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불고기도 탕도 백숙도 그맛에 한 번 빠지면 다시 오리..
오늘은 오리에 대한 횡설수설이다. 이런저런 식당에서 이런저런 오리 고기를 먹은 것이다. 오리불고기도 먹었고, 오리탕도 먹었고, 백숙도 먹었다. 그런데 오리 고기 얘기를 그냥 하자니 싱거워서 이를테면 양념을 톡톡 쳐보는 것이다. 오리 궁둥이처럼 이야기는 뒤뚱뒤뚱거린다.
몸에 좋다 유황오리에 갖은 약재 곡물 덤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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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농원'의 오리보양탕. |
· 에피소드 1
1970년대 초의 초등학교 저학년 때 오리고기를 처음 먹은 적이 있다. 그때의 아이들은 제사·차례상에 오르는 닭고기 때문에 제사나 차례를 기다렸고 조상을 기렸다. 그런 닭고기도 일 년에 한두 번 겨우 먹던 시절이었으니 오리고기를 먹는 일은 참으로 난데없는 횡재 중의 횡재였다. 시골에 계신 할머니께서 중풍이 들어 부산 아들 집에 와 있었는데 그 병에 오리 피가 아주 좋다는 얘기였다. 당시 아버지가 우물가에서 직접 오리를 잡아 피를 죽 빼던 모습과 자리 보전하고 있던 할머니가 오리의 불그죽죽한 생 피를 마시던 끔찍한 장면이 어슴푸레한 기억에 가물거린다. 그랬거나 말거나 우리 꼬맹이들은 허옇게 김이 모락모락 오르던 오리찜을 가운데 놓고 눈이 휘둥그레졌고 온 정신을 빼앗겼다. 입안 가득 안겨들던 오리의 그 맛나던 살점, 그때 살(肉)의 맛을 알아버린 걸까, 아 혀의 새로운 장(場)이 열리던 그날의 그 맛….
▶경남 김해시 '가야농원'(055-325-1470·어방동 인제대학교 아래쪽)=이 집의 강충효(53) 사장은 약용식물관리사이다. '오리보양탕'(3만5천원)의 재료를 더하고 빼면서 맛을 내는 실험을 10여 차례 이상 했다고 한다.
상에 오른 자그마한 무쇠 가마솥에 유황오리 한 마리가 갖은 약재 곡물과 함께 담겨 나왔다. 인삼 잣 콩 쌀보리 대추 구기자 팥 흑미 밤 마늘 호박씨 해바라기씨…, 들어가 있는 것도 많다. 30여가지. 그걸 먹으면서 식별하는 입이 참 분주하다. 그 중에 녹두도 보였다. "황기 인삼은 열을 북돋우는 재료다. 그 열을 가라앉히는 찬 것이 '녹두'다." 가마솥에서 부글부글 끓는 보양탕의 국물은 걸쭉하고 두둑한 맛이다. 이 보양탕을 옛 할머니에게 한 그릇 올릴 수 있다면. 강 사장은 경주호텔학교를 나와 호텔 계통과 벡스코 웨딩예식부에서 24년여 몸담았다고 한다. 오리불고기·오리생구이·오리훈제 각 1만5천원, 오리탕 3만원 등. 오전 10시~오후 11시 영업.
싸다 오리불고기 한마리에 1만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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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집'의 오리불고기. |
· 에피소드 2
1970년대 초의 한 날. 산복도로 밑의 친척 집에 다니러 갔다가 또래들과 함께 나무와 흙길이 많은 산속 동네로 놀러갔다. 한쪽에서 '까진 형들'이 몸을 흔들어대고 있다. 라디오에서는 '킵 온 러닝'이란 팝송이 흐르고 있다. 비비꼬는 몸 동작, 그들의 엉덩이가 오리 엉덩이처럼 정신없이 뒤뚱거렸다. 금기의 몸짓을 본 듯 혼돈스러웠고 충격적이었다. 안창마을이었다. 육고기의 대창 막창 같은 어감이 없지 않은 안창이라는 그 너덜너덜한 말, 그러나 속에 폭 감싸일 듯한 그 포근함 어감. 부산에서 안창마을은 하나의 정서다. 하여 그곳에 먹을 게 없다는 것은 안 되는 일. 이태 전 공공미술 프로젝트 때 이 마을의 상징 동물이 오리였다. 이곳에 열네댓 곳을 헤아리는 오리집이 있다. 그래 맞다. 그때 그 '까진 형들이 오리처럼 엉덩이를 마구 흔들 때부터 알아봤다.
▶안창마을 오리고기집들(부산 동구 범일동)=이곳의 오리불고기 한 마리는 1만5천원으로 부산에서 가장 싸다. 이 정도면 반값이다. 한 집에 들어갔는데 고추 마늘 무절임 오이초절임 생오이 멸치무침과 상추로 반찬이 단출하다. 오리불고기의 고기는 냉동이다. "어떻게 이리 쌉니까?" "이 동네는 원래 그리 헐케 합니더." 오리집들의 이름이 정겹다. 양지집 마당집 요산요수 풍진오리 항상좋은날 오누이집 안창집 황금오리 통부자집 왔다집…. 진달래가 흙냄새와 섞여 거름 혹은 방귀냄새 같은 구린내를 풍기는 내년 봄날에도 여전히 1만5천원했으면 좋겠다. 오리백숙은 2만원.
맛있다 풍광과 어우러진 달짝지근한 그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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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아래쪽 한 오리집의 오리불고기. |
· 에피소드 3
기장 저쪽에 한때 '아트인오리'라는 건실한 대안미술집단이 있었다(지금 그들은 '오픈스페이스 배밭'으로 옮기고 명패를 바꿨다). 오리마을이란 소리를 듣고 오리를 키우는 마을인가 싶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오리(五里)는 다섯 마을이란 뜻. 가만 보니 금정산 일대가 그렇다. 오리고기 파는 곳이 댓 군데를 헤아리기에 족하다. 금정산성 마을, 범어사 밑 동네, 옛 만덕터널 이쪽과 저쪽, 화명동 내려가는 계곡…. 이것을 갈라 붙여 이름을 붙이자면 '오리인금정(Ori in Geumjeong)'이 될 성 싶은데.
▶금정산 일대의 '오리인금정(Ori in Geumjeong)'=금정산 오리들은 맛나다. 부산 사람들이 그 맛을 익히 알고 인정하고 있다. 시원한 산 공기와 풍광이 그 맛을 가일층시키는 것이다. 'ㄱ오리집'이 유명하단다. 드디어 네 번째로 예약에 성공했다. 우리는 오리불고기와 오리백숙을 시켰다. 지글지글, 양념들 사이로 붉게 익고 있는 오리불고기. 그리고 마늘을 잔뜩 넣은 오리백숙. "오리백숙과 오리불고기 중 어느 게 낫습니까?" "오리백숙이 훨씬 나은데요." 이구동성이었다. 짓물러진 마늘의 맛이 좋았다. 오리불고기 3만원, 오리백숙 3만5천원 선.
사족=오리불고기의 경우, 첫 젓가락에 "달다"는 말이 나왔다. 반찬들도 모두 달았다. 그런데 이 집에 웬 그리 손님들이 많을까. "단 것은 혀에 우선 가깝다. 우리 사회의 모든 입맛은 구수한 옛 맛을 잃고, 혀에 잘 들러붙는 단 맛에 길들여져가고 있다." 그날 자리에 동석한 식객들의 말이었다. 침소봉대하는 식객들의 말 솜씨가 가히 구만리 장천을 날아올랐다(?).
신선하다 참숯에 생오리고기 구워 맛 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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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농원'의 오리뼈탕. |
· 에피소드 4
'낙동강 오리알'이라는 말이 있다. 홍승면의 '백미백상(百味百想)'이란 책을 보면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 '오리알은 땅위에 있어야 하는데 강물에 빠져있으니 쓸모없는 헛것이란 뜻이다. 또 낙동강에 홍수가 잦아 오리알이 둥둥 떠내려간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1950년 8월 낙동강 전투 때 미군의 폭격과 국군의 사격으로 인민군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한 장교가 "낙동강에 오리알 떨어진다"고 말한 게 유래가 됐다는 소리도 있다. 여하튼 낙동강과 오리는 관계가 없지 않으니, 남한에서 최고로 유장한 물이 있는 곳에 오리도 있었던 것이다.
▶낙동농원(051-336-2222·부산 북구 금곡동)=생오리구이가 특이한 곳으로 줄 서는 집이다. '생(生)'이란 말이 맛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신선한 재료 자체가 맛을 내기 때문이다. 참숯에 생오리고기를 구워 맛을 더한다. 오리뼈탕도 화끈한 부산 사람 입맛에 맞게 시원하다. 오리알이 떠내려갔을 낙동강이 발치에 있다. 녹차생오리석쇠구이 1마리 2만1천800원, 반마리 1만1천원. 오리뼈탕 3천원(2인), 5천원(3~4인).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궁금한 한가지 '송화단'
발효시킨 오리알 다시 삶은 것
'송화단(松花蛋·사진)'은 오리알 요리의 하나로 '피단(皮蛋)'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오리알을 진흙이나 왕겨 따위에 싸서 4개월여 동안 재 속에 묻어 발효시킨 것이다. 중국집이나 뷔페에 나오는 송화단은 이 발효시킨 오리알을 다시 삶은 것이다. 삶지 않은 것은 발효 홍어처럼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찌른다. 그 맛에 사로잡히는 이들도 있단다. 흰자위는 갈색으로 변하며, 노른자위는 여러층의 색깔이 드러난다. 그 중에는 소나무 꽃가루 같은 색깔도 섞여 있는데 그래서 '송화단'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걸 만드는 기술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요즘 송화단은 중국에서 강제 발효시켜 대량으로 만든 것을 수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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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면 | 입력시간: 2009-08-27 [15:49:00]
첫댓글 ㅎㅎ.. 오리만세!!!!
양산에도 오리잘하는 집이 있슴다.뜨뜻한 황토방에 오리고기와 백김치가 나오는데.환상입니다.그리고 ,지글지글한방에서 고스톱한판도 말입니다.근데 그집이 새롭게해서 이사를 가서리...
ㅋㅋ역시 형님은 오리애호가시넹~~ 오리 먹고 남아도는 힘을 어쩔라공~~ㅋ
안창마을 오리불고기 먹고 싶어요~ㅋㅋㅋ 요즘 보쌈집에 훈제오리도 맛있는데~ 악~ 오리먹으러 갑시당ㅎㅎㅎ
오리기름은 불포화지방으로 인체에 축적되지도 않아 건강과 미용에 좋은 식품이죠~ 강추~ ㅎㅎ
맛있겠다...^^::
안창 마을에 한표 던집니다~ 임장도 한번 가면 좋을듯..
함양 에서 먹어본 오리고기 생각나네요... 오리 스페셜이라며 오리로 할수있는 요리종류를 모두 맛볼수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