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남해대교를 방문하며 담아온 사진입니다.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의 인연은 나대용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나대용은 1556년 7월 25일 나주 문평면 오룡리에서 태어났습니다. 1583년(선조 16년)에 28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봉사로 있다가 32세 때인 1587년(선조 20년)에 사직하고 나주 고향으로 돌아와 거북선연구에 몰두하였습니다. 이후 나대용은 3년여의 연구와 실험 끝에 고향동네 방죽 골이라는 곳에서 최첨단. 최신형 거북선의 조립. 건조에 성공하게 됩니다.
나대용은 거북선에 대한 연구결과를 가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 여수에 있는 전라좌수영을 찾아 이순신 장군에게 자신이 연구. 개발한 새로운 거북선의 우수성과 활용성을 고하여 이순신 장군이 이를 채택하였습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은 나대용을 전라좌수영 수군의 전선을 건조하는 감조 군관으로 임명. 거북선과 판옥선 등 조선 수군의 주력전함건조를 맡겼습니다. 이순신 장군과 나대용. 거북선의 운명적 만남이 이렇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나대용장군은 1년여 동안 조선 수군의 주력 전함인 수많은 판옥선과 함께 거북선 3척을 완성하여 1592년 3월 27일 거북선을 진수하고 운항 및 발포실험까지 마쳤습니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대용장군은 거북선을 타고 당포해전에 처음 출전. 돌격작전을 감행하여 왜 수군의 기세를 제압하고 전열을 무너뜨리는 등 임진왜란 내내 이순신 장군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대승을 거두는데 항상 앞장을 섰습니다.
야경이 아름다운 남해대교입니다.
남해대교는 1973년에 완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懸垂橋)입니다.
이 다리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남해는 하나의 섬이었죠.
하지만 이 다리가 완성되면서 경남 하동과 남해를 쉽게 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고선박 판매소입니다.
거북선 앞부분....
광양제철이 크게 보이네요
남해에는 이 남해대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천에서 남해로 넘어가는 삼천포대교, 늑도대교, 창선대교를 놓아
섬을 오가는 것뿐 아니라 바다 경치 또한 아름답습니다.
남해대교 아래가 노량해협인데 이곳에서 왜적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후
이순신 장군은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전사하였습니다.
충렬사 앞 바다에는 이순신 장군과 전란을 함께 했던 거북선을 복원하여
띄워두었는데 일반인들도 거북선에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첫댓글 칸타빌레 성가대원 홧팅! 성가연습에 수고가 많습니다
거북선 구경해보세요. 그리고 성탄때까지 열정적으로 전진!
어~~~ 이날은 나도 갔었는데 우와 이럴수가 !! 그건 그렇고 제가 ㄴ이번에 무지무지 독한 감기가 걸려서 성가연습도못가고 미사 참석도 못했습니다. 지송해요 감기 낳는대로 나갈께요 어우 진짜 감기 조심하세요!!!!!특히 지휘자 반주자는 걸리면 안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