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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삐딱한 24명의 저널리스트가 쓴 현대 세계사
나에게 거짓을 말하지 마라: 탐사 저널리즘의 승리』는 영국 Vintage 출판사가 2004년에 출간한 《Tell Me No Lies: Investigative Journalism and Its Triumph》를 우리말로 옮겼다 이 책에 실린 저널리스트들의 글은 전후 60년간 베트남ㆍ캄보디아ㆍ인도네시아ㆍ동티모르ㆍ이스라엘ㆍ이라크ㆍ체첸ㆍ르완다 등에서 일어난 분쟁과 제노사이드ㆍ아파르트헤이트ㆍ탈리도마이드 스캔들ㆍ영국 광부파업ㆍ로커비 팬암기 폭발ㆍ매카시즘ㆍ미국 대통령선거 부정 같은 충격적인 역사적 사건들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 우리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고 여겨지는 일들이지만 이 책의 글들을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지 모른다. 왜냐하면 엮은이 존 필저는 우리를 끊임없이 자극하는, 적어도 당시에는 주류에서 벗어났던 이단적인 글들을 한데 모아놓았기 때문이다.
🏫 저자 소개
존 필저
John Pilger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그는 주로 종군 기자로 활동하면서 많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1967년과 1979년에 영국 ‘올해의 저널리스트’로 선정되었으며 30년 동안 국가의 기만을 밝혀내고 인권 향상을 위해 애쓴 공로로 2003년 소피상Sophie Prize을 받았고, 다큐멘터리 ‘캄보디아, 배신Cambodia, the Betrayal’으로 1991년 에미상을 받았다.『마지막 날The Last Day』『영웅들Heroes』『머나먼 외침Distant Voices』『숨겨진 의제Hidden Agendas』 등의 책을 썼다
📜 목차
머리글 / 존 필저
다하우, 죽음의 수용소(1945) / 마사 겔혼
원자병, 히로시마의 참극(1945) / 윌프레드 버쳇
매카시즘의 광기(1947~1954) / 에드워드 머로
밀라이 학살(1970) / 시모어 허시
캄보디아의 조용한 죽음(1979) / 존 필저
가장 낮은 곳에서(1985) / 귄터 발라프
티모르 보고서(1987) / 브라이언 투히ㆍ매리언 윌킨슨
아파르트헤이트 암살단을 폭로한다(1988~1994) / 막스 두 프레즈ㆍ자크 파우
거대한 로커비 은폐(1989~2001) / 폴 풋
테러리스트(1990, 2001) / 로버트 피스크
광부들을 향한 비밀스런 전쟁(1994) / 소머스 밀른
점령된 땅의 낮과 밤(1996) / 아미라 하스
탈리도마이드 스캔들(1997) / 필립 나이틀리
체첸, 더러운 전쟁(1999~2002) / 안나 폴리코프스카야
또 하나의 제노사이드(2000) / 린다 멜번
대통령직을 훔쳐 잘 지내는 법(2000~2001) / 그레그 팰러스트
백만 명 죽음의 공범들(2003) / 마크 커티스
어린이들의 전쟁(1998~1999) / 펠리시티 아버스넛
차가운 전쟁, 경제 제재는 대량살상무기이다(2002) / 조이 고든
잘못된 시작(2002~2003) / 리처드 노튼-테일러
이라크의 핏빛 나날들(2003) / 로버트 피스크
팔루자의 목격자(2004) / 조 윌딩
📖 책 속으로
나는 독일군이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을 했을 때 다하우에 있었다. 죽음의 열차 시신더미 속에서 살아났던 폴란드인 남자가 여전히 반나체 차림으로 의사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는 폴란드어로 말했는데 속삭임보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다. 폴란드인 의사가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브라보!” 나는 무슨 얘기냐고 물었다.
“전쟁이 끝났다. 독일이 졌다.”
우리는 저주받은 죽음의 수용소 안에 있는 그 방에 둘러앉았다. 아무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다하우가 승리의 소식을 듣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전쟁은 다하우와 다하우 같은 다른 모든 곳들, 그리고 다하우가 상징하는 모든 것을 영원히 없애기 위한 것이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다하우, 죽음의 수용소’(마사 겔혼 씀)에서
매카시 상원의원의 방법에 반대하는 사람이든 찬성하는 사람이든 침묵할 때가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의 유산과 역사를 부인할 수는 있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은 책무를 포기할 방법이 없습니다. 한 국가로서 우리는 어린 나이에 상속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그렇듯이, 우리가 자유의 수호자임을 스스로 선언합니다. 그러나 나라 안에서 자유를 저버리면서 밖에서 자유를 수호할 수는 없습니다. 위스콘신 출신의 초선 상원의원의 행동이 해외의 우리 동맹들에게 불안과 실망을 안겨준 반면 우리의 적들에게는 상당한 위안을 선사했습니다. 누구의 잘못일까요? 정말 그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는 이 같은 공포 상황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용했을 뿐입니다. 그것도 성공적으로. 시저가 옳았습니다. “사랑하는 브루투스, 잘못은 우리의 운명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네.”
-‘매카시즘의 광기’(에드워드 머로 씀)에서
나는 이 같은 ‘정상’이 얼마나 불안한 것인가를 모노롬 호텔에서 열린 ‘디스코 나이트’에서 알게 되었다. 여자와 아이들은 댄스홀 같은 방 한쪽에 앉고, 남자들은 맞은편에 앉았다. 아주 재미있었는데, 특히 옆방의 재즈 밴드가 ‘사보이에서 스톰프를 추다’를 연주할 때는 흥이 넘쳐났다. 하지만 많은 사랑을 받은 크메르 가수 신 시사뭇의 카세트가 연주되자 사람들은 춤을 멈추고 창가로 걸어가서 울기 시작했다. 시사뭇은 자기 무덤을 파고 나서 피와 죽음에 관한 크메르 루주 찬가를 불러야 했다. 그리고 매를 맞고 죽었다.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폭격과 대학살과 봉쇄의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노력을 우리는 언제까지나 우러러보아야 한다는 것을. 적어도 우리의 대표자들이 그들을 해치는 게 아니라 기꺼이 돕기를 바랐다.
-‘캄보디아의 조용한 죽음’(존 필저)에서
우리는 공군 비행사들이 평화로운 주민들을 폭격하는 죄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마을 외곽의 강물에 폭탄을 떨어뜨린 사례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정반대의 것들도 알고 있다. 로스토프-바쿠 고속도로를 따라 전쟁 지역에서 달아나는 피난민들을 총격하고 한 번, 두 번, 심지어는 세 번이나 다시 날아와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총격한 비행사들도 있다. 전쟁은 빠르게 두 얼굴을 익혀가고 있고, 잠재적인 희생자들은 자신들이 이 전쟁의 ‘친절한’ 얼굴을 마주하길 바라고 기도한다.
-‘체첸, 더러운 전쟁’(안나 폴리코프스카야 씀)에서
포르투갈령 티모르 상황에 개입하지 않으면서 되어가는 대로 놔두겠다는 것이 미국의 분명한 입장으로 생각된다. 뉴섬은 인도네시아가 개입을 한다면 ‘효과적으로 재빠르게 하되 우리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하길 바란다고 빈정대듯 내게 말했다. 우리 모두는 포르투갈령 티모르 상황에 호주의 국가 방위의 이익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호주 광물에너지부의 이익도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외무부가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광물에너지부는 현재의 해양경계 문제에 관심이 많을 것이고, 우리는 포르투갈이나 독립한 티모르보다는 인도네시아와 협상을 하는 게 훨씬 더 쉬울 것이다. 내가 원칙보다는 실용을 중시한 입장을 권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그것이 국익과 외교 정책의 본질이다.
-‘티모르 보고서’(브라이언투히, 매리언 윌킨슨 씀)에서
처음에 우리는 대학살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파리 떼가 어김없이 입으로 달려들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지만, 곧 코도 감싸야 했다. 시돈(Sidon: 베이루트 남쪽의 항구 도시로 12~13세기에 십자군 원정의 주요 격전장이었다)의 죽은 이 냄새가 역겨웠다면, 샤틸라의 악취는 우리를 토하게 만들었다. 곧 우리도 죽은 이의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살인자들-이스라엘이 “테러리스트를 쓸어버리겠다”고 하면서 난민수용소들에 투입한 기독교 민병대원들-이 막 떠난 뒤였다. 아직도 땅에 피가 흥건히 고여 있는 곳도 많았다. 우리는 1백여 명의 시신을 헤아린 다음 세는 것을 멈췄다. 골목 어디에나 여자와 아이, 젊은이, 노인들의 주검이 칼에 찔려 죽거나 총격을 당해 죽은 자리에 끔찍한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테러리스트’(로버트 피스크 씀)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언제나 모든 땅을 자신들 것으로 여길 것이다. 그들은 지금 히브리어 이름이 붙여진 들판을 되찾겠다는 열망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계속된 상실의 첫 고리인 추방의 고통을 잊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자지구에서 살면서, 그들은 마음속 바람을 평화로운 정치적 해결의 필요와 구분할 능력이 있고 또 그러길 진심으로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나라를 공유할 용의가 있음을 설명하면서 솔로몬 왕의 판결을 암시하여 “어쨌든 우리는 아이들의 엄마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궁극의 해결책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이 땅에 살면서 이곳을 고향이라고 말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기본적 권리들과 자격을 지닌 사람들로 정중하게 대우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점령된 땅의 낮과밤’(아미라 하스 씀)에서
암과 백혈병과 악성 종양이 걸프 전쟁 이후 급증했는데, 전문가에 따르면 주로 영국과 미국이 사용한 열화우라늄(DU) 무기가 나라 전체에 방사성 먼지를 퍼뜨렸으며 그것이 지하수면과 흙을 통해 먹이사슬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스라에서 우리는 조용한 홀로코스트를 목도한다. 굶주림과 다중 선천성기형, 암, 심장병, 나병, 수인성 질병 등이 바스라에서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따라붙는 죽음의 그림자들이다. 유엔 사무차장을 역임했으며 지난 7월에 ‘무차별 파괴’에 항의하여 유엔 인도주의 조정관 자리에서 물러난 데니스 할리데이는 “달마다 6,000~7,000명의 다섯 살 미만의 아이들이 통상금지와 관련된 이유로 죽어간다”고 말했다.
-‘어린이들의 전쟁’(펠리시티 아버스넛 씀)에서
🖋 출판사 서평
정직하게 기록하고 권력자들에게 책임을 묻는다
필저는 탐사 저널리즘에는 저널리스트의 능력뿐만 아니라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베트남 밀라이 학살의 전모를 밝혀낸 시모어 허시의 글이 이 책에 실린 것은 그가 40년에 걸쳐 권력의 책임을 묻는 한결같은 글을 썼기 때문이다. 이 책의 모든 글에는 이른바 ‘게임의 규칙’에 맞선 저널리스트의 ‘반란’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에서 윌프레드 버쳇이, 르완다에서 린다 멜번이, 아파르트헤이트 남아공에서 막스 두 프레즈가, 미국에서 그레그 팰러스트가, 독일에서 귄터 발라프가, 가자에서 아미라 하스가, 체첸에서 안나 폴리코프스카야가, 이라크와 레바논에서 로버트 피스크가 ‘게임의 규칙’에 맞서 일어났다.
그래서 《더 타임스》 중동지역 특파원으로 1982년 9월 17일 학살이 자행된 샤틸라 난민캠프에 최초로 들어갔던 로버트 피스크는 이스라엘 관련자들의 책임을 끈질기게 추궁했다. 많은 기자들이 이스라엘의 범죄행위를 얼버무리거나 의미를 왜곡하며 변명하고 심지어는 학살이 실제로 있었는지 없었는지 논쟁을 벌인 가운데, 피스크의 집요한 추궁은 이스라엘이 유럽에서 누려온 도덕적 특권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항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이후 많은 사람은 모든 체제의 정부들이 두려워하는 방식으로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레바논ㆍ이스라엘ㆍ이라크ㆍ아프가니스탄ㆍ발칸반도 등 피스크가 머무는 어디서든 보내오는 기사들에 의지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지금 러시아 아이들은 따뜻한 학교에서 컴퓨터를 할 수 있지만 나는 추운 텐트에서 공부하고 있다. 나는 푸틴에게도 마음이란 게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있다면 그는 이런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푸틴은 사람의 목숨이 50코페이카 값어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주 잘못했다. 그는 사람들의 목숨을 훔치고 있다. 나는 푸틴이 우리도 사람이란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으로 인해 피난한 우크라이나 어린이가 썼을 법한 글이지만 20여 년 전에 체첸의 어린이가 쓴 글이다. 많은 살해 위협에 시달리다 끝내는 목숨을 잃은 러시아의 반체제 저널리스트 안나 폴리코프스카야의 글로 이 책에 실린 ‘체첸, 더러운 전쟁’의 한 구절이다. 앞서의 유고슬라비아 전쟁과는 달리 체첸의 전쟁은 서구를 비롯한 세계의 주목을 거의 받지 못했다. 러시아가 체첸공화국에서 자행한 잔혹행위는 인권기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푸틴 정부는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어떠한 제재도 받지 않았다. 폴리코프스키야의 글은 바로 그 같은 무관심이 한 독재자로 하여금 20여년 만에 똑같은 만행을 저지르게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브라이언 투히와 매리언 윌킨슨은 ‘티모르 보고서’에서 1975년 미국과 호주 정부가 20만 명의 집단학살을 가져온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략을 사전에 알았으면서도 묵과했다고 고발했다. 당시 호주 대사는 “나는 포르투갈령 티모르 상황에 호주 광물에너지부의 이익도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외무부가 분명히 인식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광물에너지부는 현재의 해양경계 문제에 관심이 많을 것이고, 우리는 포르투갈이나 독립한 티모르보다는 인도네시아와 협상을 하는 게 훨씬 더 쉬울 것이다. 내가 원칙보다는 실용을 중시한 입장을 권하고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그것이 국익과 외교 정책의 본질이다”라고 보고했다. 세계 강대국들이 이 같은 외교 정책을 유지하는 한 약소국 침탈은 되풀이될 것이다.
공식적으로 부인될 때까지는 절대로 믿지 마라.
이 책의 첫머리를 장식한 ‘다하우, 죽음의 수용소’를 쓴 마사 겔혼은 “절대로 정부를 믿지 마라, 그들의 누구도 그들의 어떤 말도 믿지 마라. 그들이 하는 모든 것을 의심의 눈으로 지켜보라”고 말했다. 그래서 미국이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노리에가 장군을 체포한다는 명목으로 파나마를 침공했을 때, 80세의 마사 겔혼은 비행기를 타고 파나마로 갔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민간인 피해자가 수백 명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녀는 파나마시티 곳곳에서 집집마다 돌며 생존자들과 인터뷰를 하여 실제 사망자가 8천 명에 가깝다는 것을 밝혀냈다. 미국인인 그녀에게는 ‘반미주의자’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그녀는 “진실은 항상 불온하다”고 답했다.
필저는 “공식적인 거짓말의 방패막이로 남용되는 ‘객관성’을 구해내는 것에서 탐사 저널리즘이 시작될 수 있다”고 말한다. 비밀주의의 권력은 현관 뒤에서 엿보고 칸막이를 젖혀보고 바윗돌을 들춰보며 제 일을 하는 저널리스트를 혐오한다. 그래서 1945년 윌프레드 버쳇은 원폭이 투하되고 나서 서구 기자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에 들어가서 원폭 피해자들을 취재하여 ‘세기의 특종’으로 일컬어지는 “나는 세계에 경고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라는 원자병에 관한 기사를 썼지만 당시 방사능의 위험을 극구 부인한 미국 정부에 의해 기자 인증을 취소당했다. 그리고 1951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국적마저 잃어 여권을 발급받지 못하다가 1972년에야 겨우 권리를 되찾았다.
진실이 침묵으로 대체될 때, 침묵은 거짓말이다.
전후 미국이 매카시즘의 위협에 휩싸였을 때. CBS 방송의 에드워드 머로는 매카시 상원의원의 방법에 반대하든 찬성하든 미국인은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민주공화국의 시민은 책무를 포기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매카시즘의 광기’라는 제목으로 이 책에 실린 방송에서 민주주의 사회의 존속에 반드시 필요한 반대할 권리를 행사할 것을 미국인들에게 촉구하면서 “전체주의에 의해 타락하면 전체주의 국가에 살지 않을 수 있다”는 조지 오웰의 말이 들어맞는 사회를 경계했다.
2003년 2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세계 곳곳의 분노를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이제까지 대중의 도덕심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라고 표현했다. 존 필저는 그것이 단지 시작이었을 뿐이라면서 마지막까지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우리의 앞날이 밝아 보이는 이유이다. 이것은 웅변이 아니다. 인간의 부활은 경이로운 게 아니다. 더 다양하고 진취적이며 세계적 가치를 지향하고 차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같은 확신의 주된 이유로 지금처럼 전 세계 사람들이 그들에 맞선 정치적 세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적이 자신의 생애에 없었다고 말한다. 물론 이에는 저널리즘의 구실이 무엇보다 컸다. 그는 이 책의 머리글 말미에 이렇게 썼다. “이 선집을 훌륭한 동료 저널리스트들에게 바친다. 어느 때보다도 지금 필요한 그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