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완해야 할 역사의 장 - 5·18 43주년에 부쳐
1980년에 발발한 5·18은 15년 뒤인 1995넌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민주화운동으로 명확히 규정됐다. 이후 전두환 대통령 등이 내란과 반란 혐의 등으로 단죄되고 피해 시민들에 대한 명예 회복과 보상, 국립묘지 조성 등이 일단락되면서 5·18은 역사의 장으로 넘겨졌다. 5·18은 그러나 정쟁이나 지역주의, 또는 사법 다툼의 볼모가 되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논란의 소지를 없앤다는 구실로 2021년 특별법 제8조를 신설했다. 5·18 관련 허위 사실 유포를 금지하고 이를 어기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 사건이나 역사의 진행 과정에 관한 보도 등을 위한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예외 규정(8조 2항)을 둠으로써 숨통이 다소 트이긴 했다.
앞서 김영삼 정부는 1995년 전두환·노태우 두 전임 대통령을 구속하면서 “우리나라 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정치적 대사건인 만큼 이제 진상을 밝히고 이 사건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을 청산해야 할 시대적 당위성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수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과 군검찰의 수사를 통해
▲무기고 탈취 ▲교도소 습격 ▲계엄군 습격 등은 사건 정황이 비교적 소상히 드러난 반면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시민군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운용과 지휘·명령 계통, 주요 인물 등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내용이 없다는 게 화근이다. 5·18 관련 논란이 계속되자 2018년 ‘5·18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으나 제3조 6항에 명시된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개입 여부 및 북한군 침투 조작 사건’에 대한 조사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5·18 43 주년에 즈음해 새삼 떠오르는 생각은 설사 사실과 다소 어긋난 주장이라도 ‘허위 사실 유포’로 몰아 엄벌로 다스리는 것은 시민의 인권과 자유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과잉 입법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북한군 개입설을 제기한 언론과 연구자들을 5·18 단체와 관련자들이 명예 훼손 등으로 잇따라 고소하면서
역사 문제를 사법심판대에 맡긴 꼴이 됐다. 이에 따라 5·18이 새로운 사료나 증거에 의한 수정·보완이나 의문의 제기, 또는 토론의 길조차 막힌 불가침의 성역이 되고 5·18 관련자는 정당한 평가나 비판마저 금기시되는 ‘새로운 특권층’으로 떠받들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로 명예 회복과 보상 등에 더해 취업과 자격시험 가산점 등 다양한 특혜를 누리는 5·18 유공자들의 명단과 그들의 공적 사항이 공개되지 않으면서 논란이 계속 불거질 소지가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분명히 짚어 둘 것은 5·18 관련 논란을 사실에 근거해 차분히 다듬어 나가는 역사의 장으로 넘기지 않고 사법적 판단이나 이해 다툼, 정략의 대상으로 삼아선 안 된다는 점이다.
입 한번 잘못 뻥긋하고 글 한 줄 잘못 썼다간 5년 징역형을 뒤집어써야 하는 무시무시한 특별법 앞에서 북한 특수군 개입 같은 민감 사안을 언급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나 헌법에 명시된 언론·표현·양심의 자유와 시민의 권리에 입각해 할 말은 하는 게 자유인의 도리이자 의무라고 본다.
5·18은 이제 사건이 아닌 역사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자세가 바람직하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숨겨졌거나 은폐되고 오도된 사실을 새로운 증인. 증언. 증거. 자료와 논리 등에 의해 바로잡는 작업이 지속돼야 한다는 얘기다. 역사적 진실을 추적하고 규명하는 노력을 소홀히 한 채 섣불리 단정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예컨대 1978년 미 7사단 기술병이 경기도 전곡리 한탄강에서 주운 주먹만 한 돌멩이가 고증을 거쳐 30만 년 전 구석기 시대의 타제(打製) 돌도끼로 밝혀지지 않았다면 한반도 고대사의 상한선은 일본학자가 설정한 5만 년 전 신석기 시대 언저리에서 아직도 맴돌고 있을 것이다. 한강 유역으로 추정되는 백제 초기 하남위례성과 경기도 아차산의 고구려 유적지나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장군의 애틋한 사랑도 오랜 발굴 노력이 없었다면 역사가 아닌 한낱 허구나 전설로 남았을 게 틀림없다.
5·18을 논하면서 고대사까지 들먹이는 이유는 인간의 노력이나 우연의 산물로 새로운 증거나 유적이 발견되면 다시 쓸 수밖에 없는 게 역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5·18 역시 법으로 강제한다고 역사적 진실이 묻히거나 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 인내하고 기다리며 꾸준히 고증하고 보완하는 게 역사다.
북한군 개입설 같은 민감 사안을 현 단계에서 함부로 단정해선 안 된다. 5·18에 참가했다고 주장하는 자백이나 관련 증언 등에 대한 엄격한 검증과 북한을 포함한 국내외 기록과 자료에 대한 분석과 대조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글쓴이 백승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