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문품普門品' 제목에 대한 해석】
/ 연배 스님
[「보문품」제목의 간략한 해석]
이 품品의 이름은
[관세음보살보문품觀世音菩薩普門品]이며,
모두 여덟 글자이다.
'관세음보살'은 증득하는 주체人이고,
'보문품'은 증득되어지는 대상法을 말하며,
'관음觀音'은 그 사람을 증명하며,
'보문普門'은 그 법을 증명한다.
그래서 이 품은 주체인人 관세음보살과 증득되어지는
대상法에 의거해서 본품本品의 제목으로 세워졌다.
'관세음보살'의 다섯 글자에서 앞의 세 글자는
관세음보살님의 별명이며, 뒤의 두 글자는 통칭으로,
보리심을 내어 보살도를 행하는 이를 보살이라 이름할 수 있다.
관세음은 보살의 덕호德號이다.
어떤 때에는 광세음光世音이라 부르고,
어떤 때에는 관자재觀自在라 부르며,
또 어떤 때에는 간단하게 관음觀音이라고 부른다.
관세음觀世音은 구마라집羅什삼장의 번역이고,
광세음은 축법호竺法護삼장의 번역이며,
관자재는 현장玄奘삼장의 번역이다.
그리고 관세자재觀世自在 혹은 성관자재聖觀自在라고 한다.
성聖은 찬탄하는 말이며, 법장法藏의 심경心經에 근거하여
간단히 해석하면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지혜智慧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관음觀音의 지혜라고 이른다. 사물의 이치를 관觀함에 있어
경계境界에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는다.
이미 자유자재自由自在함을 얻어서
다시는 터럭만큼의 구속이나 장애가 없음이다.
두 번째는
비悲라고 설명할 수 있으며,
관음觀音의 대비라고 이른다. 갖가지 방법으로 교화하여
제도함을 말하며, 마땅히 중생들을 구제하기 전에
자유자재함을 갖추어 더 이상 어떠한 곤란함도 없다.
그리하여 사바세상을 관觀하여 자유자재로
중생을 이고득락離苦得樂하게 한다.
즉, 그 이름이 관세자재觀世自在이다.
구마라집은 관세음의 의의意義를 따라 번역하였다.
물론 많은 다른 명칭들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한 분이시다.
구마라집 스님과 현장스님의 번역을 근거로 설명하면,
하나는 의역에 중심을 두었고
또 하나는 직역에 중심을 두었기 때문에 번역을 달리한다.
그러나 어느 누가 맞고 틀리다고 할 수 없으며,
널리 칭하기를 구마라즙스님의 번역에 따라서
'관음觀音' 혹은 '관세음觀世音'이라 부른다.
'보살菩薩'이라 함은 인도어의 '보리살타菩提薩埵'를
간단하게 줄인 명칭으로,
의역意譯하면 '깨닫기 원하는 유정중생有情衆生'을 말한다.
바로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하는
큰 발원을 가진 중생이라는 뜻이다.
위로 깨달음을 구함은 대지혜大智慧의 작용이며,
아래로 중생을 제도함은 대자비大慈悲의 작용이다.
그리하여 무릇 보살은 지혜와 대비를 두 바퀴로 굴린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보살은 법당에서 공양 받는
모든 대보살님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발심하여 보살도를 행하는 모든 이들을 가리킨다.
[보문품]의 세 글자를 다시 계속 설명하자면
품品은 같은 종류를 모아놓은 것을 말한다.
[묘법연화경]중에서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의 전부를
여기에 귀결하여 설명하였다. 그래서 품이라고 이름한다.
보普는 보편적이라는 뜻이고,
문門은 능히 통한다는 뜻이다.
비유컨대, 우리 앞에 큰 문이 있어 이 문은
어떤 이도 자유롭게 출입하여 통과할 수 있다.
만약에 방에 문이 없다면
밖에서 들어 올 수도 안에서 나갈 수도 없을 것이다.
문門을 부처님 가르침으로 설명하자면,
지옥에서부터 성불할 때까지 모두 10개의 문이 있다.
매 문마다 각각의 열쇠가 있는데,
모두 우리들의 손에 쥐어져 있어,
우리들이 그 문을 지나려고 한다면
바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지옥의 문은 역시 단단히 잠겨있다.
과연 어떻게 들어갈 수 있을까? 그 문제는 간단하다.
다만 오역십악五逆十惡의 죄업罪業을 짓는다면
그는 바로 지옥문의 열쇠를 얻을 수 있고,
이 열쇠가 있다면 자연히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만약에 이 열쇠가 없다면
가고자 하더라도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문 밖에서 안으로 들어간다고 할 때,
그 문 안에는 고통과 즐거움의 큰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어떤 문 안에는 행복이 가득한 극락과 같이
항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이 있고,
또 어떤 문 안에는 고통이 가득한 삼악취三惡趣를 말하며,
한열寒熱의 고통과 잔인한 살생의고통, 그리고 기갈의고통이 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열쇠는 자기가 손에 쥐고 있다.
그러나 십법계十法界에 비록 10개의 문이 있지만,
다만 보문普門이라고 하는 것은
오직 불도佛道의 하나의 문이다.
세간에는 육취六趣의 문이 있는데,
유루有漏의 문에 속해 있기 때문에
만약 무루無漏의 문을 통과하려고 하지만
불가능하므로 보문普門이라 할 수 없다.
그리고 출세간出世間에는
이승二乘의 문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공문空門이라 칭한다.
생사번뇌生死煩惱에 대하여 다만
반쯤 벗어났기 때문에 그 문門을 보普라 칭할 수 없다.
또, 보살의 문에 이르기까지 공空과 유有의 두 변邊으로 치우쳐
공유空有가 서로 융합할 수 없기에 이또한 보문이라 할 수 없다.
불佛을 그래서 보문이라 칭한다.
왜냐하면 성불한 후 그 대비원력大悲願力으로
지옥에 가서 중생을 교화하고자 할 때,
비록 지옥문이 아무리 견고하다지만
대비원력의 힘으로 들어가고자 한다면
아무런 장애없이 들어갈 수 있다.
지옥에 들어갈 때와 같이 아귀餓鬼의 문門이나
축생畜生의 문門도 또한 이와 같이
출입이 무애자재롭다. 그래서 보문普門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묻기를,
“성불한 후에 비로소 보문이라 하는데,
관세음보살님은 아직 성불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보문이라 칭할 수 있는가?”
이것을 두 가지의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근본적으로 설명하자면,
관세음보살님은 이미 성불하였다.
그 이름은 법명여래法明如來로서 부처의 비원悲願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보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역으로 설명하면,
관세음보살님은 아직 성불하지 않았지만
보처補處의 지위에 있고
부처의 공덕功德을 갖추고 있으므로
모든 문으로 내왕하며 중생을 제도할 수 있다.
그래서 보문이라 한다.
나무 관세음보살
- 연배 스님 / '감응하소서 관세음보살님이시여!'에서
- 그 림 / 오헌 박만수님[증보관음보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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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_()_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합장)
부처님 고맙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