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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원히 함께 " 원문보기 글쓴이: 늘영원
방위성금 모금운동(간첩 잡는 헬기 사세요) | |
1977년 8월 17일 어느 신문기사의 내용입니다.
<박대통령께 보낸 미국의 이민간 어린 4자매의 방위 성금과 편지> 『우리나라를 지키는데 작은 힘으로나마 도움이 될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몇 해 동안 모아오던 저금통이 생각나서 동생들과 저금통을 열어보니 모두 1백21달러50센트였어요』라고 적었다.
(초등학교-10원,중학생-20원,고등학생 이상-30원, 교직원-100원)
교직원 및 학생대표 방위성금 전달(68.4.26)
처음 명칭이 반공성금이었다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방위성금 모금운동이 전국민의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 68년 1월 김신조 일당의 무장간첩 사건, 그리고 아직도 저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강원도 무장공비 사건..등등 북의 잦은 무도한 도발로 자연스레 전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동참하게 된 거죠.
향토예비군 창설식(68.4.1)
무장공비에 희생된 유가족 위문(68.12.13)
향토예비군에 양말 1000켤레 기증(68.12.11)
그 해 68년엔 '간첩 잡는 헬기 사세요' 라며 성금을 기탁할 정도였고
전라남도 학생들의 방위성금 모금으로 구입한 헬기 2대 헌납식(74년 해군본부)
민주공화당 방위성금 바자회(74.6.25)
민주공화당 방위성금 바자회(74.6.25)
75년도엔 방위세가 마련되고 경제개발 등으로 한층 더 가속도가 붙습니다.
경남학생대표 방위성금 전달(73.6.27)
받았다고 소감을 밝힙니다.
언론 기관이 모금한 방위성금 79억 6천 87만 4천 4백 55원을 전달받았다. 이 돈은 국방을 위해 소중히 활용하겠다. 모 TV에서 시골 어느 학교에 몇 반 일동이 방위성금을 기탁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 같이 금액의 다과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 각계 각층이 모두 방위성금을 기탁하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진규 신문협회 회장은 방위성금을 전달하면서「이번에 언론 기관에서 방위 성금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점은 사회 각계 각층이 골고루 성금을 기탁한 점으로 큰 감명을 받았고 일반 서민들이 이렇게 자진해서 자기 힘이 닿는 범위 안에서 방위 성금을 기탁하는 것을 보니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투철하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신문기사) 방위성금 전달 언론인 대표들과 다과(75.11.11)
방위성금 얘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북괴의 서해 5도 도발입니다.
백령도 근처 공해상에서 조업중이던 홍어잡이 어선 1척(선원12명)이 우리 해군엔 북괴와 달리 미사일을 탑재한 함정이 1척도 없었습니다.
고속정 진수식(75.4.22)
(국방부의 발표에 따르면 73년 이후부터 609억 원이 모금되었다고 하는군요.) 방위세도 국내 여건의 변화와 함께 1990년 12월 31일로 규정된(동법 부칙 제2조)시한의 만료로 폐지되고 사라집니다.
방위성금 헌납자 접견 및 다과회(74.6.25)
저의 개인적인 바램으론 방위성금과 방위세가 부활되었으면 합니다. 저의 친구 하나는 어느 방공포 싸이트에서 복무(90년 중반) 했는데 저는 시설 좋은 데서 복무했지만 만원 안팎의 봉급은 정말.. -.-...
학생대표 방위성금 전달식(74.6.25)
한 발짝 더 상상하고픈 것은 수도이전 비용이 그런 쪽으로 쓰여지면 좋겠다는 겁니다. ^^;;
요즘 미군이 철수하고 자주국방이란 구호를 부르짖으면서도 국방비는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전력증강, 군처우 개선 이야기를 하면서도 국방비는 제자리 걸음이니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구..
학생대표 방위성금 전달식(74.6.25)
생각드는 요즘입니다. 특히 요즘 어린학생들, 젊은이들...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위의 김진규 신문협회장의 말이 인상적입니다. 「일반 서민들이 이렇게 자진해서 자기 힘이 닿는 범위 안에서 방위 성금을 기탁하는 것을 보니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투철하다고 생각됩니다.」
전남 초중고학생 방위성금(72.11.8)
전남 초중고학생 방위성금(72.11.8)
학생대표 방위성금 전달(74.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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