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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이렇듯 옥초는 노력만은 가히 볼 만한 게 있었다. 그러나 그는 제 스스로 생각에는 일단 백지로 돌아간 요량이었었지만 실상인즉 본시 세태 인정을 투철히 체득하지도 못하고 태어난 만큼 자연 세상 물정의 ‘기상’과 ‘지리’에 어둔 반면 다분히 고답적이요 성미 까다로운 그 명제를 갖다가 안경 쓰고서 보는 이상(선입관념이 그다지 분명치 않던 먼저 차례와도 더 달라) 대하는 사물이 결코 굴절(屈折)이나 착색(着色)이 없이 제마다 다 올바로는 보였을 리가 없는 것이었었다. 그리하여 그는 숱한 그 여러 생활들이 제가끔 제 성깔대로 짜 내놓은 여러가지의 피륙들을 하나 둘 다섯 열 연해 연방 물색을 해왔으면서도 필경 제 생활을 옷 지어 입을 현실은 한 끄터리도 옷감 끊지 못했었다. 죄다가 하나도 무늬며 빛깔이 신통치 않은 것도 많은 것이거니와 스빠를 섞은 혼방이지, 순면이 아닌 성만 싶던 것이다.
마침내 옥초는 아무래도 새로 한벌 해 입었어야 할 새옷을 해 입지 못하고서 낡은 교복을 그대로 입은 채 졸업하는 교문을 나서고 만 셈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혼자 말했다. 세계는 상식과 습관과 값 헐한 욕망이 왕 노릇을 하고 있고 개성은 지혜로 더불어 생리의 종노릇을 하고 있고 하더라고.
이 니힐한 색채를 드리운 독설(毒舌)은 일변 그의 명제를 현실화시킬 소위 창조적 생활이라는 것을 얻어낼 수가 없더라는 의미가 (제 자신은 의식을 하고 않고 간에) 간접적으로는 포함된 말이었었다.
옥초는 그러나 결코 정면으로 그 최종적 결론을 내리지 않고서 언제까지든지 미루어나갈 권리를 스스로 보유했다. 그러고서 한편으로 그는 끊이지 않고 생각하고 궁리하고 하면서 탐색의 계속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무얼 하기는 해야 할 텐데……무얼 한다?……그건 그렇고 저건 저렇고 그리고 이건 이렇고…… 아무개는 이러고이러고 하던데?…… 아 요건 또 어떨꼬? 으음 글쎄……’
이렇게 그는 그새 두고 줄곧 하루에도 몇 번씩 앉아서 궁리요 생각이고 시방도 역시 그러하다. 하되 또 여간한 신세리티가 아니다.
다만 궁리와 생각이 그렇듯 골똘했던 끝에는 보나 안 보나 그 비정적 처분을 받고 난 재료에 대하여 으례껏 한두 마디씩 독설로써 또 한번 유린을 하곤 하는데, 그러나 그것이 스스로 피로한 머리를 풀자는 청신제에 그치고 말기에는 과히 니힐한 색채가 차차로 짙어가는 무엇이 없지 못했다.
주인 노파는 선잠이 깨어 아직도 정신이 덜 났는지 마룻전의 양지짝에 멍하니 쪼글트리고 앉아서 연신 눈을 끔적거린다.
기름기도 없고 누러니 시들어빠진 노파의 옆얼굴을 한번 더 말끄러미 건너다보고 있던 옥초는 마지막
‘선량한 백성……그러나 존경할 수 없는 선량……쓸데없는 선량……’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래서 그 끝에
"제엔장 참!“
소리가 나오는 것을 하품으로 더불어 씹어 삼키면서 고개를 돌린다.
노파는 이윽고 불 꺼진 담뱃대를 갖다 대고 씨익씩 두어 번 빨아보다가 내키잖게 한옆으로 내려놓으면서 게으른 기지개를 불끈, 하품을 뱉으며 삼키면서, 아이 볕두 따뜻해 좋기두 하다! …… 아이 즘심을 채려 드려야지…… 즘심이나마 하두 으설퍼서 원! …… 어쩌구 혼자 중얼거린다.
옥초는 미상불 그 찬밥덩이에 알량한 반찬 나부랑이를 명색 점심 밥상이라고 받을 일을 생각하니 생각만 해도 있던 입맛까지 달아나고 마는 것 같았다.
그러느니 차라리 무어라도 좀 시켜다 달랠까 그건 또 번폐스럽고. 어떡할꼬…… 에이 귀찮아, 점심이고 무엇이고 다 그만둘까 보다, 그래도 좀 시장은 한데……
그러나저러나 생활의 테마가 어떠네 상식세계의 거절입네 희떠운 소리는 해싸면서도 기껏 앉아서 한다는 수작이 점심 어설픈 걱정이나 하고, 흥……
옥초는 마침내 어처구니가 없다고(그 어느 편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인지) 혼자서 빙그레 웃는데.
"아이! 볼수록 참 좋게두 생겼다!“
별안간 노파가 커다란 소리로 절절히 탄복이다. 아까부터 어찌어찌하다가 새삼스럽게 옥초의 그 소위 좋게 생긴 데에 주의가 끌려, 건너다보고 건너다보고 하느라고 점심 차리자던 것도 잊어버리고는 그러자 마침 또 그의 무심히 웃는 양이 차마 아무 소리도 않고는 못 배길 만큼 좋아보였던 속이다.
그렇다고 옥초가 무슨 어디가 두드러지게 또는 깎아논 듯이 이쁘장스런 미인인 것은 아니다. 본시 그저 바탕이 푸짐하니(밥술이나 먹음직하게) 좋게 생긴 얼굴인데다가 한참 시방 스물한 살을 맞은 봄이겠다(딱이 밉게 생긴 처녀더라도 어느 한 구석은 그럴 듯해 보이게) 잘 피었을 무렵이고 게다가 옷이 시방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는 깜장치마 저고리만 하더라도 죄다가 헝클어지고 구기고 하기는 했을망정 여자전문의 고 밉살스럴 ✕✕ 만큼 태가 고운 옷맵시라 놔서 옷으로 하여 인물이 훨씬 돋보이는 것도 또한 없지 않았다.
"아 난두 젠장맞일 그 아들내미가 한 놈 있더람 그런 대루 대학교 공부라두 시켜설랑 처억 저런 버젓한 색시를 골라서 며누리두 얻구 다아 응? 그랬을걸 고만, 호호호……“
옥초는(소위 시골 토반의 집 태생이라서) 노파의 하는 수작이 기어오른다는 푼수로 좀 괘씸은 했으나 그렇다고 정색을 하는 것도 어린애 짓이고 해서
"그럴라 말구서 쥔마나님두 진작 시집을 가지요? 그랬으면 그새 벌써 아들두 낳구 다아 인제……“
"호호호! 것두 참 그렇군 그랴! 일찌감치 영감이나 얻어서…… 호호…… 그 색시 우순 소리두 일쑤 잘 하는구랴? 다아 참 얌전한 줄만 알았더니…… 아이 참 얌전하다구야! ……“
"내가 얌전한지 못 얌전한지는 또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나요?“
"아 보문 걸 몰루…… 일상거지두 조신하련과, 아 보아허니 다아 저만 나이에 안직 연애두 않는가 보던데? 호호호!"
"네에! 연애를 안하니깐 얌전하군요! …… 괜히 두 번만 얌전했다가는……"
"에구 참 쉬위……"
노파는 허겁스럽게 눈짓 고갯짓, 주인이 있지도 않은 건넌방을 조심해싸면서(그게 애교랍시고) 수군덕수군덕
"……괜히 동무학생이 들으문 날 욕하지! …… 머 참 그 학생이야 다아 전문학교두 다니구 나이두 들 만침 들구 했으깐 머 연애두 할 만허잖우?…… 근데 글쎄 저 아랫방에는 아 인제 겨우 쥐알만큼씩헌 계집애들이 생판 연애를 한답시구 남의 집 선머슴애들을 찾아와설랑은 사뭇 다 디굴구 에이! 에이 망칙해! 에이 꼴불견!"
노파는 신이 나서 연신 말재간을 부리는 모양이나 옥초는 우습지도 않아서 물끄러미 건너다보고만 앉았다가 또 무어라고 하는지 보자고
"그런데 내가 연애를 않는 줄은 또 어떻게 아시나요?"
"다아 아는 수가 있다우……"
노파는 요술이나 한바탕 할 듯이 뽐내더니 기껏 한단 소리가
"……아 연애를 하략시면 색시가 저렇게 혼자서 심심해 하겠다, 누가 말래? 아 그이, 하이칼라상이 측 찾아와설랑, 다아 참 동물완 산뽀두 같이 가구, 화신상으루 들러서 떡 벌어지게 즘심두 한턱 쓰구 밤일라치면 붐빠라 붐빠라 활동사진 구경두 가구……조옴 좋아! …… 끄응! 이러니저러니 해두 젊어서 한때가 좋습넨다다아……"
노파는 어느 틈에(편리할 대로) 연애와 청춘의 찬미자로 표변을 하더니 꺼지럭꺼지럭 발부리로 신발을 끌어가다 꿰고 부엌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직도 끝이 없었겠지만 본즉 옥초는 햇볕으로 두 손길을 나란히 내뻗치고 앉아서 제 손등을 바라다보면서 딴 생각에 잠착해, 이편의 이야기는 듣는 시늉도 않는 것 같아 그만 파흥이 되었던 것이다.
햇볕이 따끈하게 와서 쪼이는 손길은 혈색 좋은 손톱하며 동글고 복슬복슬한 게 이뻤다. 옥초의 주의는 그러나 시방 그 손길에 가서 있는 게 아니라 노파가 실없이 뜅긴 연애 소리에 그리로 정신이 팔렸던 것이다.
‘미상불 이렇게 무료할 바이면 어디 소위 그 연애라도 한번 해보자나?’
‘어쩌면 그다지 심심하든 않으렷다? 한바탕 심장이 들이 아스러지게시리…… 연애는 심장으로 하는 게라지?’
‘그렇지만 연애란 건 일종 열병이란다는데, 그러니 병을 어디 맘대로 앓고 말고 하는 수도 있나? 장질부사처럼 배양균(培養菌)으로 주사를 맞든지 집어삼키든지 하기 전에야……’
‘하면 또 누구하고 하노? 와락 눈에 안기는 거 누가 있을라구?’
‘그러나저러나 간에 연애를 그걸 해본다 한들 막상 그리 신통한 무엇이 있을건 무언구? 하숙집 점심밥상보다야 좀 덜 어설플 테지만……’
‘만나 주고, 따라다니고, 좋아하고, 슬퍼하고, 어쩌구 다 그래야 할 테지? 에이 귀찮아! 그걸 누가…… 누가 부전부전 쫓아나가서 그 열병을 치르려 든담? 두고 보기나 할 거지…… 두고 보느라면 연애쯤 한번 기회가 없으리?…… 시방은 이 햇볕과 이 한가로움이 천하 제일이다!’
마침 이렇게 정신을 팔고 앉았는데 그러자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더니(실상은 호랑이 잡이도 못되고 그저 그 비슷한 자라고 해야 맞지만) 혹시 노파의 입잣이 방정맞았던지 별안간 대문간이 요란하게
"이리 오너라."
찾는 소리가 나면서 뒤미처 웬 양복장이가 끼웃이 고개를 들이밀던 것이다.
옥초는 그 음성이 장히 귀에 익으나 미처 분간을 못했는데 이내 들이미는 고개를 보니 옳아! 상수였다.
옥초는 좀 의외였으나 그렇다고 깜짝 놀랄 며리는 없던 것이고 그래 천연이 웃으면서 일어서고, 상수도 얼른 옥초를 알아보고서 싱글벙글 쫓아들어온다.
"아니 그래…… 그래 이렇게 도망을 해 있기요? 으응?……"
첫인사가 이렇고, 그렇게 왁자지껄 떠들어대면서 부리나케 대뜰로 올라선다.
"언제 오섰어여?"
옥초는 아닌게아니라 제가 한 가늠이 있어놔서 바륵바륵 웃으면서 대뜰로 마주 내려설 듯하다가(쯧!) 그만둔다.
"아니 그래 사처를 옮겼으면 기별을 해줄 것이지 온 아무리 답장 잘 잘라먹기루 당대 제일이기루서니…… 마구 이렇게 사람을 갖다가 골탕을……"
방금 집안이 떠나가고, 주인 노파가 호기심과 놀람에 눈이 둥그래서 김치 보시기를 손에 든 채 멍하니 내다보고 섰다.
그만해도 벌써 재작년 여름방학인데 그때 이후로는 옥초가 작년 여름방학에는 원산으로 가서 지내느라고 고향에 내려가지를 않았고 다른 짧은 방학에는 내려가지 않은 적도 있었지만, 내려가기는 했어도 마침 공교로이 상수가 타관 출입을 하고 없었고 해서 그럭저럭 일 년 반, 햇수로는 삼 년 만에 만나는 상수다. 물론 그동안에도 들음들음 소식도 듣고 더욱이 상수 당자의 꾸준한 통신이 있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존재를 망각까지는 해버릴 수 없는 오랜 교분(交分)과 걸린 숙제가 있는 걸로 하여 그의 건재만은 아무려나 ‘인정’을 하고 지내왔었다.
그래 그 재작년 여름방학에 만났을 때까지도 상수는 마침 동경서 학업을 마치고 갓 돌아왔던 참이라 더구나 대학 물림의 헌 교복을(사세가 궁한 것도 아니면서) 털털하게 그대로 입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 태가 하나도 벗지 않았었다.
하던 그가 척 갈라붙인 양복에 면장님 해 같은 봄외투에 이건 또 삼십 전 총각도령이 웬 내력 없는 몽당수염을 코밑에다가 가꾸어 붙이고 아주 헌다한 촌 신사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 남과 주위를 상관 않고 큰 목소리로 떠들고 덤비는 수선스럼도 어쩐지 전과는 다른 취미(臭味)가 나는 것 같았다.
이 시끄런 청년신사가(아무려나) 옥초의 소위 그 결혼 후보자이던 것이다.
둘이는 한 고향의 한 동네요 어려서는 학년의 층은 있었지만 보통학교도 잠깐같이 다녔고 그 뒤에도 이내 상종이 있어 왔고 하는 동안에 자연 둘이는 남녀라는 성별과는 상관이 없이 위선 피차간 숭허물없는 동무가 되었고 그리고 그것이 이내 그대로 연장이 되었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톨톨 털어서 죄다가 그것뿐이요 그러므로(남이 보기라도 연애는커녕 내외간이 아니냐고 망발을 할 만큼) 서로 말과 태도가 소탈한 것도 온전히 그러한 향토적인 친숙에서 우러나는 것일 따름이던 것이다.
남도 아닌 당자의 한 사람 상수가 그런데 대단히 행복스러운 착각을 일으켜 일찌기 저와 옥초와는 연애를 하느니라 했고 그 다음에는 장차 둘이서 결혼을 할 것이니라 했고 그리고는 마침내 자 인제 옥초가 졸업을 하면 이어서 바로 결혼식을 거행한다고 해버렸다. 양편 집안에서는 또 저희끼리야 연애를 하거나 말거나 상수가 마땅한 사윗감이요 옥초가 좋은 며느릿감이요 했기 때문에 결론은 상수와 일치했었고 그리하여 시방 상수 못지 않게 ‘결혼식’의 날을 기다리는 참이다.
상수는 그러므로 이번 길이 불원간 신부가 될 애인 옥초를 영접하는 경의를 표할 겸 재촉하여 데리고 갈 겸 매우 감격하고 축하스런 걸음인 만큼 허위단심 찾아 올라온 신부자리 애인의 행방을 놓치고서 한바탕 애를 태우고 쩔쩔맸다는 것쯤 옛날 풍속의 ‘댕기풀이’로 발바닥 몇 대 맞은 셈만 치면 그만일 뿐 아니라 유쾌한 화제가 뒤에 남으니 오히려 이문이라고는 할 수가 있을 것이었었다.
"……그래 뭣이냐 서울 당도하기는 벌써 그저끼 아침에 당도를 했는데 글쎄 학교 기숙사루 찾아가니깐 아 빈탕이겠지! 허허허허."
"수고하섰군요! 앨 쓰구 찾으시느라구……"
이 치하의 대답을 그의 눈초리로 입가로 떠오르는 비양스런 미소와 아울러 새김질을 한다면
‘대체 무슨 그리 긴한 소간이 있다고 그다지 들레고 다니면서 나를 찾더란 말이냐.’
는 박절한 구박임을 알아차렸을 것이나 요행 상수에게는 그런 것에다가 낭비를 할 신경의 여유는 자못 적었던 것이다.
"하! 수고면 약간한 수고던가?…… 아 글쎄 어떻게 들이 헐떡거리고 돌아댕겼다구! 그래두 영 아는 장사가 있어야지?…… 글쎄 막상 모르는 노릇이니 경식군더러라두 한번 물어보구서 떠났으면 좋았을 게 아니야, 허허……"
경식은 고향에 있는 옥초의 오라버니다.
옥초는 주인 된 도리가 늦어감을 잊었던 것은 아니나 흔연히 마음이 내키지를 않아서 주저주저하던 것인데 그렇다고 영 몰인사하잘 수도 없고, 하릴없이 그 주체스런 생철통이를 방으로 청해 들인다.
옥초는 상수가 시방 우렁이 속 같은 속이 있어서 열불나게 쫓아올라 온 꼴이 우습기도 하고 밉살스럽기도 하고 하여 한두 마디 비꼬아 주고 하기는 한다더라도(그것 역시 친함에서 우러나는 악의 없는 농이어야 할 것이고) 멀리 고향에서 찾아와 준 다정한 동무로서 오래간만에 만나는 존경하던 선배로서 당연히 우정과 도리를 갖추어 전과 다름없이 그를 반가이 맞고 흔연히 대접하고 했어야 할 것이지 그렇게 갖다가 주체스러하고 마음 내켜하지 않고 할 일이 아니었었다.
그만 경우는 옥초도 모르던 것이 아니고 그래서 속으로는 민망한 생각도 또한 없지 못했다. 그러나 기분이란 고정한 것이어서 억지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여자의 젊은 신경이란 건 참으로 직감이 예민한 것이 있었다.
대체 그새가(오랬다고는 하지만) 다직 일 년 반 남짓한 동안인데 이 상수라는 사람을 차차로 주의해 보면 볼수록 위인이 고약하게 변한 자취가 사방에서 드러났다. 발산하는 인간의 기품부터가 전일의 그 상수가 아니었었다.
어디라 없이 촌때가 낀 것 같고, 꼈으되 그 촌때는 순박한 농촌의 구수한 때가 아니라 술집 색시네 새서방의 삼팔저고리 동정에 묻은 때와 같은 그런 주접스런 때였었다. 그리하여 그에게서는(엄살을 하기로 하면 골치가 아플 만큼) 고약한 속취(俗臭)가 풍기던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망측한 것은 그의 그 떠들고 덤비는 것인데, 처음 언뜻 보기에도 전자의 그것과는 도저히 계통이 같은 물건이 아니었었다.
전일의 그가 떠들고 덤비던 것은 하나의 진정에서 우러나는 정열로서 아무 가식과 표리가 없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었다. 그러나 시방은 겉으로는 그럴싸하면서도 속은 말짱하니 다르고 그래서 버엉떼엥하고는 남을 엎어 삶는 일종의 말재주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었었다. 이 말재주만 남고 정열의 알맹이는 빠져버린 상수의 떠드는 수작에서 옥초는 거리의 약장수를 연상치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공평하고 사 없는 판단이냐 아니냐는 알 바 없고 다못 인상이 그처럼 외로 가고 보니 자연히 옥초는 전처럼 가슴을 활짝 터놓고 소탈한 심성으로 옛 우정과 도리를 갖추어가면서 그를 맞고 대할 마음이 내키지를 않던 것이다.
이편 상수는 그러나 누가 눈치를 하건 코치를 하건 알려고도 않고 또 알았더라도 모른 체할 판이요 면장님 같은 봄외투와 모자를 벗어 들고 성큼성큼 방으로 따라 들어오면서 여전히
"……아 그래 헐 수 없이 경식군한테루 전보를 쳤더니……"
하고 떠벌리다가 주인이 미처 권하기도 전에 아랫목 방석 위에 가서 털썩 주저앉는다.
"……아 그랬더니 이제 방금야 편지루 회답이 왔길래 그래 시방…… 허허허허. 원 그렇게두 사람을 갖다가 골탕을 먹이더람? 허허허허."
인제는 아무려나 찾아내기는 찾아냈으니 다 안심이요 굴지고 그리고 다시금 반갑다는 속이리라. 고개를 됫새 들고 입을 히죽벙긋, 위로 아래로 옥초를 건너다 보기에 그 한시도 지껄이지 않고는 못 배기는 말도 잠시 잊어버린다.
"건데 뭣이냐 저어……"
이윽고 상수는 한참이나 그렇게 옥초를 건너다보고 앉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그리고 또 입도 그만했으면 심심할 때도 되었고
"……즘심을, 즘심을 먹어야지? 아직 안 먹었지?"
"네, 아직……"
"나두 아직 안 먹었는데…… 그럼 우리 좀 있다가 같이 나갑시다그려. 같이 나가서 즘심두 먹구……"
"저는 괜찮아요 예서 아무꺼나……"
"허어! 그럴 법이 있나! 날 같은 촌사람 안내두 해줄 겸 같이 거리루 나가야지 응? 안내해요?"
"안내야 해드리지요."
"아무렴! 그렇다면 몰라두!"
옥초는 이 사람이 농을 그렇게 하거니 하고 얼굴을 치어다보았으나 아주 천연덕스럽다.
"……그리구…… 허어 이거 내가, 이거 인사가 늦어서…… 뭣이냐, 이번에 참 영광스럽게 졸업을 해서 대단히 참……"
"영광은 그까짓 게 무슨 영광인가요? 괜히 거저……"
"허어! 그럴 리가 있나! 대단히 영광스럽지 않구! …… 그리구 뭣이냐 시굴 댁에서두 두 분 노인께서 다아 안녕하십디다. 경식군은 머 자주 만나서 놀기두 허구 가끔 술추렴두 허구 하니깐……"
상수가 술을 먹다니 선뜻 의외로왔으나 사람이 저다지 변했을 바에야 오히려 당연한 타락이거니 싶었다. 옥초는 그것을 타락이라는 관념 이외에 달리는 생각할 거리가 없었다. 또 술을 먹으면 타락을 한단 소리는 일찌기 상수가 제 입으로도 부르짖던 말이고……
그런 일 저런 일을 생각하면서 옥초는 빙긋이 웃고 말이 없고, 상수는 저 역시 지나간 그 당절의 제 말이 옥초의 기색에서만 해도 생각이 날 만한 자리라 헤벌쭉 한번 웃더니
"거 어디 헐 수 있더라구! 뭣이냐 명색 교제두 해야 허구 그러자니 자연…… 허허허허."
"교제를 다아 하시는군?"
"허허허허,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미처 편지루라두 기별은 못했지만 뭣이냐 이번에 내 벼실을 한 자리 했지 벼실을, 허허허허…… 읍회의원을 하나 얻어 했어요! 허허허허."
필요 이상으로 거듭 그리고 더 야단스럽게 너털웃음을 치는 것은 과거 일 년 몇 개월 동안을 두고서 서서히 치른 변화를 시방 이 자리에서는 단 이 분이나 삼 분 동안의 시간 안에다가 압축을 해서 노출을 시키자니 제 스스로도 놀랄 만큼 빛깔이 선명해 보이거늘 황차 옥초(옛날 그대로의) 옥초의 앞인데야 아무래도(처음 한 번쯤은) 무렴을 타지 않을 수 없는 피부(皮膚)인지라 시방 그 무렴을 얼버무려 넘기자는 동정스런 노력임을 옥초도 모를 바는 없었다.
말이 없이 다만 비양스런 미소를 드러내고 말끄러미 바라다보는 옥초를 상수는 마주 히죽히죽 건너다보다가 또 한마디 발명하듯
"머, 거저 일종 명예직이지!"
"네에! 읍회의원을 하시구…… 네에! 명예를 타시구……"
옥초는 여전히 빙긋이 웃는 입초리로 연신 혼잣말을 뇌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감심을 하여 마지않는다. 한 가지 두 가지 차차로 차차로 비어져 나오는 사실이 의외는 의외이었으나 그러나 예외 없이 죄다가 이 사람이 분명코 그동안 위인이 변했구나 하고 아까 미리서 짐작을 했던 그 짐작과 일일이 들어맞는 것이어서 그것이 옥초에게는 구경답고 감심스럽던 것이다.
"……잘하섰군요! 축하합니다!"
옥초는 짐짓 입초리의 웃음을 지우고 정도 이상으로 고개를 깍듯이 숙인다.
태도와 기색하며 말이 이렇게까지 나오는데야 번연히 비양인 줄을 모를 이치가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상수는 종시 상수라 여전한(보다도 과연 읍회의원 영감다운) 너털웃음을 한바탕 치더니
"거 머 그리 푸달진 명예라구!…… 심심하니깐 무어나 얼거리라두 장차 생길까 하구서 우선……"
우선 그래 둔 것이고 명년에는 도의원 선거에 출마를 할 테란 소리는 할까말까 하다가 그만두던 것이다.
네에 일을요오! !…… 어쩌문 다아 그렇게…… 네에…… 그럼 그 묵자철학(墨子哲學)이라더냐, 아따 저 거시키 터럭 안 뽑는 철학 그건 인전 그만두섰나요?"
"허허허허 어허허허! 이거 내가 이렇게 몰리다가는 당최 이건 앉구 못 일어서겠군! 그래! 허허허허. 그러나저러나, 차일시 피일시 아니우? 어떡허우?…… 나두 많이 두구서 생각두 해본 나머진데 별수 없어요! 밤낮 서생인가? …… 거저 우리 같은 범인은 괜히 혼자서 고고했자 별 뾰족수 없구, 거저 현실과 타협을 하는 게 가장 현명한 노릇이야! 현실과 타협해서 …… 친하구 응?…… 시대가 시방 시대가 다아 그런 걸 어떡허나? 그렇잖다구?“
"네에! …… 아무턴지 한 두어 길 넉넉 뛰섰구먼요!"
옥초는 상수의 변화도 변화려니와 그의 턱없는 비약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잉어가 한 길을 뛰니까 망둥이는 두 길을 뛴다는 속담을 생각하고 하는 말이었었다.
"두 길을 뛰었다? 허허허허……"
말귀를 알아들었더라도 그런 조롱쯤 아무렇지도 않아하고 짐짓 모른체했을 테지만 아무려나 눈치를 채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지 두어 길 뛴 셈이지! …… 옳아! ‘산당도비’를 했어 ‘산당도비’를! 허허허허."
웬만큼 그래도 말 귀가 틔었어야 비양도 할 맛이 있는 법이지 이 생판절벽한테는 아무 효험도 날 게 없었다.
"……그런데 말이지 ‘산당도비’가 됐거나 ‘도당도비’가 됐거나 내 제발 빌께시니 옥초두 날 갖다가 읍회의원 나부랭이나 얻어 하구 다닌다구 비양만 하지말구서 자알 이해를 해주어요!"
"허어! 괜시리 시방……"
상수는 일찌기 동경서 ✕✕대학의 지나철학과를 마쳤고 그리고는 또 무슨 의사로 이태 동안이나 ✕✕대학에서 정치경제를 연구하고 그리고서 마지막 돌아온 것이 그때 재작년 여름이었었다.
그전에도 그러했지만 그때까지도 그는 현실이 나의 이상과 맞지 않는 바이면 터럭 하나라도 세상을 위해서는 뽑지 않는다고 정열적으로 부르짖던 젊은이였었다. 그 기개가 자못 핍절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감동을 받게 했었고 그 운덤에 발일모이 위천하라도 불위(拔一毛而爲 天下不爲)라는 그 한마디는 특히 옥초에게 깊은 영향을 끼쳐주었었다. 오늘의 옥초의 고답적인 결벽은 은연중 그 말 한마디가 들어서 길러 주었던 것이다.
아뭏든 그리하여 그때 당시의 상수를 생각하고 시방 오늘의 상수를 볼 때에는 우선 석금의 회포가 없지 못할 만큼 변천이 놀라왔다.
하기야 그동안 겨우 일 년 반 남짓한 세월에 세상은 눈이 부시게 급격한 변천을 했고 세상이 변하니 당연한 추세로 사람도 따라 변하기야 할 것이었었다. 그러나 이 상수만 하더라도 자못 핍진한 체 현실을 내세우고 시대를 내세우고 하기는 하는 것이나 옥초가 앉아서 보기에는 그것은 마치 약효도 없는 약을 가지고 단지 약이라는 이름(이름만) 밑에서 오늘 밤 제 집의 저녁 양식을 벌기 위하여 허풍을 치면서 입담 좋게 지껄이고 섰는 거리의 약장수와 같은 협잡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었었다.
이렇듯 일찌기는 그만큼이나 근엄도 하고 순직도 하여 족히 존경하기에 빠질 곳이 없던 그 상수가 불과 일 년 반 동안에 능청스럽게도 거리의 약장수다운 협잡꾼이 되어버렸던 것이고 그리하여 그 얌체 없이 무성한 발육이 곧 옥초의 완상의 촛점이었던 것이다.
옥초는 마음이 대단히 상쾌했다.
그는 실상인즉 그새까지는 결혼문제를 두고서 상수에게 대하여 의리에 가까운 부담을 잠재적으로 느껴온 것이 사실이었었다. 찐더분한 일종의 걱정스러움이었는데 그것이 방금 상수를 만나 잠시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마치 공중으로 올라가다가 사라진 연기처럼 홀연히 다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무거운 꿈에서 시원하게 깨난 것 같다고 할는지 어떻게나 마음이 거뜬한지 몰랐다.
하기야 일변 생각하면 불행이라고 할 수 있는 남의 소위 ‘타락’에서 요행을 횡재해가지고 기뻐하는 셈쯤 된 게 되어 적잖이 잔인한 짓이기도 했으나 그렇더라도 막부득이한 노릇이었었다.
마음이 아뭏든지 그렇게 해방이 되고 나니 오히려 상수를 대응하기가 그새까지보다도 두루 임의로왔고 그랬기 때문에 상수가 점심을 같이 하러 나가자고 다시 청하는 것도(먼저에 얼추 대답을 한 것도 있고 하여) 꺼리지 않고 선뜻 응낙을 했다.
다만 한가지 구경꾼이 주욱 따라오기 마침감인 이 "무지한 생철동이"를 길거리로 차고 나가기가 좀 안된 것 같기는 했으나 그것도 세파트가 아닌 바에 망신이면 제 망신이지 내게 무슨 상관이랴 하면 그만이었었다.
설혹 신사로 승차가 되지 않았기로서니 레디의(황차 약혼이 절로 익은 미쓰의) 출입 전에 필요한 용무를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야만은 아니었을 것이고 그런지라 상수는 먼저 방을 피해 나오더니, 험 험, 대단히 근량이 나가는 밭은기침을 해가면서 넌지시 대문 밖으로 완보를 띄어놓는다. (안방에서는 주인 노파의 자라 모가지가 나왔다 들어갔고.)
상수는 자못 만족한 형편이었었다.
와서 보니(찾기에 힘은 좀 들었어도) 전과 다름 없는 말썽꾼이는 말썽꾼이로되 그러나 역시 전과 다름 없는 친숙한 ‘애인’임에 틀림이 없고, 읍회의원 일건도 생각하더니보다는 오히려 깊이 괘념을 않는 눈치요, 배식을 청한즉 처음에는 사양을 하다가(그야 사양을 하는 게 지당하지! 걸신 들린 천민처럼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네에 하고 따라나설까? 적어도 우리 옥초양인데) 두 번째의 청에는 흔연히 응하고 나서 주고……
컨디션이 다 이만큼 양호하니 이따가 점심을 먹으면서 오늘 밤차로 둘이서 같이 동반해 내려가지고 달래면 별반 고집 세우지 않고 말을 들을 것이고……
전후사가 두루 이러하고 보니 상수야 만족치 않을 수가 없고 큰기침이 나오지 않을 이치가 없던 것이다.
이윽고 옥초가 끝동 없이 고름만 자주로 단 하얀 하부다이 저고리에 무늬가 맘껏 굵은 벨벳의 맑은 남빛 치마를 치렁치렁 받쳐 입고 새로 마추어 두었던 깜장 에나멜 구두를 손에 들고서 마루로 나선다.
주인 노파가 좋아라고 흐물흐물 웃으면서 쪼르르 옆으로 쫓아온다.
"그러문 그렇지! 글쎄 이렇게 좋게 생긴 처자가 괜히 글쎄 연애하는 이가 없대서야 오온!"
옥초는 웃으려다가 말고 말끄러미 노파를 건너다보면서
"그이가 나허구 연애하는 사람 같아요?"
"아니문? 호호호…… 허긴 또 어떻게 보문 먼촌 오라버니 같기두 허드구면서두…… 그래 진정 누구요?"
옥초는 자그락거리는 구두를 디디고 일어서면서 바륵바륵
"먼촌 오라버니는 아니라두 그저 그렇답니다. 아무 걱정두 마세요! 마나님 말씀마따나 아직두 얌전하니깐요, 네."
하고는 고개를 까댁, 돌아서서 가분가분 걸어나간다.
<재편집: 오솔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