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가 드신 것은 고추장일까, ‘고초장’일까?
미꾸라지는 특유의 비린내 때문에 그 자체로 요리해 먹기는 힘들다. 추어탕에 초피나무의 열매인 천초를 넣는 이유도 비린내를 잡기 위함이다. 예부터 천초의 맵고 알싸한 향기는 미꾸라지뿐 아니라 다양한 민물고기의 비린내를 없애는 귀중한 양념으로 쓰여 왔다. 천초는 경상도에선 제피라고도 불리는데 로 천초 껍질을 가리켰다. 일부에선 ‘고초(苦椒)’라고도 부른다.
조선의 장수 임금인 영조는 평생 입맛이 없기로 유명했다. 영조 44년의 실록은 영조 본인의 말을 인용해 그가 즐긴 음식이 4가지라고 밝혔다. “송이, 전복, 어린 꿩고기, 고초장(苦椒醬), 이 네 가지 음식이 있으면 밥을 잘 먹으니, 이로 보면 내 입맛조차 그렇게 늙어 버린 건 아닌가 보다.” 늙은 영조가 자신의 입맛을 사로잡았다고 밝힌 고초장을 ‘고추장’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천초로 만든 장아찌의 한 종류라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영조 25년 실록에 이미 고초장을 “천초의 종류로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천초는 흔히 산초와 혼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완전히 다른 식물이다. 산초나무는 주로 가을 초입에 꽃을 피우는데 초피나무는 5∼6월에 꽃을 피운다. 산초는 기름으로 많이 사용되는 반면 천초는 주로 약재로 쓰인다. 지리적으로 볼 때도 산초는 함경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나지만 천초는 남부지방과 중부지방 해안지대에서 주로 생산된다.
천초는 열매가 많다. 주렁주렁 많이 달린 붉은 열매의 알은 다산의 상징이기도 했다. 왕후가 거주하는 궁궐이 ‘초방(椒房)’이라 불린 이유도 그 때문이다. 천초의 줄기껍질, 열매, 잎 등에는 산시울이라는 매운맛을 내는 성분이 있어 강한 살충과 진통 작용을 했다. 예전에는 이런 천초의 강한 향기가 악기(惡氣)를 쫓는 효험이 있다 해서 왕후의 방인 초방의 벽을 천초나무로 바르기도 했다. 임금의 처남들을 “초방의 인척”이라고 부른 것도 여기에서 기인했다.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나쁜 병균을 쫓아내기 위한 목적으로도 쓰인 것은 덤이다.
천초는 조선시대에는 전염병을 물리치는 데에도 쓰였다. 특유의 강한 향기와 뾰족한 가시, 살충 성분은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사기(邪氣)를 몰아내는 벽사(辟邪)의 용도로 사용되기에 충분했다. 중국의 세시풍습을 담은 ‘형초세시기’에는 “1년 동안 전염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정월 초하루에 도소주와 초백주를 마셨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때 도소주는 천초·방풍·백출·진피·계피가 주재료였고 초백주는 천초 7개와 측백나무 잎 7개를 넣어 빚은 술이었다. 두 술 모두에 천초가 들어간다는 점을 미뤄 보면 전염병 예방과 퇴치에 있어 천초의 옛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천초는 예나 지금이나 이비인후과 질환의 약재로 각광받고 있다. 영조 18년 좌의정 송인명은 치통으로 고생하던 영조에게 천초탕을 추천한다. 이 외에 천초는 가을철 비염으로 막힌 코를 그 특유의 맵고 알싸함으로 뚫어주고 감각상피세포에 냄새 입자가 도달하도록 인도해 사라진 후각을 되찾아 준다. 한편 천초는 청력 회복에 도움을 주는 ‘자석양신환’이라는 처방에도 들어가는데, 귀밝이술처럼 매운 성분으로 귀의 감각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양한 숨은 약효를 보면 천초는 추어탕의 비린내를 잡는 향신료만으로 쓰고 말기에는 너무 아까운 약재임이 분명하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