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안도현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어두운 청과 시장 귀퉁이에서
지하도 공사장 입구에서
잡것들이 몸 푼 세상 쓰레기장에서
철야 농성한 여공들 가슴속에서
첫차를 기다리는 면사무소 앞에서
가난한 양말에 구멍 난 아이 앞에서
비탈진 역사의 텃밭 가에서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 있는 곳에서
모여 있는 곳에서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얼음장이 강물 위에 눕는 섣달에
낮도 밤도 아닌 푸른 새벽에
동트기 십 분 전에
쌀밥에 더운 국 말아 먹기 전에
무장 독립군들 출정가 부르기 전에
압록강 건너기 전에
배부른 그들 잠들어 있는 시간에
쓸데없는 책들이 다 쌓인 다음에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언 땅바닥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훅훅 입김을 하늘에 불어넣는
죽음도 그리하여 삶으로 돌이키는
삶을 희망으로 전진시키는
그날까지 끝까지 울음을 참아 내는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한 그루 향나무 같다
-시집 <모닥불>(1989)-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비유적, 상징적
◆ 특성
① 동일한 시행을 반복하여 주제를 강조함.
② '~에서', '~에', '~는'의 반복적인 사용을 통해 각운을 형성함.
③ 대조적 이미지의 시어를 사용하여 대상의 의미를 부각하고 있음.
④ 모닥불의 속성과 민중의 유사성(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음, 모일수록 활활 타오르며
힘이 강해짐, 어둠을 밝혀 현실을 드러냄, 주변의 온도를 높여서 서로를 따뜻하게 해줌.)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모닥불은 피어오른다
→ '모닥불'은 '따뜻함, 환함, 상승' 등의 이미지로, 다음에 오는 부정적 상황들과
대조적이다.
4번 반복이 되는데, 어둠을 밝히고 희망을 전하는 모닥불의 의미를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 어두운 청과 시장 귀퉁이에서 ~ 가난한 양말에 구멍 난 아이 앞에서
→ 고되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다양한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다.
* 잡것들이 몸 푼 세상 쓰레기장 →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모인 곳
* 철야 농성한 여공들 → 부조리에 분노하는 민중들
* 첫차를 기다리는 면사무소 앞 → 첫차를 타고 일터로 향해야 하는 힘겨운 삶을 사람들
* 비탈진 역사의 텃밭 가 → 평탄하지 않은 삶, 주변부에서 살아온 삶
* 사람들이 착하게 살아 있는 곳 → 힘겹지만 선하게 살아온 민중들이 살아 있는 곳
* 얼음장이 강물 위에 눕는 섣달 → 혹독한 삶의 시련기
* 푸른 새벽 → 희망을 잃지 않은 차가운 새벽
* 동트기 십 분 전 → 희망이 실현되기 바로 직전
* 무장 독립군들 출정가 부르기 전, 압록강 건너기 전
→ 8행의 '비탈진 역사의 텃밭 가'와 연결되는 부분으로, 독립을 위해 불의와 억압에
항거하여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에 대해 말하고 있다.
* 배부른 그들 잠들어 있는 시간 →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이들이 안락함에 빠져 있는 시간
* 쓸데없는 책들 → 민중의 고통 해결이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들
* 언 땅바닥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 고난을 극복하는
* 훅훅 입김을 하늘에 불어넣는 → 삶에 대한 열정을 발산하는 모습(모닥불을 의인화)
* 죽음도 그리하여 삶으로 돌이키는 / 삶을 희망으로 전진시키는
→ 모닥불이 지닌 생명력(모닥불의 의미와 역할)
* 그날 → 희망을 이루는 날
* 한 그루 향나무 같다
→ 모닥불을 '고귀하게 피어오르는 존재'로 표현한 것임.
'향나무'는 제사 지낼 때 죽은 이를 기리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모닥불'을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인내를 주는 숭고한 존재로 표현하기
위해 차용한 보조 관념이다.
◆ 제재 : 모닥불
◆ 화자 :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가진 이
◆ 주제 : 고단한 삶에 대한 위로와 희망적인 삶에 대한 기대
[시상의 흐름(짜임)]
◆ 1~10행 : 민중들의 삶 속에서 피어오르는 모닥불
◆ 11~19행 : 어떠한 순간에도 꺼지지 않는 모닥불
◆ 20~27행 : 모닥불의 넘치는 생명력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고단한 삶과 역사적 암흑기를 극복하고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주는 존재로서의 '모닥불'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스스로를 태우면서 어둠을 밝히는 존재인 '모닥불'은 고난과 시련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현실을 극복하고 살아나갈 힘과 희망을 준다.
1~10행에서는 화자는 '모닥불'이 피어오르는 곳을 차례로 떠올린다. 화자가 언급한 장소들의 공통점은 가난하고 힘겨운 현실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즉, 화자는 이렇게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힘을 주는 존재로 '모닥불'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11~19행에서는 '모닥불'이 피어오르는 시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모닥불'은 고난과 시련의 순간과 역사적으로 중요했던 순간, 나태와 안일의 순간에도 피어오른다고 말하고 있다. 20~27행에서는 '모닥불'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말하고 있다. '모닥불'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주고, 삶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며, 사람들에게 고된 삶 속에서도 살아갈 희망을 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래서 화자는 죽은 이를 기릴 때 사용하는 '향'을 만드는 나무인 '향나무'와 같이 '모닥불'도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인내를 주는 숭고한 존재라고 비유하는 것이다.
◆ 안도현과 '불'의 이미지
안도현은 '모닥불', '연탄 한 장', '너에게 묻는다' 등의 작품 속에서 '불'에 대한 개인적인 이미지를 확실하게 설정해 놓았다. 안도현에게 있어 '불'은 '따뜻함, 밝음' 등의 긍정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주변의 소외된 사람들과 연대 의식을 공유한다. 특히 '자신을 희생하면서 주변을 밝고 따뜻하게 해 준다'는 '불'의 의미는 소외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을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연탄 한 장'과 '너에게 묻는다'가 독자에게 우리 주변의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연탄'과 같은 희생적 사랑의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면, 초기 작품인 '모닥불'은 소외된 사람들의 삶과 함께 역사적 상황까지를 담으려는 시도가 보인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러한 차이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그의 시에서 '불'의 이미지는 '사랑, 희생, 인내, 희망' 등의 의미로 이해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작가소개]
안도현 : 작가, 시인
출생 : 1961. 경상북도 예천
소속 : 단국대학교(교수)
학력 :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
데뷔 : 1981년 대구매일신문 '낙동강' 등단
수상 : 2007년 제2회 윤동주문학상 문학부문
경력 :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1961년 12월 15일 경북 예천 출생.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이,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전통적 서정시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안도현은 개인적 체험을 주조로 하면서도 사적 차원을 넘어서 민족과 사회의
현실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그려내는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순수한 젊음의 시각에서 삶과 역사를 서정적으로 그려낸 『서울로 가는 전봉준』(1985),
주변 삶의 쓸쓸함과 현실에 대한 성찰이 담긴 『모닥불』(1989), 시대적 문제와
마음의 갈등을 다룬 『그리운 여우』(1997), 바닷가 우체국과 시골 이발관 등 사소해
보이는 풍물을 애잔하고 낭만적으로 다룬 『바닷가 우체국』(1999) 등의 시집을 간행하였다.
이외에도 『바닷가 우체국』(2003),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2004),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2005), 『간절하게 참 철없이』(2008) 등을 간행하였으며,
소설집으로 연어의 모천회귀를 성장의 고통 및 사랑의 아픔에 빗대어 그린
『연어』(1996)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