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부부의 무인도살이, 초도
둘 만의 낙원, 통영 외딴 섬 이야기
초도는 통영 삼덕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1시간 쯤 욕지도를 간 후 그곳에서 다시 낚싯배를 빌려 20분 정도 더 가야 만나는 섬이다. 풀이 많아 이름도 초도인 이 섬은 외초도와 내초도로 이루어져 있다. 내초도는 부부 만 사는 유인도, 외초도는 무인도이다.
낚싯배가 내초도에 접근하자 멀리 섬 비탈에 집이 보이고 사람이 움직이는 게 시야에 잡힌다. 반갑다. 그들도 고도를 찾아온 방문객이 반가운지 손을 흔들어 우리를 맞이한다.
배를 선착장에 대자 오래전 유인도였던 흔적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작은 시멘트 계단이 보이고 바위 사이를 지나 낡은 집까지 사람이 다닐 수 있는 좁은 길도 시야에 들어온다.
비탈길 중간에는 ‘초도마을’이라는 표지석과 함께 ‘김대규, 조종임, 행복의 섬’이라고 쓰여진 작은 문패석도 세워져 있다.
초도는 한 때 100여 명이나 되는 주민들이 살았고, 주민들이 모두 떠날 무렵인 1994년 경만 해도 14가구가 살던 유인도였다. 그러나 교통이 불편하고 생활여건이 어려워 모두 섬을 떠나고 약 10년 동안 무인도로 방치되어 있었다. 이런 무인도에 두 부부가 들어온 건 20년 전.
처음 들어올 때 만 해도 길도 없고 전기도 없고 풀만 무성한 버려진 땅이었다. 오래된 마을회관과 경비초소를 고쳐 집으로 쓰고, 곳곳에 흩어져 있는 돌과 나무들을 옮겨 길도 만들고 문짝도 고쳤다고 한다. 이처럼 외딴 섬을 일궈 이제는 지상낙원처럼 알콩달콩 행복한 삶을 꾸려가고 있는 노부부는 김대규(83), 조종임(68) 씨 내외.
노부부는 인사를 나누자마자 초도 삶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해준다. 선착장 인근에 우물이 있고 집으로 호스가 연결돼 있다. 초도에서는 오래 전 마을이 있을 당시부터 민물이 나오는 우물이 있었다고 하며 그 우물을 지금까지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지자체의 도움으로 태양광판을 설치해 전기를 쓰고,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욕지도나 통영에 나가 식료품을 구입해온다고 한다.
초도 입도 당시 염소 6마리를 데리고 들어왔는데 지금은 그 수가 80여 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부부와 함께 이 섬에 들어온 염소들이 그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자 육지와의 소통꺼리다. 염소들은 노부부 이외 가장 많은 가족이면서 초도의 주민인 셈이다.
“섬에서는 버리는 게 하나도 없어요. 밧줄이나 판자, 나무, 심지어 쓰레기통도 파도에 떠내려온 걸 주워 쓰지요. 매년 연례행사처럼 오는 태풍 때는 줏어모은 밧줄 및 나무가 창문이나 기둥을 고정시키고 막는 데 유용하게 쓰이지요. 처음엔 태풍이 온다고 하면 엄청 겁이 났는데 이제는 별로 무섭지않아요”.
할아버지가 갑자기 자기가 이 섬의 ‘도지사’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초도에서 제일 높은 분이니 ‘도(道)지사’가 아니라 ‘도(島)지사’가 맞다. 할머니도 맞받아 “도지사가 20년 독재를 하고 있습니다. 유권자 관리를 안해요. 그래서 올해엔 내가 도지사가 될까 해요”라고 말한다. 두 분의 유머가 재미 있다.
노부부는 방문객들을 이곳저곳 안내한다. 두 분이 사는 (옛)마을회관 건물 옆에는 새로 지은 건물도 보인다. 노부부는 낚싯꾼들이나 섬여행자들을 위한 민박집도 운영하고 있다.
(옛)마을회관에는 노부부의 가족사진과 함께 할아버지의 국가유공자증서도 걸려 있다. 2011년에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증서이다. 김대규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군 간부(중사)로 근무하다 예편했다. 방 한편에는 노래방기기도 보인다. 전에 낚시하러 온 손님이 선물한 것이라 한다. 손님들이 오면 사용하기도 하지만 노부부가 심심할 때 노래방기기로 노래부르기도 한다. 두명 만 사는 섬이니 아무리 크게 떠들고 노래 불러도 신경 쓸 일이 없어 좋다고 말한다. 특히 할머니의 노래솜씨가 보통이 아닌 것 같다.
집 뒤 비탈언덕이 꽤 넓다. 염소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면서 풀을 뜯고 있다.
이 밭은 5월이 되면 작약이 만발하여 황홀한 꽃동산을 이룬다. 밭 가운데에는 우람한 뽕나무 한 그루도 보인다. 염소들은 섬 전체가 놀이터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저녁 때가 되면 스스로 집으로 돌아온다. 대장염소가 앞에서 이끌면 다른 염소 및 새끼들이 따라온다.
할머니는 노래도 잘 부르신다. 돌아다니면서 계속 이미자의 ‘섬마을선생님’을 유창하게 부른다. 연세에 비해 마음이 젊고 쾌활해 보인다. 할아버지는 섬에 들어오기 전에는 당뇨가 심했는데 섬에 와서 당뇨도 많이 나아지고 건강해졌다고 한다. 두분 모두 섬생활에 크게 만족해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선착장 앞 문패석에도 ‘김대규, 조종임-행복의 섬’이라 쓴 것 같다. 이 문패석은 한의사 김오곤의 ‘갈 때까지 가보자’ 취재차 왔을 때 만들어준 것이다. 노부부는 틈만 나면 바로 앞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긴다. 두 분 모두 낚시를 좋아한다. 섬에 들어온 이유이기도 하다.
비탈밭 우측으로 학교터가 보이고 노부부 집 근처에는 교회터도 보인다. 한 때 초도는 ‘돈섬’이라고 부를 정도로 부자섬이었다고 한다. 고기가 잘 잡혀서였다. 당시에는 주민들이 100명 넘게 살았으니 초등학교 분교도 당연히 필요했다. 폐교된지 오래되어 이제는 흉물스런 건물 만 남아 있다.
운동장 둘레의 동백나무숲이 연륜을 말해주는 듯 울창하게 늘어서 있다.
교회 건물 역시 제법 넓다. 내부에는 아직도 십자가가 기울어진 채 성전을 지키고 있다. 교회 앞에는 후박나무숲이 우람하다. 주민들이 많았을 때는 산 너머에도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학교가 있던 이곳 남쪽 마을에 7가구, 북쪽 산 너머마을에도 7가구 정도가 살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초도에는 오래 전 주민들이 다니던 옛길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해안 둘레길과 산 능선길이 있는데 각각 걸어서 2시간 정도 걸리는 산책길이다. 이번 방문시에는 일정관계상 섬 트레킹은 하지못해 아쉽다. 다음 기회에 꼭 초도옛길 트레킹도 해보고싶다. 조종임 할머니는 필자 일행을 떠나보내면서 “초도를 잊지말아주세요”라고 소리친다. 두 분 노부부만 살다보니 사람이 그리운 모양이다. 초도의 귀염둥이 개 ‘초돌이’도 꼬리를 흔들면서 우리 일행을 배웅한다.
초도 방문 후 필자 일행은 무인도인 좌사리도를 돌아봤다. 좌사리도는 초도에서 낚싯배로 약 20분 정도 걸린다. 좌사리도는 본섬인 좌사리도를 중심으로 등대섬, 볼개도, 대벼락도, 소벼락도, 내장덕도 등이 도열해 있어 ‘좌사리제도’로 불리워지는 섬군이다. 좌사리도는 지형경관이 매우 우수하고, 자연식생이 발달하였으며, 멸종위기동물인 매가 서식하고 있어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전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 특정도서로 지정되어 있다.
좌사리도 가는 바다가 꽤 거칠다. 파도가 높아 낚싯배가 위험스러울 정도로 흔들린다. 선장은 “좌사리도는 1970년까지 4가구가 살던 유인도였는데 바닷길이 험해서 배가 자주 침몰해 결국 무인도가 됐다”고 소개한다. 욕지도에서 좌사리도로 고기잡으러 갔던 어부들의 배 침몰사고가 잦다보니 ‘자살도’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였다고 한다. 좌사리도의 어원이 자살도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욕지도에서는 매년 음력 9월 9일에 좌사리도 어선 침몰사고를 추모해서 합동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섬 경관이 웅장하고 아름답지만 찾아가기가 쉽지않아 일반여행객들은 거의 없고 낚싯꾼들 만 자주 찾는 섬이다.
*초도 가는 방법은...
통영 삼덕항에서 1시간 쯤 욕지도행 여객선을 탄 후 욕지도에서 다시 낚싯배를 빌려 20분 정도 가야 한다. 삼덕항 욕지도행 여객선은 직항노선 영동해운(055-643-8973) 매일 7회, 연화도 경유 욕지도행 경남해운(055-641-3560) 매일 4회 운항한다. 단체여행객의 경우 삼덕항에서 낚싯배를 빌려 욕지도를 들르지않고 직접 초도로 갈 수도 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염소민박 전화 010-4558-2189. 낚싯배 임대 등에 관하여는 염소민박에 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