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글로벌 경제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예측이 되지 않는 상황은 마치 안개가 잔뜩 낀 날 암초들이 많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희망을
노래해야 하지만 냉정하게 우리 자신을 반성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병호씨의
<대한민국 기업흥망사>는 망한 기업들의 망한 이유를 정리한 책입니다.
2009년을 기준으로 1965년도에 국내 100대
기업들중 존재를 추적할 수 있는 기업은 29개에 불과합니다. 1997~2006년 240만개 창업기업의 생존율을 조사한 전명진씨의 <창업이
국가 경제성장 및 고용창출에 미치는 효과분석> 자료를 보면 대다수 기업들은 창업이후 5년 생존율이 37.2%, 10년 생존율은
21%였습니다. 그러나 법인 기업의 경우 5년 생존율이 74%를 넘었고 10년 생존율도 63%를 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는 대한민국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유난히
자영업자 비중이 높다는 것입니다. 2008년 기준하여 대한민국은 32.8%, 일본은 13.8%, 독일 12.2%, 미국 7.4%입니다. 자립심이
큰 민족적 특징도 한 몫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 분들은 이 데이터를 근거로 자영업의 지나친 비율에 문제를 지적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이견이 있기도 한 부분입니다.
개인기업보다 법인기업의 수명이 긴 이유는 의사결정이 좀
더 합리적이고 투명할 가능성이 높고, 자본력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기업들이 망하는 이유는
전략의 실패, 사람의 실패, 불운으로 크게 나뉩니다.
1. 무리한
확장
진로는 2004년 국내 시장점유율 55.3%의 절대
강자였습니다. 수도권에선 92.75%로 독점이나 다름없었죠. 문제는 2세 경영자들이 아버지에게 칭찬을 빨리 듣고자 사세 확장에 몰입한다는
것입니다. 1998년 36세의 장진호 회장은 취임하여 유통업, 맥주사업, 중공업 등에 진출하여 종합그룹으로 성장하겠다고 선언합니다. 무리한
차입경영을 통해 결국 청산절차를 밟거나 하이트그룹 등에 인수되었습니다.
쌍방울의 경우도 무주리조트에 무리한 투자를 해서
그룹자체가 해체된 사례입니다. 더군다나 의의철 부회장은 예술에 대한 애착으로 문화계에 기부를 많이했고 그의 아버지 이봉녕 회장은 쓸데없는 데
돈을 쓴다며 역정을 냈었죠. 결국 아들들의 경영방식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는지 주식을 거둬들이기도 했습니다.
무리한 확장은 위기 때 결판이 납니다. 그 전까진 칭찬과
찬사에 눈과 귀가 멀죠. IMF는 아픔이었지만 많은 교훈을 남겼습니다.
2. 조직관리에
실패
조직의 인력은 급속히 팽창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최고경영자를 제외한 대다수 부서장은 더 많은 인력과 더 많은 자원의 배분을 습관적으로 요구합니다. 결국 쇄퇴하는 조직은 직원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조직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대표적 기업으로 대우그룹이 있습니다. 김우중회장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 “나는 일을 벌이기 좋아한다... 무슨 일이든 해야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재계순위
3위였던 대우는 1999년 8월 26일 30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남기고 결국 운명을 다했습니다.
박정희대통령의 스승이었던 김용하 부친의 아들이었던
김우중회장은 박정희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이 있었습니다. 대우의 성장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차입을 통한 부실기업을
인수하면서 사세를 확장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김우중회장은 항상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우고 수단을 합리화 시켰습니다.
가장 큰 문제중 하나는 자기 혼자 그룹을 운영했다는
겁니다. 구조조정본부장조차도 그룹의 실상을 제대로 모르고있었다고 강봉균 전 경제수석은 회고합니다. 그리고 그룹내 학연을 너무 중요시 했던 것도
패착이었습니다.
뉴코아그룹은 대한민국에 할인매장, 박리다매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처음 도입한 기업입니다. 대우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차입경영을 통해 매장수를 급격히 늘렸었습니다. 전산시스템도 준비하지 않고 벌린
확장으로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는 장사를 했던 것입니다.
쌍용의 김석원 회장은 자동차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습니다.
거기에다가 선친인 김성곤 회장이 남긴 정치를 하지말란 유언을 어겼습니다.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3. 변화에
실패
LG, 두산, 동양화학, 동국무역, 한일, 갑을그룹의
공통점은 모두 창업주가 포목상 출신이란 겁니다. 1957년 대구지역에 직물업체는 2,291개로 전국의 65%가 이 지역에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정부는 이러한 이유로 대구지역의 섬유산업을 육성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한일합섬은 섬유산업에 강자 중 하나였지만 쇄퇘하는
산업에서 변화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다 실패한 사례입니다. 공장부지에 아파트 짓고 달콤한 꿈을 꾸다가 결국 무너진 것입니다.
갑을 그룹도 세계 3대 면방업체의 꿈을 꿨었죠.
외환위기때도 제대로 돈을 버는 기업중 하나였습니다. 다양한 해외공장을 건설하고 면방업의 사양화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신문,
방송, 전자, 건설 등 잘 알지 못하는 분야로 확장을 하다가 한정된 자원을 분산해 버리는 실수를 한 겁니다.
4. 편중된
리더십
10대이상을 만석지기로 성공한 경주 최부자집에는 불문율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정치에 절대로 참여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시대에 권력자와의 충돌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동아건설은 1997년 당시 자산이 6조원이었고 부채보다
1조 3천억원이 더 많았습니다. 공사계약 잔여물량을 12조원 상당이나 갖고있었죠. 그리고 김포매립지 370만평을 갖고있었습니다. 재무제표상에
김포매립지는 1천억원으로 계상되었지만 공시지가로만 1조원에 달했던 20조원 이상의 가치를 갖는 자산이었습니다.
김포매립지는 농업기반공사를 거쳐 토지공사로 넘어간 다음
2005년 민간 건설업체에 평당 800만워 정도로 분양되었습니다. 정부가 동아건설에 매입했던 가격의 45배나 되는 가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동아건설은 정부의 요청으로 627만평 환경청에 거져 주고 남은 땅이란 겁니다.
그러나 망했습니다. 왜?
2007년 11월 13일자 <이코노미스트>에선
“권력은 집권자를 위한 것이었다. 설득력이 떨어지고 명분을 잃었음에도 용도변경이 되지 않자 동아건설은 유동성 위기에 내몰렸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1100만평의 갯벌을 개발해 370만평만 남기고 정부에 다 줬는데 용도변경을 불허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최원석회장은 “원래 그를 안 좋아했다.”는 말을 한 것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사업가는 최대한 적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신동아건설도 비슷합니다. 고향이 이북출신들은 공산주의에
대해 매우 적대적입니다. 그래서 특정 정치인, 정당을 매우 싫어했다는 겁니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1. 내부의 고객,
인재를 육성하라.
2. 과도한 자신감
독주를 경계하라.
3. 재무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라.
4. 잘할 수 있고
잘아는 사업을 핵심사업에 집중하라.
5. 더욱더
윤리적이어야 한다.
6. 기업의 승계에
공을 들여라.
경영의 신으로 불린 잭웰치는 은퇴 9년전부터 후계자를
고르는데 공을 들였습니다. 제가 아는 회장님은 장남을 공장으로 보내 수업을 시켰습니다. 수년간 공장에서 근로자들과 함께 땀을 흘리면서 실무를
알게 했고, 설비에 크게 다쳐 죽을 고비도 경험하면서 생산 현장을 누구보다 잘아는 CEO로 키운 겁니다. 대한민국 사장님들 파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