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해외동포 망명문학』을 발간하며
- 항일 민족시가를 중심으로
김동수(백제예술대 명예교수)
일제강점기 한국의 국내문학은 조선총독부의 언론 탄압 정책에 의해 민족의 얼이 살아남을 수 없는 식민지 종속문학으로 전락되었다. 일인(日人)들의 『고문경찰소지(顧問警察小誌)』를 보면 일제는 그들의 침략정책을 은밀히 시행코자 한일협약(1904)을 맺고, 조약에도 없는 경찰고문을 파견하여 그 때부터 유생들의 탄원서와 벽보, 신문 원고 등을 사전에 검열하면서 반일(反日) 감정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었다.
일제는 치밀하게 짜여진 식민통치 정책으로 우리의 역사와 민족정기를 식민사관으로 왜곡 · 폄하하면서 국민 정서 또한 병약(病弱)하고 감상적인 자기비하증에 젖어들게 하였으니 이러한 현상은 당시 국내문학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소위 한국 현대문학의 장을 연 신문학의 개척자라 일컫는 이인직, 최남선, 이광수의 작품들만 보아도 그렇다. 나라가 주권을 빼앗기고 고종황제가 강제로 퇴위되는 등 오천년 사직이 누란지경에 놓여 있건만 이인직은 일군(日軍)을 인도주의자로 미화하는 「血의淚」 를 쓰고, 최남선은 「경부텰도 노래」에서
우렁탸게 토하난 긔적 소리에
남대문을 등지고 떠나 나가서
빨니 부난 바람의 형세 갓흐니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
늙은이와 졂은이 셕겨 안졋고
우리네와 외국인 갓티 탓스나
내외 친소 다 같이 익히 지내니
조고마한 딴 세상 절노 일웟네.
- 최남선, 「경부 텰도 노래」일부, 1908년 3월
위와 같이 근대문명과 개화를 앞세운 일제의 한반도와 대륙침략을 위한 간선 철도인 경부선의 개통을 찬양·예찬하고 있으며, 이광수는 소설 「무정」에서 당시 망국(亡國)의 현실에도 맞지 않는 자유연애 사상을 부르짖으며 친일 사대주의로 국민정서를 호도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국내문학이 이처럼 민족의 현실을 외면하고 호도해 가면서 일제의 침략현실에 동조, 민족의 염원과 멀어져 국권을 빼앗긴 한반도가 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되어갈 때, 애국지사들은 지하로 숨어들거나 해외로 망명하여 구국운동을 펼쳐나갔다.
주로 국경지대인 만주와 연해주, 그리고 상해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하와이 등지에서 교민 계몽, 독립군 양성, 신문·잡지 간행 등을 통해 조국독립 운동을 전개해가면서 국내문학과는 사뭇 다른 양상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해외동포들의 항일민족시가' 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건곤감리 태극기를 / 지구상에 높이 날려
만세 만세 만만세로 / 대한독립 어서하세,
- 전명운, 「뎐씨 애국가」 일부, <공립신보>, 1908.4.1. 샌프란시스코
얼음도 썩고 눈조차 쉬는 / 블라디보에
이상타 안 썩은 것은/ 태백의 령(靈)’
- 孤舟. 「이상 타」. <권업신문>, 1914.3.18. 블라디보스토크(소련)
'화려한 금수강산 / 삼천리 땅은
선조의 피와 땀이 적신 흙덩이/ 원수의 말발굽에 밟힌단말가
아! 이 부끄럼을 못내 참으리,
- 桓山, 「國恥歌」 , <독립신문>, 1922.8.29. 상해
* 환산(桓山): 국어학자 이윤재(李允宰)
이처럼 망국의 현실을 괴로워하면서 침략군(일제)에 대한 적개심과 국권회복 의지를 다지고 있다. 여기에는 국내문학에서 보기 힘든 한민족으로서의 자존과 일제에 대한 저항의 민족혼이 아로새겨져 있어 그간 일제강점기 우리 국내문학의 반성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 자료들은 필자가 1988년 박사학위 논문( 『일제침략기 민족시가 연구』)을 책으로 엮어 발간한 이래 해외 망명인사들의 작품들을 좀더 수집하고자 중국 북경대학과 연변대학 그리고 199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버클리(U. C. Berkeley) 대학에 객원교수로 가 있을 때 수집한 해외동포들의 항일 민족시가들이다.
U. C. 버클리에는 한국학에 관한 자료가 소문처럼 많이 소장되어 있었다. 특히 ‘한국문학과’가 설치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곳 동아시아 도서관(East Asian Library)에는 학계에 아직 소개되지 않았던 아사미(Asami) 문고를 비롯한 희귀한 국문학서(자료)가 다량 소장되어 있었다. 아사미 린타로(淺見倫兌朗: 1868-1943)는 1906년 통감부 법무관으로 조선에 들어 와 1916년까지 꾸준히 수집하였던 조선의 고서(古書)를 정리하여 『조선수서목록 朝鮮蒐書目錄』을 작성하였는데, 여기에는 이규보, 김시습, 김만중의 『구운몽』, 송시열, 윤선도, 정약용의 『목민심서』 등 학술, 역사적 가치가 높은 희귀한 한국 고서(古書) 수 천 권이 보관되어 있다.
이곳에 있으면서 U. C. Berkeley 대학 동아시아도서관과 하버드大 엔칭 도서관의 도움을 받아 주로 연해주에서 발간된 일제침략기 미주를 비롯한 해외동포들의 민족시가(民族詩歌)들을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서 샌프란시스코와 하와이에서 발간된 『신한민보』(1905-1986)와 『태평양주보』(1930~), 소련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간된 『대동공보』(1908-1910)와 『선봉』(1923-1937) 그리고 중국 상해와 만주 북간도 등지에서 발간된 30여 종에 달하는 신문 잡지 등에서 아직 국문학계에 알려져 있지 않는 항일민족시가들 1000여 편을 발굴하게 되었다.
물론 이 중에는 예술성이 떨어지고 문체 또한 여론 환기와 대중적 전달 효과를 높이기 위함인지 4.4조의 낡은 가사체(고국을 떠오기 전 이미 익숙하게 사용하던 당시의 문체)를 즐겨 사용하였고, 문학적 측면에서도 국내문학에 비해 미흡한 점이 있는 게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한 시대의 문학을 평가함에 있어선 작품성 못지않게, 당시 국내문학이 식민지종속문학으로 전락되었던 특수시대임을 감안하여 볼 때, 해외 망명 인사들이 적의 감시를 피해 현지에서 어렵사리 발표한 한민족의 진정한 목소리가 담긴 그 시대의 정신사란 점에서 결코 소홀하게 여겨서는 안 될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라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이 자료들이 우리 국문학계뿐만 아니라 사회 각층에 널리 알려져 일제강점기 식민지문학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문학에 반성의 계기를 촉구할 뿐만 아니라, 일제의 참혹한 압제 속에서도 한민족이 결코 굴하지 않고 조국독립과 민족의 자주적 삶을 위해 일제에 의연하게 맞서 싸웠다는 자랑스런 한민족의 참모습을 후세에 남겨 주고자 한다.
늦게나마 보훈부의 지원과 도서출판 인문사의 정성스런 협조로 이 자료들을 세상에 널리 알리게 되어 기쁘다. 순서는 미국, 중국, 러시아, 대한민국 순으로, 그리고 그 자료들을 잡지, 신문사별로 간추려 발표한다. 강호제현들의 많은 관심과 질정을 기대해 본다.
2023년 11월 이언 김동수
첫댓글 하하하하하하하하!
이언 교수님!
축하드립니다.
그만 제가 생사를ㄹ 헤매다가 간신히 생환했습니다.
아직 신통치 않습니다.
단행본으로 출간 되었으면 저도 한 권 소장하고 싶네요.
부탁드립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선생님께서 건강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저희들이 의지가 되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