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기념 무대 서는 이호재, 함께하는 50년지기 전무송
'긴장'과 '이완'의 두 교과서… 고교 교복입고 추억 여행
全 "난 선장 되고 싶었는데…", 李 "겉멋만 들어선… 난 외교관"
연극동네에는 ‘전무송의 긴장, 이호재의 이완’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연기는 긴장과 이완이 리듬감 있게 길항(拮抗)할 때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두 배우는 이쪽 끝과 저쪽 끝의 교과서인 셈이다. 1941년 동갑내기인 이호재·전무송은 친구이자 라이벌이고 짱짱한 현역이다. 이호재의 칠순을 기념하는 연극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만희 작·안경모 연출)에 전무송이 빠질 리 없다. 지난 3일 서울 대학로에서 두 배우를 만났을 때 전무송에게 이 잔치 같은 무대에 서는 까닭을 묻자 “난 ‘꼼짝 마라’지 뭐”라며 웃었다.
둘이 다시 뭉치기는 2005년 '용호상박' 이후 5년 만이다. 이호재는 '칠순 헌정 공연'이라는 홍보문구에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를 위해 이만희가 신작을 썼고 전무송·윤소정·권병길·김재건·송도순 같은 배우들이 뭉쳤고 김철리·최용훈·김광보·양정웅 등 연출가들도 카메오 출연을 약속했다.
- ▲ 연극‘그대를 속일지라도’에 출연하는 배우 이호재(오른쪽)와 전무송. 이호재에겐“얼굴 좀 펴주세요”해야 했고, 전무송은 웃음이 자연스러웠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전무송="언제는? 너 매일 그러잖아."(웃음)
▲이="멕시코 속담에 '소년은 꿈꾸고, 노인은 회상한다'라는 것이 있잖아. 우리 연극은 '노인이 돼서 후회하지 말자'다."
'그대를 속일지라도'에서 이호재·전무송은 거의 내내 고교 교복 차림이다. 이 연극은 1960년대 남자 고등학교의 '꼴통 4인방'과 여고 문학소녀 4인방이 50년 뒤 현실에서 재회하는 추억 여행이다. 제목은 푸슈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에서 따왔다. 두 배우에게도 소년 시절이 있었다.
▲이="막연히 외교관을 꿈꿨지."
▲전="난 선장. 인천부두에서 많이 봤는데 멋있더라고. 파이프 물고 세계를 도는 거지. 리우데자네이루로 나폴리로."
▲이="겉멋만 들어가지고."
- ▲ 전무송·윤소정·이호재(왼쪽부터). /컬티즌 제공
▲전="이번 연극 마지막에서 내가 색소폰을 불잖아. 미팅 나가서 제비뽑기하던 추억도 살아나지."
▲이="난 그런 불량스러운 짓은 안 했어. 내가 맡은 배역들이 난폭해서 그렇지 난 순진해."
▲전="옛날 흑백사진을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오잖아. 이 연극이 그럴 거야."
이호재는 까칠한 모래알 같고, 전무송은 물처럼 부드럽다. 팬의 층(層)도 다르다. 이호재는 "국립극단 시절 전무송의 분장실 앞엔 예쁜 여자들이 꽃다발 들고 서 있고, 나한텐 털이 시커먼 놈들이 와서 '막걸리 한잔 합시다!'라고 했다"며 불평했다. 그런데 윤소정은 '이호재·전무송, 둘 다 내숭'이라고 했다.
▲전="50년 친구와 다시 한 무대를 만든다니 즐겁네. 오래 같이 하고 싶어."
▲이="다른 일을 했으면 '정년퇴직' '은퇴' 같은 단어가 몇 번은 나왔겠지. 살아 있는 동안 열심히 하자."
▲전="배우야 부르면 가는 거지. 나는 8월에 경기도립극단 예술감독 그만두면 시간 많아. 그런데 아무도 날 안 써주면 어떡하지?"
▶18~27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02)765-5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