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김언
지금 말하라. 나중에 말하면 달라진다.
예전에 말하던 것도 달라진다.
지금 말하라. 지금 무엇을 말하는지.
어떻게 말하고 왜 말하는지.
이유도 경위도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은 기준이다. 지금이 변하고 있다.
변하기 전에 말하라. 변하면서 말하고
변한 다음에도 말하라. 지금을 말하라.
지금이 아니면 지금이라도 말하라.
지금은 변한다. 지금이 절대적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이 되어버린 지금이.
지금이 될 수 없는 지금을 말하라.
지금이 그 순간이다.
지금은 이 순간이다.
그것을 말하라. 지금 말하라.
-덧붙임
주영헌(시인)
“화자의 말처럼 지금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변하기 때문에, 지금
그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결과론적으로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미루기만 한다면, 내가 원하는
미래는 실현되지 않습니다.
지금이 흘러가 버릴 지금이 아닌,
나에게 의미 있는 지금,
의미 있는 과거로 만드는 것은
나의 의지입니다.
지금이 그 순간입니다.
지금은 이 순간입니다.
만약 마음속에 무엇인가를 품고 있다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것을 말하십시오.
지금 말하십시오.
지금을 없는 것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불교의 선禪의 공식이 있다.
‘즉금卽今·당처當處·자기自己’이다.
곧, ‘지금, 여기, 자기’가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에릭슨은,
“과거는 바꾸지 못한다.
상대도 바꾸지 못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불교에서는
위의 공식에 의거하여,
“자기가 지금 여기에서, 사물의
받아들이는 법을 바꾸면
상대도 바꿀 수 있고,
과거도 바꿀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금강경』에서는,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이라고 있다.
이것은, ‘무상無常’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간이란 계속 흘러가고 있고,
마음도 계속 흘러가고 있기 때문에,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그 어디에 점을 찍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늘 ‘지금’이라는 곳에
점을 찍어라”하는 것이다.
영원永遠이라는 무한대도, 단 ‘지금’
속에 있으니, ‘지금’이 행복이면
그 모든 것이 다 행복하다는 것이다.
곧,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이다.
“‘지금’에 점을 찍어라!”
“지나갔는데.”
“‘지금’에 점을 찍으라니까!”
“지나갔다니까.”
“‘지금’에 점을 찍으라니까!”
“말 진짜 안 듣네!”
‘점’을 계속 찍다보니, 그것이 이어져
‘선’이 된다. 그 ‘선’이 보인다.
보이는 사람에게만.
‘지금’밖에 없다는.
‘지금‘이 전부라는.
-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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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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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2 0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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