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산
하남 금암산(322m)~이성산(209m)
하남위례성을 굽어보는 한성백제의 산
금암산은 경기도 하남시의 항동과 광암동의 경계를 이룬 산이다. 남한산이 이성산을 향하여 산줄기를 이어간 그 중간에 우뚝한 금암산은 백제의 부활을 꿈꾸며 1500여 년을 기다려 온 한성백제의 산이다.
백제라고 말하면 우리는 먼저 부여의 공주를 생각한다. 그러나 678년 백제의 역사는 한강변에 도읍을 정한 한성백제(BC 18~AD 475)와 공주와 부여로 천도한 후기백제(AD 475~660)로 뚜렷히 구분된다.
서울시 송파구와 강동구, 경기도 하남시는 한성백제의 도읍지로 추정된다. 풍납토성(사적 제11호), 몽촌토성(사적 제 297호), 백제초기적석총(사젝 제243호) 등 뚜렷한 유적이 수두룩하며 금년 4월에 한성백제박물관도 개관할 예정이다. 우리 집에서 100m 거리에 인접한 백제초기적석총(3호분)은 밑변의 길이가 무려 50m, 높이 4.5km에 이르는 거대한 돌무덤이다. 1916년 첫 조사 때는 무려 90여 기의 적석총과 봉토분이 분포하고 있었다고 전해온다. 중국의 길림성 집안현 통구에 자리한 장군총(고구려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정. 밑변 33m, 높이 13m)에 버금가는 큰 무덤이다. 이렇듯 백제의 역사를 갈무리한 유적을 굽어보는 금암산의 산길을 봄내음 맡으며 느긋이 오르내린다.
금암산-이성산 종주산행의 들머리는 서울지하철5호선의 마천역이다. 남한산성 입구를 지나 원적사에 잠시 들른다. 낭낭한 독경소리에 마음을 가다듬고, 범종각에 걸린 종신의 비천상을 카메라에 담고 본격적인 산행에 접어든다. 아직도 잔설이 등산로 주변으로 보이건만 불어오는 바람 속엔 봄기운이 물씬하다. 옛 동서울골프장 철망을 따라 올라 동쪽의 성불사에서 오른 산길과 만나고 왼쪽으로 돌아가는 허리길을 이어 주능선삼거리에 이른다. 쉼터 장의자와 이정표가 자리한 이곳이 남한산성과 금암산이 갈라지는 길목. 거의 모든 산군들이 오른쪽(남쪽)의 남한산성으로 향한다. 해서 반대편 북쪽길은 주말에도 호젓한 산길이다.
이어가는 산길에는 이정표와 지명유래를 설명한 안내판이 수두룩하다. 소나무, 참나무, 물박달나무가 어우러진 310봉, 오래된 삼각점이 자리하는 316봉, 널문이고개, 참샘골 갈림목을 지나니 바위지대가 시작된다. 거대한 꿩바위를 왼쪽으로 돌아가자 흔들바위다.
전망대에서 굽어보는 흔들바위는 손을 대면 서녘자락으로 금방이라도 굴러내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형상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동녘의 조망이 자못 시원하다. 객산에서 남한산 벌봉으로 이어가는 능선과 하남시가지, 그 너머로 검단산과 용마산을 이어가는 산줄기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뒤이어 바위로 이루어진 금암산 정수리에 올라가서 최근에 마련한 안내판을 읽어본다.
'금암산은 해발 322m로 남한산성과 이성산성 중간에 위치하는 산이다. 바위가 많을 뿐 아니라 그 바위 색깔이 비단색을 띄고 있어 금암산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바위들이 많아 산 아래에서 볼 때 바위가 얼기설기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어 '얼거산'이라 하기도 한다.'
안내판 왼쪽에는 천길 낭떠러지를 굽어보는 매바위가 자리한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매바위에 올라선다. 송파구, 강동구의 전 지역 옛 한성백제의 도읍이 완벽히도 한눈에 들어온다. 어디 그뿐이랴. 멀리 관악산, 청계산, 대모산, 구룡산, 우면산이며, 지척지간의 천마산, 일자산이 다가들고. 한강을 이어간 겹겹의 다리, 강건너 남산, 무악산, 안산, 비봉,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이며 망우산, 아차산이 완벽한 산경도를 그린다. 오오 빼어난 금암산의 조망이여! 한성백제의 강역이여!
아쉬움을 달래며 북녘산길을 이어간다. 덜미재 사거리를 지나니 곧 길섶에 자리한 큰바위얼굴을 만난다. 언뜻 보기에 그냥 그런 둥근 돌이었으나 카메라렌즈 속에서는 흡사 사람의 얼굴, 더더욱 짧은 머리부처님의 모습이 보였으니.
다시 산길을 이어 광암동정수장 갈림길을 지나 향여고개에 내려서고, 금암산과 이성산의 경계인 이곳에서 계단길을 이어가 이성산 정수리에 올라선다. 산불초소가 자리한 이성산의 정수리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판이 자리한다.
'이성산은 춘궁동 산36번지 일대에 위치한 산으로서 해발 209m이며 춘궁동과 초이동을 끼고 있다. 남한산성에서 금암산을 따라 이어진 줄기에 속한 이 산에 이성산성이라 불리는 석축산성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의 두 왕자가 이 산에 거주하였다 하여 이성산이라 칭하였다는 설이 있다.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백제 도읍지와 관련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아오고 있는 산이다.'
여기서 북쪽으로 내려가면 드넓은 이성산성이 펼쳐진다. 산성을 이곳 저곳 둘러보고 남문지에 이르니 산성의 지도와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자리한다.
'이성산성은 경기도 하남시 춘궁동 이성산에 있는 높이 209m의 포곡형 석축산성이다(면적 160,361㎡, 48,509평). 이 산성은 한강에 접한 여러 성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중요성과, 성내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유물 등으로 인해 오래 전부터 중요시되어 왔다.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1986년부터 2003년까지 10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장방형, 9각, 8각, 12각 등의 건물지와 2개소의 저수지, 신앙유적 등의 유구가 노출되었고, '무진년정월십이일 붕남한성도사(608년으로 추정)'라 기록된 목간, 자, 목제인물상, 철제농구와 무기, 벼루를 비롯한 토제품, 토기, 기와 등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성산성은 두 차례 이상 대규모의 수축을 거친 것으로 생각된다. 성을 처음 쌓은 세력이 백제 또는 고구려라는 학설도 있으나, 현재 드러난 고고학적인 유물과 성의 구조는 신라에 축성되고 사용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산행을 마친 후에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다. 날머리에서 걸어서 십여 분 거리에 있는 춘궁동 동사지(사적 제352호)에는 3층석탑(보물 제13호)과 5층석탑(보물 제12호)이 석양의 산기슭을 천년불향으로 그득 채웠으니...
*산행길잡이
마천역-(20분)-원적사-(40분)-능선삼거리-(40분)-금암산-(1시간20분)-이성산-(30분)-산성입구 버스정류소
금암산-이성산 종주산행의 들머리는 서울지하철 5호선 마천역이다. 1번 출구의 남쪽으로 큰길을 이어가면 남한산 등산로 입구에 자리한 만남의장소에 이른다. 이곳에서 들머리는 둘로 나뉜다. 남한산 등산로를 따라가서 초입의 왼쪽에 자리한 성불사를 지나는 코스와, 3315번 버스정류장 왼쪽의 '돌또랑' 간판을 따라가면 만나는 '행복한 동산교회' 옆으로 오르는 원적사 코스가 있다. 원적사를 지나면 케슬렉스C.C(옛 동서울골프장)의 경계 철조망을 따라 산길이 이어지고, 뒤이어 성불사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만나게 된다.
해발 약 200m의 첫 이정표(푯말삼거리 0.8km)에서 푯말삼거리 방향으로 따라가면 골프장 위쪽 철망을 이어 이정표(참샘골 1km)가 자리하는 능선삼거리에 올라선다. 장의자가 자리한 이곳이(해발 280m) 금암산 방향과 남한산성 방향으로 갈라지는 길목이다. 북쪽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산길을 따라가면 낡은 삼각점이 자리한 금암산 정수리에 닿는다. 왼쪽의 매바위는 참으로 눈부신 전망이 펼쳐진다.
북녘능선을 이어가면 어미새바위 사거리가 나오는데, 밧줄이 준비된 코스는 가파르다. 왼쪽(서쪽)으로 돌아가면 다시 능선길을 만난다.
덜미재와 큰바위얼굴을 지나면 광암정수장 갈림길을 지나 향여고개에 이른다. 밧줄과 계단이 마련된 향여고개로 내려가 다시 나무계단을 오르면 몇 번의 이정표를 지나 산불감시초소가 자리한 이성산 정수리가 나온다. 여기서 북동쪽 산길을 따라가면 산성의 건물지대와 저수지를 지나 산성안내문이 마련된 남문지에 내려선다. 산성입구 버스정류소는 이곳에서 동쪽 산길을 이어가야 한다.
동궁사지는 서쪽으로 버스 한 정거장 올라간 '고골낚시터 정거장' 옆에 세워진 이정표를 따라간 춘궁저수지 오른쪽 500m 거리에 있다.
*교통
서울시 송파구 마천동에 자리한 5호선 마천역(1번 출구)을 이용하거나 서울시내버스 3315번, 331`7번, 3416번을 타고 마천동 종점에 내리면 된다.
날머리 이성산성 입구에는 잠실역 방면(30-5번)과 둔촌역 방면(1번, 80번)으로 가는 시내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잘 데와 먹을 데
들머리 송파구 마천동과 날머리 하남시 고골낚시터(춘궁저수지) 일대에 식당이 많다.
글쓴이:김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