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됐던 토종개 ‘바둑이’는 어떻게 다시 돌아왔을까
일제강점기였던 1940년대 초
일본군이 전쟁 물자 얻기 위해
토종개 150만 마리 잡아가 멸종
광복 이후 삽살개 등 원형 연구… DNA 분석해 ‘바둑이’ 집단 복원
“딸랑딸랑 딸∼랑, 바둑이 방울 잘도 울린다.”
안녕, 얼룩무늬가 특징인 개 ‘바둑이’에 대해 들어 봤니? 바둑이는 노래뿐 아니라 조선시대 문헌과 그림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토종개지. 바둑이는 일제강점기 때 사라졌다고 알려졌는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바둑이를 복원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어.
● 바둑이, 넌 누구니?
1945년 광복 직후 출판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 교과서 제목은 ‘바둑이와 철수’입니다. 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개, ‘바둑이’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바둑이는 흰색과 갈색, 또는 검은색이 섞인 짧은 털이 난 개를 말해요. 얼룩덜룩한 모습이 마치 바둑에 쓰이는 검은 돌과 흰 돌을 연상시켜 바둑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죠. 올 6월, 건국대 줄기세포재생공학과 박찬규 교수팀은 우리나라의 토종개 ‘바둑이’의 집단 복원에 성공했다고 발표했어요. 이전에도 바둑이를 복제한 연구가 있었지만, 50마리 이상의 집단을 형성한 것은 처음이에요.
바둑이는 우리 조상들이 개의 대명사처럼 부를 정도로 흔하고 친숙한 개였어요. 그런데 어쩌다가 복원 연구를 해야 할 정도로 사라진 걸까요? 이번 연구를 함께한 경북대 유전공학과 하지홍 명예교수는 “일제강점기였던 1940년대 초, 일본군은 전쟁 물자로 쓸 모피를 얻기 위해 우리나라에 사는 토종개 150만 마리를 잡아갔다”고 설명했어요. 이때 멸종된 줄 알았던 바둑이를 복원할 수 있었던 건, 함께 사라진 줄 알았던 우리나라의 또 다른 토종개인 삽살개 덕분입니다. 바둑이와는 달리 얼룩무늬도 없고, 털이 긴 삽살개가 무슨 상관이냐고요?
경북 경산시에 있는 한국삽살개재단에서 40년 이상 삽살개를 보존, 연구해 오고 있는 하 교수는 “삽살개 새끼 중 간혹 짧은 털과 얼룩무늬를 가진 개가 태어나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선시대 그림과 문헌 등을 보고 이 개가 사라졌던 바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설명했지요. 박 교수는 “바둑이는 특징적인 모습이 나타나긴 하지만, 새로운 품종으로 정의된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는 짧은 털 삽살개지만, 앞으로 바둑이에 관한 연구와 육종이 진행되면 바둑이가 하나의 품종이 될 수도 있다”고 전했어요.
● 바둑이를 만난 건 삽살개 사랑 덕분!
이번에 바둑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삽살개 덕분입니다. 삽살개로 시작된 우리나라 토종개 복원 과정에서 바둑이도 발견하게 된 것이니까요. 이는 한 연구자의 집요하리만큼 뜨거운 열정 때문이었지요.
외딴섬에 살던 진돗개나 높은 산지에 살던 북한의 풍산개와 달리, 삽살개는 1940년대 일본군의 눈을 피하지 못하고 대부분 사라졌어요. 광복 후 1960년대, 삽살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하 교수의 아버지인 경북대 고(故) 하성진 교수는 경산에서 목장을 운영했는데, 1969년 같은 학교의 제자인 탁연빈, 김화식 교수 등과 함께 전국의 삽살개들을 목장으로 모으기 시작해요. 이들은 30마리의 삽살개를 모으는 데 성공했지만, 경제적인 지원 부족 등으로 삽살개 복원과 토종개 연구가 잘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하 교수는 “1985년에 미국 유학을 다녀와서 경북대 교수가 되었는데, 아버지의 목장에 삽살개 10마리가 남아 있었다”고 회상했어요. 이어 “당시 남은 삽살개들이 나이가 들어 죽으면 우리나라의 삽살개 맥이 끊길 거라는 생각에 삽살개 복원을 시작했다”고 말했지요. 이후 하 교수는 삽살개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혈액 속 DNA를 분석, 비교하며 삽살개의 원형을 복원해 나갑니다.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삽살개에 관한 연구 논문도 여럿 발표하지요. 그 덕분에 삽살개는 1992년 우리나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됩니다.
삽살개 복원 사업을 시작한 지 약 20년 만인 2000년대 초반, 짧은 털에 얼룩무늬를 가진 바둑이가 처음 태어났습니다. 삽살개의 유전자 속에 짧은 털과 얼룩무늬를 가진 바둑이 유전자가 섞여서 숨어 있었던 거죠. 하 교수는 “삽살개처럼 바둑이의 원래 모습도 복원하는 중”이라고 말했어요.
● 바둑이, 넌 어디서 왔니?
바둑이를 복원하면서 우리나라의 토종개들이 어디서 왔는지 밝혀낸 연구도 함께 발표됐어요. 바둑이를 포함한 삽살개와 진돗개, 동경이 등 토종개들은 언제부터 한반도에서 우리와 함께 살았을까요?
박 교수팀은 2019년부터 약 4년 반 동안 늑대, 아시아와 유럽의 개 등 200마리가 넘는 갯과 동물들의 유전자 정보를 비교 분석했어요. 유전 정보를 담은 물질인 DNA는 부모에서 자식으로 세대가 바뀔 때마다 일정한 확률로 유전 정보 일부가 바뀌는 돌연변이가 발생합니다. 이를 반대로 추적하면 종 사이에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 또 언제 종이 분리되었는지 계산할 수 있는 거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약 1만5000년 전 개는 늑대와 종이 분리돼 사람과 함께 살았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천연기념물로 등록된 토종개는 ‘삽살개’, ‘진돗개’, ‘동경이’ 총 세 종이에요. 그중 삽살개는 지금의 ‘티베탄 마스티프’ 같은 개들과 유전자가 비슷합니다. 삽살개의 조상은 약 4700년 전 북방 유목민족과 함께 한반도에 왔어요. 대부분 귀가 누워 있고, 긴 털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한편 진돗개와 동경이는 ‘뉴기니아 싱잉도그’처럼 동남아시아에 사는 개들과 비슷해요. 진돗개와 동경이의 조상 개는 동남아에서 논농사를 짓던 사람들과 함께 2600년 전 한반도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개들은 보통 털이 짧고 귀가 쫑긋 돋아 있죠. 하 교수는 “우리나라 조상은 원하는 품종을 만들기 위해 개들을 의도적으로 교배한 적이 없다”며 “북방과 남방의 유전자가 자연스럽게 섞여 우리나라의 바둑이 등 토종개 집단을 형성했을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병구 어린이과학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