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잔 브라흐마의 책
아잔 브라흐마의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를 읽고 <성난 물소 놓아주기>를 읽는 중이다. 번역서를 읽는다는 것은 번역한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문장이 달라진다는 것을 생각한다. 똑 같은 문장이라도 번역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한국인이 모태어인 한국어를 구사하는데도 서로 다른 낱말을 사용할 수 있는데 하물며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데 있어 번역자의 표현방법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문장의 내용은 오십보 백보가 아닐까.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는 읽기가 재미 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다. 책을 읽다 낄낄 거리며 웃기도 하고, 숙연해져서 명상의 길을 생각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참 재미있게 번역한 108개의 명상에 얽힌 이야기다. 아잔 브라흐마란 명상가는 이야기 꾼이다. 알기 쉽고 깨치기 쉽게 풀어 하는 강연을 엮은 책이라 마지막 장을 아쉽게 닫았다. 류시화 번역이다.
두번 째로 잡은 <성난 코끼리 놓아주기>는 선뜻 빨려들지 않았다. 글자도 자잘한데다 문장도 딱딱했다. 명상하는 것에 대한 기초적인 이야기에서 깊어 들어가는 것을 조목조목 일러 준 글인데 처음에는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김훈 번역이다. 다행히 문장 속에 빠질수록 몰입할 수 있어 좋았다. 어쩌면 설렁설렁 읽히는 문장보다 꼼꼼하게 읽히는 문장이 가슴에 더 남는 것 아닐까. 정신을 집중해서 빠져들자 비로소 책 내용이 재미 있었다. 물론 예시를 든 이야기 등이 읽는 이를 감동시키는 것도 없고, 웃게 만들지도 않지만 빠져들어 읽고 진수를 꺼집어 낼 수 있어 좋다.
사람도 각양각색이다. 말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똑 같은 이야기라도 심각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데도 번역가의 성격이 반영된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게다. 어쨌거나 똑 같은 작가의 강연을 녹취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지만 읽는 속도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명상을 즐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다보니 나도 모르게 몸에 붙은 습이다. 아직 깊이 들어가본 적도 없는 초보단계지만 그냥 고요히 앉아 있는 시간이 좋다. 생각이 나면 생각을 알아채고 따라가기도 하고 놓아버리기도 하는데 열락이나 환희니, 아름다움이니 그런 것은 못 느낀다. 그냥 조용히 앉아 아무 생각없이 편안한 것을 즐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일상 속의 어떤 일들이 있을 때 그것을 비우는 것도 조용히 앉아 바라보는 일이다.
명상에 관한 책을 읽는다고 명상에 대해 깨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부류의 책이기 때문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지 명상의 기초를 지식으로 알 수는 없다. 마음이 가는 곳에 길이 있다. 나는 그냥 그 길을 따라가 볼 뿐이다. 나를 편안하게 하는 것은 삶에서 오는 자질구레한 통증이나 힘든 과정을 느슨하게 풀어주고 되새김질 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인지 모른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눈을 감아보라. 그리고 호흡에 집중해 보라. 몸의 통증을 느껴보라. 아픈 곳을 알아채고 놓아버리기를 해 보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통증이 사라지고 삼매에 든다는데 나는 삼매는 모르겠고 그냥 시간을 잊고 있다가 현실로 돌아와 눈을 뜨면 세상이 참 환하고 밝다는 것은 수시로 느낀다. 눈이 밝아져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도 잡생각 다 놓아버리고 새소리 매미소리에 함께 즐거워하며 하루를 보내리라. 시부모님 병원에 모시고 간 남편이 돌아올 때까지 조용히 나를 관조하는 시간을 즐기리라. 명상, 마음 치유 효과가 있다고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