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거리에 서다
올해 난 호적상 만 65세가 되면서
법적으로 노인이 되었다
노인답게 좀 젊잖게
쓸데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아무데나 함부로 나서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젊은 세대를 믿어야 하고
그들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이
마땅하고 옳다고 여겼다
촛불이 타오르고 깃발이 나부끼는
시청광장이나 청계천 거리도
이젠 그들 몫이며 책임이라 생각하고
나가지 않기로 굳게 다짐도 했다
그래야 구태의연하지 않은
당당하고 새로운 흐름이 생기리라 믿었다
그러다가 3월을 못 넘기고
서울 송파구의 세 모녀가
가난의 절벽 앞에서 희망마저 포기하고
연탄불 피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괜히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4월 16일
구조할 수 있는 생때같은 목숨 304명과 함께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서히 가라앉아 가던 세월호
그것은 나라 없음을 확인하는
불쌍한 유민들의 피눈물 이었다
결국 광화문으로 시청광장으로 종로로
넘치는 대열의 끝자락에서
유령처럼 함께 따라 흐를 수밖에 없었다
다시 가을이 오고
대법원은 서둘러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
수백 명의 목숨을
고등법원에서 그렇게 애써서
구조해놓은 생명을
파쇄기에 넣어 종이 자르듯
그렇게 파기 환송했다
때맞추어 서울 강남구 신현대아파트에서는
아파트 주인들의 쓰레기 취급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 불 타 쓰레기가 된
어느 쓰레기 치우는 노인의 장례식이
쓰레기 치우듯 치러지고 있었다
44년 전 전태일이 그렇게 불타 죽은 그날
이 소식을 전태일 묘지에서 들으며
꽉 쥔 두 손을 바르르 떨었다
겨울의 코앞에서 나는 오늘
서울검찰청 앞길에 서 있다
그렇게 경비원을 쓰레기 취급하는
강남의 부자 아파트 단지에서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줘야하는
그 잘난 시급 5210원 최저임금도 주기 싫어서
경비원 전체를 집단해고 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최저임금이나 겨우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파업 때문에 생긴 손실이라며
천문학 숫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며
그걸 미끼로 노조탈퇴 종용 등
온갖 공갈과 협박으로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는 거대한 현대자동차에 맞서
수레 앞을 가로막고 선 사마귀처럼
허공에라도 회회 손을 저으며
악을 쓰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어깨 걸고 서 있다
그렇게라도 곁에 서 있어 달라는
그 몸부림만은 차마 거절하지 못해
손잡고 서 있다
단두대처럼 생긴 높은 법원 빌딩에서
매서운 초겨울 바람은 불어오고
길거리에 선 우리들은
다 떨어지고 몇 개 남은 느릅나무 잎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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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거리에 서다
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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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28 16:5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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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상과 사회 현상, 제도 거기에 대한 관심과 비판
애정, 그것 없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마지막 그 잎새 하나 끝내 떨어지고 나면 무엇이 남아
한때 나무였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