일드의 투자를 유치해야 했던 미국 은행가 JP 모건의 획책 등이 묘사된다. 모건은 와이어트 어프와 카우보이들의 대결을 진압하기 위해 아서 대통령을 몰아붙여 의회 승인이 필요 없는 민방위 부대를 동원하기에 이르고 북부 공업지대 자본가들과 달리 남부 사람들은 목축업자와 카우보이들에 동정적이어서 내전으로 치달을 정도의 위기로 진전된다.
결말은? 복수심에 남지 않아 상대를 죽이겠다고 벼르던 와이어트와 아이크 모두 달아나 버린다. 와이어트는 1922년 서부극 영화에 자문을 해주며 평생을 시달린 살인자 풍문을 벗고 정의의 보안관으로 이미지 세탁을 한다. 아이크는 본업인 소떼를 훔치다 총에 맞아 세상을 등지고, 홀리데이는 폐결핵으로 목숨을 잃는다. 어차피 다 죽어야 끝나니. 시리즈 결말은 이렇다. '와이어트 어프는 영웅이어야 했고, 서부는 미국 사회가 통합되고 국가로 발전하는 데 꼭 필요한 만큼 미화되어야 했다.'
사실 OK 목장의 선악 대결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던 시각에서 이 시리즈가 전달하는 통찰은 얼핏 그럴 듯하게 다가오지만 그것 역시 지나치게 부풀려진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역사적인 의미 해석과 별도로 내레이션과 전문가 코멘트, 드라마의 짜임새가 훌륭하고 솜씨가 대단한 것은 별도로 높이 살 대목이다.
그리고 서부 개척시대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 시리즈들과 차별화한 클래식 음악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라 크리모사' 등 귀에 익은 클래식 선율들이 계속 들려오는데 생뚱맞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개인적인 소회로는 브레히트가 말한 소외 효과, 관객이 감정 이입을 자제하고 상황을 냉철하게 이해하고 판단하게 하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 블로거의 글이다. 나도 거의 같은 생각을 했다.
요즘 이해 못하는 단어 중에 #건국 이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가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아.. 200년 정도의 이야기를 갖고 있는 나라. 미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