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지팡이
“꼭 같이 하자. 알았지?”
충식이가 드론을 조정하며 말했다. 드론 조정대회에 같이 참여하자는 것이다. 충식이와 어울리다보니 나도 드론 조정 실력이 좋아졌다. 하지만 나는 드론이 없다. 그동안 충식이 드론을 사용해 왔다. 대회에 나간다면 내 드론이 있어야 한다.
“응, 생각해 보고.”
나는 답을 주지 못하고 집으로 왔다.
엄마가 뺑소니 차에 치여 돌아가시기 전에는 아빠는 목수였다. 그때는 우리 집도 괜찮게 살았다. 아빠는 그 후로 끊었던 술도 마시기 시작하더니 아프기까지 했다.
아빠는 한 번씩 일하러 나가셨다. 예전처럼 대장 목수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맡은 공사에 일당을 받고 다녔다. 아무도 나한테 우리 집 사정을 말해 주지는 않았지만 어려운 것은 나도 안다. 할머니가 그렇게 말려도 말을 안 듣고 다시 술 마시다가 병이 되살아난 아빠가 미워졌다.
일요일 아침이었다.
“할미는 아빠 약에 쓰려고 개복숭아 따러 갈 건데, 같이 가자.”
“그깟 개복숭아가 어떻게 아빠 병을 고쳐요?”
나는 괜히 아빠에게 화가 난 마음을 할머니한테 쏟아내고 말았다.
“싫으면 관둬라. 할미 혼자서 갔다 오마.”
할머니는 서운한지 잠시 무궁화나무를 바라보았다.
“제법 컸구나.”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나도 할머니가 보고 있는 무궁화나무를 보았다.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신경을 쓰지 않았을 때는 몰랐는데 꽃이 피어 있었다.
무궁화나무는 내가 태어난 기념으로 아빠가 심은 것이다.
“우리 아들이칠월에 태어났으니까 칠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는 무궁화나무를 심은 거야.”
“그럼, 나하고 생일도 같아?”
“그렇다고 생일까지 같은 건 아니지만…….”
아빠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했다.
“무궁화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꽃이 피었다가 지고 또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끈기 있게 꽃을 피우지. 우리 효성이도 무궁화처럼 쓰러지면 다시 곳곳이 일어서야 해. 포기하지 말고.”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 아빠가 했던 말이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는 그 주변에 봉숭아와 채송화 맨드라미 등, 꽃들을 심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할머니가 살림을 맡아 하면서부터는, 고추와 가지 부추 등 채소를 심는 텃밭으로 변했다.
할머니는 다른 꽃들은 모두 뽑아버리면서도 무궁화나무는 그냥 둔 걸 보면, 아빠가 무궁화나무를 심은 이유를 알고 계신 것 같다.
나는 할머니가 한 번만 더 개복숭아 따러 같이 가자고 하면 따라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혼자 갔다. 할머니가 나가고 나서 집에만 있던 아빠도 따라 나가셨다. 나는 어디 가는지 물어 보려다 그만뒀다.
‘혹시 아빠가 할머니와 같이 가시는 걸까?’
나는 할머니와 같이 안 갔던 것이 미안해서, 몇 분에 한 번씩 길가 쪽을 바라보곤 했다.
나간 지 세 시간쯤 지나자 할머니가 절뚝거리며 집으로 들어섰다.
“할머니!”
나는 달려 나가 할머니 팔을 붙들었다.
“다리가 왜 그러세요?”
“에그 글쎄, 담 넘다가 돌 한 덩어리가 발등에 떨어져서 그만……. 어찌나 아깝던지. 개복숭아가 보이는 걸 못 따고 왔지 뭐냐?”
할머니는 다쳐서 발이 아픈 것보다 개복숭아를 못 따고 온 것이 더 아까워하는 것 같았다.
개복숭아가 있는 곳은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는 돌담도 넘고 가시덤불 사이로도 돌아다녀야 나무를 찾을 수 있다.
할머니 발등은 부어 있었다.
“할머니, 얼음 가져 올까요?”
전에 내가 넘어져서 다리에 피멍이 들고 왔을 때 할머니가 얼음찜질 해주셨던 것이 생각나서 말했다.
“그래, 좀 갖고 와 보거라.”
나는 냉동실에서 얼음을 꺼내 비닐 팩에 담아 할머니 발등에 올려놓았다.
“네 아빠는 방에 있니?”
“아! 맞다. 아빠 할머니하고 같이 안 가셨어요? 작업복 입고 할머니 뒤따라 나가시던데요.”
“아니다. 나 혼자 갔었지.”
나는 그때야 아빠한테 어데 가는지 여쭤보기라도 해야 했는데 못 본 척 가만히 있었던 것이 후회됐다.
아빠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돌아왔다.
그날 밤이었다. 화장실 가려고 안방을 지나는데, 아빠와 할머니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효성이 드론대회 간다는얘기 안 했어요?”
아빠가 할머니께 물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아빠가 하는 얘기를 들었다.
“안 하던데.”
할머니가 좀 의아해하는 말투로 대답했다.
“어제 약 받으러 병원 가는데 버스에서 충식이 아빠를 만났거든요. 드론대회가 있는데 충식이가 우리 효성이랑 같이 참여하고 싶다고 했대요.드론 사줘야 하는데, 이거 받으세요.”
“몸도 성치 않는데 아범이 고생했구나. 그게 얼마 하는지 몰라도 나도 보태마.”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아빠 병원비와 약값 때문에 할머니에게 돈이 없다는 걸 안다.
‘내게 드론을 사 주려고 아빠가 아픈 몸으로 일하러 나가셨구나.’
마당 한편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 아빠와 함께했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커다란 자전거를 탄 아빠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가는 내 뒤에서 ‘잘 탄다. 잘 탄다.’ 하며 따라오던 모습. 무등을 태워 감나무에 달려있는 감을 따게 했던 모습. 하루 일당으로 조립 기차를 사왔다가 엄마한테 된통 혼난 일 등을 떠올리자 눈물이 손등 위로 떨어졌다.
아빠가 밉다는 생각은 간곳없이 사라졌다.
“효성아, 효성아.”
그때 할머니가 불렀다.
나는 눈물을 옷소매로 꾹 눌러 닦고 방으로 들어갔다.
“드론인가 뭔가 대회가 있다는 걸 왜 말 안 했니? 며칠 있다가 할미와 같이 사러가자.”
할머니가 애잔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할머니 돈도 없으면서,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며칠 더 일을 다녔다. 피곤한지 저녁밥을 잘 드시지 않았다.
“일 그만 다니고 좀 쉬어라.”
밥을 반 공기도 더 넘게 남기는 걸 보고 할머니가 걱정되어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주만 다닐게요.”
아빠가 말한 이번 주라고 하면 일요일까지인 것 같은데, 금요일까지만 가고 더는 안 갔다. 나는 자꾸 할머니 표정을 살폈다. 아빠의 상태에 따라 할머니 표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정말 아빠 병을 낫게 해줄까?’
나는 아빠의 병이 낫기만 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개복숭아를 따와야겠다고 결심했다.
토요일이 되자 나는 소풍 가방을 메고 할머니가 못 따고 돌아온 개복숭아를 따러 갔다. 할머니와 한 번 간 적이 있어서 정확히는 몰라도 대충은 알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산 쪽으로 올라갔다. 지난번 왔을 때보다 풀들이 많이 자라 있어서 좀 헷갈리기도 했다. 그래도 기억을 더듬으며 좁은 길로 들어서 돌담을 넘기 시작했다. 내 키보다 더 자란 억새와 청미래 덩굴이 앞을 가려 뚫고 나가기가 힘들었다.
밭과 밭의 경계를 하는 돌담을 몇 번 더 넘자 눈에 익숙한 밭이 나왔다. 할머니와 같이 갔을 때, 커다란 상수리나무 세 그루가 있는 곳을 지나 조금 더 가니 개복숭아나무가 나왔었다. 나는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잡풀들 때문에 걸음을 옮기는 것이 지난번보다 더 힘들었다.
“와! 저기 있다.”
드디어 개복숭아나무가 보였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숨이 가빴다. 나는 열매가 아직도 남아 있는지 멀리서부터 확인했다. 드문드문 열매가 보였다. 나무 앞에 바투 다가갈 때까지 열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기쁜 마음에 빨리 나무에 올라가서 따려고 나뭇가지를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악!”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며 몇 발 뒤로 물러섰다. 개복숭아가 달린 가지마다 뱀이 웅크리고 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앞으로도 뒤로도 발을 움직일 수도 없이 얼어붙었다. 꼭 개복숭아를 따가지 못하게 지키는 것처럼 머리까지 쳐들고 혀를 날름거리는 뱀도 있었다. 몸이 덜덜 떨렸다. 돌아와 버리려고 해도 발이 움직여 주질 않았다. 생각도 마비되었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백지상태가 되었다.
‘우리 효성이도 무궁화처럼 쓰러지면 다시 곳곳이 일어서야 해. 포기하지 말고.’
퍼뜩 아빠가 해 준 말이 생각났다.
포기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자꾸만그 말이 머릿속에서 반복되었다.
‘뭐야 이 말은? 이럴 때도 포기하지 말라는 거야? 아빠는 괜히 그런 말을 해서 나더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거야?’
나는 확 짜증이 났다.
그러면서도 기어코 저 복숭아를 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저히 나무에 오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길쭉한 나뭇가지를 꺾어다 개복숭아 열매를 툭툭 쳤다. 나뭇가지가 흔들릴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나무에 매달려 있는 뱀이 꼭 내 머리 위로 툭 떨어질 것만 같았다. 막대기를 쥐고 있는 내 손이 덜덜 떨렸다. 너무 무섭고 긴장해서인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렇게 조마조마하면서도 하나둘 따다 보니 모두 따냈다.
나는 얼른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 허겁지겁 왔던 곳으로 내달렸다. 마음만 급했지 생각처럼 빨리 달릴 수는 없었다.
좁은 도로까지 나왔을 때였다.
돌담을 넘으려고 허리를 굽히자 등에 메고 있던 가방에서 개복숭아 하나가 길가로 또르르 떨어졌다. 길에 떨어진 개복숭아를 줍고 허리를 폈을 때, 내 앞에 할머니 한 분이 서 계셨다. 할머니는 왼쪽 옆구리에 대바구니를 끼고,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처음 보는 할머니였지만 눈인사를 했다.
“애야, 그 개복숭아 이 지팡이하고 바꿔 주겠니?”
나는 할머니의 지팡이를 쳐다보았다. 얼마나 귀한 지팡이기에 바꾸자고 하는 것일까 했는데, 그냥 나무 막대기였다.
“아, 아니요.”
그러자 할머니가 털썩 주저앉으며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은채야! 은채야!”
“할머니, 은채가 누구예요?”
“우리 손녀지. 아주 귀여운 우리 손녀.”
“은채가 어떻게 됐는데요?”
나는 등에 멘 가방을 더 찰싹 몸에 붙이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개복숭아는 줄 수 없다고 할 생각이었다.
“우리 은채가 개복숭아가 먹고 싶다고 해서 따러 왔는데, 네가 먼저 따버렸으니 이걸 어째.”
“할머니, 그럼 몇 개만 드릴까요?”
나는 아까워도 몇 개 정도는 드리려고 생각했다.
“몇 개 가지고는 턱도 없어, 우리 은채는 황소만 해서 그 가방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모두 가져가야 한 입 정도밖에 안 돼.”
‘뭐야! 귀엽다면서 황소만 하다니. 정말 이상한 할머니야.’
나는 빨리 할머니한테서 벗어나고 싶었다.
“전부는 절대 안 돼요. 우리 아빠 약에 쓸 거예요.”
“그럼, 내가 네 아빠 병을 낫게 해 준다면 주겠니?”
“물론이에요.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전부 드릴 수 있어요.”
나는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다음 말에 곧 실망했다.
“그러니까 이 지팡이와 바꾸자는 거 아니냐.”
할머니는 또 이렇게 말하는 거였다.
‘저런 막대기는 들에 나가면 쌓이고 쌓였는데, 저 막대기가 어떻게 아빠를 살려?’
나는 내키지 않아 그대로 오려고 했다.
“할머니, 안 바꾸고 그냥 갈게요.”
얼른 큰길 나가는 쪽으로 돌아서서 몇 걸음 걸어왔을 때였다.
“할 수 없지. 도와주려고 했는데.”
등 뒤에서 할머니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홱 돌아서서 다시 할머니한테로 갔다.
“할머니, 정말 그 지팡이가 우리 아빠 병을 낫게 할 수 있어요?”
“그렇대두. 나도 우리 은채가 기다려서 빨리 가 봐야겠다.”
할머니는 처음 보았을 때처럼 바구니를 옆에 끼고 지팡이를 짚고는 내가 가려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나는 다급하게 할머니를 불렀다.
“할머니, 바꿀게요. 바꿔 주세요.”
“그래? 진작 그럴 것이지.”
내가 가방에 들어 있는 개복숭아를 할머니 바구니에 모두 담아드리자, 할머니는 지팡이를 내게 주며 말했다.
“이 지팡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집까지 꼭 갖고 가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할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라는 말을 강조해서 말했다.
“예, 그럴게요.”
나는 할머니께 이 지팡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려고 했는데 할머니는 간곳없이 사라져 버렸다. 사방을 빙 돌며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빈 가방을 메고 할머니한테서 받은 지팡이를 들고 버스를 타려고 내려왔다.
한참 내려오다 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길가에 앉아 쉬고 있었다. 뭔가 들어있는 천으로 된 자루도 옆에 있었다.
나는 그냥 지나오려는데 할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애야, 그 지팡이 나 좀 주고 가면 안 되겠니? 짐이 무거워서 들고 갈 수가 없구나.”
“이 지팡이는 드릴 수가 없어요. 대신 제가 짐을 들어 드릴게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또 이렇게 말했다.
“짐만 무거운 게 아니야. 다리도 아파서 걸어갈 수가 없어.”
그러면서 내 지팡이를 달라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거였다.
“할아버지 그럼 제 어깨에 의지하세요.”
나는 오른손에 할아버지 짐을 들고는 왼쪽 어깨를 할아버지 앞으로 내밀었다.
“고맙구나.”
할아버지가 내 어깨를 의지해서 걸어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보자기도 무겁지 않고 할아버지가 내 어깨에 기대었던 느낌도 없었다. 돌아다보니 할아버지와 보자기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참, 이상한 일이야.’
나는 얼떨떨한 상태로 큰길까지 내려와서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는 마치 노인들이 단체로 어데 가는지, 백발이 다 된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앉아계셨다.
내가 버스에 오르자, 자리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리에서 주춤주춤 일어섰다.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하고 여기저기서 말했다.
‘지팡이를 짚고 있어서 내가 노인으로 보이나 봐.’
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지팡이를 홱 창문 밖으로 던져 버리고 싶었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한 할아버지가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서서는 자기 자리에 앉으라고 나를 억지로 앉혔다.
“이 지팡이는 제가 들고 있겠습니다 어르신.”
자리를 양보해준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하면서 내가 들고 있는 지팡이를 뺏으려고 했다.
“안 돼요!”
나는 지팡이를 불끈 쥐었다.
개복숭아와 지팡이를 바꾼 할머니가 ‘이 지팡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집까지 꼭 갖고 가야 한다.’라고 했던 말이 퍼뜩 생각났기 때문이다.
내가 지팡이 때문에 바짝 긴장한 채로 앉아 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한마디씩 했다.
“어르신, 어쩌면 그렇게 곱게 늙으세요?”
“그러게요. 앞으로도 백 년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르신은 나이를 거꾸로 잡수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눈길이 모두 내가 잡은 지팡이로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그 할머니 말처럼 우리 아빠 병을 낫게 해줄지도 몰라.’
보통 지팡이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자, 지팡이를 뺏길까 봐 불안했다. 빨리 내가 내릴 정류장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내가 내릴 곳까지 와서 내리려고 일어서니 버스 안에는 기사님밖에 아무도 없었다.
나는 뭐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에 도착하니 할머니 얼굴에 근심이 가득 서려 있었다.
“할머니, 아빠가 더 아프신 거예요?”
“어딜 갔다 오니?아무래도 큰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아.”
“그게, 그게…….”
순간 나는 개복숭아를 지팡이와 바꿔버린 것이 후회됐다. 개복숭아라면 달여서 약으로 드릴 수도 있지만, 이깟 나무막대기를 어디다 써! 그동안 고생한 것이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 같아 털썩 주저앉고 싶었다.
들고 있던 막대기 지팡이를 무궁화나무 옆에 화풀이하듯이 쿡 박았다.
밤이 지나고 이튿날 아침이었다. 내가 땅에 심어놓은 지팡이에서 새싹이 돋아난 것이다.
아빠는 점점 더 많이 아파했다. 월요일에 병원에 가려고 했지만, 월요일은 달력에 빨간 글씨로 되어 있는 날이라서 화요일에야 갈 수 있었다.
지팡이를 땅에 심은 지 이틀째 되는 날 아침, 그러니까 월요일 아침에는 동쪽으로 뻗은 가지에 커다란 꽃이 한 송이 피어 있었다.
나는 밤새 그 꽃이 열매도 맺기 전에 떨어져 버리지나 않을까 하고 잠을 설쳤다. 눈을 뜨자마자 해도 뜨기 전에 그 지팡이 나무로 달려갔다.
“와!”
나는 탄성을 질렀다.
할머니가 그 소리를 듣고 나오셨다.
“무슨 일이니?”
“저기, 저거.”
나는 복숭아나무를 가리켰다.
배만큼 큰 복숭아 한 개가 먹음직스럽게 익어 있었다.
“어! 저 복숭아나무가 언제 저기 있었냐? 열매까지 달고.”
할머니가 놀라 말했다.
나는 개복숭아 따러 갔던 일을 할머니께 말했다.
할머니는 ‘산신님이 너를 도왔구나. 천도복숭아여. 천도복숭아’ 하시며 조심조심 그 복숭아를 따서 쟁반에 넣어 아빠한테 갖다 드렸다.
아빠는 그 복숭아를 모두 먹고는 깊은 잠에 빠지셨다. 저녁이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난 아빠는 몸이 괜찮아졌다며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래도 걱정이 되어 진찰이라도 받아 보라고 재촉했다. 다음 날 날이 밝자 아빠는 마지못해 병원에 가고 나는 학교에 갔다.
‘병원에서는 뭐라고 했을까? 내가 드론대회 나가는 것보다 아빠 병이 나았으면 좋겠는데.’
학교에서도 온통 신경이 아빠한테 쏠렸다.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아빠가 큰 소리로 말했다.
“효성아, 아빠 아주 건강하대.”
“어! 정말?”
나는 너무 기뻐 달려가 아빠를 덥석 안았다. 비쩍 마른 아빠의 몸이 내게 감기듯이 착 달라붙었다.
아빠 약에 쓰려고 개복숭아를 따러 갔다가 지팡이를 들고 집에 오던 일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아빠 말이 맞았어요. 쓰러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니 됐어요!”
나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아빠를 번쩍 들고 뱅그르르 돌았다.
“야야. 그만해라. 근대 그게 무슨 말이니?”
아빠는 지팡이 나무에 달린 천도복숭아를 먹고 살아났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비밀. 그런 게 있어요.”
나는 오랜만에 활짝 웃었다.
“허허허. 녀석도.”
아빠도 나를 따라 웃었다.
나는 아빠 얼굴을 쳐다봤다. 오랜만에 건강한 아빠 목소리를 들으니 드론 날릴 때처럼 기분이 둥둥 떴다.
2022년 아동문예 3,4월 호
첫댓글 김정배 작가님, 공유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정배 작가님, 감사히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