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대구문학》신인상.
박해리 (본명 朴敬姬) 시인
1970년 경북 상주 출생
2004년 <대구문학> 등단
주소 ; 대구 수성구 범물2동 1328 범물서한화성타운 101동 1002호
가장 편안한 식사
- 박해리
연근은 간장을 너무 많이 넣고 졸여 많이 먹기에 부담스럽고
게장은 덜 삭혀 아직도 뽀족하게 날이 서 쉽게 먹을 수 없고
오늘 오이 무침은 아삭하니 연한 맛이 씹기에 딱이다며 마구 씹어대는 그들은
내가 그들처럼 씹고 난 뒤 화잗실에서 똥이나 눈다고 생각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소심한 위장을 가지고 태어난지라 씹는 데 익숙지 못한 나는
늘 반찬이 변변치 못하여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소심한 위장을 탓하며 화장실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그들 앞에서는 나의 작은 위장을 들키기 싫어 얼굴에다 분칠을 하였다
밀가루 반죽처럼 얼굴이 허연 날은 그만큼 많은 밥과 커피를 화장실에서 먹은 날이다
귀신 같은 얼굴이지만 생기를 잃지 않는 나를 그들은 의아해하며 계속해서 함게 밥을 먹자고 했다
허기가 심하게 진 어느날, 오그라든 위장이 먼저 달려간 화장실에
벌써 하얀 분칠을 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밥과 커피를 먹고 있었다
그 날 나는 비로소 그들의 자리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저는 바퀴벌레를 사랑했습니다
- 박해리
제 두 손엔 언제부턴가 바퀴벌레 두 마리가 살기 시작했습니다
왼손에 한 마리
오른손에 한 마리
드 놈들은 항상 서르를 경계하며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저와 사이졸게 팽팽한 구도로 지내고 있는 셈이었죠
그들의 평화를 깨지 않기 위해 칭얼대는 녀석들에게
항상 공평하게 저의 심장을 떼어주는 것은
저의 큰 일과였습니다
별 분쟁 없이 그들도 저와 함께 늙어가고 있었죠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 기력이 쇠한 틈을 타 두 녀석들이 몸집을 키우며
균형을 깨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모두가 혐오하는 바퀴벌레가 없는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졌습니다
난초를 키우거나 따뜻한 혀로 손을 핥아 대는 그런 것들을 키우면서 말이죠
한 손의 바퀴벌레를 내려놓으려는 찰나
다를 한 손의 바퀴벌레가 저를 갉아 대기 시작했습니다
믿으실지 모르지만 저는 바퀴벌레를 사랑헸습니다
창밖에서 보이는 창 안의 난초와 따뜻한 혀만을 가진 채
결국 저는 좀 불편하지만 앙손에 함께 바퀴벌레를 키우며 살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바퀴벌레를 혐오하며 죽이려하지만 한 사람은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