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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권-여성인권을 위한 소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담은
14회 인권영화제 2010 14th Seoul Human Right Film Festival
2010.5.27(목)~30(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당신이 다른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
주최: 인권영화제, 인권운동사랑방
후원: 518 기념재단
문의: 02-313-2407, 02-365-5363
홈페이지: http://sarangbang.or.kr/hrfilm/
전편 무료 상영
정일건 Il Gun Jung|한국 Korea|2009|다큐|82분|DVCam|컬러 ☞'감독 인터뷰 보러가기
들녘에는 벼들이 춤을 추고 그 사이로 아이들이 웃으며 뛰어다닌 다. 송충이 한 마리가 잎 위를 기어가고 있는가 하면 그 옆에서 김치를 담는 마을 아낙의 웃음이 들린다. 생명소리가 들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대추리. 하지만 그 옆으로 거대한 포크레인이 들녘을 짓밟고 군인들과 전경들 의 군화와 방패소리가 지천을 울린다. 이곳 또한 대추리 이다. 2004년 미국과 한국의 주한미국 재배치와 평택미군기지 확장 합의는 생명소리 속에 조용히 농사로써 그들의 삶을 살기를 원했던 이곳 주민들의 소박을 짓눌러 버렸다. 영화는 이러한 소박한 꿈조차 사치가 되어 버린 대추리 주민들과 이들을 지키고자 이주한 지킴이들의 힘겨운 싸움을 소소히 따라간다. 힘없는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지킴이들은 그들의 몸을 밀쳐내는 방패들에 저항 하며 거친 소리를 쏟아내지만 그들의 몸짓과 목소리는 책임 없는 방패 앞에서 서글픈 울음으로 변하는 이곳, 대추리. 2년 동안 타고 있는 그들 손의 촛불을 이제 그들은 내려 놓을 수 있을까.
(감독 인터뷰 전문은 울림 맨 밑단에 있습니다.)
권우정 Woo-jung Kwon|한국Korea|2009|다큐|95분|HDCam|컬러 ☞'감독 인터뷰 보러가기
경남 지역 농촌에 살고 있는 강선희, 변은주, 소희주. 세 여성은 같은 학교 선후배인데다가, 셋이 함께 농촌으로 들어온 절친한 사이이다. 소희주는 농민회 활동 때문에 종종 농사일을 놓친다. 이에 대해 남편이 불만을 표시하지만, 그래도 농사를 지으면서 사 람을 만나는 것이 좋다. 강선희는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시어머니와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와 함께 총선에도 출마한다. 사회복지사 시험을 준비하는 변은주는 어렵게 분가를 했다. 하지만 아직 농사일에 서툴러서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이들은 때로는 웃고 떠들며, 때로는 묵묵히 땅을 바라보며 일을 한다. 대개 할머니들인 마을의 다른 여성 농민들도 함께 일을 하고, 참을 먹고, 노래를 부르고, 자신의 생각을 이 야기한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자리는 활기차고 유쾌하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이 그렇듯 늘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부가 다투기도 하고, 집안에 궂긴 일도 생긴다. 서울에서 열리는 농민대회에 가는 버스가 경찰에 가로막히기도 한다. 그래도 여성 농민들은 그 자리에서 노래 한 곡조를 뽑아낸다. 주인공들은 농촌 사람들을 향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여성 농민들, 자신의 시어머니, 옆집 ‘아지매’, 농민 회 동지와 서로 연대한다. 이러한 연대의 힘으로 그들은 농민으로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삶을 찬찬히 이어가고 있다.
(감독 인터뷰 전문은 울림 맨 밑단에 있습니다.)
안드레아스 욘센 Andreas Johnsen|덴마크 Denmark|2007|다큐|58분30초|DVcam|컬러
☞'Good copy Bad copy'예고편 영상 보러가기
영화는 현재의 저작권법과 풍토에 변화를 기하는 ‘The Pirate Bay’와 같은 단체의 조직적인 불복종 시민운동을 소개하며 ‘누가, 무엇을 소유하고, 저작권의 목적은 무엇인가?’에 대한 흥미로운 논쟁거 리를 제시한다. 또한 창작자들을 범죄자로 만드는 저작법을 반대하고 이들의 창작활동을 위해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카메라는 나이지리아, 스웨덴, 브라질, 영국 미국등 세계 곳곳을 찾아 문화와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가 하면 창작에 관한 미국영화협회(MPAA)와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영화는 또한 리믹스 문화의 세계적 확산에 도 눈을 돌려 가장 활성화된 대안적 라이선스 운동인 Creative Commons의 활동을 따라가기도 한다.
편집자 주: <1984>는 전체주의 사회를 경고한 조지 오웰의 소설입니다. 우리 일상 속의 1984는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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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난 머리를 잘랐다. 그냥 어떤 반항이나 심적 변화보다는 언제가 한번 짧게 잘라보고 싶었고, 그 때가 지금 이었다.
그 후, 급하게 돈이 필요해 이곳저곳 알바를 찾았었다.
백화점 레스토랑 알바를 찾게 되어 일했을 때 레스토랑 매니저는 내 머리를 보면서 난감하단 표정으로 “생각보다 머리가 짧네.” 하며 탈의실에 헤어왁스 있으니 단단히 고정하라며 눈치를 주었다. 이미 어느 정도 고정하고 온 상태라 사실 더 이상 고정할 머리카락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보이는 다른 알바생을 보면서 왠지 모를 열등감이 생겼다. 여성으로서 일한다는 것은 노동력 이외에도 또 다른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짧은 머리로 담배를 피우고 거리에 있다 보면 가끔 나를 두고 내기를 거는 사람이 몇 명 있다. “남잘까? 여잘까?” 단지 머리가 짧고 게다가 담배를 피우기 때문에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를 다른 사람들이 고민하 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 이분법적이어서 한숨도 안 나온다.
아직까지도 담배를 피우고 있다 보면 할아버지 뿐 만아니라 할머니들까지 한마디씩 하시고 지나가신다. 최근에 정말 재밌었던 경험은 친구랑 같이 시장에 가서 둘러보던 중 어느 담배 파는 아저씨가 보이 길래 구경 했더니 “아빠 선물 주게?” 그래서 “아뇨, 저희가 피는데요.”
그러니 “여자가 담배피면 못써, 애 못나.”하시면서 내쫓으셨다. 오랜만에 그런 구닥다리얘기를 들어 참 놀라왔다.
알바를 했을 때 경험 얘기를 하나 더 들자면 호텔 서빙 일을 했을 때였다. 쉬는 시간이 되어 담배를 피우려고 흡연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남성휴게실과 여성휴게실로 나누어진 공간에서 흡연실은 남성휴게실에 밖 에 없단 사실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남자휴게실로 들어가려 했을 때 “여자가 어딜 들어와”라는 한마디. 결국 담배를 피우지 못했다.
여성 흡연이 좋은 일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아직도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색안경이 또 많은 여자들의 자기검열을 일으킬까 걱정이다. 사회가 원하는 ‘여성스러움’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은지 사실 나 스스로도 아직 잘 모르겠다.
'인권운동사랑방’, 제게는 너무나 낯선 말, 낯선 곳이 점차 익숙해져 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보건학도이지만 사회복지나 법에 대해 공부하며 궁극적인 목표인 ‘인권’, ‘존엄성 실현’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 니다. 그렇지만 인권이라는 게 공부만 하던 저에게는 굉장히 낯설게 여겨졌습니다. 대학생이 되면서 사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하루하루 바쁘게 대학생활을 보내며 진정으로 사회에 대한 뜻과 사회를 바꾸기 위한 운동, 소수자들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조금이라도 알고 싶은 마음에 ‘인권운동영화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인권 운동이라는 것은 저와는 좀 먼 단어 같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골자로 여러 인권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저와 사회와의 문이 열리는 것 같습니다. 이번을 기회를 소수자나 표현의 자유, 인권에 대해 알아가는 기회로 삼고 싶습니다. 너무나 좋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며 함께 일 을 하는 기회가 뜻 깊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한 회 거듭할수록 더욱 빛나는 영화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권영화제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영화제이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다는 것 이 참 의미 있는 일 같습니다. 인권영화제 15주년, 참 기대되는 인권 영화제입니다.
인권(人權)이라는 말은 언제나 나에게 무겁게 다가왔었다. 그건 내 꿈 때문이기도 하다. 내 꿈은 아프리카나 제 3세계의 어린아이들을 위해서 국제개발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과연 내 꿈을 이루어서 전 세계 사람들의 ‘인권’을 지켜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모집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자원활동가 모집 글을 보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아, 인권 +영화? 참 특별하다, 영화제라면 나처럼 인권을 무겁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인권이라는 건 우리와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겠구나.’였다. 나는 사실 인권에 대해서도 영화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하 지만, 인권이라는 단어가 나를 설레게 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 설렘은 인권영화제를 만들어나가는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회의, 그리고 인권운동사랑방에서도 여전했다. 어두운 곳,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자유와 권리 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 또한 그렇게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고, 가슴이 뛰었다. 아마 이런 기분은 영화제가 끝날 때 까지, 그리고 영화제가 끝난 몇 년 후에도 계속될 것 같다. 몇 년 후 만약 내 꿈을 이룬다 면,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나라, 제 3세계 아이들의 '인권'이 내 가슴속을 뜨겁게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항상 바쁜 일상에 치어 사는 현대인들에게 잠시나마 타인을 생각하게 하는 글들이었습니다. 이번 호는 어!울림이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각자 만의 개성들이 있어서 회의시간에도 졸리지 않을 것 같은데, 그 중에서도 주 무시는 분이 계시네요.^^ 많은 사람들이 제 14회 인권영화제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고, 저 역시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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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 독자 여러 분, 이번 울림은 어땠나요? 기사에 대한 의견, 읽고 난 감상, 울림을 위한 조언 등이 있으면 메 일로 보내주세요. 독자 여러분들의 소중한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
인권영화제 블로그입니다 http://blog.naver.com/hrfilms/
다음 울림은 몇 호일까요?? 맞추시는 분들께는 소정의 상품을.....드리고 싶으나^^:; 여건이 안 되므로 패스!!! - 정윤
전 올해 봄을 잃어버렸습니다.. 흑흑 그래도 인권영화제를 생각하니 아아 즐거워ㅠ - 민지
으갸갹갹 드뎌 포스터가 나왔네요. 우리 모두 14회 인권영화제를 향해 렛츠 고!! - 지용
벌써 5월이 되었네요. 날씨가 더워서 봄이 실종되어 버린 듯해요. ㅜㅜ 그래도 마음만큼은 따뜻한 봄이었으면~ㅎㅎ - 소라
겨울을 좋아하지만, 요즘처럼 따뜻한 것도 나쁘지만은 않네요. 영화제 기간에도 화창한 날씨가 이어지길!! - 재영
활동가 여러분 반가워요~ ㅎㅎ
저는 영화제 홍보팀 대학홍보 담당 영동이라고 합니다 ^ㅅ^
우리 인권영화제가 개최되는 5월이 드디어 시작되었네요.
홍보팀에서는 대학홍보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규모가 크거나 활동가들이 많이 다니거나 마로니에 공원서 가까운 6개 대학에서 가판을 차리고 영화제를 홍보하는 자리를 마련했어요.
더 많은 이들과 인권영화를 나눌 수 있도록 여러분과 함께 홍보전을 진행하려고 하니
시간 되시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별다른 능력이 필요하진 않아요. 인권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일정들에 잠시 잠깐이라도 자신이 참가할 수 있다면 제 연락처 (019-9217-1987)로 연락 주세요.
- 5월 둘째 주부터 매주 화/수 오전 11시30분~1시30분
- 5월 11일(화) 이화여대, 18일(화) 연세대, 19일(수) 고려대, 24일(월) 성균관대, 25일(화) 한국외대, 26일(수) 서울대
- 영화제 주요 작품 사진전과 전단 홍보 등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 그리고 3일(월) 6시부터는 홍보전에 사용될 물품 만들기를 사랑방 사무실에서 진행하니 여기에도 함께 해 주세요.
이미지 클릭이 안되는 경우 여기를 ☞ '후원활동가 어디 계세요?'
이번 14회 인권영화제에서는 '대추리의 전쟁'과 '대추리에 살다'를 함께 상영합니다. 대추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찍게 되셨는지요?
2004년도쯤이었을 거예요. 그 때 처음 대추리를 가 게 되었어요. 대추리에 미군기지가 생겨서 마을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상황 정도만을 알고, 궁금해서 가게 되었어요. '평화바람' 이라고 문정현 신부님과 오두희 선배가 활동하시는데, 그분들이 예전에 유랑하시면서 활동 하시는 데에 관심이 있어서 찾아갔다가 주민 분들과 만나게 되었고, 동네 구경하고 이러면서 촬영을 하게 되었죠.
푸른 영상과는 어떻게 인연이 되셨나요?
학교 다닐 때 자원봉사 같은 것을 했고요. 전공은 영상과 관련이 없는데 푸른 영상에 아는 선배가 있었어요. 촬영을 도와주고, 영화 찍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자원봉사를 시작으로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되었어요.
특별히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촬영을 하게 된 것은 아니고요. 사람들과 만나고, 친해지게 되면서 계속 찾아가게 된 것 같아요. 특별히 제가 할 줄 아는 게 촬영하는 것 정도였으니까요. 다른 분들은 성실하게 촬영 많이 하시고 활동도 많이 하시는데, 저는 게으름을 많이 피웠고 잠깐 찍고 힘들면 나오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한 시간도 많았고 그랬어요.
<대추리의 전쟁>과 <대추리에 살다>가 다른 영화라는 느낌보다 는 하나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독님의 입장에서는 어떠신지요?
그렇던가요? 보셨어요?(웃음) 그러더라고요. 사실 저는 <대추리의 전쟁>을 만들고, <대추리에 살다>는 좀 다르게 만들려고 했는데 요. <대추리의 전쟁>은 당시 상황들을 고발하고 알리기 위한 마음으로 만들었다면, <대추리의 살다>는 대추리에 있을 때 제가 느꼈던 감정이나 여러 가지 마음들, 당시의 여러 가지 사건들, 그런 것들을 담고 싶었어요. <대 추리의 전쟁>과는 다르게 만들고 싶었어요, 영화를.(웃음) 다르게 만들고 싶었는데, 보시는 분들은 느낌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고요. 제가 촬영하는 방식 같은 것들이 비슷해서 그런 것 같아요. 인물들이 크게 연 결이 되거나 하진 않지만, 앞에 나오셨던 분들이 출연하시기도 하고요. <대추리에 살다>는 대추리의 상황을 알고 봐야 이해가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전에 <대추리의 전쟁>영화를 보신 분들이 더 이해를 잘 하시는 것 같 아요. 대추리 상황을 모르셨던 분들은 영화에 동의가 안 가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대추리의 전쟁>에서 들판에 아직 벼들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엔딩이 되고, <대추리에 살다>에서는 비어있는 집에 새 한 마리가 들어와 있는 모습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또, 중간 부분에서 포크레인이 집을 허무는데 매달려 있는 거미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런 장면들이 인상 깊은데요. 이런 장면들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하시고 싶 은 말씀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들판 장면이나 새가 나오는 부분도 그렇고, 그런 것들이 없어지는 것이 너무 두려운 거죠. 들판에서 벼들이 자라고 있는데, 그것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으로 찍었 던 것 같고요. 새가 나오는 집은 <길>의 김준호 감독님과 제가 대추리 있을 당시 같이 살았던 집이에요. 언제 그 집에 새가 한번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찍은 화면을 넣은 거예요. 이것도 비슷해요. 사람들이 다 떠나 도 거기에 살고 있던 것들은 그대로 있잖아요. 제비도 그렇고 다른 동물들이나 식물들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텐데, 기지가 들어오면 이런 것들이 다들 사라지고, 마을도 완전히 사라지게 되잖아요. 자연적인 공간이잖아 요. 서울에서는 길을 먼저 만들고 집을 짓지만, 시골에서는 집을 만들다보면 길이 자연스레 생기잖아요. 똑바르지 않고 자연스러워요. 대추리에 그런 아름다운 길들이 많았는데, 그것들과 그 곳에 살고 있던 것들이 없어지 게 되는 것이 안타까운 거예요. 그런 마음으로 그 장면들은 넣은 것 같습니다.
대추리에 있을 때는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정말 특별했어요. 당시 상황이, 마을들이 고립되어 있고 들판에 군인들과 경찰들이 들어와 농사를 못 짓게 하고 (농작물이) 자라나는 밭에서 전경들이 뛰어다 니고, 매일같이 폭력적인 사건들이 있고 하다 보니 눈으로 확인이 되는 거죠. 저 사람들이 분명히 생명을 파괴하고 있구나, 기지의 목적이 무어라고 저 사람들이 떠들건 간에. 그 곳에서 평생 동안 농사를 지으신 분들이 계 시고 그것을 억압하는 국가 권력이 있고 죽고 있는 생명체들이 있다는 것이 눈으로 직접 확인이 되니까 더 애틋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대추리 나와서는 사실 그런 마음들이 옅어지는 것 같습니다. 서울에 있으 면.
지금 할 질문과 맥락이 닿는 것 같은데요. 대추리 들어가시기 전과 후에 감독님께 달라지신 것들이 있으실 텐데요. 대추리 들어가시기 전에는 어떤 상황이라고 예측을 하셨는지요?
저는 나중에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도시에서 자랐지만, 시골에 대한 기억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러한 것들에 관심은 있었지만....... 변한 점이 있다면.......글쎄요, 다 변한 것 같은데요. 대추리에 들어가기 전과 지금의 저는 완전히 달라진 것 같은데요. 전에는 생명이 소중하다거나 농사짓는 일이 중요하다 이런 생각들을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말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저 단어들로 알고 있는 것과 (직접 느끼는 것은) 다르잖아요. 대추리는 이러한 것들을 끊임없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곳인 것 같습니다. 뭐 변하지 않은 것도 많이 있는데, 제가 좀 게으른데 이런 것들은 여전한 것 같아요.
감독님도 계속 대추리에 계셨을 텐데요. 촬영하시는 시간 이외에는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감독님은 대추리에서 어떻게 사셨는지요.
제가 술을 좋아해서 거의 밤에는 항상 술을 마셨던 것 같아요.(웃음) 마을 사 람들이 많이 떠나기 전에는 코스가 있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카메라 들고 논에 한 번 갔다가, 학교가 있을 당시에는 학교에도 갔다가 노인정에 갔다가 마을회관에도 갔다가, 마을 한 바퀴 쭉 둘러보는 거죠. 식사시간 되 면 밥 먹고 또 카메라 들고 마을 한 바퀴 돌고 이런 식이었는데, 마을 상황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사람들 움직임이 뜸하고 하루 종일 다녀도 길에 사람들이 안 보일 때도 많이 있었어요. 이럴 때는 그냥 집에 가만히 있었던 적도 있고, 술을 많이 먹었던 것 같아요(웃음). 보통은 놀죠. 마을 사람들 화투치시면 옆에서 구경하고, 지킴이들 텃밭일 하면 구경하거나 도와주고 그랬던 것 같아요.
대추리 주민들이 떠나시는 모습을 지켜 보는 지킴이들은 어떤 마음이었는지요? 대추리 주민들과 지킴이들 사이에 갈등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가까이에서 보신 느낌이 궁금합니다.
주민 분들이 나가시기로 결정이 되고 지킴이들은 계속해서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는 했지만, 이런 것들이 겉으로 표현되고 공적으로 이야기 되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주민들이 지킴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고, 지킴이들이 주민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있을 텐데, 누 구나 그렇듯 조금씩 다르잖아요. 갈등도 있었지만 서로 이야기하고 열려있는 상황에서 풀고 이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각자 시간들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떠나는 주민들의 입장이나 남아있는 지킴이들의 입장이 크게 달랐던 것 같지도 않고요.
그런 시각 차이는 있었던 것 같아요. 예전 <대추리 전쟁>을 찍었을 때, 이장님이 제게 “왜 너는 주민들이 불쌍하게 보이게 영화를 찍었냐.”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어요. 이장님이나 주민 분들은 스스로를 동정하지 는 않는 거죠. 자신들의 입장에서 싸우고 계신 건데. 나는 이 분들을 동정하고 싶어 하는구나. 동정하고 있구나. 제가 가지고 있는 시각에 그런 점들이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이건 저의 시각인 거고 다른 지킴 이들은 다를 수 있겠죠.
지금 대추리는 어떤가요? 많은 분들이 떠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최근의 모습, 그곳에 사시는 분들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지금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길 계획은 있나요?
그렇지는 않고요. 그런 계획은 없는 상황입니다.
최근에는 이주 단지가 조성이 되어서, 임시 거주 단지에서 이주 단지로 이주하신 분들도 계시고, 아직 남아있는 분들도 계시고 한데요. 지금은 카메라도 들지 않고 편하게 놀러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가서 이야기하고 집 구경하고 그렇습니다.
농촌은 공고한 공동체잖아요. 처음에 관계를 맺는 방식이 궁금합니다.
개개인마다 방법이 달랐던 것 같은데요. 저는 카메라가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편하기도 하죠. 저 사람은 찍는 사람이구나. 저 사람의 캐릭터, 하는 일도 알 수 있고. 저는 카메라가 있으니 누군지 알 수 있잖아요.
국방부에서 농사를 금지하기 바로 직전에 직파라고해서 논에 볍씨를 다 뿌려서 농사준비를 했는데, 그때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같이 일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지킴이들이 많아요. 이것도 관계 맺는 방법이죠. 아침 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같이 일하고 참도 먹고 술도 한잔 하면서, 그렇게 같이 일하면서 맺었던 관계들이 기억에 오래 남았던 것 같아요.
개개인 마다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시간이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아요.
인권영화제가 15주년을 맞았습니다. 격려의 말씀도 좋구요. 쓴소리도 좋구요. 한 말씀 부탁드 립니다.
너무 준비된 이야기처럼 될 것 같은데(웃음). 너무 고생들을 하셔서요. 사회의 정의, 인권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공적으로, 상업적인 목적 없이 상영하는 영화제가 왜 지금도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상영할 공간도 구하기 힘든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깝기도 하고. 다들 화이팅하시기를 바랍니다.
* 인터뷰 질문과 기사의 분량을 고려하여 임의로 편집한 부분이 있습 니다. 양해 부탁 드립니다.
제목이 너무 좋고 잘 어울립니다. 어떻게 짓게 되셨나요?
제목 자 체는 촬영시작 전에 일찍 지었어요. 땅을 일구고 땅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을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크게 의미부여를 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나온 거구요. 많은 분들이 제목을 좋아해 주시는 거 같아요.
이 번 14회 인권영화제에서는 '농가일기'와 '땅의 여자'를 함께 상영합니다. 농가일기가 남성을 중심으로 한 농촌 공동체를 다루었다면 땅의 일기는 여성이 중심에 있습니다. 두 작품을 연작으로 생각하셨던 건지요?
농촌 다큐를 하다 보니까 연장선으로 하게 된 거 같아요.
첫 작품이 농가부채 특별법을 다룬 영화였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시사적인 내용을 몰라서 농촌과의 괴리가 생기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농가일기에서는 농민들의 삶에 포커스를 맞추게 되었죠. 농촌 커뮤니티에는 남성성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영화 역시 가족을 다루는 이야기지만 남성이 중심에 있는 이야기가 되었죠. 하지만 촬영을 하면서 저도 여자이다 보니 부인의 모습에 심정적으로 많이 공감을 하게 되었고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땅의 여자의 경우 홍콩 투쟁 때 영상단으로 결합을 해 함께 하면서 눈에 띄는 젊은 세 여성농민을 보았고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이후 여성들의 농촌에서의 삶과, 여성들이 갖고 있는 운동의 건강함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고, 자연스럽게 그분들을 선택하게 된 거죠.
주인공들과의 관계 이외에도 주인공들을 둘러싼 공동체의 많은 분들과는 어떻게 관계 맺기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현장에서 실제 농사일도 하셨는지요?
저는 감독의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이 영화를 통해서 드러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농촌 공동체가 노동력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감독이라고 카메라만 들고 있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세 명의 여성들만을 담는다면 괜찮았겠지만 그녀들의 가족들도 담아야 했기 때문에 오히려 가족들과 더 친해져야 했는데, 그게 감독으로서 만으로는 힘들었어요. 초반에는 가족처럼 다가가서 친해 지려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같이 농사도 짓고 집안 대소사에도 함께 하고… 동네 할머니들을 찍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어요. 남성 농민들과 달리 외지인들에 대한 경계심 같은 게 거의 없으셨거든요. 농사를 통해 관계 맺 기를 시작하는 게 저한테도 맞고 그랬던 것 같아요. 이후에는 좋은 조연출이 들어와 농사일을 대신해주기도 했구요.
촬영 기간이 꽤 길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1년 반 정도를 찍으셨다고 하던데요)
그렇게 긴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농촌이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계절의 변화라는 분명한 특성이 있다 보니 그걸 담기 위해 최소 1년을 찍어야 겠다 라고 생각 했구요. 사전에 지역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라든지 등의 준비 작업이 6개월 정도 필요 했죠.
개인적으로 희주 씨의 웃는 모습이 정말 좋았습니다.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 있으신지요?
각자의 캐릭터마다 다 있다고 생각해 요. 희주 씨의 경우 너무 밝기만 해서 촬영이 조금 힘들었어요^^;; 힘든 일이나 어려움을 긍정적으로만 풀어내는 모습이 관객들에게 붕 떠 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그녀의 긍정적 에너지가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고 생각해요. 영화 후반부에서 세 사람의 삶이 지속될 것이다 라는 걸 표현해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계속 티격태격 대며 자신의 삶을 이어갈 은주 씨,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고 농민운동가에서 진짜 농민이 되어가는 선희 씨의 모습 등이 충분히 담겼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영화에 담기진 못했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떤 게 있나요?
촬영 테이프가 워낙 많다보니 정말 많죠..^^ 선희 씨의 사건이 영향이 너무 커 비중이 높았지만.. 다른 분들한테도 이야기가 많았거든요. 여농(여성농민회)의 건강함이나 마을 아주머니들과의 관계 등 보편적인 여성농민들의 소소한 일상과 담백한 모습이 많이 담기지 못한 게 많이 아쉬워 요.
등장인물들 역시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그녀들의 활동 역시 여러 가지 제약에 부딪치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나이와 사는 곳 환경 등이 달라도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일인 것 같습니 다.
선희 씨의 선거 출마 역시 그녀가 남성이고 아픈 부인이 있었다면, 그녀가 겪는 상황이나 듣는 이야기들이 다를 수 있었겠죠. 그녀 뿐 아니라 모두들 이런 굴레가 있는 거 같아요. 특히나 농촌이란 사회 가 남성중심의 구조인 이상 더욱더 2,3중의 굴레가 있는 거죠.
그래서 이 이야기는 '땅'보다는 '여자'에 방점이 찍혀있는 거 같아요. 영화로 어떤 답을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니구요. 영화 속에서 세 여성이 그 문제들을 전적으로 수용한다든지 완전히 저항하는 게 아니라 나름의 자 신의 방식대로 그것을 풀어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모습에서 다른 여성들에게 같이 힘들어하고 위로 받을 수 있다고 생각 했어요.
한편으로 영화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 맺기에 관한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영화를 찍으시면서 감독님이 그들과의 관계 맺기에서 중요하게 여기셨던 게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신뢰가 가장 중요하겠죠. 그게 한 순간에 되는 건 아니구요. 찍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오픈 하라고 하고 감독은 카메라 뒤에 숨어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가 끝나고 난 후에도 주인공들과의 관계가 지속된다는 게 저에게 의미가 있어요, 이 영화를 통해서 30대 여성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고민들과 또는 제가 갈 수 있는 삶의 모습에 대해 배울 수 있었어요. 그녀들의 경우 영화를 통해 자신들의 모습을 많이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하구요 . 영화 역시 이런 관계 맺기의 일부라고 생각하구요. 그 관계의 중심에는 애정과 신뢰가 가장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관계 맺기가 독립 다큐를 하는 감독들이 얻는 가장 큰 장점인 거 같아요. 계속 영화를 만들게 되 는 힘이기도 하구요.
차기작에 대한 계획은 있으신가요?
계속 농촌의 이야기를 하게 될 거 같아요. 농촌이라는 (인간적, 사회적)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계속해서 사람이 사라져 가고 공동화 되어가는 농촌의 현실을 그곳을 지키고 계신 할머니들의 이야기와 함께 담고 싶어요.
기억에 남는 인권 영화제 상영작이 있으신가요?
영화제를 통해 봤던 좋은 해외 다큐 들이 제가 영화를 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되었던 거 같아요. 칠레전투라든지 남미의 혁명에 관한 다큐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인권영화제가 15주년을 맞았습니다. 3년째 거리 상영을 하고 있는 인권영화제 에 지지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어느 장소에서 하든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영화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전히 유효한 소통의 장과 사회적인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들이 힘들어 지고 있 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 인권영화제가 하고 있는 역할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15회라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관객들이 영화제에 응원과 지지를 보낼 꺼라 생각합니다. 맘껏 활개 치시는 15회 인권영화제가 되기를 바랍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