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초월 상담학이란 무엇인가?
<자아초월 심리학>의 특징
미국의 자아초월심리학 대학원과정이 있는 자아초월심리학 연구소(
www.itp.edu)에 소개된 로버트 허친스 박사가 분류한 특징들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첫째, 이것은 건강과 인간 잠재력에 관한 심리학이다. 기존의 심리학 중에서도 대표적이고 영향력이 가장 컸던 정신분석학이 인간의 정신병리에서 도출된 성격모형을 일반인에게도 적용하였기 때문에 이 성격이론으로는 일반인들의 행동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고 오히려 성숙한 사람이나 그 행동마저 병리적으로 오인하는 오류를 범하기까지 하였다.
기존의 성격이론은 특히 종교적 성인들, 사회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 영웅들, 예언자들 등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모델이 없었다. 로저스나 매슬로우 그리고 융은 인간내면의 위대한 잠재력을 믿었고 증명했었던 대표적인 서양의 심리학자들이며, 불교나 요가와 같은 동양의 사상에서는 인간의 깊은 내면에는 신성의 능력을 가진 진정한 자기가 존재한다는 입장의 전통이 있어왔다.
자아초월심리학은 인간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전망을 가짐으로써 기존의 심리학의 인간관을 확대하였고, 우리가 유한한 존재에 그치지 않고, 인간이 언젠가는 무한하고 절대적인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우리에게 수련할 수 있는 지대한 목표를 제공해준다. 특히 매슬로우는 단지 1% 미만의 사람들만이 자아실현을 이룬다고 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이 완전한 인간성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낙관적인 관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자아실현자의 십여 가지 특징들을 추출해내었는데 특히 신비한 절정체험에 대한 그의 개념은 일반인도 경험할 수 있는 인간 잠재력을 입증한 것이라 하겠다.
둘째, 우리가 평소에 의식하는 우리 자신의 인격(personality) 자체를 목적으로 보진 않는다. 이 인격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보다 상승된 자기로 진화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도구 혹은 껍질로 본다. 따라서 이 인격과 신체에 집착하고 이것만이 전부라고 보는 입장을 경계한다. 즉 인격은 영혼이나 영이 이 세계를 통해 항해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운반체로 본다. 그러므로 인격의 적절한 역할은 반투명한 창과도 같은, 내면의 신성에의 봉사자가 되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진화수준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궁극적으로 보다도 상위의 자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본다.
셋째, 자아초월심리학은 성장발달을 강조하는 심리학이다. 발달의 아주 미숙한 단계에서는 자신과 타인 혹은 대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을 겪는다. 이른바 ‘정상인들’이란 자신에 대한 비교적 안정된 개념과 감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그 믿음의 정도가 강하면 오히려 자신이 성장하는데 방해가 된다. 즉 어떤 한정적인 부분에 대한 집착과 동일시가 강해지는 것이다.
자아초월상담학의 주요한 개념 중의 하나는 탈동일시이다. 여기선 우리가 어떤 것에 동일시되고, 사로잡히는 것을 경계한다. 우리는 자신의 몸, 감정, 생각 나아가 자신의 소유물과 자신의 전체를 동일시하여 그것 이상의 것을 바라보지 못하거나 이 중의 어떤 것 하나에 매도되어 함몰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돈에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육체에서, 강박증 환자는 자신의 강박관념에, 우울증 환자는 자신의 심한 우울감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치료에선 동일시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이것보다도 더 큰 자신이 있음을 점차로 체험하게 함으로써 벗어나도록 한다.
불교의 사념처관思念處觀과 팔정도八正道의 정념과 같은 수행법은 탈동일시 방법론과 그 결과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켄 윌버는 그의 나이 불과 23세에 쓴 처녀작인 『의식의 스펙트럼』을 일반인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쓴 책의 제목을 『무경계』라고 지었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다름 아닌 이 동일시를 단계적으로 소멸해나가 궁극적으로는 일체의 동일시와 경계가 사라진 상태를 말하고자 한 것이다. 이것은 깨달음 혹은 신과의 합일과 다름 아니다.
넷째, 자아초월심리학은 개인성을 통하여 자아초월성으로 나아간다. 이것은 단지 우리의 인간성을 초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포괄적인 방식으로 내면의 신성을 인식하도록 우리의 인간성을 통해 작업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자아초월심리학은 개인의 성장과 성숙의 결과로 개인적personal 심리학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관점으로써 누가 자아초월에 대한 개념을 자아를 무시하거나 가볍게 보고 무의식이나 초의식적 세계만을 탐구하고, 이것과의 동일시만을 지향한다면 그는 진정한 자기통합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통합된 자아에 기초하여 사고하고 행동하며 이러한 자아란 다른 어떤 의식세계보다도 굳건한 바로 우리가 서 있는 터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일 자아초월적인 경험을 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국 자아로 되돌아오는데, 그가 진정한 통합된 자아초월적인 성취를 이루었다면 그의 자아초월적인 영역은 그에겐 이미 자아의 영역이 되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자아초월심리학의 주요 연구주제들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2) 심리치료와 명상, 명상심리학, 영성적인 길과 수련, 변화와 개인적인 변형, 심리치료와 상담교육에서 자아초월적 접근, 동서양의 종교적 비교적秘敎的 전통 내에서의 수련과 체험, 의식 연구, 중독과 회복, 환각제와 변성의식 상태 연구, 죽음, 죽어가는 것과 임사臨死체험, 자기실현 그리고 숭고한 가치, 심신관계와 그 치유, 신비주의와 샤머니즘 그리고 특이 체험, 사랑의 체험, 공감, 창의성과 영감, 채널링과 영계통신, 자아초월적 예술, 상위적 자기, 생태주의적 의식, 자기초월, 의식의 진화, 영혼의 암흑기, 원형적 체험, 불교심리학, 영적 돌발상황과 위기, 지식에 대한 통합적 접근, 자아초월적 연구방법, 자기와 자아실현 심리학, 꿈의식 및 자각몽,
“더 큰 의식상태와 더 높은 의식수준이란 없는가?”
현대의 상담학과 심리치료는 다음의 세 가지를 치유하는데 크나큰 공헌을 하였다.
첫째, 우리는 자신에게 허용하지 못하는 정서들을 억압하고 결국 이렇게 억압한 정서들을 다른 사람이나 외부에 투사하여 자신의 적으로 보기도 한다. 이것을 억압된 정서 혹은 칼 융의 심리학 개념으로는 자신이 알 수 없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그림자’라고 부른다. 이것의 치료는 이런 억압을 자각하고 수용하며 이해함으로써 가능하다.
둘째, 앞의 억압의 문제가 해결되어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우리의 자아 즉 마음하고만 동일시하고 몸과 자신은 분리된 것으로 생각한다. 몸은 마음의 요구를 수행하는 하나의 비서나 고용인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것을 진정으로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 결과 육체를 돌보지 않거나 심하면 육체적인 욕구를 죄로 취급한다. 그 결과 우리는 몸과 소통하는 법을 잊었고, 몸이 아파도 몸의 메시지를 듣지 못하여 큰 병을 오랫동안 키우고, 신체의 자율적인 작용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기 위한 수많은 약을 복용한다. 켄 윌버3)의 표현을 빌면 “나는 내 (생각하는) 머리이고, 나는 내 신체를 소유하고 있다.” 우리는 반쪽짜리 인간인 것이다.
셋째, 설사 운 좋게 진정한 자신을 마음과 몸의 통합으로 까지 체험하는 단계에 왔어도 우리 내부에선 보다 더 진정한 자기, 더 큰 자기, 초월적 자기를 원하는 것이다. 과연 나는 이 세계 이 우주와 단절된 존재인가? 분명 이 우주가 있어 내가 있는 것인데 나와 이 우주와의 관계는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이 죽음은 내 존재의 절대적인 끝인가? 내가 이 우주와 이 무한의 시간으로부터 왔다면 개체로서의 죽음은 존재해도 절대적인 의미에선 내 존재의 죽음이란 있을 수 없는데 왜 난 이토록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나는 내안에서 이젠 충분히 통합되어있다고 느끼며 만족스럽지만, 타인, 세계 그리고 우주와의 관계에서 나는 이들과 동떨어진 존재이며 우리는 하나가 아니고 분리된 존재인가? 우린 필시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을 것인데 왜 나는 이들을 하나로 느끼지 못하며, 이들을 나만큼 사랑하지 못하고, 나아가 이들을 위해 살지 못하는가? 나의 의식은 늘 느끼는 지금 이 의식상태가 전부인가? 더 큰 의식상태와 더 높은 의식수준이란 없는가? 보다 진정한 의미의 자아초월상담학은 바로 이러한 물음과 한계를 풀기 위해 있다.
몸과 마음의 통합 뒤의 초월적 자기와의 만남
우리들 대부분은 계산하고 생각하는 머리 중심으로 삶을 살아가며 몸을 소외시키고 있기 때문에 머리 즉 마음과 몸을 함께 통합하여 삶을 영위하는 방식만 성취하여도 삶의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이 단계를 윌버는 몸과 마음이 통합된 상태 즉 켄타우로스(Centaur, 伴人) 수준이라고 불렀다. 자아초월상담 혹은 자아초월심리치료가 이 몸과 마음을 통합하고 나아가 초월적 자기를 만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먼저 켄타우로스 수준에 대해 알아보고 자아초월상담학을 소개하고자 한다.
● 켄타우로스 수준의 심리 상담 : 삶의 진정한 의미와 근원적인 자기 찾기
먼저 예를 들어보자, 어떤 성공한 사업가가 중년이 넘어 정신적인 회의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가 고민하는 내용은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모든 것들이 허망하게 보였고, 늘 함께 즐기던 친구들도 예전만큼 만나고 싶지 않고, 좋아하던 취미생활들도 시들하게 느껴진 것이다. 그는 학력이나 재산 그리고 사회적 인정이나 자녀들의 성공에 이르기 까지 남부러운 것이 없었다. 이젠 예전과 같은 세속적이고 사회적인 성공이 그에겐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심한 우울과 계속되는 불면증을 치유하기 위해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가 받은 상담에선 계속 어린 시절에 힘들었던 내용들 특히 가족관계에서 어려웠던 것들을 중심으로 면담을 해나갈 뿐 정작 그가 답을 얻고 싶어 하는 실존적인 질문들에 대해서는 상담자가 답을 주지도 못할뿐더러 그런 질문들은 모두 자신의 본래 문제나 고통 혹은 증상들을 위장하기 위한 하나의 교묘한 방어수단으로써 나온 것이라는 입장을 상담자는 취하고 있었다.
그래도 상담자가 이 방면에는 매우 권위 있는 전문가라 하여 가능하면 상담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물론 상담 중에 어렸을 때 부모와 좋지 않았던 기억들도 떠올랐고 자신의 주된 감정들이 무엇이고 자신의 대인관계 양상이 어떤지에 대해서 다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최초의 실존적인 고민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그의 우울이나 불면증은 거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심리상담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지금 예시한 사례와 같은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종종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인 심리상담에선 이러한 실존적인 문제에 대해선 종종 한계를 보인다.
이 사례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대단히 능력 있는 사람들, 지성과 사회적 성취에 있어선 상당히 높은 수준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좌절하고 낙담하며 살아가고 있거나 심지어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자살하기도 한다. 세계적인 문호 톨스토이도 그의 문학에 있어서 최고의 성공을 거둔 시점에서 극심한 실존적인 위기를 겪었으며 그는 이러한 고민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나의 넓은 땅을 지키며, 내 아들을 교육시키고 아니면 책을 쓰는 일을 하기에 앞서, 나는 내가 왜 그것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만 했다. 내가 그 이유를 모르는 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살 수도 없었다…….나는 사람들이 완전한 행운이라 생각하는 모든 것을 내 주위에 갖고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서 있었던 자리가 와르르 무너져 버렸음을 느꼈다. 그리고 내 발밑에는 아무것도 남겨져 있지 않음을 느꼈다. 나는 내가 내 욕망을 만족시킬지 그렇지 못할지 미리 알았다.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맑은 정신이 드는 순간들에는 (나의 성공이) 하나의 망상이며 실제로는 희망하는 바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알았다.4)
이들은 개인적인 건강함이나 사회적인 성공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행복이나 성공에 만족을 못하는 사람 즉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보다 더 근원적인 자기를 찾아나서는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켄타우로스 수준의 심리 상담이다. 좁은 의미의 자아초월상담학은 이런 고대의 정신적 수련법들이나 현대에 새롭게 개발되고 있는 영적인 수련 방법들과 현대 상담학과 심리치료를 통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기존의 상담학과 심리치료는 주로 인간의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때 마음이란 어린 시절에 해결되지 못한 억압된 정서들의 문제(신경증)나 비현실적인 기대나 신념들을 수정하는 데 있어서는 탁월하다. 또한 자아가 튼튼하지 못하여 정서적인 억압조차 할 수 없는 심리적으로 매우 취약한 사람(정신증)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방금 예를 든 중년남자나 톨스토이와 같은 경우 이러한 대부분의 전통적인 상담과 심리치료는 치료의 한계를 느끼며, 하나의 인격을 떠난 초월적인 자기(transpersonal Self)를 만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더 한계를 갖는다.
● 자아초월적 접근을 실현한 심리치료자들과 기법
이미 상담이론의 대표적인 상담이론가들 중에 칼 로저스, 빅터 프랭클 그리고 프릿츠 펄스 등은 자아초월적인 접근을 한 인물들이다.
칼 로저스: 칼 로저스는 서양 상담학의 대표자 중 한명인데 그는 상담에 자기진실(즉 알아차림)과 공감 및 수용(즉 조건 없는 사랑)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인물이다. 그의 상담 방법은 매 순간 면밀하게 상담자 자신의 경험들을 내성하고 그것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점에서 위빠사나 수행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단지 알아차린 내용을 상담 중에 내담자에게 필요하다면 표현하며, 알아차림을 얼마나 치열하게 깊이 하느냐 하는 점에서 그 차이가 있다. 또한 그는 내담자의 표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공감’하며 내담자라는 존재 자체를 조건 없이 수용하고, 내담자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도록 한다는 점에서 거의 아가페적인 사랑이나 자비관 수행을 하는 경지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상담을 기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라는 존재에 대한 최고의 사랑으로 대한다는 점에서 그는 자아초월적인 접근에 가까이 가있다. 또한 개인의 심리내적 체험 역시 충분히 흘러가도록 놓아둘 때 고통 받지 않고 놓여난다고 강조한 것은 이것이 초월적 자기 체험에 가까이 가도록 한다는 점에서 자아초월적인 입장에 가깝다.
로저스는 그의 인생 후반에는 심령적, 영적인 체험들을 많이 하게 된다. 영매와 대화를 하기도 하고 때론 집단상담 중에 난관에 부딪힐 때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말이 튀어나오면서 오는 체험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젊어서는 기독교인이었으나 점차 동양문화와 동양사상에 관심을 갖게 되고 특히 노년에는 불교, 선, 노자, 역경 등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5)
빅터 프랭클: 그는 유태인 심리치료자로써 악명 높은 다카우와 아우슈비츠 나치 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수용소에 가기 전부터 이미 유명한 심리치료자였으나 삶의 의미를 강조한 그의 철학은 그가 수용소에서 극한의 고통체험을 하면서 더욱 더 증명될 수 있었다. 인간은 자신의 생물학적인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간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심리적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 정신적, 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본성을 갖고 있음을 그의 삶에서 그리고 수많은 내담자들을 심리치료하면서 증명하였다.
그는 기존의 서구 자본주의적 가치에 정면으로 맞서 도전한다. 즉 행복은 구하면 구할수록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에 반대하여 그는 진정한 행복과 쾌락은 자신이 진정으로 의미를 두고 원하는 것을 추구한 결과 그 부산물로써 주어지는 것이라는 입장에 서있다.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있지만 행복의 수치가 과연 얼마나 예전보다 증가했을까하는 점에선 회의가 든다. 일은 더 많아졌고, 생활은 더 바빠졌으며, 중병은 도처에 더 많아진 것 같다.
그의 또 하나의 철학은 우리는 환경과 세상을 바꾸기는 어려워도 세상에 대한 태도는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기 때문에 태도를 바꿈으로써 세상을 전과 달리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이 점에서 우린 세상을 초월하는 존재이며 영원히 자유롭다. 그는 유태인이지만 불교의 무상의 개념을 받아들인다. 무상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더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고 본다. 만일 우리 존재가 영원하다면 우리는 더 의미 있는 것을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무의식과 양심을 대하는 태도도 종래의 정신분석과 다르다. 무의식에도 신성이 있다고 보는 영성적 무의식을 언급하며 무의식을 극복하는 방법도 그것을 분석하기 보다는 의지와 의식적 태도를 사용하여 극복한다. 예를 들면 심인성 불면증이 있는 경우 오히려 극단적으로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함으로써 무의식의 지배를 초월하는 방법을 쓴다. 대인불안으로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 더 붉어지도록 의지적으로 애를 쓰며 나아가서 자신의 곤란한 상황을 유머를 사용하여 작은 자아를 초극하도록 하기도 한다. 고도의 영적인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도 그는 증상과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만을 달리 취함으로써 증상을 해소시킨다. 그의 치료 사례들은 인간의 초월성이 갖는 위대함을 늘 느끼게 해준다.
그의 책들은 사실상 매우 철학적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삶과 사람들에게 주는 희망과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 그리고 초월적인 메시지들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져주고 있다.
초월적 자기 수준
엄격하고 좁은 의미에서의 자아초월상담학이란 우리들 하나하나의 인성이나 개성을 초월해 존재하는 초월적 자기를 포함하는 상담학을 말한다. 여기서는 의식의 변성, 신비적 결합, 우주적 합일과 같은 상태들이 포함된다. 즉 자아 초월적 상담은 몸과 마음의 통합으로의 자아마저도 넘고, 일상적으로 경험되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의식의 확장을 수반하는 체험을 포함한다. 이런 체험들은 매우 강력하며, 개인의 기존의 자아감, 정체성, 인간관계, 생활방식 그리고 우주관 등을 바꿔놓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자아초월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네 가지 주요차원을 가지고 있다.6)
첫째는 자기 반성적인 의식이다. 자아초월 모형에선 정상적인 의식을 방어적으로 위축되어 있고 범위가 협소해진 상태로 본다. 단지 외부 사물을 지각하고 생각하며 느낌을 갖는 기능에 불과하다. 전통적인 심리학과 상식은 인간의 의식은 단지 깨어있는 상태, 잠자는 상태, 꿈꾸는 상태 그리고 도취된 상태로만 존재하다고 보고 심지어 의식이 높은 상태로 변화되는 것은 심지어 정신이상이니 해로운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자아초월적 관점에선 최적의 의식 상태는 이런 정상의식보다는 확장되어 있고, 잠재적으로 보다 더 유용한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본다. 이런 상태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면서 환상으로 인해 생긴 지각상의 왜곡을 제거할 때 이루어진다. 스리 오로빈도는 이 상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깨달음에 이르는 열쇠가 되는 기초가 마음의 평정이다. 실제로 정신의 기계가 작동을 멈출 때 온갖 종류의 발견이 이루어진다.……생각하는 힘(일상적 의식)이 놀랄만한 선물이라면 생각하지 않는 힘(초월적 의식)은 그보다 더한 선물이다.” 따라서 자아초월상담은 의식을 변형하기 위한 명상과 같은 많은 기법들을 사용한다.
둘째, 인간은 과거와 그 외 수많은 요인들에 의해 조건화되어 있다. 그 결과 우린 집착과 욕망에 사로잡혀 산다. 자아초월상담의 목적은 이런 인간의 본질적인 조건화라는 덫으로부터 깨어나도록 한다.
셋째, 전통적인 심리학은 행복을 위한 개인의 인격(자기 정체성, 개성, 성격)을 지나치게 강조해왔다. 즉 보다 강한 인격, 확고한 정체성과 주체성 그리고 강력한 자아강도 등을 주장한다. 그러나 자아초월적 관점은 인격은 존재의 단지 한 국면에 불과하며, 인격의 일부분을 변화시킨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건강해질 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즉 인격으로부터 벗어날 때 즉 탈동일시 할 때 궁극적인 건강에 도달한다고 본다.
넷째, 보통 전통적인 심리학은 외부 사물에 집착하거나 어떤 사회적인 역할에 깊이 관여되어 있을 때만 동일시되어 있다고 보고, 심리적인 내면의 과정과 동일시는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마음이 흘러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자동적으로 일어나며 일어나는 생각은 내게 그럴듯한 명분을 늘 부여하기 때문에 우리는 매 순간 일어나는 생각에 큰 가치를 부여하며 그 생각을 따라갈 뿐이다. 우린 일어나는 생각을 그대로 진행시키고 만다. 이것이 얼마나 강력하고 무서운 힘을 발휘하는지에 대해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란 바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다. 우리라고 하는 모든 것은 우리의 생각과 함께 생겨난다. 우리의 생각으로 우리는 세계를 창조한다.” 따라서 자아초월적 관점에선 심리적인 내면의 과정과 동일시되어 있는 것을 외부 사물과 동일시하는 것보다도 더 경계한다. 외부의 사물이나 사회적 역할은 물론 자신의 내면의 심리적 과정과도 동일시하지 않고 지켜볼 수 있는 자는 자신이 전체(우주)와 연결되고 전체와 하나가 되고 또는 전체 그 자체가 되었다고 느낀다. 이와 같은 해방감이 자아초월적 수련의 목표이기도 하다.
자아초월상담학의 대표적인 방법론
자아초월상담학은 아직도 변화 발전하고 있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그 목적, 범위, 종류 등에 대하여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자아초월상담학의 일반적인 목적은 일반 상담과 심리치료에서 하는 것과 같은 심리적인 증상의 완화와 문제의 해결을 돕는 것에 더하여 내담자에게 내재해있는 최고의 잠재력인 초월적 자기를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이 평소에 알고 있던 자신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보다 높은 차원의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체험함으로써 평소 매여 있던 많은 문제들에 놓여날 수 있다. 그는 이제 자신과 삶을 바라보는 조망이 커진 것이다. 그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이전보다 대단히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서 차원을 달리하여 이전에는 애벌레로써 기어 다녔으나 이제는 나비가 되어 하늘을 날 수 있는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개인에 따라선 일상의식의 차원과 초월적 경험을 오가며 그의 수련의 정도에 따라 점차 초월적인 차원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다. 마치 요가에 다양한 방법들이 있어 요가수행자가 자신의 성향과 자질에 맞게 요가수행법을 선택하여 수행을 하듯이 이 분야에도 매우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탈동일시 방법이다.
‘탈동일시’는 우리의 초월적 자아를 비교적 쉽게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다. 탈동일시는 이것 자체를 목적으로 한 특정 수련을 통해서 획득될 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의 수련을 통해서 문득 현재의 의식 상태에서 탈동일시 되면서 다른 높은 의식차원에 도달하게도 된다.
윌버7)에 의하면, 이 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자아 또는 켄타우로스와만 동일시하지 않게 되고, 순전히 사적인 문제와 사건에 의해 질식되지도 않는다. 어떤 의미에선, 자신의 개인적인 근심걱정을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둘 수 있으며, 따라서 창조적인 초연성을 유지한 채 그런 것들을 지켜볼 수 있다.……의식표면의 파도가 고통․불안․절망이란 급류에 휩쓸릴지라도 깊은 바다 속과 같이 평정을 유지하는 조용한 내적인 힘의 근원을 발견하게 된다.”
윌버에 의하면, “초월적 자기란 자신의 사적인 마음․몸․감정․생각․느낌들로 부터 초연한 각성의 창조적인 중심이자 확장된 각성이기 때문에” 아사지올리에 의해 강조된 탈동일시의 구체적 기법을 윌버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나는 몸을 갖고 있지만, 나는 나의 몸이 아니다.…… 나는 이런 저런 욕망을 갖고 있지만, 나는 나의 욕망이 아니다.……나는 감정을 갖고 있지만, 나는 나의 감정들이 아니다.…… 나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나는 나의 생각이 아니다.” 이것을 어느 기간 동안 꾸준히 여러번 암송하는 수련을 하고 나면 순수한 각성의 중심에 머물게 되며, 또한 모든 생각․감정․느낌․욕구에 대한 부동의 주시자가 될 수 있다.
자아초월상담학의 방법론은 전통적인 상담과 심리치료에 더하여 앞의 탈동일시 방법 이외에도 다양한 동서고금의 초월적 자기에 이르도록 돕는 방법들을 사용한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명상방법들, 기도, 만트라, 춤과 의식儀式, 다양한 종류의 요가수행(즉, 하타 요가, 라자 요가, 까르마 요가, 박티 요가, 라자요가), 많은 밀교적 수련법들, 감정의 정화, 급격한 심리적 퇴행을 촉진하는 여러 심리치료법들 그리고 타인에 대한 봉사와 삶에 대한 깊은 철학적 사색을 거친 이해 등이 있다.
대표적인 자아초월상담들은 무엇보다도 전통적인 상담과 명상을 접목한 것이다. 명상은 의식의 변성을 꾀하는 방법이다. 내담자들에게 명상을 가르침으로써 자신의 의식과정을 관찰하고 주시하는 힘을 길러준다. 즉 자신의 심리적 과정들에 압도당하지 않고(동일시) 그 위에 설 수 있도록(통제와 탈동일시) 도와준다. 사실 명상과 심리상담은 둘 다 자각을 가장 강조한다는 점에서 이미 결정적인 공통점을 서로 갖고 있었다. 그런데 명상은 초월적 자기를 만나는 단계까지 밀어붙이고, 심리 상담에서는 좀 더 개인적인 수준에서의 자각에 그친다.
따라서 자아초월상담에서 명상을 도입하는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다. 명상의 도입도 내담자와 상담자의 문화에 따라서 다양한 명상방법을 도입할 수 있다. 어떤 내담자는 염불이나 관상기도가 더 좋을 것이고 어떤 내담자는 소리를 내면 외우는 만트라가 도움이 되며, 어떤 내담자는 아즈나 차크라(제 3의 눈)에 집중하는 명상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또 다른 내담자는 경전이나 성서를 읽고 반성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대표적인 자아초월상담가인 S. 그로프는 대단히 격렬한 호흡법을 음악과 함께 도입함으로써 의식의 변성을 꾀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는 퇴행을 유도하여 자궁내의 기억과 산도産道 출산 체험을 회상시키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의식의 변성을 꾀하는 명상을 도입하는 방법 외에 인식의 근원적인 변화를 꾀하는 철학적인 접근법도 있다. 이 삶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바로 보는 철학적인 수련이다. 이 방법의 결과로 무소유와 무아 그리고 무상의 개념을 획득하게 된다. 특히 많이 도입하고 있는 것으로 기적수업(Course in Miracle)을 들 수 있다. 당연히 기본적인 불교철학들이 도움이 되며, 아주 쉽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Epictetus의 글들 그리고 삶의 깊은 철학적인 의미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프랭클의 의미치료(logotherapy)가 탁월하다.
전형적인 심리적인 접근으로는 칼 융의 분석심리학을 들 수 있다. 융 분석가들은 인류의 보편적 의식인 집단무의식에서 비롯된 원형의 의미를 분석하거나,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동시적 사건들(동시성)의 의미를 파악함으로써 점차 초월적 자기와 만나도록 돕는다.
이외에도 강력한 집단상담 체험에서도 초월적인 자기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엔카운터 그룹(참만남 집단)이 추천된다. 여기서는 사회적인 역할과 가면을 최대한으로 벗고, 온전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 대면한다. 부버의 ‘나와 너’의 체험이 종종 일어난다. 부버가 말한 너란 곧 상대적인 나를 초월한 절대적 근원자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전형적으로 자기초월적이다.
또한 예술 매체를 심리 상담과 통합하여 초월적 자기를 경험하도록 도울 수 있다. 대표적으론 미술, 음악, 동작(춤) 등이 있다. 그림을 통하여 깊은 자신의 내면의 세계와 만나서 때로는 만다라가 나오고 깊은 원형이 형상화되기도 한다. 격렬하면서도 정신적으로 깊이 있는 음악을 도입함으로써 의식을 고양시켜 초월적 자기와의 접촉을 용이하게 해준다. 이때 신체동작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으로 권해진다. 이러한 체험을 그림으로 그리게 하기도 한다.
맺는 말 : 영적 전통의 수련과 상담 및 심리치료의 만남
세계의 영적 전통에선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의 마음에 대한 심오한 이해와 마음을 높은 단계로 승화시키고 해방시킬 수 있는 놀라운 방법들이 개발되어 왔다. 이들은 대체로 그 초점이 우리의 작은 자아를 넘어서 보다 더 크고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자아 즉 자아초월적 자아(transpersonal Self)로 이끄는데 그 목표를 두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영적 수련법들은 그 초점이 항상 초월적 자아와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우주적 합일의식에 도달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개인의 작은 문제들을 치유하는 데는 소홀했다. 아마 개인의 작은 문제들을 아무리 많이 해결한다고 해도 여전히 작은 자아로 머물러 있을 것이고 결국 초월적 자기가 되지 못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고통을 멈출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에 초월적인 수련법들이 주로 개발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영적 전통의 초월적인 방법들로 수련하는 사람들은 상담과 심리치료 기술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거의 자명하다. 더욱이 영적 수련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영적인 도피들이나 공격적 영성과 같은 문제는 심리치료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
이에 비해 현대의 심리치료는 초월적인 부분에 있어선 매우 약하기 때문에 초월적 자기에로 까지 도달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심리 치료적으로 신체를 통합하고 자아를 확장하여 전유기체적 존재로 만족하는 것을 넘어서 더 큰 자기와 접촉하도록 돕기 위해 초월적인 방법을 도입하게 된다. 좁은 의미에서 자아초월상담학은 바로 전통적인 심리치료와 초월적인 기법의 통합으로 내담자를 돕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아초월상담학은 어디까지나 서구의 상담학과 심리치료에 기반을 두고 발전한 것이다. 따라서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억압된 감정문제의 해결과 소외된 신체와 마음 간의 통합을 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 본격적인 상담전문가 수련을 받아야 하고, 나아가 보다 근원적이고 초월적인 자아를 만나기 위한 자신만의 철학과 방법론에 숙달되어 있어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의식의 발달 단계를 판단하는 눈과 이 단계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정신병리들을 볼 줄 알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영적전통들이 갖는 많은 함정들 (예컨대 현실에 대한 도피로 영적수행을 하려는 ‘영적 우회’ 현상, 영적 지도자가 보일 수 있는 병적인 측면 즉 지도자가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여 교묘하게 권력의 횡포를 부리는 것 등)을 감별할 수 있는 임상가의 눈을 키워야 한다.
우리들은 바로 이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의식의 낮은 단계에서 보다 높은 단계로 올라갈 수 있는 다양한 치유법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린 대단히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우리들이 조금만 더 현명하여 고통을 치유하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도 자신의 고통에서 빨리 치유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날 수 있다. 이제는 서구적인 상담만으로도 그리고 영적 전통의 방법만으로도 부족하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다행히 인간의 의식과 정신병리 그리고 그 치료법에 대하여 유사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알고 있으며 그 이 두 전문성이 통합된 치료법들을 이젠 만날 수 있다. 자신의 고통을 자기 스스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요 두려움의 표현일 뿐이다. 우리 모두 점차 자신의 현재에서 다음 단계의 더 높은 자아를 찾을 수 있길 기원한다.
글 | 김명권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자아초월상담학 전공 주임교수(현재 상담심리학과 학과장). 교육학 박사. 광운대학교, 경상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역임, 한국집단상담학회장 역임, 임상심리전문가, 상담심리전문가, 트랜스퍼스널 학회 이사, 초월영성상담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