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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체험연수기>
전화기가 악을 쓴다.
“선생님, 저 박영흰데요. 얼른 오세요.”
“워메, 어찌야쓰꼬, 금방 갈라, 잉?”
부랴부랴 옷을 입고 등짐가방 들쳐메고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님, 구검문소 앞으로 후딱 델다 주실라?”
누가 탄지 만지, 온지 만지도 모르고 의자에 몸을 부렸다. 못잔 잠 보충하니라고 그런가 내내 잤다.
어딘지 모르겄다. 아침밥을 먹잔다. 나는 안 먹는다고 했다. 기사양반이 누룽지라도 먹으시란다. 내렸다. 밥 한숟가락에 북어국물을 부어 몇 번 ‘떠묵고는 이내 차로 돌아와 의자에 몸땡이를 부렸다.
눈을 떴다. 인제 휴게소다. 인제 가믄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겄다고 허던 곳이다. 인자 봉게 이쁜 김미현 선상님이 내 곁에 앉어있다. 암매도 광주서부터 항꾸네 왔을 것인디 냅다 잠만 자니라고 모르고 있었다. 송형숙 선상님도 보인다. 이천에서 탔단다. 인자 사람들 얼굴이 보인다. 오줌을 누고 손을 씻는디 누비옷 속주머니에서 뭣이 걸리적 거린다. 부채였다. 그 비몽사몽, 헤롱헤롱헌 중에서도 금강산에 올라가 소리 한 대목허겄다고 그것은 챙겼능갑다.
통일전망대 부근의 휴게소에 들렀다. 그곳에서 낮밥 묵고 통일관련 동영상을 보았다. 그 뒤, 북측에 가서 해야할 것허고 말아야 헐 것들을 안내조장한테 듣고 한참만에야 또 차에 올랐다.
남쪽 출입국 관리소가 보인다. 아, 인자 드디어 북녘땅에 가는구나. 무담씨 눈물이 매롤락 헌다. 우리가 탔던 안내원인 백조장의 친절한 설명에 남방한계선, 휴전선, 북방한계선 등이 어치고 생겼는지를 알았다. 오래된 시멘트 말뚝이 휴전선 표시란다.
드디어 북쪽 출입국 관리소가 저 멀리 보인다. 철길 위로 드문드문 인민군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다. 앳되보인다.
여행허가증에 도장을 박고 통과한다. 인민군복을 입고 여행증에 도장 찍는 분한테 수고하시라고 인사말을 건넸다. 웃으면서 여행 잘하고 오라고 한다.
우리가 탄 차는 고성평야를 가로 질러 금강산으로, 금강산으로 향한다. 들판에, 길목에 드문드문 인민군들이 장승맹이로 서있다. 나는 연신 손을 흔들어댔다. 반응은 없다. 그래도 좋았다.
차가 드디어 온정각에 도착했다. 휘휘 둘러보고 숨도 크게 마셔보았다. 눈앞의 높다란 건물이 금강산 호텔이란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소로, 남북 적십자 회담 장소로 익히 알고 있던 곳이어서 감개가 남달랐다. 뒤편으로 둥근 아치형의 건물이 있는데 그곳은 금강산문화회관이다.
우리 진도실고 네 사람은 동관에서 저녁밥을 먹었다. ‘금강산들쭉술’ 한 병을 주문했다. 나는 조금 독한 것을 묵고잪았는디 여선생님들을 위해서 16도 짜리를 달라고 했다. 맛이나 향이 포도주허고 비스꼬롬했다. 평소 술을 전혀 않던 송형숙 선생님도 두어잔 마시더니 볼이 발그레 해졌다. 박영희 선상님허고 김미현 선상님은 한 잔씩만 하고 솟터 선배이신 신승태 성님허고 몇 분이 나눠 마셨다.
저녁밥 맛나게 묵고 우리는 온천탕으로 갔다. 소문대로 물이 장난이 아니다. 내 귀빠진 뒤로 요로코롬 좋은 물은 첨이다. 샤워기로 비누칠해 씻고는 바로 탕에 몸땡이를 담괐다. ‘아, 좋다. 좋다.’ 노천탕으로 간다. 싸한 공기가 몸땡이를 감싼다. 사람들이 우글거린다. 탕 변두리로는 빈 자리가 없다. 가운데 쯤해서 앉었다. ‘으흐흐흐 좋다.’ 몸땡이는 따땃허고 머리는 시원허고.....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별들이 촘촘히 박혀 우리 깨벗은 인간들을 내려다 보고 있다. 좋다, 좋다. 우리가 금강산 신선들이다.
금강산온천에서 나오자 김홍전 선생이 보인다. “어이, 홍전이 시원헌 맥주나 한 잔 허까?”
“좋제라, 형님.” 해서 우리는 매점으로 갔다.
늦은 8시 30분에 차를 타고 숙소인 금강산비치호텔에 왔다. 내가 두 밤을 묵을 곳은 1동 309호란다. 방에 들어갔다. 지은 지가 얼마 되지 않응갑다. 최신식이다. 이틀 간 동거(?)할 다른 선생님들하고 수인사를 나눴다. 같은 지역이나 같은 학교에서 오신 분들허고 약속들을 허셨능갑다. 서로 자기 가까운 사람들을 찾아 방을 나선다.
장전항은 영락없는 오강단지맹이로 생긴, 호수 같은 항구다. 우리 학교 선상님들허고 수상호텔까지 걸어갔다. 현대아산 직원인 듯헌 사람들이 간간히 담박질운동, 걷기 운동을 허니라고 우리 젙을 스쳐지나간다. 금강산비치호텔에서 멀어질수록 야경이 장관이다. 꿈인가 생신가? 그토록 와보고 싶었던 금강산 북녘땅을 내가 시방 나직나직이 볿고 있다.
여선생님들은 숙소로 들어가시고 나만 혼자 누각 쪽으로 걸어갔다. 누각 앞 쉼터에 서서 바다를 봄시로 춘향가 중, 방자가 이도령한테 춘향집 가리키는 대목을 흥얼거린다. “ 저 건너~ 저~어허으~ 건너~~ 춘향집 보이난~~디...”
숙소로 오다가 승태 성을 만났다. “성, 한 잔 허실라?” “그러까?” 우리는 101동 1층에 있는 식당 겸 강당으로 갔다.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생맥주를 시켰다. 남자 한 사람과 여자 두 사람이 노래를 부른다. 비틀즈의 ‘렛잇비’도 부르고... 알고 보니 필리핀 가수란다. 그래서 우리 노래는 안 부르고 맨 꼬부랑 노래만 불렀능갑다. 어째 관중들 반응이 시원찮다. 내가 손바닥 장단(박수)을 먼저 쳤다. 승태 성이 따라헌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도 박수를 친다. 필리핀 가수들 힘이 나는갑다.
봉사하는 여성의 이름이 ‘이천천’이다. 술 한 잔 헐라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술도 못 마시지만 근무시간에는 안 된단다. 조선동포냐고 묻자 자기는 한족이란다. ‘아, 그래서 이름이 특이했구나.’
11시가 다 되었다. 가수들이 노래를 끝낸다. 술집 문도 닫아야한단다. 우리는 일어섰다. 저쪽 탁자에 앉아있던 필리핀 가수가 웃음을 건넨다. 고마워서 보내는 웃음이리라. 나도 웃음으로 답허고, 노래 잘 들었노라고 말 건네고 발길을 돌렸다. 승태 성이 술을 한 잔 더 허자고 자기 방으로 가잔다. 다른 분들 계실 것인디 그래도 괞찮겄냐고 물었다. 그 사람들허고도 같이 마시잔다.
3동 306호에 들어선다. 같은 모임 회원인 이기남 선생님이 계신다. 우리는 함께 잔을 기울였다. 머루주 한 병을 기어이 다 비웠다.
아침에 눈을 떴다. 여섯 시가 조금 넘었다. 내가 묵기로 했던 방(1동 309호)이 아니고 승태 성 방이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왔다. 날이 춥지 않다. 하늘을 비껴 보았다. 서쪽 하늘에 반달이 걸려 있는디 그 살짝 젙에 샛별이 반짝 웃고 있다. 참 좋다.
아침밥을 먹고 7시 40분에 차에 탔다. 차는 우리를 싣고 금강산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북측에서 운영하는 목란관식당에서 막걸리를 두 병 샀다. 내 친정격인 창평고등학교 선생님들허고 한 잔씩 나눠마셨다. 물론 승태 성도 항꾸네... 엊저녁에 묵은 령통소주, 생맥주, 머루주들이 막걸리에 다시 살아난 듯허다. 뱃속이 제법 따땃해져 온다.
점입가경이란 이런 때 쓰라고 만들어놓은 말잉갑다. 개골산이라 그런지 그 속내를 적나라허니 드러내놓고 있었다. 옥류동 무대바위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자 손마이크에 들려오는 여성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둘렀다. 나와 비슷허게 올라갔던 사람들이 도착하자 볼이 발그레한 앳되보이는 여성 안내원이 반갑게 맞는다.
“선생님들 반갑습네다. 금강산이 명산이라 이름이 나서 동물들도 이곳에 모여들어 있습네다. 조오기 조~아래쪽을 보시면은 크다란 바위가 있는데 고곳을 머리로 하고 쪼오끔 내려오다보면 움푹 들어간 곳이 있는데 그곳을 눈으로 보고 그 아래 길게 나온 것을 코로 본다면 그거이 무슨 동물이겠습네까? 네, 바로 맞췄드랬습네다. 코끼리 같이 생기지 않았습네까? 그 다음 저 쪽을 보시면은 층층대초롬 보이는 데 있지 않습네까? 하나, 둘, 세 번째 보시며는 꼭 거북이가 턱을 받치고 누워있는 모습 아닙네까? 기리구 마지막으루 저 꼭대기 쯤 보시게 되면은 악어가 뒷발을 탁 버티고 기어오르는 형상 아닙네까? 고롬 선생님들 올라갔다 내려오시며는 재미난 얘기 들려드리갔습네다. 안녕히 다녀오시라요?”
금강문, 비봉폭포를 지나 드디어 구룡연에 도착했다. 비봉폭포의 웅장함을 봐버려서인지 감흥은 크게 일지 않았다. 먼저 올라온 박영희, 김미현 선생님들허고 사진 몇 장 찍고는 이내 내려왔다. 상팔담으로 가는 삼거리에 왔다. 조장이 올라갈 거냐고 묻는다. 상팔담에 갈라믄 얼음징(아이젠)이 있어야 한다기에 나는 저 다리까지만 간다고 했다.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우리 학교 송형숙 선생님이 내려온다. “선생님 인자 오세요?” “아니, 벌써 댕개오셨소?” “아이구 땀나. 선생님 얼른 올라가세요.” “거시기 없으믄 안 된닥 허든디요?” “ 아이고 암시랑토 안 해요. 그것 필요없어요. 얼른 올라가세요. 진짜 멋있어요.”
안내조장들한테 다리위에 가서 사진만 찍고 오겠노라는 말은 결국 거짓말이 되야부렀다. 박영희, 김미현 선생님은 그 길로 내려가고 승태 성허고 나는 상팔담을 찾기로 하고 눈 쌓인 길을 올랐다. 전라남도 교사 600여 명이 그렇게 많은 줄은 몰랐다. 곳곳이 정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드디어 상팔담이 보이는 봉우리에 올랐다. 정말로 안 올라오고 내려가부렀으믄 후회막급헐 뻔했다. 수 많은 봉우리들이 우줄우줄 서있었고, 절벽 저 아래로는 천상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연못들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이어서 푸른 물을 볼 수는 없었제만 흰 얼음 속을 명경지수는 흐르고 있을 터였다. 아, 이렇게도 아름다운 강산인디...무담씨 눈시울이 붉어졌다.
전라남도 교육청에서 오신 분들은 하산하십시오라는 말을 듣고서도 사진 찍는다 귀경한다 해서 한참이나 밍기적대다가 내려온다. “금강산은 우리의 기상이다.”라는 김정일 위원장의 글발 아래서 기념촬영을 하고 하산길을 서둘렀다.
무봉폭포, 비봉폭포, 금강문을 지나자 아까 얘기를 들려준다던 안내원여성이 아직 안 내려가고 있다.
“안내원 동무, 아까 내려오믄 재미난 얘기 들려준닥 했는디, 어째 조께 들려주실라요?”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머뭇머뭇허다가 수줍어 허면서 야그보따리를 꺼낸다. 신나게 친절허게 얘기를 했는디 기대이하였다. 그나저나 그 진지하고 친절함에 고마울 따름이다.
목란관에 도착했다. 박영희 선생님이 나를 발견하고는 안으로 이끈다. 당신들은 이미 밥을 묵었는디, 30분이 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비빔밥을 시킴서 고기허고 달걀허고를 빼고 주라고 했다. 그러자, 접대하는 여성이, “고롬 볼품이 없잖습네까?” 하고 조금 속상해 하는 표정이다. 그러자 바로 이 선생님은 채식주의자라고 박영희 선생님이 거들어준다. 어제 저녁 ‘령통소주’에 딘 적이 있어서 평양소주는 맛이 어쩌냐고 그 여성 접대원한테 물었다. “평양소주 맛있습네다.” 한다. “글믄 평양소주 한 병 주실라?” 아직 밥이 나올라믄 한참이나 있어야했다. 너홉이나 될까한 평양소주를 가져온다. 마침 바로 뒤이어 김치사발이 나왔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한테 한 잔씩 드리고 나도 맛을 보았다. 향은 령통소주 계통이지만 그보다는 훨씬 부드러워 먹기에 편했다. 마침 같은 탁자에 앉은 다른 분한테도 권하고 목포에서 근무하는 선배, 동료한테도 한 잔씩을 권했다. 그러던 중에 마침내 비빔밥이 나왔다. 아니? 분명히 고기허고 달걀허고 빼고 도락했는디..... 우리 식탁을 맡은 그 여성 접대원은 두 말 않고 다시 가져오겠노라고 하고 갖고 간다. 잠시 뒤에 다시 나온 비빔밥에는 고기, 달걀이 없었다. 하, 그런디 양이 많아보인다고 한다. 고기 달걀 대신에 밥도 나물도 많이많이 넣었능갑다고 이구동성이다. 시간이 꽤 지난 관계로 밥을 서둘러 몰아넣었다. 정말로 맛나다.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움시로 비빔밥 최고로 맛나요. 맛나게 잘 묵고 가요. 하고 웃어보이고는 목란관을 서둘러 나왔다.
차에 오르자 안내조장이 우리를 협박한다. 이미 통일연수프로그램이 진행되어서 우리들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허허참 낭패다. 고개도 못들고 짭짭해 하고 있는디 차가 금강산문화회관 앞에 멈춰선다. 사람들이 들어간다. 우리도 들어섰다. 자그마한 책자를 나눠준다. <노래모음집>이다. 펼쳐보았다. 익히 들어본, 북측관리사무소에서 반갑게 맞아주었던 ‘반갑습니다’가 맨 첫노래로 실려있다. ‘휘파람’도 있다.
회관에 들어갔다.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능갑다. 교수가 발제를 하고 참가자들한테 의견과 질문을 받는다. 어느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좋은 연수를 일부 교사들로만 한정해서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교사들이 참여하고 느낄 수 있도록 통일부에서 계속 추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또한, 통일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다면 그 사람들도 체험연수에 참여하게 해서 통일의 필요성을 몸으로 절절히 느낄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박수들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체험연수 자료집을 제작해서 내실있는 연수가 될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어느 여선생님의 말씀을 끝으로 토론회는 막을 내렸다.
4시 30분에 평양교예단의 공연이 예정되어있다. 그때까지는 두 시간쯤 남았다. 온정각 서관에 있는 백화점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반쪽이 선물을 하나 샀다. 옥빛 눈망울을 하고 있는 손전화줄이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으흐흫..값도 싸다. 만족스러운 웃음을 살포시 흘리고 밖으로 나왔다.
온정각 서관과 금강산문화회관 사이에 자그마한 건물이 하나 있다. 그 건물 오른 쪽 벽면에는 노란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은 처녀가 밝게 웃고 있다. 그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는디 쥐색 봉고차가 온다. 인민복(?)을 입고 주석초상을 가슴에 찬 중년 남자가 운전을 하고 있다. 번호판을 보았다. ‘평양-****’라고 씌여있다. ‘평양차가 이곳까지?’ 차를 그 앞으로 대더니 사람들이 내린다. 그건물 초상화맹이로 차려입은 여성들 세 사람이 내린다. 그리고 평상복차림의 여성 둘, 젊은 남성 한 사람... ‘혹시 평양교예단?’ 사진을 찍고 싶다. 근디 참았다. 그 젊은이한테 물었다. “혹시 평양교예단 단원들이싱게라?”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아닙네다.” 답은 금방 나왔다. 봉고차에서 짐을 내리는디 봉게 다 먹거리였다.
인민복을 입은 중년의 사나이는 밖에서 꼬치구이를 굽는다, 조개를 굽는다하여 부산하다. 승태 성과 나는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막걸리 두 잔을 시켰다. 차림표를 보고 더덕구이를 시켰다. 사람들이 가게 안으로 꾸역꾸역 들어온다. 바로 옆 자리에는 병섭이 성네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평양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맞은 편에는 검은안경을 낀 사람이 맥주를 마시는지 어쩌는지 줄곧 계산대 쪽을 바라보고 있다. ‘히야~, 참말로 이쁘다.’ 승태 성이 나직이 중얼거린다. “선녀가 따로 없다.” 우리는 조개 한 접시를 더 시켜서 막걸리를 두 잔씩 더 마시고(막걸리 한 모금 마시고 접대원 큰애기들 한 번 쳐다 보고를 여러 번 허다가...^^) 밖으로 나왔다.
첫댓글 읽다가 눈 빠지는 줄 알았네! 참말로 좋았것네! 언제 만나면 술 안주 삼아서 야기로 들어야 쓰것구만요! 영암삼호서중에서 근무합니다.
어야, 병채 동숭.. 축하를 혀얄지 거시기를 혀얄지 모리겄네. 거그에 영 거시기헌 사람이 있담서? 아무튼 애 많겄네, 외?
인연이 묘헌것인디 나하고 같은 부서요! 같이 만나야 할일이 많을것 같인디..., 잘 되것제라! 걱정은 안허고 어찌고 허면 소리연습 많이 할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구만이라우!
순식간에 읽어내려간 기행문! 재미지게 쓴 글에 푸욱~ 빠져! 금강산에 함께 다녀온 것 같은 착각! 아 나도 가고싶다. 내년 겨울에 나도 갈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