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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두려운 건 시골땅값 오르는 것" | |||||||||||||
[서평] 『땅 살림 시골 살이』…노동운동가 출신 전희식의 시골 얘기 | |||||||||||||
나는 오래 전부터 자연에서의 삶을 꿈꾸었다. 이런저런 핑계와 한계로 농촌에 신세지며 서울에서 살고 있다. 손수 가꾸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서 서울 사람들은 이 땅의 야채와 곡식을 가장 많이 먹고 있다. 이를 ‘기생 살이’라 불러도 되리라.
서울살이는 기생살이? 내가 진보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에서 주로 읽은 글 중 하나는 노동운동가 출신 전희식이 연재하던 <땅끝에서 온 편지>였다. 이 책은 그가 《삶이 보이는 창》에 연재한 글과 다른 지면에 있는 글을 묶은 것이다. 한두 편 읽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한달음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되었다. 참 재미있게 읽었다. 최근 베스트셀러 1, 2위를 달리는 책의 제목인 ‘행복학교’는 이 책에 더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행복한 삶의 태도를 여기서 배울 수 있었다. 좋은 책은 독자들에게 행복한 삶의 길을 함께 고민해준다. 글 쓰는 이들의 꿈은 세상과 우주에 쓸모 있는 책을 펴내는 것인데, 이 책이 그러하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난 해 어느 시골 마을을 취재하며 겪은 일이 생각났다. 그 마을에서 만난 할머니는 마을회관에 가기 싫다고 말하셨다. 이유인즉, 주민들이 모여서 남 흉보는 데 시간을 다 보내기 때문이란다. 남 흉보는 마을 사람들을 흉보신 할머니는 고향을 떠나야 하는 형편에서 가장 아쉬운 게 ‘정든(흉 잘 보는) 이웃들을 떠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전희식이 묘사한 시골살이 역시 마을 주민들의 흉과 오해, 수군거림으로 가득하다. 나는 그때 할머니의 흉과 정 사이에서 좀 헷갈렸다. 그 헷갈림의 정체를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이 책은 시골에서 농사철이 시작되면 지난 겨울 내내 묵은 감정들이 녹는다고 알려주었다. 마실 다니며 주고받은 무성한 소문과 오해들이 농사와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담아두고서는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논물도 나누어 대야 하고 종자도 주고받아야 하는데 쓸데없이 냉기만 풍기다가는 결국은 서로가 손해를 본다.”(28쪽) 한 울타리에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인가 보다. 저자는 심지어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비난을 “동네의 활기를 유지하는 기제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를 “담담하게 바라보고 대수롭잖게 여기는 것도 시골 사람들만이 지니는 여유”라고 한다. 시민단체며 이런저런 그룹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때가 있다. 일을 하다 보면 서로 미움도 생기고 앙금이 남기 마련이다. 때론 갈등을 풀지 못하고 단체를 떠나는 이를 종종 본다. 그만큼 도시인들이 여유가 없기 때문일까? 이 책은 생명 있는 생물들의 이야기이고,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미화되지 않은 ‘진짜’ 시골 살이의 속내, 서울 사람 닮아가는 시골 사람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아들 딸인, 그림 잘 그리는 새날이와 농업고등학교에 입학하기로 한 새들이가 지혜롭게 성장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새날이는 이 책에 개성 있는 그림을 그렸다. 아빠가 글을 쓰고 딸이 삽화를 그린 것이다.
어머니와 이웃을 모시고, 지렁이와 우렁이를 모시고 전희식이 모시고 사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가장 재미있는 대목 중 하나다. 그녀의 말솜씨와 해학은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어머니는 이 책의 여러 곳에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전희식의 입심 좋은 글은 어머니에게서 온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돈벌이에 혈안이 된 시골 마을의 흉흉한 모습도 회피하지 않는다. 마을이 흉흉해질 때는, 4대강 개발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거짓말이 반드시 개입된다. 조용한 시골 공동체를 파괴하는 지름길은 ‘개발’이다. 개발은 돈이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이 책에서 진실로 두려워하는 것, 그것은 마을의 ‘땅값이 오르는 일’이다. 그는 돈벌이 농사로 땅과 물이 망가지는 것을 우려하는 유기농민이다. 그래서 일이 고된 유기농을 실천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어느 카페에서 쓰고 있다. 앞 테이블의 대학생 네 명이 나눈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환경을 위해 이면지를 사용할 것인가, 재활용을 해야 할 것인가 등에 대한 토론이 열기를 띤다. 대의(?)에 공감한 청년들이 내린 결론은 “나는 절대 못할 것 같애”이다. 귀찮다는 것이다. 두물머리 농민들처럼 유기농업을 하는 이들을 생각하면 도시인들은 참 염치없다. 도시의 청년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청년이 있다. 이 책을 통해 발견한 ‘미래인’ 심원보다. 그는 자신의 오줌을 페트병에 담아 사람들에게 선물한다. 그가 오줌을 모으는 이유는 “많은 양의 물을 소비하면서까지 소중한 자원이 쓰레기로 변하는 것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거처가 따로 없는 그는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자신의 머리카락이며 오줌 등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귀중한 것들을 선물한다. 인터넷 쇼핑몰과 주유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말엔 환경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직장이 인간의 창의성과 자유로움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도 직장 같은 거 안 가질 거예요.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직장 다닐 틈이 어딨어요?” 인간의 창의성과 자유로움을 살리는 직장을 만드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긴 하지만, 내가 경험한 이 땅의 직장은 몸부터 영혼까지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곳이었다. 심원보는 자신의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지혜로운 청년이다. 전희식은 이러한 미래 청년들을 만들기 위해 ‘생명살이 농부학교’를 운영한다. 도시인인 나는 주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언젠가 그에게서 오줌 선물을 받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생물, 농부와 지렁이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농민들 중 한 분을 소개하고 싶다. 그는 마을의 최고령 할아버지다. ‘농부는 흙과 함께 살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어울리는 분이다. 아흔네 살의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가 남긴 말은 내 가슴에 아릿하게 남아 있다. “근데 말여, 히시기. 콩 순 문질러줬어?” 병환 중에도 그의 머릿속은 흙을 떠나지 못했다. 때를 놓치면 농사를 그르치기 때문에 죽음을 앞두고도 이러한 부탁을 간곡히 하는 것이다. 이 말을 남긴 할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흙으로 돌아가셨다. 이 책의 또 다른 마을 주민들, 농민들로 등장하는 것은 지렁이며 닭 개 우렁이들이다. 우렁이는 농부 전희식의 모습과 닮았다. 지렁이 한 마리는 1년에 평균 10킬로그램의 거름을 만든다고 한다. 노년의 과학자 다윈은 주위 사람들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렁이에 관한 연구에 집중했다. 지렁이는 쉴 새 없이 쟁기질하며 흙을 기름지게 한다. 그 기름진 흙에서 먹을거리가 나온다. 이러한 지렁이를 다윈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생물”이라고 표현했다. 지렁이를 존중하는 전희식의 모습은 사뭇 종교적인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농부들은 언제 행복할까? 대답은 가까운 곳에 있다. 서울 사람들은 통장에 찍힌 돈을 볼 때 제일 기뻐한다. 농부들은 말한다. 농사꾼들은 식사하면서 밥 한 그릇 더 달라는 말을 제일 기뻐한다고. 나는 저자 전희식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요청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시골 살이 글 한 그릇 더 주세요!” * * * 저자 - 전희식 1958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곡절 많은 학창 시절을 겪었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는 뜨겁게 노동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생태적 삶에 대한 자각을 하고 1994년 전북 완주로 귀농했고, 치매 앓는 어머니를 모시기로 작정하고 2006년에 전북 장수로 거처를 옮겨 살고 있다. KBS 인간극장에서 <그해 겨울, 어머니와 나는>이라는 제목으로 어머니를 모시며 아옹다옹 살아가는 모습이 방영되기도 했다. 현재 ‘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로 일하면서 대안공동체인 ‘밝은마을’의 이사와 생명ㆍ환경ㆍ개벽 운동 단체인 ‘천도교한울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보따리학교’와 ‘100일학교’ 일에 열심이며 ‘생명살이 농부학교’를 운영한다. 저서로 귀농 생활을 담은 『아궁이 불에 감자를 구워먹다』와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의 이야기를 담은 『똥꽃』 『엄마하고 나하고』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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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음에 닿는글 잘보고 갑니다
지기님!좋은일 가득하세요 ㅎ
고맙습니다. 한 권 사서 읽어보려고 합니다.
마음에 땡기네요 읽어보겠습니다.^^
모범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