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욱님의 글을 읽고
나는 삶과 직업 그리고 예술을 융합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며
이 글을 옮겨왔습니다./ 김명순
안녕하세요, 김동욱입니다.
다들 주말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금요일 야근에 토요일은 조문을 위해 1박 2일 대구 다녀오고 정신없는 주말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부터 매우 바쁘게 한 주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좀 거한 주제를 잡아서, 근무 시간전에 조금 쓰고, 점심에 조금 쓰고
이제야 마무리해서 보냅니다. (틈틈이 쓴 관계로 쓰고 보니, 좀 혼란스러운 느낌이 -_-)
어제 중앙 Sunday에 정말 마음에 드는 특집 기사가 나와서 여러 분과 함께 공유할까 합니다.
Convergence라는 것이 단순한 제품과 서비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식과 학문의 영역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고,
그 범위가 더욱 확대될 뿐만 아니라 세계 주요 국가들이 다양한 노력과 시도를 하고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변화를 찬성하는 입장이고, 관심이 많습니다.
사실 이 부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교육입니다.
지금의 획일적인 입시 위주의 한국 교육을 생각하면 답답한 것이 현실이기도 하구요.
저의 경우 중학교 이후 고등학교까지 한국의 전형적인 입시 위주 교육을 받으면서,
암기 중심의 학습으로 성적을 끌어 올리고 유지하기에 급급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선생님들이 국,영,수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도구로서 중요성을 강조했지.
국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나아가 발표력을 키우는데 있어서 중요하고,
영어는 국경을 넘어 더욱 많은 사람들과 정보와 감정을 공유하는데 있어서 중요하고,
수학은 사회의 현상과 기업의 실적에 있어서 의미있는 Signal을 파악함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이야기 했던 선생님은 단 한 분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문과는 대학가면 수학을 쓸 일이 없다고 한 선생님은 계셨지만...그건 완벽한 오답입니다.)
국어, 영어, 수학은 목표가 될 수 없고, 하나의 수단이고 필요지식일 뿐인데,
우리가 왜 그것을 배우고, 앞으로 어떻게 활용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정작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학생들 각자의 소질과 장래 희망에 따라 강조되는 과목이 달라질 수 밖에 없고,
그 부분들이 고려되어 교육의 Level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소질과 희망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채 획일적 교육과 입시 제도 하에서
학부모의 금전적 Input, 학생들의 노력적 Input 대비 Output이 떨어지는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획일적인 교육과 획일적인 잣대에 의해 평가되다 보니, 차별화가 어렵고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전형적인 입시 교육을 받은 저는
결국 입시에 대한 압박감으로 수능에서는 실패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크게 방황했습니다.
아무도 저의 장래 희망에 대한 Clear하고 구체적인 조언을 해 준 사람도 없었고,
막연하게 정외과를 지망하다가, 갑자기 경영학과에 들어가서 전공에 대한 흥미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1년의 방황 끝에 훌륭한 교수님들을 만났고, 멋진 선배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자 했고, 더 많은 경험을 하고자 노력해서 변화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경영학에 대해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면,
그것은 융합 학문이고, 실천 학문이라는 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복학한 2학년 이후 철저하게 시험 및 지식 전달 중심의 수업을 배제하고,
조모임과 토론이 중요시되는 소위 빡세다는 수업만 들어갔습니다.
프로젝트를 위해 조모임을 밥 먹듯이 했고 (심지어 주말조차도)
그 과정에서 많은 토론을 했고, 협력하여 Ouput을 만들어내는 기쁨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군대 다녀온 이후의 4년 동안(휴학기간 포함)수업과 수많은 프로젝트를 통해,
실제로 배운 것은 다양한 사례와 프로젝트에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미국이란 낯선 땅에서 Struggle 했던 2학기의 교환학생 생활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공동의 목표를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전형적 입시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의 틀을 상당히 깰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경영학을 통해 배운 가장 큰 것은 유연성과 창의성입니다.
유연성을 다르게 이야기 하면, "경영학에는 답이 없다"라는 것입니다.
상황과 대상이 달라지면, 그때 그때의 선택 또한 달라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실제 저의 개인적인 Goal을 추구하는 측면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Fixed Target → Moving Target)
창의성의 부분은 경영학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전략, 제품, 서비스 모든 것들은 결국은 새로운 창조의 산물입니다.
벤치마킹이라는 모방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는 항상 차별화라는 창의적인 숙제를 요구합니다.
결국은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중요하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공이 다른, 배경이 다른,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 하면,
서로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는 점이 있음에 한 번 놀라고,
다른 사람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고 있음에 놀라고,
서로가 협력하면 멋진 Output이 나옴에 또 놀랍니다.
어쩌다 보니 제가 경영학 예찬론을 펼친 것 같은데,
학문의 컨버전스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경영학도"에 대한 정의를 다르게 내리고 싶습니다.
단순히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만이 경영학도가 아니라,
실제 비즈니스 세계에서 경영을 접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경영학도이고,
경영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이 경영학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즘 제가 주목하는 것이 경영 + 예술 + 기술의 만남입니다.
이에 대해서 저의 대학생 친구들(요즘은 학생인 후배를 이렇게 지칭하고 싶네요 ^^)과 새로운 시도도 할 계획이 있습니다.
요즘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던져 봅니다.
일반적으로 교육하면 떠오르는 것이 지식, 인성이란 단어입니다.
하지만, 지식이나 인성은 교육의 Basic이라고 봅니다.
궁극적으로는 교육을 통해
사고하고, 표현하고, 즐기고, 판단하고, 도전하고, 성취할 수 있는 힘,
나아가 본인과 조직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은 내용에 대한 욕심(?)을 부리다 보니,
송부도 많이 늦어졌고, 내용도 두서 없이 장황해 진 것 같습니다.
새로운 한 주도 신나는 한 주 되시기 바랍니다. ^^
[창간기획] '지식 2.0'으로 달려가는 세계
학문·기술·예술 '칸막이' 허물고 섞어라 1. 대학·전공이 융합한다 2. 産學의 경계 사라진다 3. 연구엔 국경이 없다
세계의 대학·기업·국가가 '지식 2.0' 전쟁을 벌이고 있다. 개방·공유·참여의 구호를 외치며 자기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획일화·표준화된 사고·지식으로는 창의·재미·상상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앙SUNDAY는 창간 1주년을 맞아 해외 4개국의 지식 경쟁 현장을 둘러봤다. 탐사취재팀=이규연·권석천·구희령·이원진 기자
일본 게이오대 미타 캠퍼스 강당에서 '게이오 DMC' 연구진이 개발한 4K 고화질 디지털 시네마(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4K 고화질은 풀(Full) HD보다 4배나 선명해 실제 공연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아래쪽 그림자는 관객. [도쿄=권석천 기자] | ▶일본 '게이오 DMC' : 일본 게이오대의 DMC연구소가 개발한 4K 디지털시네마는 풀(Full) HD 화질보다 네 배 이상 선명하다. 게이오 DMC는 이 디지털시네마를 세계 최초로 미국 UC 샌디에이고대에 전송해 실시간으로 상영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디자인·비즈니스·정책 등 4개 분야 전문가로 한 팀을 짜 통합 연구를 했기에 가능했다. 소니 사이버연구소장 출신인 오타 나오히사 교수는 "화질 전문가와 전송기술·디자인 인력이 공동 연구에 나섬으로써 더욱 실용성 있는 연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일본 '수퍼 대학원' 만들기 : 2010년 일본 도쿄에는 '수퍼 제휴 대학원'이 문을 연다. 주오대·신슈대 등 10개 대학이 각각 비교우위에 있는 분야를 합쳐 하나의 대학원으로 출범한다. 저출산 추세가 지속되면서 웬만한 시설·규모로는 학생을 모집할 수 없는 현실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은 것이다. 대학원 출범을 주도 중인 '협동산학관'의 가지타니 마코토 이사장은 "교수가 관심이 있는 분야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산업현장의 수요에 맞출 생각"이라고 말했다. 수퍼 대학원에선 석·박사 과정 학생이 교수와 프로젝트팀을 구성해 실용적인 연구를 하게 된다. ▶홍콩과학기술대 '5O' 전략 : 홍콩과기대 교수로 재직 중인 김장교씨는 "한국에선 실험할 때 고가 현미경이 있는 학과에 찾아가서 굽실거리고 빌려 썼는데 이곳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모든 학과가 통합 실험실에서 기자재를 함께 사용하기 때문이다. 학과 간 경계를 뛰어넘으려는 홍콩과기대의 시도는 '파이브 오(5O)' 프로젝트로 대표된다. 나노·바이오·정보·환경·CEO과정 등 알파벳 O가 들어간 다섯 학문을 묶어 경영대학원·공대·자연대의 융합을 꾀한 것이다. 폴 추 총장은 "학문을 융합하는 데 생길 수 있는 모든 장벽을 제거하겠다"고 했다. ▶MIT 미디어랩 '휴먼 2.0' : 홀로그램·인공지능·멀티미디어…. 미국의 미디어융합연구소인 MIT 미디어랩이 던지는 화두는 항상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기발한 상상을 눈에 보이거나 만질 수 있게 만들어 세계인을 열광시켰다. 이 '상상력 발전소'가 최근에 던진 화두는 '휴먼 2.0'이다. 인간과 과학기술이 완전히 소통하는 시대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자폐증 환자의 심중을 읽어내는 시스템, 아기의 감정 상태를 알아채는 곰 인형, 할인점 카트처럼 간편하게 접히는 자동차 등을 구상 중이다. MIT가 보여주는 마술은 과학기술과 예술을 창의적으로 융합한 것이다. ▶BMW연구혁신센터 '카페랩' : 건물 가운데가 뻥 뚫려 있어 유리로 된 사무실들이 어디서나 한눈에 들어온다. 독일 BMW연구혁신센터에는 자동차 개발에 필요한 인력·장비·조직이 모여 있다. 유기적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융합'을 노린 것이다. 디자이너가 신차 모델을 그려 보다 기술적인 문제가 궁금해지면 언제든지 걸어서 엔지니어의 방을 찾아갈 수 있다. 거대한 열린 공간인 '광장'에서는 기획·기술·디자인·전자·홍보 등 다양한 부서 사람들이 어울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쉼 없이 소통한다. 기업에 부는 '지식 2.0' 바람, 그 한가운데 BMW연구혁신센터가 있다. |
'한국과학예술통섭원' 같은 지식 대통합을 기대한다
창간기획① '지식 2.0'으로 달려가는 세계 1.대학·전공이 융합한다
미국에서 '작지만 강한' 대학을 뽑는다면 최상권에 카네기 멜런이 들어갈 것이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위치한 학생(석·박사 포함) 1만 명, 교수 1400명 안팎의 학교다. 캠퍼스만 보면 보잘것없지만 연구 경쟁력은 전 세계 '톱' 수준이다. 컴퓨터과학·인공지능·인터넷비즈니스·산업디자인·로봇 분야 등에서 십 수년째 수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교육계에서는 카네기 멜런의 경쟁력이 학문 간 융합에서 나온다고 진단한다. 공학·사회과학·예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는 것이다. 이 학교에서 융합문화가 뿌리 내린 이유를 탐사하는 과정에서 역사와 마주치게 됐다. 카네기 멜런에는 세 개의 DNA가 존재한다.
첫째 DNA는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1900년에 세운 카네기기술대, 둘째는 은행가 앤드루 멜런이 13년에 세운 멜런산업연구소다. 마지막 DNA는 카네기가 모친을 위해 설립한 카네기예술대다. 세 개의 혈통은 67년 카네기 멜런으로 섞이게 된다.
당시 피츠버그는 철강산업이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다. 위기가 세 개의 대학·기관이 융합하는 계기가 된다. 카네기 멜런의 선각자들은 혈통이 다른 점을 최대한 활용해 세상에 없는 학문,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작품을 만들어내려 노력했다. 오늘날의 '강소대'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스페셜 리포트는 '지식 2.0' 시대를 다룬다. 다양한 지식이 웹 2.0의 코드인 '개방·공유·소통'을 통해 융합해 가는 국내외의 움직임을 포착한 기사다. 국내의 융합 실험은 곳곳에서 암초에 걸려 있다. 과학기술과 인문사회·예술계 인사들이 모인 자리가 헤게모니의 전장(戰場)으로 흐르기 일쑤다. 지식 대통합이 성공하려면 과감성과 희생이 필요하지만 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카네기 멜런을 보며 상상해 봤다. KAIST와 한국예술종합학교 같은 대표적인 지식집단이 힘을 합쳐 '한국과학예술통섭원'을 설립한다면…'. 이런 수준의 혁신이 가능하다면 과학(머리), 인문(심장), 예술(상상)이 만나는 '지식의 신대륙'이 탄생하지 않을까.
10개 대학 힘 모아 '재팬 MIT' 만든다
일본 수퍼 대학원 프로젝트
수퍼 대학원 설립을 주도 중인 '협동 산학관'의 가지타니 마코토 이사장 도쿄=권석천 기자 | |
일본 대학가가 '소자화(少子化)'의 물결 앞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소자화는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각 가정의 자녀 수가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몇 년 안에 입시생 전부가 대학에 들어가는 '전입(全入)' 시대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근 일본 대학들이 도심으로 U턴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교통이 편리하고 생활 여건이 잘 갖춰진 곳으로 대학을 옮겨야만 그나마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란 판단이다.
지난해 11월 외신 보도를 통해 전해진 '수퍼 대학원' 추진도 소자화의 큰 흐름 속에 있다. 기본 아이디어는 서로 경쟁해 온 대학들이 힘을 합쳐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기르자는 것. 한 대학 안에서도 화합이 어려운데 다른 대학들과 머리를 맞대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런 아이디어를 내고 추진하게 된 과정은 어떤 것이었을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수퍼 대학원 설립을 주도해온 '협동 산학관'의 가지타니 마코토 이사장을 만났다. 가지타니 이사장은 "(수퍼 대학원은)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 내야 한다는 당위성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평상시 같으면 어려운 일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인구 감소로 대학의 존재 자체가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수퍼 대학원 설립과 같은 과감한 결단 없이는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온 것입니다."
협동 산학관은 전국 60여 개 대학과 연구기관들로 구성된 교류 조직. '산(産)'은 기업, '학(學)'은 대학, '관(官)'은 정부를 의미한다. 2004년 4월 국립대의 독립 법인화를 계기로 설립됐다. 대학 스스로 벌어서 자립하라는 법인화의 방향에 따라 산학 협력을 통한 연구 활성화 필요성이 절박하게 다가온 것이다.
2010년 설립 목표인 수퍼 대학원에 참여하는 10개 대학 가운데 9개가 신슈(信州)대·덴쓰(電通)대·아키타(秋田)대·기타미(北見)공업대 등 지방 국공립대인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는 주오(中央)대 한 곳만 사립대다. 각 대학이 비교우위에 있는 분야를 공유하고 비용을 분담함으로써 일본의 MIT를 만든다는 전략이다.
지금까지 인접 지역 대학과 학점 공동 인정제도 등의 협력 사례는 있었으나 전국 단위로 대학이 제휴하는 것은 처음이다. 가지타니 이사장은 "지금까지 교수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연구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더 이상은 용납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대학 연구도 이제는 산업 현장의 수요에 맞춰 변화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퍼 대학원은 각 대학이 우위 분야를 집중 육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가령 한랭 지역에 있는 기타미 공대의 경우 눈길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장치 개발 연구가 활성화돼 있어요. 이런 분야들을 모으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봅니다. 전문가들의 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기준을 세워서 각 대학의 참여 분야를 정할 계획이에요."
제휴 기업이 제시하는 프로젝트에 해당 분야 교수들이 공동으로 참여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게 된다. 가지타니 이사장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모이는 만큼 상호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활발하게 진행되느냐에 성패가 달렸다"며 "남에게 구속되기 싫어하는 '인종'인 대학과 교수를 설득해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업이 얼마나 참여할지도 알기 어렵다. 기업 참여가 저조할 때에는 수퍼 대학원의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산업계에 필요한 실용적 연구를 거듭 강조하는 이유다. 그래서 우선은 작은 규모로 출발할 생각이다. 석·박사 과정 학생을 20여 명가량 선발한다. 이들은 교수들과 함께 프로젝트 팀에 들어가 실용 연구를 몸으로 익히게 된다. 한국과 중국 등에서 유학생도 받을 예정이다.
캠퍼스는 기업들의 이용이 쉽도록 도쿄에 두기로 했다. 사무국과 실험동 건물에 제휴기업 사무실·숙박시설 등을 갖출 계획이다. 가지타니 이사장은 "산학관 회원 대학들에 취지를 설명하고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며 "대학들의 관심이 많아 참여 대학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문부과학성은 수퍼 대학원 설립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바꿔 뒷받침해 주기로 했다. 대학이 입학 정원 감소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적극적으로 학교 간 통폐합이나 공동 운영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Nano·Bio·CEO … 'O'자 붙은 학문 뭉쳐라
홍콩 과기대의 '5O'프로젝트
칭수이완 반도 바닷가에 있는 홍콩 과학기술대 캠퍼스. 강의실과 도서관에 기숙사, 교수 아파트, 잔디 구장까지 갖추고 있어 작은 도시를 방불케 한다. 건축으로도 작품성을 인정받아 관광 코스에 들어가기도 한다. 아래 사진은 홍콩 과기대 상징물. 홍콩 과기대 제공 |
홍콩 도심에서 자동차로 30분 달리면 칭수이완(淸水灣) 반도에 닿는다. 이곳에는 홍콩 과학기술대 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다. 바닷가 바로 옆에 붙은 건물 여러 개가 구름다리들로 이어졌다. 최신식 멀티미디어 시설을 갖춘 대형 강의실과 도서관을 비롯해 기숙사, 교수 아파트, 각종 레크리에이션 시설, 은행, 식당 등이 들어서 있다. 작은 도시를 방불케 한다.
1991년 설립된 이 대학은 2006년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의 세계 공과대학 랭킹에서 17위를 차지했다. 짧은 시간에 이렇게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과감한 투자 덕분이다. 홍콩에서 가장 큰 비영리 재단인 홍콩마사회에 쌓여 있던 적립금이 투자됐다. 전 세계 25개국에서 우수한 교수들이 모여들면서 명성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가 더 이상 지원을 늘리지 않자 위기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2005년 폴 추 총장은 "이러다간 '아시아의 MIT'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된다"며 전체 교수회의를 소집하는 등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그 결과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경영대학원을 중심으로 공학과 자연과학을 결합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파이브 오(5O) 프로젝트'. 나노(Nano), 바이오(Bio), 정보(Information), 환경(Environment), CEO과정 등 알파벳 O가 들어간 학문 분야 5개를 묶은 것이다. 폴 추 총장은 "기존의 관행을 따르기보다 새로운 생각을 발전시켜야 한다"며 "인근 학문을 융합하는 데 생길 수 있는 모든 장벽을 제거하고, 과학기술적·기업가적 창의력을 높이는 혁신적인 교육과정을 개설하자는 취지"라고 강조한다.
공학 분야의 융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앙집중식 연구지원이다. 기자재가 특정 학과에 속해 있으면 마음 놓고 다른 과 연구자가 사용할 수 없다는 판단에 실험실을 공용으로 쓰도록 한 것이다. 실험실마다 상주 기술자가 배치돼 수시로 찾아오는 교수와 학생을 돕고 있다. 한국인 교수로 공대 부학장을 맡고 있는 김장교 교수는 "한국에선 고가 전자현미경 하나를 쓰려면 현미경을 보유한 학과에 가 굽실거려야 한다"며 "기자재 이용부터 융합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한다.
현재 150명에 이르는 공대 교수 가운데 60% 이상이 '5O 프로젝트' 관련 연구를 맡고 있다. 김장교 교수는 "학교가 작은 데다 '이웃집 숟가락 수'까지 알 정도로 친밀한 교수 간 대화 분위기가 융합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에는 노벨상 수상 경력이 있는 석학 10여 명을 장기 초빙해 함께 연구하는 '석학 거주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간 며칠 머물게 하고 강의를 들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학부 복합전공 과정도 신설했다. 이 대학에서 유학 중인 1학년 박주연(20·여)씨는 컴퓨터와 비즈니스를 함께 공부한다. 박씨는 "서울 명문대와 홍콩 과기대를 놓고 고민하다가 복합전공을 하는 이곳을 택했다"고 말했다. 2010년까지 학부 교육과정 전반을 개편할 계획이다.
이런 개혁의 성과가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홍콩 정부에서 '혁신기술기금' 600억원을 받아 나노 관련 리서치 센터를 7개 만들었다. 최근에는 세계 굴지의 나노 연구기관인 '파인텍스'가 학교 내에 연구소를 설치했다.
뇌·로봇·디자인을 하나로 묶는다
美 MIT미디어랩 '휴먼 2.0' 프로젝트
보스턴=이규연·이현택 기자 | 제53호 | 20080316 입력
미국 MIT 미디어랩의 탠저블(tangible·만질 수 있는) 연구실에서 한 연구원이 사이버상의 IP네트워크를 실감할 수 있게 한 장치를 조작하고 있다. 둥근 전자버튼을 돌리면 네트워크 구조가 모형·선으로 나타난다. MIT 미디어랩 제공 | '상상력의 천국'으로 불리는 미국 보스턴의 MIT 미디어랩(미디어융합연구소). 멀티미디어 개념의 창시자 니컬러스 네그로폰테에 이어 2006년 7월 소장에 오른 프랭크 모스(57)를 현지에서 만났다. -MIT 미디어랩의 핵심 정신은 무엇인가. "디자인과 다양성이다. 정확히 말하면 기술·예술·문화를 디자인하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창의적인 실험을 한다."
-운영상의 특징은. "첫째, 기업체에서 '꼬리표가 붙지 않은' 지원금을 받는다는 점이다. '어떤 제품을 구체적으로 만들어 달라'는 식의 조건이 없는 돈으로 무엇이든 연구한다. 둘째, 학생들이 각 실험그룹에 들어가 자유롭게 연구한다는 점이다. 일정한 전공교육 프로그램이 있는 게 아니다. 셋째, 건물 외관에서 볼 수 있듯 우리는 예술센터 같은 연구기관이다. 모든 게 아트센터처럼 꾸며져 있다. 예술과 과학기술을 융합하겠다는 정신이 충만하다."
-스탠퍼드나 카네기 멜런 등이 비슷한 연구소를 운영하는 것으로 아는데…. "규모와 방식이 다르다. 우리의 연구 규모는 다른 곳보다 훨씬 크고 연구 방식은 더 자유롭다."
-MIT 미디어랩은 1980년대 설립 이후 끊임없이 미래를 향한 시대의 키워드를 던져왔고, 이는 어김없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아왔다. 지금의 키워드는 뭔가. "미래의 지식은 뇌와 나노과학·생명과학이 기존의 디지털·디자인 연구와 결합된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컴퓨터가 사람의 감정까지 이해하게 하는 연구가 한 예다. 이를 한마디로 하면… 잠시 기다려 달라." 수십 초 뒤 그는 작은 책자를 들고 나타났다. 표지에는 'human 2.0 : Exploring the new science of human adaptability'라고 쓰여 있었다. 그에게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글자 그대로 설명하면, 인간에 대한 적응력(human adaptability)이 뛰어난 새로운 과학을 탐구한다고 할까. 이를 키워드로 만든 게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술이 서로 소통한다는 뜻의 '휴먼 2.0'이다(그가 그렇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개방·소통·공유를 핵심 개념으로 하는 '웹 2.0'에서 따온 단어인 것 같았다)." MIT 미디어랩이 '휴먼 2.0' 개념을 제시한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모스 소장은 "'휴먼 2.0' 프로젝트는 새로운 생각(new minds), 새로운 신체(new bodies), 새로운 정체성(new identities)이라는 구호하에 전개되고 있다"고 했다. 모든 인간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시대를 꿈꾸며 첨단기술의 융합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의족기계, 할인점의 카트처럼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 등을 '휴먼 2.0' 시범 사례로 발표했다. '감성 컴퓨팅'도 주요 프로젝트의 하나다. 얼굴에 붙은 센서가 눈·코·입의 움직임을 포착해 감정상태를 진단하는 기술이다. '사이버 독심술'이라고 불리는 이 기술은 심리학·컴퓨터공학·로봇공학·뇌과학·디자인의 융합체다. 프로젝트에는 한국인 안형일(32·박사과정)씨가 참여하고 있다. 안씨는 "감성 컴퓨팅을 이용하면 자폐증 환자 같은 장애인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고 말했다. |
"얼굴 맞대야 아이디어 나온다" 연구실 벽 없애
독일 BMW연구혁신센터 '카페 커뮤니케이션'
FIZ의 '열린 공간'이 융합을 낳는다 | | 독일 뮌헨의 BMW연구혁신센터(FIZ). BMW시리즈·롤스로이스·미니 등 그룹 내 모든 차종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BMW의 브레인'으로 불린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디자인·엔진·소프트웨어 등 자동차 개발에 필요한 모든 부문을 1986년 한 장소에 유기적으로 통합한 것이 바로 FIZ다. 각 부문을 전문화해 분업한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활발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통합, 나아가 융합으로 발상을 전환한 것이다. 2만 명이 근무하는 이 거대한 연구단지는 건물 사이가 구름다리로 연결돼 있다. 연구 부서와 기획 부서가 10분 거리에 있다. 언제든지 필요하면 직접 사무실로 찾아가 얼굴을 맞대고 얘기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커뮤니케이션 맞춤형 설계'를 대표하는 건물이 FIZ 중심부에 있는 '프로젝트 하우스'다. 2004년 문을 연 프로젝트 하우스는 가운데가 뻥 뚫린 타원형 건물이다. 가운데 빈 공간을 도넛처럼 사무실들이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어 다른 사무실이 한눈에 들어온다. 광장처럼 탁 트인 1층은 거대한 쇼핑몰 같다. 편의시설과 카페·식당이 있어 수많은 사람이 오간다. 식당에는 파스타·샐러드·동양음식 등 종류별로 14개의 배식대가 있다. 자연스럽게 다른 부서 사람과 어울려 점심을 함께 한다. 미국에서 왔다는 한 엔지니어는 "커피 마시러 왔다가 디자인 부서와 잡담하듯이 일 얘기를 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최고다"라고 말했다. '광장 문화' '카페 커뮤니케이션'의 단면이다. '커뮤니케이션 설계'의 기본 철학은 '현실화된 아이디어는 80%가 얼굴을 맞대고 나눈 대화에서 나왔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했다. 정규 회의 이외의 시간에도 각 부서가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BMW에서 혁신 관리개발을 총괄 담당하고 있는 호르스트 라이츨은 '열린 공간'이 낳은 융합(consilience)을 FIZ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서로 50m만 떨어져 있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생긴다고 합니다. 하물며 문으로 다 막혀 있으면 어떻겠습니까. 열린 공간이라야 서로를 도와주는 '서포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합니다." 이런 부서 간 융합 덕분에 BMW는 제품 개발에 걸리는 기간을 최근 10년 동안 60개월에서 30개월로 줄였다. 2002년 유럽 기업 최초로 미국의 '기업혁신상(OCI)'을 받기도 했다. |
세계는 지금 예술과 과학기술 '퓨전'
일본 야마구치시의 미디어센터(YCAM)에서 제작·전시한 AT 작품 'R/V'. 바퀴로 움직이는 작은 로봇의 모니터에 나타난 상대방 얼굴을 보며 원격 화상 대화를 나눌 수 있다. YCAM 제공 |
11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도서관동 3층 회의실. 예술과 기술의 결합을 연구하는 AT 세미나가 한창이었다. 디지털 공연을 책임지고 있는 남상봉 연구원이 "전자악기가 사람이 연주하는 것과 같은 소리를 낼 수 있을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AT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최대혁 연구원이 "사람의 연주와 달라야 오히려 의미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여한 10여 명은 음악·연극 등 6개 예술 분야 전문가다. 이런 '통합 세미나'는 AT 강국에서는 이미 일반화돼 있다. (다음은 한예종 교수들이 미국·일본·유럽의 AT 현장을 돌아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PIXAR)'는 더 나아가 건물 자체를 통합형으로 지었다. 대형 건물 한복판에 있는 실내 광장 좌우로 유리벽으로 된 사무실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왼쪽에는 좌뇌를 쓰는 기술 분야 직원들이, 오른쪽에는 우뇌를 쓰는 예술 분야 직원들이 근무한다. 이들은 광장에서 만나 함께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한다. 일상 생활에서도 융합을 시도하는 것이다.
픽사가 건물 구조에까지 통합의 개념을 도입한 것은 직원들의 창의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창의력을 발휘해야 세계적인 문화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전수환 교수는 "미국의 AT는 철저히 시장을 염두에 두고 움직인다"며 "창의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유럽의 AT는 공공성이 강하다. 오스트리아 린츠 시에 있는 미술관 '아르스 엘레트로니카센터(AEC)'에 가면 센서와 와이어가 달린 특수 의상을 입고 3차원(3D) 영상 위를 날며 린츠 시를 관광할 수 있다.
가상공간에서 린츠 시를 새롭게 지어 보는 프로그램도 있다. 매일 3~4개 학교에서 학생들이 견학을 올 정도로 인기다. AEC는 매년 가을 페스티벌을 열어 도시 곳곳에 AT 예술품을 전시한다. 고전적이고 정적이던 린츠 시가 AEC의 전시 덕분에 역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첨단 도시 이미지로 바뀌었다는 평이다.
이동연 교수는 "유럽의 AT 관련 기관들은 대부분 시민에게 체험 기회를 제공하고 페스티벌을 하는 등 공공미술 성격이 강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AT는 시장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추구한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AT 기관의 규모는 작지만 실속이 있다. 야마구치 시의 미디어아트센터인 YCAM도 마찬가지다. 20명 남짓한 인력으로 매년 4~5편의 작품을 직접 만들어 시민과 AT의 거리를 좁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YCAM에서 내놓은 AT 작품이 아르스 엘레트로니카 공모전과 같은 국제전에서 수상을 하기도 했다.
심광현 교수는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처럼 AT를 적극적으로 시장이나 도시 전체로 확장하기보다 학교나 미술관 등 정해진 범위 내에서 알차게 펼쳐낸다"고 말했다.
연구소 하나에 8개 학과 교수들 소설가도 가세
대학 개혁의 상징물 될 KAIST연구원
2009년 완공되는 KAIST연구원 조감도. 1층을 기둥만으로 꾸며 개방성을 강조했다. KAIST 제공 |
대전 KAIST 캠퍼스 한가운데 들어설 'KAIST연구원(KI)' 건물의 설계도는 텅 비어 있다. 도면에는 건물을 지탱할 외벽과 기둥만 그려져 있다. 건물 내벽 역할은 유리벽이 대신한다. 말 그대로의 '오픈 랩(Open Lab)'이다.
5층 높이의 연구원 건물 1층은 기둥만으로 꾸민 필로티 공법을 사용한다. 2층에는 카페테리아와 연구 결과를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들어선다. 캠퍼스 안의 학생과 교수가 연구원 건물에 자유롭게 드나들고, 위층의 연구원들이 부담 없이 내려와 어울리며 그 자리에서 의견교환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유리벽과 카페테리아는 융합 연구를 내세운 KI의 상징이다. 하드웨어가 서로 섞일 수 있어야 소프트웨어도 융합한다는 기본 철학이 담겨 있다. 이상수 KI 원장은 연구원들 간 접촉이 최대화될 때 융합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실험실과 연구실은 전혀 다른 전공자들이 함께 앉도록 배치할 예정입니다. 열린 공간에서 얼굴을 익히다보면 함께 커피도 마시고 축구도 하겠지요. 그런 과정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다른 분야에 대해 배울 기회도 생기는 겁니다."
KI에는 바이오융합연구소·IT융합연구소 등 8개 연구소가 입주한다. 한 연구소 안에는 평균 8개 학과 이상의 교수들이 참여한다. 예를 들어 바이오융합연구소에는 생명과학과와 생명화학공학과, 물리학과, 신소재공학과, 화학과, 바이오 및 뇌공학과, 기계공학과,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가 참여하는 식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전공끼리도 모였다. 엔터테인먼트공학연구소는 스토리 디자인을 강의하는 소설가 김탁환씨와 디지털 기록 보존소를 연구하는 전길남 교수가 함께 일한다.
이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소통해야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서남표 KAIST 총장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다. 서 총장은 그동안 학문ㆍ학과 간 벽 허물기를 강도 높게 주문해 왔다. 4년의 임기 동안 1년은 행정 개혁, 2년째는 연구 개혁, 나머지 2년은 숨 고르기를 하겠다는 게 그의 밑그림이다.
그 결과 KAIST는 지난달 '2단계 개혁 구상안'을 발표했다. 우선 고위험·고수익의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실현 가능성이 낮더라도 장차 큰 수익으로 돌아올 수 있는 연구과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고등학생이 낸 아이디어에 교수들이 달라붙기도 했다. 조동호 IT융합연구소장은 "기업이 지정해주는 연구과제만 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20년 뒤, 30년 뒤를 내다볼 수 있는 연구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KI는 앞으로 독립 연구기관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KAIST 내 모든 연구를 주도한다. KI는 캠퍼스 개혁의 중심에 서 있는 셈이다. 최근 부임한 28명의 신임 교수는 KI가 전공 분야를 직접 지정해 뽑은 인물들이다. 학과가 아닌 대학 차원에서 연구의 밑그림을 그려야 '선택과 집중'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서 총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사람도 돈도 적으니 몇 가지 분야에 집중해야 합니다. 여러 학과가 섞이고 부닥쳐 성과를 내놔야 합니다. 그래야 MIT 같은 세계적인 대학을 따라잡을 수 있어요."
선택과 집중, 융합 뒤에는 경쟁이 숨어 있다. 성과를 내놓지 못하면 나가야 한다. 칸막이가 없는 열린 실험실이라 서로 어떻게 연구하는지도 다 보인다. 당연히 기존 교수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KI가 기존 교수들보다 신임 교원들에게 참여를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I발(發) 융합 바람'은 비교적 순항 중이다. 지난해 9월 재미사업가 박병준씨가 94억원을 내놓은 것을 시작으로 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설계도가 확정되는 대로 연구원은 이달 착공에 들어간다.
"장르 간 칸막이 속에선 창조성 숨쉴 수 없어"
'통섭' 깃발 든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이규연·정선언 기자 | 제53호 | 20080316 입력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총장이 AT 통섭 교육과 통섭원 설치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황 총장은 "미래 사회를 이끌 창조성을 숨쉬게 하기 위해서는 예술과 과학의 통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인섭 기자 |
"탈장르, 장르 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개념,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추구할 수 있는 채널을 학생들에게 열어주어야 합니다."
14일 만난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황지우 총장은 통섭 교육 사업을 시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예종의 통섭 교육은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40억원의 추진예산 배정이 확정되면서 본격화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통섭 교육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올해 초에는 미래교육준비단을 꾸리고 10개 랩(실험실)을 설치하는 등 후속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각 랩은 모두 예술과 기술을 융합하는 AT(Art Technology)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디지털 악기와 컴퓨터 음악, 공연을 결합한 '퍼포먼스 랩', 지역축제 등 각종 페스티벌에 디지털 프로그램을 접목하는 '몰입경험 문화디자인 랩' 등이 대표적이다. 현재 각 랩의 책임연구원(PD)들은 공동연구원과 보조연구원을 모집하는 한편 구체적 계획을 세우기 위한 통합 세미나를 하고 있다.
음악이나 미술 같은 고전 예술에 주력해야 할 것 같은 한예종이 통섭의 깃발을 치켜든 이유는 무엇일까. 황 총장은 "장르 간 칸막이 속에서는 창조성이 숨을 쉴 수 없다"며 기존 교육체제의 문제점부터 지적했다. "단일 전공 트랙과 마에스트로(대가)급 교수들의 독재 아래에서는 새로운 것에 대한 대담한 시도나 실패를 각오한 실험이 막혀버립니다. 어린 학생들 안에 싹트고 있는 창조성의 싹이 잘려버릴 수밖에 없어요."
황 총장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 뜻은 단호했다. 실제 가야금을 배우겠다고 입학한 학생이 중간에 디지털 음악 쪽으로 선회하려다 좌절하기도 했다. 음악·미술·연극·영상·전통예술·무용 등 6개 원(院)으로 나눠져 있는 상황에서 전공 변경은 불가능했다. 차선책으로 학생들을 KAIST CT(문화기술)대학원에 보냈지만 기술이 중심인 분위기에 기가 눌려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황 총장은 "학생들의 대담한 시도가 가능해져야 500년간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21세기 모차르트가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인은 손가락이 짧아 피아노 연주가 안 되고, 다리가 짧아 발레로 성공할 수 없다고 했어요. 그런 근대적 콤플렉스는 극복해 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그 과정에서 한예종이 중심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미래의 예술가, 무서운 아이들은 이런 고전 예술 교육 시스템에서는 나오기 힘듭니다."
그는 "모던아트의 창시자들처럼 새로운 예술의 문을 연 사람들은 예술 아카데미에서 퇴학하거나 입학도 못 하거나 학교 근처에도 못 간 사람들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창조성 넘치는 학생들을 한예종의 제도 내로 수렴하기 위해서는 "학생 스스로 여러 장르를 넘나들면서 자기 전공을 직접 설계하고, 그것을 통해 졸업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얘기다.
황 총장은 이 사업을 발판으로 통섭원을 설치하겠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목표는 원천 콘텐트 생산. 케이블 방송에 이어 인터넷TV(IP TV), 디지털멀티미디어이동방송(DMB) 등 매체가 늘면서 사회가 창의적 콘텐트 공급을 대학에 요구하고 있다는 게 그의 인식이다. "원천 콘텐트를 만들기 위해선 장르 간 벽을 허무는 데 그치지 않고, 전혀 성격이 다른 과학기술을 한예종 안으로 끌어들여 융합해야 합니다."
우선 인문학 교수진을 유치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신화와 역사를 예술 소재로 삼아 새로운 콘텐트를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과학기술 분야 교수도 채용하기로 했다. 새롭게 출현하는 뉴 미디어와 예술의 접점을 모색하는 작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현재로선 통섭원 설치 시점을 예측하기 어렵다. 통섭원을 설치하려면 문화체육관광부의 학교 설치령부터 고쳐야 하고 예산도 유치해야 한다.
황 총장은 느닷없이 개구리 얘기를 꺼냈다. "개구리가 점프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잡겠다고 뛰어가는 한 영원히 그 거리를 좁힐 수 없습니다. 개구리 점프하듯이 훨씬 앞서 뛰어야 합니다."
황 총장이 총감독으로 2004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준비할 때 일이었다. 한국이란 나라를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유럽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고민했다. 새로운 책의 개념을 어떻게 제시할지에 골몰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유비쿼터스 북'. 휴대전화에 텍스트를 전송하는 것이었다.
몇 발 더 나아간 아이디어에 관객은 "매우 신선한 시도"라는 반응을 보였다. 황 총장은 "세계가 우리를 쳐다보도록 점프하는 힘은 융합에서 나온다"며 통섭원 설치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통섭원이 설치되면 한예종 교육은 어떻게 달라질까. 심광현 미래교육준비단장은 "지금 연극원 학생은 연극이라는 하나의 축 위에 찍힌 점"이라며 "통섭원이 만들어지면 연극과 무용·음악·영상 등 여러 개의 축으로 이뤄진 공간을 움직이는 점이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