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24 < 보성 제암산 자연휴양림 – 득량역 추억의 거리>
일상이 바쁘고 시간은 정신없이 지나가는데 계절의 변화를 의식하고 그 변화의 찰나에 온전히 몸을 맡겨 풍경의 일부가 되려면 틈이 날 때마다 계절에 머무르기를 선택해야 한다. 사계절을 맞이하고 보내며 살아가지만 봄이 오는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는 특별함이 있다. 언 땅을 비집고 돋아나는 새싹은 물론이거니와 삐죽삐죽 내밀어 이 꽃이 지는가 하면 저 꽃이 머물고 있고 머무는가 하면 만개하여 어느새 풀이 피기 시작하니 말이다. 봄은 순식간이다. 그래서 더 놀란다. 봄의 매 순간마다 함께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잠시 해찰부리다가 잠시 눈 비비다가 그 짧은 사이에도 봄은 깊어진다. 봄을 살아가는 것은 매우 기쁘다. 어쩌면 계절에 머물고 계절을 느끼며 산다는 것이 꽃과 나무와 다를 바 없으며 희망으로 돋아 어느 한 순간 열정으로 피어오르는 풀과 나무처럼 그것이 전부일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단순한 행복인가. 얼마나 강렬한가. 사실 봄에는 봄의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것과 계절에 충실한 삶을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해마다 봄에 머무르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 빨리 시간이 흘러 다음 계절이 다가오기를 기다려본 적도 없다. 다만 항상 지금의 계절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지금은 천하가 푸르러 만개한 풀의 계절이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이번 주에는 보성 제암산 자연휴양림으로 떠난다. 제암산의 사계는 봄에는 철쭉으로 여름에는 풍부한 수량으로 가을에는 억새가 그리고 겨울에는 설화가 아름다운 산이다. 하지만 산의 명칭이 말하듯 모든 산을 압도하는 황제의 산이라는 홍보메시지를 보면서 가까운 거리지만 처음 방문해보았다. 편백숲으로 가는 데크 길 시작점까지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어서 도로 끝 지점까지 편안하게 드나들 수 있었으며 약 5km 순환로가 모두 데크로 되어있어서 누구나 쉽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계절이 4월인지라 숲은 숲대로 짱짱한 포스로 제암산을 장악하고 있어 절정을 이루고 있는 초록초록 숲의 매력에 흠씬 젖어볼 수 있었다. 이렇게 우거진 초록빛이 가을 쯤 계절의 물이 들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올 가을에는 제암산 자연휴양림에서 가을을 배웅하리라 다짐했다. 어느 때 찾아와도 아름답고 편안하게 트레킹이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이곳을 가깝다는 생각으로 오후에 출발하다보니 일정이 넉넉하지는 않았다. 다녀와서 다시 검색해보고 알았지만 담안저수지를 중심으로 순환 산책로가 있어서 그 길 따라 트레킹도 참 좋았을 뻔 했다. 하루 쯤 온전히 시간을 내어 어느 계절에나 다시 오리라는 생각으로 휴양림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자연휴양림만 둘러보고 귀가하기에는 아쉬워 득량역에 잠깐 들러 가기로 하였다. 이곳은 예전에 보성투어 중에 강골마을과 묶어서 다녀간 적은 있지만 시간이 촉박하여 슬렁슬렁 둘러 본 기억 때문에 다시 찾은 것이다. 70~80년대 읍내의 모습을 재현한 득량역 추억의 거리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한 열차역 문화디자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1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는데 사실 철도역을 관광지로 조성하여 시대를 넘나드는 감성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지역마다 많이 있다. 득량역 역시 그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고 싶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명소가 되었다. 득량역 앞의 추억거리와 함께 역사가 문화역으로 꾸며지면서 득량역은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지역 문화공간의 중심이 되었다, 옛 문방구, 다방과 사진관, 이발관이 조성된 추억거리 사이로 목조 슬레이트 단층 역사로 전형적인 시골 역사였던 옛 득량의 모습은 함께 살아온 정서를 느낄 수 있기에 충분하다. 득량 추억의 거리지역에 주민들이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가끔 지나치는 관광객이 아니면 고요했다. 그러나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남도바닷길 득량 추억의 거리라는 공간에 전파사와 백조의상실 등 간판을 보니 낯설지 않은 친숙한 이름들이다. 함께 동행한 아들아이는 엄마의 시절 속으로 들어와 아득하고 먼 옛날의 정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세상은 이토록 좋아지고 편리해졌으니 우리의 아이들은 궁핍을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다. 길 위세서 나는 늘 관광객이 아니라 여행자였다. 오늘도 이 모든 여행의 경험이 삶의 활력이 되고 나를 하나씩 하나씩 꺼내보면서 이토록 살기 좋은 세상에 외롭지 않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과 추억이 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즐기고 살아가는 여행은 곧 삶의 여정 같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는 척도가 되어주기도 하며 세상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 주었으며 길 위를 걸었던 걸음걸음이 나를 만들어가고 내 삶을 채워주고 있었다. 살아가는 매 순간은 곧 내가 나로 완성되어가는 일이었다. 특히 오늘과 같은 추억의 정서에 젖어보면 지나온 삶의 길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시점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의식하지 않고 걸었던 길이 나를 만들었고 그러느라 잃어버리거나 도달하지 못한 내가 있었음을 터득한다. 이렇게 죽는 날까지 조금씩 채워가는 삶의 매력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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