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어원 산책(1)
-주로 한자어계 귀화어를 중심으로
조세용(건국대 명예교수)
현재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삼라만상이 예외없이 변화되고 진화된 산물이듯 현재 사용되고 있는 우리말을 포함한 약 3,000~4,500종(학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음)의 세계 모든 개별언어들도 R. W. 랑가커가 그의 『언어의 구조(1967)』에서 ‘모든 언어는 변화의 산물’임을 역설한 바 있는 것처럼 변화되고 진화된 결과의 산물인 것이다.
어느 한 개별언어의 낱말의 어원을 탐색해서 그 뿌리를 밝히는 학문 분야는 어휘론 가운데 어원학, 또는 어원론(etymology)이라 일컫으며, 이는 한 개별언어의 통시적 연구(=역사적 연구)를 다루는 학문임은 두루 아는 바다.
이러한 어느 한 특정의 개별언어의 어원 연구 방법에는 1786년 W. 존스 경에 의해 범어(sanskit), 그리스어, 라틴어 등의 어근과 문법형태의 유사점을 들어 이들 언어가 같은 계통의 언어라는 사실을 발표한 이래 생성된 비교언어학(comparaitive language)적 연구 방법이 오늘날까지 그 주류를 이루고 있는 바, 이 연구에서는 어느 한 특정 개별언어의 공시태의 어원을 밝히기 위해 계통이 같은 둘, 또는 그 이상의 개별언어들과 비교하여 그 공통조어(proto-language, parent language)를 역시적(retrospective)으로 재구(reconstruction)하는 방법을 취한다.
우리말의 이러한 비교언어학적 연구의 최초는 우리말의 ‘돌[石], 말[言], 물[水], 일[事], 눈[目]’ 등의 낱말을 알타이 제어(터어키어, 몽고어, 퉁그스제어)들과 비교하면서 우리말이 알타이어족에 속한다는 사실을 밝힌 1927년 러시아의 E. D. 뽈리바노프이다. 그후 이 같은 사실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체계화시킨 사람은 핀란드의 언어학자 G. J. 람스데트로 그의 저서 『한국어 어원 연구(Studies in Korean Etymology, 1949, 1953)』에서 그는 우리말과 터어키어, 몽고어, 퉁구스제어들과의 대응형을 나열하면서 이들 언어는 서로 친연관계가 있는 알타이어 동계어로 보면서(이에 대해서 필자는 1993년 『건대 논문집』 제12호에 <미국에 있어서의 알타이어 연구 실태에 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우리말에 대한 계통론적 연구 가운데 ‘반알타이어족설’과 ‘비알타이어족설’이 있음을 지적한 바가 있다), 우리말의 어원을 사전식으로 나열해 밝히고 있다. 이 책에서의 결정적인 흠은 우리나라의 고유어와 계통이 전혀 다른 중국어계의 한자어를 구분하지 못하고 동계어로 함께 다룬 큰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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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범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러한 오류를 범했다 할지라도 우리말의 뿌리를 비교언어학적 입장에서 본격적, 체계적으로 연구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후 이러한 비교언어학적 연구를 통해 우리말 어원 연구를 한 대표적인
우리나라 학자로 이기문, 최학근, 이남덕, 강길운, 김방한, 서정범 , 박은용, 성백인 등을 들 수 있다. 일찍이 이남덕은 그의 『한국어 어원연구 1(1985)』에서 우리말 어원연구의 단계를 다음과 같이 3단계로 나눈 바 있다.
1) 제1단계(개화기 이전) ; 계통론적 지식이 전혀 없던 때.
2) 제2단계(개화기 이후-해방전) ; 비교언어학적 방법을 적게 의지하고 문헌어에 상고를 위주로 한 때.
3) 제3단계(해방 이후) ; 비교언어학적 방법에 의거한 때.
이렇듯 한 개별언언의 어원을 연구하는 방법에는 크게 둘로 나누어 비비교언어학적인 연구 방법과 비교언어학적 연구 방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의 비비교언어학적 연구 결과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삼국사기』, 『삼국유사』 협주(夾註)에 출현하는 문헌상의 의미 해석과 신라 말엽 김대문이 ‘차차웅(次次雄)’은 신라어로 ‘무당(巫堂), ’이사금(尼師今)‘은 신라어로 ’닛금[齒理]‘. ’마립간(麻立干)‘은 신라어로 ‘말[橛=말뚝]’의 뜻이라고 밝힌 바 있다.
2) 『용비어천가』, 『동국여지승람』의 문헌에서 함경도 지방의 땅이름 가운데 몇몇이 여진어임을 밝힌 바 있다.
3) 17~8세기 실학시대에 들어와서 이수광의 『지봉유설』, 황윤석의 『화음방언자의해』, 이의봉의 『고금석림』, 정약용의 『아언각비』 , 박경가의 『동언고략』 등에서 우리말의 일부 어원을 중국어나 한자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 바 있다.
4) 1920년대~30년대에는 권덕규, 방종현, 최남선, 손진태, 이병도 등에 의해 종교사적, 문화사적으로 우리말 어원을 연구한 바 있다.
5) 1940년대에는 양주동에 의해 향가를 통한 우리말 어원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된 바 있다.
6) 이희승, 지헌영, 이돈주, 최범훈, 도수희, 이병선 등은 땅이름을 통해 우리말 어원을 연구한 바 있다.
7) 남풍현, 최범훈, 조세용 등은 차용어인 한자어에서 개주(改鑄, adaptation)(어느 특정의 개별언어에서 차용한 낱말이 ‘외국어>외래어>귀화어’의 과정을 거쳐 차용한 개별언어에로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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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토착화될 때 발생하는 음운변화를 통한 형태 변화를 말함. 일부 언어학자는 형태의 변형(modification)이라고도 함)된 귀화어(naturalized word)를 연구한 바 있다.
그러나, 남풍현, 최범훈은 차용어인 한자어가 귀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주 현상만 밝혔을 뿐이며, 차용 당시의 원형이 개주되어 오늘에 이르기까
지의 통시태를 밝히면서 차용어의 어원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필자가 최초가 아닌가 한다.
말은 있으되 독자적인 문자가 없었던 우리나라에 기원전 3세기경(학자에 따라 기원전 1세기로 보는 견해도 있음) 중국으로부터 한자가 들어와서 조선조 초기 세종대왕께서 세계 여러 언어학자들로부터 지구상에서 가장 빼어난 문자라고 인정받고 있는 훈민정음을 창제(1443), 반포(1446)하시기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문자생활을 완전 지배하였었고, 이러한 양상은 훈민정음 반포 이후에도 사대부 계층에서의 모화사상 때문에 지속적으로 계속되어 무수한 한자어가 새로이 생성, 증가하여 현재 한글학회에서 1992년에 완간한 『우리말 큰사전』에 수록된 약 45만 낱말 가운데 약 65%가 한자어인 것이다.
그런 가운데도 일부 낱말들은 한자어라는 옷을 벗고 고유어에의 어휘체계 속으로 뛰어들어와 한자어가 지니고 있는 중국옷을 완전히 벗어 버리고 한복의 고유어에로 동화, 토착화되어 환골탈퇴된 귀화어가 되어 우리 고유어와 동등한 자격으로 쓰이고 있는 낱말이 상당수 있다. 이러한 귀화어야말로 쌍수를 들어 안아 주고 보듬어 주어야 할 귀여운 애국어가 아닌가?
이 글은 필자가 이미 20여년 전 『한자어계 귀화어 연구( 고려대 민연, 1991)』라는 제목의 저술을 통해 현재 우리 국어 어휘체계에서 고유어처럼 쓰이고 있는 200여 한자어에서 개주된 귀화어의 음운변화 및 형태변화 과정을 통시적으로 연구한 것 가운데 일부를 발췌해서 대폭적으로 다시 손질을 가한 것이며, 동시에 이 연구는 비교언어학적 연구 방법이 아닌 주로 15세기 이후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문헌어의 상고를 통해 통시적으로 연구한 것임을 밝혀 두는 바이다.
o 가게
현용 국어사전인 『우리말 큰사전(한글학회 지음, 1992)』에 ‘가게’는‘1) 자그마한 규모로 물건을 차려 놓고 파는 집. 2) 거리에 임시로 물건을 벌여 놓고 물건을 파는 집. 3) 임시로 허름하게 지은 집’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낱말의 전차형인 ‘가개’가 16세기 문헌인 『사성통해(1517)』에는 ‘가개 亦曰 平房’으로 출현하는 사실로 보아, 그 당시에는 상설시장의 ‘시전(市廛)’보다는 그 규모가 조금 작고. 물건을 집에서 파는 ‘재가’보다는 그 규모가 약간 큰 ‘방(房)’의 뜻으로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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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도 했고, 17세기 문헌인『노걸대언해(1670)』에는 ‘나그내들 여 그저 이 가개 아래 안자셔 밥 먹게 쟈’로 기록된 사실로 보아, 그 당시에는‘4) 서늘한 누각[凉棚]이나 임시 차양막' 의 뜻으로도 쓰인 듯하다.
또한 ‘가게’의 어원인 한자어‘가가(假家)’는 중국 문헌에는 전혀 보이지 않고, 조선 초기의 법전인 『경국대전』 이후의 교령과 조례를 모아 편찬한 책인 『속대전(1746)』에 최초로 출현하는데 이 같은 사실은 이러한 사실은 이 한자어가 우리나라에서 조자(造字)한 한자어임을 증명하고 있다 하겠다.
이‘가가’의 변화 형태인 ‘가개>가게’가 언제부터 위의 여러 뜻에서 오늘날의 1)의 뜻으로 의미가 변화해서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이 ‘가가(假家)’의 생성 당시의 한자음은 조선 초기 전승한자음서의 하나인 『훈몽자회』에 ‘假 빌 가, 家 집 가’로 출현하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가가’가 오늘날의 한자음과 같은데 어떻게 해‘가개>가게’로 변형되어 귀화어가 되었을까?
이 ‘가가’가 최초로 그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문헌은 위의 『사성통해』로 ‘가가>가개’로, 제2음절의‘가(家)’만이 자생적 응운변화의 형태를 보이다가 오늘날 청각상의 발음 효과가 큰 모음이화 현상을 일으키면서 ‘가게’로 변형되었다. 따라서 ‘가가(假家)’는 한자어 그 자체요, ‘가개>가게’는 고유어와 동등한 자격의 귀화어인 것이다.
이 ‘가게’는 오늘날 ‘마트’니,‘슈퍼마켓’이니.‘편의점’이니 하는 외래어와 한자어에 밀려나고 말았지만, 한때는 ’작다‘는 뜻의 ’구멍[穴]‘과의 합성어인 ’구멍가게‘가 되어 서민들의 사랑을 받아 왔던 낱말이기도 하다.
o 가난
‘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함(『우리말 큰사전(한글학회 지음, 1992)』‘의 뜻인 이 낱말은 ’간난(艱難)‘에서 동음생략 현상으로 ’간(艱)‘의 ’ㄴ'음이 탈략되어 귀화어가 된 낱말로 원래 이 한자어는 중국 여러 문헌에 ‘1) 몹시 힘들고 어려움. 2) 위험함. 3) 창업의 어려움. 4) 수고하고 고생함. 5) 신중함. 6) 문장이 난삽하고 평이하지 않음’ 등 여러 가지 뜻으로 쓰여 왔고(『한한대사전,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2007)』 참조),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다음과 같이 15세기 중기에는 ‘창업의 어려움’, ‘살림살이가 어려움’ 등 두 가지 의미로 쓰여 오다가 15세기 말기에는 ‘가난’으로 동음생략된 형태를 보이면서부터 오늘날의 뜻과 같은 ‘살림살이가 어려움’의 뜻으로 의미가 축소되어 쓰여 오고 있다.
따라서 ‘간난(艱難)’은 한자어요, ‘가난’은 귀화어인 것이다.
王業艱難이 이러시니<용비어천가 , 제5장>
生計곙艱간難난야 외시다<월인석보, 권 2, 36b>
가난 사 여르믈 머기러니(餧貧人實)<초간본 두시언해, 권 15, 22>(게속)
(『한글 새 소식』454호(2010년 6월)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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