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2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 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입니다. 이날 교회는 성모 승천의 영광을 거듭 확인하며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우리를 위한 구원의 도구가 되신 것을 기립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언제 어디서나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것은 인류 구원의 도구되신 천주의 모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 덕분입니다. 그리고 당신 일곱 자녀를에게 유아세례로 신앙을 심어주신 우리 어머니의 성모 신심과 묵주기도 때문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5녀 1남의 맏이로 소녀가장 역할을 하느라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별볼일 없는 집안 종갓집 맞며느리로 고생도 무지 한 분이셨지만, 늘 기도하고 봉사하며 수줍은 미소로 기쁘게 사시다 편안하게 하느님께로 돌아가신 것도 어머니의 묵주기도와 신앙 때문입니다. 매일 대가족 식구들 밥 해주느라 대부분의 시간 정지(부엌)에서 부엌데기로 종처럼 일하다, 성당에 갈 때는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고, 미사보를 쓰고 성당에서 기도하던 아름다운 모습과 매일 밤이면 꾸벅꾸벅 조시면서도 묵주기도를 바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을 구세주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이방인 동방박사들과 거부하는 헤로데의 대조로 시작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대조시키면서 거부하는 이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거부하는 이들의 중심에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끈질기게 예수님을 반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권위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없애버리려고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시간은 얼마 남지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실체를 폭로하시면서 마지막 때 종말론적 삶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마태 23-25장은 마태오 복음서의 5 개 담화문 가운데 마지막 것으로 종말에 대한 담화문입니다.)
예수님의 종말에 대한 설교는 먼저 부르심을 받았으나 거부하고 오히려 반대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나쁜 행실을 꾸짖으시고,(마태 23,1-12) 그들에 대한 불행 선포(마태 23,13-36)로 시작됩니다. 그들이 맞게될 불행을 종말의 표지로 보여주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마태 23,13)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실체를 한마디로 위선자(hypocrite)로 표현하십니다. 가면을 쓴 모습과 가면 아래 본래의 모습이 다른 위선자들.
1. 그들은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 율법을 가르치지만 그들의 행실은 율법의 가르침과 다릅니다. 율법의 형식에만 집착하여 그 본래의 정신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 밥도 하고 설거지도하고 농사 일도 해야 하는데 하지 않습니다.
2. 권위적입니다. 모세의 율법의 권위를 마치 자신들의 권위인양 처신합니다. 기득권 유지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습니다.
3. 거만하고 오만합니다. 자신들도 구원받아야 할 죄인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4. 때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의 눈과 귀는 멀었습니다. 보아도 보지못하고 들어도 듣지못합니다.
5. 모세의 율법의 근본 정신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마태 22,34-40 참조) 모세의 율법은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길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때문에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정작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는 그들이 자비로운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죄와 죽음의 한계 속에 살아가는 나약하고 부족하고 불완전한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행실이 바로 오늘 복음말씀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행실입니다. 그들의 행실은 줄기차게 섬김을 받으려고 하고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사람들의 행실입니다. 잘난 체하고 우쭐거리고 남을 업신여기는 교만, 오만, 거만에 찬 사람들의 행실입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의 행실입니다.
섬김
이런 유다인들을 타산지석 삼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종말에 관한 담화문은 '하늘 나라의 도래'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의 하늘 나라의 구원에 관한 말씀이면서, 예수님을 반대하며 거부하는 이들의 하늘나라의 구원을 위해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종말 담화 시작인 오늘 복음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의 구원에 들어갈 의인의 모습을 '섬기는 사람'으로 선언하십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
예수님께서는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많은 이들의 구원을 위하여 아무 조건없이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내어주심으로써 진정한 섬김이 무엇인지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의 섬김, 조건없는 사랑으로 닫혔던 하느님의 나라가 다시 열리는 위대한 구원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조건없는 사랑이 예수님의 섬김, 사랑의 대표적인 비유입니다. 그리고 섬김, 조건없는 사랑이 하늘 나라의 기적을 일으킵니다.
섬기는 사람,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은 온 율법과 예언서의 핵심이요 요약인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늘 나라의 참된 행복과 기쁨, 평화와 자유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곧 섬김과 겸손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늘 기쁘고 즐겁게 삽니다. 아름다운 이 세상을 "소풍가듯 소풍가듯 웃으며 행복하게 산다." '소풍같은 인생'을 삽니다.
앗시시 프란치스코 성인의 '태양의 찬가'(피조물의 찬가. Fratello Sole Sorella Luna)는 바로 이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합니다. 하느님의 영광과 사랑을 통해 드러난 아름답고 신비롭고 경이로운 세상, 하느님의 영광과 사랑을 통해 드러난 생명과 평화가 충만한 세상을 노래합니다.
"오 감미로워라 가난한 내 맘에
한없이 샘솟는 정결한 사랑
오 감미로워라 나 외롭지 않고
온 세상 만물 향기와 빛으로
피조물의 기쁨 찬미하는 여기
지극히 작은 이 몸 있음을
오 아름다워라 저 하늘의 별들
형님인 태양과 누님인 달은
오 아름다워라 어머니신 땅과
과일과 꽃들 바람과 불
갖가지 생명 적시는 물결
이 모든 신비가 주 찬미 찬미로
사랑의 내 주님을 노래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