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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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정기념일, 11월 기념일, 11월 달력
사진 : 2016.1.20. 폭풍의 바다 Images 복사사진
배경음악 : 우리가곡 - 떠나가는 배 (테너 안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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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마 안중근 의사 -
* 안중근 의사 추도 ! 105주년을 맞이하며...
*안중근 의사는 당시 재판정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이유를
15개조항을 들어 단호하게 제시하여 일본인들에게 크게 충격을
주어 일본인들이 큰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1. 조선의 명성황후를 죽인 죄
2. 고종황제를 왕의 자리에서 내친 죄
3. 을사늑약과 한일신협약를 강제로 맺은 죄
4. 독립를 요구하는 조선인들을 무지막지하게 죽인 죄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아 일본통감 통치체제로 바꾼 죄
6. 철도.광산.농림.산지를 강제로 빼앗은 죄
7.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하여 경제를 혼란에 빠지게 죄
8. 조선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킨 죄
9. 민족교육을 방해한 죄
10. 조선인의 외국유학을 막고 , 조선을 식민화한 죄
11. 조선역사책을 없애고, 교과서를 모두 불 태운 죄
12. 조선인들이 일본의 보호를 받고자한다고 세계에 거짓 홍보선전한 죄
13. 조선과 일본이 끊임없이 전쟁하고 있는데 아무 탈없이 편안한 것
처럼 일본왕에게 거짓보고한 죄
14. 대륙(중국)를 침략하여 동양의 평화를 깨뜨린 죄
15. 일본 왕의 아버지를 죽인 죄
- 15개조의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이유. 안중근 -
*오늘날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한반도 침탈의 모습은 100년 전의
열강들과 양상은 다르지만 그 형태는 매우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근래의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처하고 인식하는지가 걱정되고,국력과
외교력을 어떻게 펼쳐 줄 것인가를 국민들은 예민스레 보고있다.
안중근 의사의 잘린 손가락
-순국일 비밀 담긴 잘린 손가락과 헤이그 정상회담-
을사늑약(1905년) 의 치욕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에 의해 자행된 국치일을.......
안중근(1879~1910) 의사의 남산 기념관 근처에는 안 의사의 왼손 장인(掌印)이 찍인 논어의 한 귀절이 커다란 바위에 새겨져있었다.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는 뜻의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었다. 보고 또 보고 다시 돌아봤다.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주라
1909년 안중근 의사는 동지 11명과 함께 죽음으로써 나라를 위한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맹세하며, 동의단지회(同義斷指會)를 결성할 때 손가락을 끊었다. 안 의사의 왼손 약지(넷째 손가락) 첫 마디가 없어진 비밀은 곧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게 권총으로 세 발을 명중시켰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재무상 코코브쵸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오게 된 것을 기회로 삼아,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시킨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한일병탄'과 관련해 일제의 제국주의적 침략과 대한제국의 식민지화를 주도한 인물이었다. 안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리고 1910년 2월 14일 사형 선고를 받고, 같은 해 3월 26일 처형된 것이다. 안 의사 나이 31세 때의 일이었다. 위대한 거사를 앞 두고 왼손 약지를 잘라 흔들림 없이 거사를 행했는 데 안 의사를 위대하게 만드신 분은 당신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였다. 여사께선 아들이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죽음을 앞둔 아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 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抗訴)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日帝)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은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세상에 나오거라.”
나라와 민족이 힘들어 할 때마다 어머니는 위대함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안 의사의 어머니께서 남기신 마지막 편지를 읽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삶과 죽음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나라를 위해 아들의 목숨을 내 놓은 어미의 가슴은 천갈래 만갈래 찢어질 텐데 호연지기를 심어준 위대한 어머니께선 죽음 앞에서 조차 비굴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계신 것이다. 그것도 손수 장만하신 수의 한 벌과 ‘선량한 천부의 아들’과 같은 형벌 같은 바람을 아들에게 전하며 자랑스러워 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안 의사는 순국 이틀 전 감옥 속에서 옥중 유묵(遺墨)을 남겼는 데 그 중 하나가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었던 것. 안 의사의 거사가 있기 전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는 헤이그 특사(이준,이상설,이위종)들이 <만국평화회의보>와 인터뷰를 통해 일제의 불법적 조선침략을 폭로하기도 했다.일제에 의한 을사늑약 체결로 한국은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26개국의 대표가 참석하는 제 2회 만국평화회의가 열리게 되자, 1906년 4월 고종은 전 의정부 참찬 이상설과 전 평리원 검사 이준을 이 회의에 파견하게 된 것인 데 일제의 반대로 회의 참석이 제지되고 만국 평화 회의 참석이 제지되는 참담함 앞에 놓이게 되자 이준 열사께서 복부를 베어 자결을 시도한 사건이 헤이그에서 있었던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리 선조님들은 목숨을 걸고 나라와 민족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긍심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순국선열의노래.mp3
6 월6일은 현충일.
아마 이 날을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현충일은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기념일로 공휴일입니다.
그렇다면, 11월 17일은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이날은 ‘순국선열의 날’로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선열의 얼과 위훈을 기리기 위한 법정 기념일입니다.
올해로 현충일이 61회, 순국선열의 날이 77회로
‘순국선열의 날’이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도
지나쳐버리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 전쟁기념관에서는 순국선열의 날의 의미와 유래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순국선열의 날이란?
‘순국선열(殉國先烈)’이란 단어는 생각보다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순국선열들께 묵념”
학창시절, 운동장에 모여 순국선열들께 묵념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을 테니깐요.
순국선열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 열사라는 뜻으로
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부터 광복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해 항거하다가
순국한 분들을 지칭합니다.
<왼쪽부터 안중근, 유관순, 윤봉길, 신채호>
우리나라 순국선열로는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16세의 나이로 아우내 장터에서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만세운동을 펼쳤던 유관순,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날 폭탄을 던졌던 윤봉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에서 활약하며 민족의식 앙양에 힘쓴 신채호
이분들이 순국선열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국선열의 날의 유래
그렇다면, 왜 11월 17일이 순국선열의 날이 되었을까요?
1905년 11월 17일은 일제의 강압 하에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입니다.
순국선열의 날은 이 날의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서 정해진 날이기도 합니다.
<대한 민국 임시 정부 요인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1919년, 중국 상해에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
1939년 11월 2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제31회 임시총회에서
지청천, 차이석 등 6인의 제안에 따라 망국일인 11월 17일로 제정되었습니다.
8.15 광복 전까지는 임시정부 주관으로 행사를 거행했고,
1946년부터는 민간단체에서,
1962년~1969년까지는 국가보훈처에서,
1970년~1996년까지는 다시 민간단체 주관으로 현충일 추념식에 포함하여 거행하였습니다.
그러다 1997년 5월 9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면서
그 해 11월 17일부터 정부 주관 행사로 거행하고 있습니다.
현충일 vs 순국선열의 날 차이점
두 날의 차이점을 설명하기에 앞서,
현충일은 4대 국경일에 포함되지 않는답니다.
우리나라 4대 국경일은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로
경사스러운 날을 축하하기 위해 법으로 정한 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날을 국경일이라고 할 수는 없겠죠.
따라서 현충일과 순국선열의 날은 법정기념일입니다.
그럼, 현충일과 순국선열의 날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그 의미는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두 날 모두,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기리는 날이니깐요.
그러나 그 대상이 조금 달라집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 ‘순국선열의 날’은 일제시대에 국권침탈에 맞서 싸우다 순국한 분들을 기리는 날이고
‘현충일’은 대한민국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분들을 기리는 날입니다.
현충일이 6.25전쟁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 모두를 추모하는 날이라
그 의미 면에서는 순국선열의 날을 포함하지만,
순국선열의 날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순국선열의 날을 단순히 법정기념일로만 여기고 지나쳐버리는 것 보다는
그 의미와 유래를 알았으니,
이번만큼은 그분들을 위해 묵념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전쟁기념관에 방문하셔도 그분들을 추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요.
바로 ‘호국추모실’입니다.
길이 길이 추모하겠습니다 ‘호국추모실’
전쟁기념관 중앙 현관을 지나면 가장 먼저 호국추모실을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전장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그라진 분들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다른 어느 곳보다 경건하고 엄숙함이 느껴지는 곳인데요.
왠지 모르게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옷 매무새를 가다듬게 됩니다.
호국추모실 안에 들어가면 커다란 반구에 빛이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창조’라는 조형물인데요.
모든 생명의 원천인 물과 에너지 그 자체인 태양빛이 한반도를 상징하는 반구 위에서 결합해
새 생명이 창조되는 순간을 표현한 것입니다.
반구 위에 떨어지는 태양빛은 33개의 크리스탈을 태양모양으로 배치하였고
이는 ‘꺼지지 않는 불’을 상징합니다.
또 반구를 타고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은
‘마르지 않는 물’을 상징합니다.
‘꺼지지 않는 불’과 ‘마르지 않는 물’이 만남!
한민족의 영원성을 의미합니다.
천정에는 ‘겨레의 얼’이라는 벽화가 설치되어 있는데
거대한 매듭 좌우에 얽힌 타래는 우리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표현하고,
무궁화를 형상화한 중심부 매듭은 대동단결과 화합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호국추모실 내부에 있는 그 어떤 것도 허투루 있는 것이 없습니다.
조국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님들을 기리는 곳이니깐요.
사진으로도 느껴지는 신비로움을 직접 본다면,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장엄함이 느껴지실 겁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행복과 자유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느끼게 되는 날입니다.
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꼭 ‘순국선열의 날’이기 때문이 아니라
평소에도 우리나라를 위해 애쓰신 분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이상 전쟁기념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