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0. 큐티
마태복음 21:12 ~ 17
내 집은 만민을 위하여 기도하는 집
관찰 :
1)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
- 12절.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 무리들의 어긋난 환대속에 예루살렘에 겸손한 왕으로서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예수님은 성전으로 들어가셔서 성전의 바른 목적을 증거해 주시고자 하십니다.
-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실 때마다 그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으셨을 것입니다. 성전이 자신을 증거하는 것인데, 그것을 잘못되게, 다르게 해석하고 종교적인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 화도 나실 법하고, 안타까우셨을 법도 하셨을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공생애 첫 유월절에 이미 청결사역을 하셨음에도 여전히 매매하는 이들이 존재했고, 또 다시 오신 예수님을 멋쩍게 바라보는 이들 마저도 있었을 것입니다.
- 주님은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이것은 이상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성전의 청결은 아랑곳없는 것이었고, 성전에서의 매매는 돈을 주고 산 제사장, 대제사장의 본전을 뽑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2) 내 집은 기도하는 집
- 13절.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 이 말씀은 이사야 56: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를 인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인용하여 성전이 바로 만민을 위하여, 열방을 위하여 기도하는 집이라는 것을 강조하시고, 그것을 잘못되이 사용하고 있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려주신 것입니다.
- 성전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지 이스라엘과 그 대제사장의 유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성전을, 하나님의 집, 열방을 위하여 중보하는 기도처가 되어야 하는 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고 주님은 꾸짖으신 것입니다.
3)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있어서의 이상한 일
- 14절.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 15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 예수님이 이 때 성전에서 행하신 일들은,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기 위해 매매하는 자들을 뒤집어엎으신 것, 성전에서 맹인과 저는 자들을 고쳐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향해서 어린이들이 예수님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러한 일들을 이상한 일로 규정하고 분노했습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응하게 하고, 맹인과 저는 자들을 고치시는 일에 대해서도 잘못된 것이라 한 것입니다. 기가 막힌 일일 뿐입니다. 그리고 마땅하여 외치는 어린 아이들의 외침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있습니다.
4) 주님의 반응
- 16절.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예수님께 나아와 따졌습니다. “저 아이들이 아는 소리를 듣느냐?” 이 말은 네가 무엇인데 그런 칭송을 듣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예수는 시골 촌뜨기에 불과한 존재이기에 이 예수가 어린 아이들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네가 듣고도 가만히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해 주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이 감히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이 열받는 일이었지만, 사실 그들이야말로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었던 일입니다.
- 예수님의 대답은 명쾌하십니다. “그렇다” 시편 82:2의 말씀을 인용하여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시는 것이라고, 그 본문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고, 말씀을 통하여 증거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깨닫지 못하는 완악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마태는 고의적으로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6) 그들을 떠나 성 밖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는 예수님
- 17절.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 베다니는 무화과의 집이라는 뜻의 동네로 예루살렘에서 약 4km 정도 떨어진 동네입니다. 마리아, 마르다, 나사로 남매의 집이 있는 곳입니다. 또한 문둥병 환자 시몬의 동네이기도 합니다. 또한 주님이 승천하신 곳(눅 24:50)이기도 합니다.
- 주님이 유하시고 쉬셨다고는 하지만 곧 있게 될 십자가의 사역, 죽어야 하는 일로 주님이 과연 편히 쉬실 수 있었겠습니까? 제자들만 여독으로 골아떨어졌다면 몰라도.
가르침 :
1)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은 만민을 위하여 기도하는 집이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그랬다면, 지금의 교회도 반드시 그래야 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그렇기에 열방을 위하여 기도하는 중보의 터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 중의 중요한 하나인 것입니다.
2)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열방을 위한 기도를 하여야 하지만 그것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일이 있어왔습니다. 이것을 교회는 경계하여야 합니다.
3) 예수님은 끝까지 자신을 드러내놓고 증거하시지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끝끝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몰라봅니다. 자신들의 생각에 예수님을 우겨넣으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내 생각과 사고 속에 예수님을 우겨넣으려는 시도가 있지는 않은지를 늘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나의 사고 속에 안에서만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시고, 나의 모든 생각과 사고, 인간의 모든 철학과 세계관을 넘어서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우리는 그분을 알고자 추구할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주님을 계시하여 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주님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적용 :
1)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열방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쉬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라 할지라도 그대로 내버려두면 인간은 자신의 욕심대로 흘러가는 것이고, 열방을 위해서는 커녕 자신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는 굳어진 기도터가 될 뿐입니다.
2)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상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나의 생각을 넘어서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에 대해 내 생각과 다르다는 것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충분히 이들보다 더 그렇게 하나님을 제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은 사람입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을 늘 경이롭게 생각하고 바라보며, 내 부족으로 주님을 바라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3) 계속 병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회복의 은혜를 베푸시길 간구 또 간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