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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큰 영광을 보라
학개 2장 9절 / 차명권 목사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칼빈의 5대 교리 중 하나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말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개혁주의 5대 교회를 우리교회도 근본으로 삼고 있고, 은혜의 복음도 이 기초 위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할 때, 영광은 무슨 뜻입니까? 영광의 헬라어는 독사입니다. 송영 혹은 영광의 성가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 doxology가 이 영광이라는 뜻의 독사(doxa)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영광이라는 의미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광채와 아름다움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종교 권력자들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으셨고, 힘 없는 죄인들에게는 자신의 품을 내어주셨습니다. 육신의 안목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어둠 속에서도 빛이 났습니다.
두 번째는 존엄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모든 이름이 예수의 이름 앞에 머리를 조아립니다. 어떤 어둠도 쫓겨나가고, 어떤 질병도 뿌리가 뽑히며, 귀신이 굴복합니다. 오늘 주목하려는 것은 영광의 세 번째 정의입니다. 유대 신학자인 테이어가 정의한 영광의 개념인데, 그것은 바로 좋은 의견이라는 뜻입니다. good opinion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영광을 주시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좋게 여기시며, 즉 의롭게 여기시며, 그 결과로 칭찬과 넘치는 생명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신약에서 영광은 항상 좋은 의견입니다. 그리스 세속 문학에서는 이 독사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도 쓰이고, 긍정적으로도 쓰였지만, 신약성경에서 예수의 은혜와 관련해서 영광이라는 독사는 항상 좋은 의견이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아름다움과 그분의 성품과 권세를 잃어버린 것도 있지만, 좋은 의견 두 가지 모두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좋은 의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지신 좋은 의견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데, 이런 영광, 이런 좋은 의견을 상실한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최악의 상실입니다. 구약의 율법 아래에 있을 때, 하나님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정죄하셨습니다. 좋은 의견이 아니셨습니다. 율법은 항상 우리들을 저주 아래에 가뒀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법을 어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쓸모 없고, 형편 없는 자라고 정죄하고 저주하였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정신 아래에 있는 성경 속 인물들의 경우, 천사나 하나님이 나타났을 때 두려워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이 영광이 회복되었습니다. 좋은 의견이라는 영광의 회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로 우리를 향한 형벌을 대신 지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좋은 의견이 먼저 선포되었습니다. 그 선포를 듣고,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을 향한 좋은 의견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영광에서 멀어진 우리가 영광을 회복한 것입니다.
학개서에 보면 두 영광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즉, 구약의 영광과 신약의 영광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영광은 사라지고 빛바랠 영광인데 반해, 신약의 영광은 더욱 큰 영광이며, 완전한 영광입니다.
학개 2장 9절입니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분명하고 확실한 약속입니다. 나중에 올 영광이 더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학개 선지자가 쓴 것이 학개서입니다. 학개의 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막 끝내고 돌아온 상태였습니다. 70년 동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유대인들이 생명처럼 중시하는 것이 있는데, 율법과 성전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각이고,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이라는 생각이죠. 율법과 성전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의 임재는 그들을 떠났고 그들은 망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보니 무엇이 산산히 무너지고 없었습니까. 솔로몬 성전, 그 화려하고 빛났던 솔로몬 성전이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재건하려고 했습니다. 노인들의 기억 속에는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이 있었죠. 그런데, 스룹바벨 성전을 막상 재건하고 나서 그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솔로몬 성전을 기억하고 있던 이들의 눈에 재건한 스룹바벨 성전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젊은 선지자 학개를 보내시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울지 말라. 스룹바벨 성전의 영광이 다가 아니다 장차 올 나중 성전의 영광이 더 클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 나중 성전은 예수님이시고, 나중 성전의 영광은 예수님으로 인해 올 더욱 큰 영광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라며 외쳤습니다. 이렇게 외치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발라도 총독 앞에서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고 돌변하게 되죠. 인간의 생각과 감정이 진리 위에 있지 않으면 이렇게 요동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환호성에 일절 반응하지 않고, 곧장 성전으로 직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으로 들어가 성전 안을 거니셨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기 위해 입성하신 것이 아니라 성전을 가고자 하셨던 것이죠. 그 성전이 바로 학개서에서 사람들이 초라함에 눈물을 흘렸던 그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헤롯대왕이 개보수를 해서 헤롯성전이라고도 불리지만, 기본적으로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마가복음 11장 11-12절입니다.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호산나 외침에 대한 반응은 없으시고, 곧장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성전이 목적지였습니까? 스룹바벨 성전은 구약의 모든 성전의 마지막 성전입니다. 무너질 성전입니다. 아니 무너져야 하는 돌성전입니다. 그 성전에서의 모든 구약적 제사는 인간의 죄를 영원히 없앨 수 없는 무력한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림자 성전이었습니다. 그 헛된 스룹바벨 성전에 누가 거닐고 계십니까? 참 성전이신 예수님이 거닐고 계십니다.
거짓 성전과 참 성전이 공존하고 있고, 대비되고 있습니다. 참 성전이신 예수님은 스룹바벨 성전으로 대표되는 구약의 성전에 대해 무너질 성전이라고 선포하시면서, 사흘 만에 내가 새 성전을 일으키리라 하셨습니다. 바로 새 성전으로 부활하실 예수님 자신을 예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21절입니다.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참 성전으로 부활하셨습니다. 학개서에서 이 성전의 더 큰 나중 영광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광이며, 예수님으로 인해 주어질 영광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라는 성전 안에 가득한 영광을 요한복음 1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입니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참 성전인 예수님은 영광으로 가득하십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성전입니다. 요한복음은 의도적으로 은혜와 진리를 율법과 대조하고 있습니다. 옛 돌 성전은 율법이며 사라질 영광인데 반해, 참 성전이신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더욱 큰 영광입니다.
요한복음 1장 17절입니다.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학개서에서 이전 영광과 더욱 큰 나중 영광을 대조합니다. 이것은 구약의 성전과 참 성전이신 예수님의 대조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이 두 영광을 율법과 은혜와 진리로 대조하고 있습니다.
옛 성전은 율법의 영광이었으나, 성전이신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라는 더욱 큰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영광은 더욱 큰 예수님의 영광입니다. 은혜와 진리라는 영광입니다. 진리는 율법편이 아닙니다. 진리는 은혜편입니다.
율법과 진리라는 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은혜와 진리입니다. 은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은혜를 이야기하면 사람이 더 죄를 짓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은혜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견디지 못하고 진리인 은혜를 의심하고 놓쳐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광을 보니, 라고 성경은 계속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라고 명령합니다. 율법을 지켜라고 하지 않고, 신약은 계속해서 예수의 영광을 보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분의 영광을 보면 그와 같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입니다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여기서 벗어야 하는 수건은 율법입니다. 베일이라는 뜻인데 구약시대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두려워 썼던 베일입니다. 율법을 나타냅니다. 율법의 영광을 벗어버리고, 주의 영광을 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구요?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른다고 약속하십니다.
변화는 예수님의 영광인 진리와 하나인 은혜를 바라볼 때 일어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도 무슨 훈련, 무슨 프로그램, 그런 것을 강력하게 시켜야 한다는 충동에 휘말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영광을 계속 보는 것을 통해 변화되었던 것처럼, 주의 영광을 계속 바라보는 것을 통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전 영광보다 더욱 큰, 우리들이 삶의 믿음과 정신으로 삼고 살아가야 할 영광을 고린도후서 3장에서는 더욱 자세히 풀어주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9절입니다.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율법은 정죄하고 죽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은혜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시며 의롭다 하시며, 살려주십니다. 율법은 정죄하며, 좋지 않은 의견을 우리에게 주는데 반해, 예수님의 은혜는 더욱 넘치는 영광을 주십니다. 더욱 넘치는 좋은 의견을 주십니다. 내가 너희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않으며, 너는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라는 좋은 의견을 넘치게 주십니다.
이것이 두 종료의 영광인데, 어떤 것이 더욱 넘치는 영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네, 정죄의 직분이 아니라, 의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넘칩니다. 의의 직분을 신앙의 원리로 삼아 살아가십시오. 더욱 큰 영광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율법의 정죄의 직분도 작지만 영광이 있었다는 것은 그 정죄를 통해 결코 정죄함 없는 예수님의 의의 직분에 눈을 뜨게 할 수 있었다면, 그 측면에서는 영광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광의 완성은 예수를 믿고 의롭게 되었다는 의의 직분 가운데 사는 영광입니다.
성경은 영광을 광채, 빛으로 묘사하기도 한다고 했지요.
이사야 60장에서 하나님은 새 언약의 때에 성도들에게 임할 영광의 빛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0장 1-2절입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이 빛이 예수님의 영광의 빛입니다. 영광의 빛이 여러분 위에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아름다움과 예수님의 존엄이 여러분 위에 임했고, 여러분의 것이 되었습니다. 무엇을 통해서요? 여러분 가운데 좋은 의견이 회복이 된 것을 통해서입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제 더욱 영광스러운 의의 직분으로 살아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께서 나에 대해 좋고 선하신 의견을 갖게 되신 것을 믿어야 하고, 선포해야 하고,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릴 것입니다. 사단은 어둡고 캄캄한 정죄의 목소리와 사망의 목소리로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과 의식을 가리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어나 빛을 발하십시오. 더욱 큰 영광으로 들어가십시오. 더 이상 두려워하는 노예의 영이 아니라 두려워하지 않는 아들의 영을 가졌습니다. 그 영을 주장하십시오. 참 성전이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성도인 여러분도 성전이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스룹바벨 성전을 거니시는 것이 아니라, 성전된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영으로 거닐고 계십니다. 성전인 여러분 위에 영광의 빛이 임하였습니다. 의의 직분을 따라 의의 영으로 여러분이 살아갈 때, 성전인 여러분 가운데 일어날 모든 회복을 성경은 약속하고 계십니다.
이사야 60장 3-5절입니다.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5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네 마음이 놀라고 화창하리리. 하나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의 마음을 깜짝 놀라게 하시고, 화창한 봄과 같이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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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감사합니다.
💖삶에도 여백의 공간이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내 삶에 여백이 클수록 사랑과 행복을
넉넉히 채울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