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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1.09
첨단 소재가 된 나무
▲ /그래픽=유재일
우리 주변의 물건은 유리, 플라스틱, 금속 등 다양한 재료로 이뤄져 있습니다. 물건의 용도에 따라 적합한 재료를 써서 만든 겁니다. 건물은 튼튼해야 하므로 벽체에는 단단한 시멘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신 실내에서도 밖을 바라볼 수 있도록 투명한 유리로 창을 냅니다. 필통이나 배달 용기처럼 물건의 무게가 가벼워야 하면 플라스틱을 씁니다. 머리끈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해야 하니 주로 고무로 만들죠.
최근에는 나무 재료가 특히 주목받고 있어요. 나무는 한옥이나 거북선처럼 과거에 쓰던 전통 재료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요, 이제는 첨단 산업에서도 나무가 활약한다고 하네요. 나무에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요?
'우주 최강' 목련 나무는 인공위성 재료
나무로 만든 인공위성 '리그노샛(LignoSat)'이 올해 우주로 날아갈 예정입니다.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 과학자가 이끄는 국제 공동 연구팀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인데요, 인공위성을 나무로 만드는 것은 세계 최초예요. 리그노샛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0㎝로, 크기가 일반 머그컵처럼 조그마한 '초소형' 위성입니다.
그동안 인공위성은 주로 알루미늄 금속으로 만들었죠. 우주는 온도, 기압 등 환경이 지구와는 전혀 다른 혹독한 환경이에요. 햇빛이 내리쬐면 섭씨 120도까지 오르고, 행성의 그림자가 덮이면 영하 270도까지 내려가요. 게다가 실시간으로 날아와 부딪히는 우주 먼지와 우주 방사선도 견뎌내야 해요. 이렇다 보니 온도 변화와 충격에 강한 금속 소재를 써야 했던 거죠. 여기에 인공위성 무게가 가벼워야 로켓에 실어 하늘로 날려 보낼 때 연료가 적게 들겠죠? 가벼운 금속인 알루미늄을 택한 이유입니다.
인공위성을 나무로 만들려는 것은 우주 쓰레기 문제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인공위성은 임무를 마친 뒤에도 우주 공간에 남아 둥둥 떠다니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러다 국제우주정거장이나 한창 운영 중인 인공위성들과 부딪쳐 사고가 나기도 해서 위험했죠. 하지만 나무로 만든 리그노샛은 지구 대기권으로 들여보내면 불에 완전히 타 없어지기 때문에 우주 쓰레기가 생길 걱정이 없어요. 물론, 나무는 금속보다 가벼워서 연료 비용도 덜 든답니다.
문제는 '나무가 우주 환경에서도 갈라지거나 뒤틀리지 않고 튼튼하게 유지될 수 있느냐' 하는 겁니다. 연구진은 '국제우주정거장(ISS)' 바깥에 체리 나무, 자작나무, 목련 나무 등 여러 나무 재료를 놔두고, 주변 온도가 영하 100도에서 영상 100도 사이를 오가는 우주 환경에서 나무 재료가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했어요.
나무가 우주 환경을 이겨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연구진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어요. 나무 샘플들은 방사선과 우주 먼지 등에 의해서도 표면이 깎이거나 망가지지 않고 잘 버텨냈어요. 그중에서도 목련 나무는 가공성, 단단함, 안전성 등 여러 항목에서 가장 우수했습니다. 그래서 첫 나무 인공위성은 목련 나무로 만든답니다.
'나무' 풍력발전기로 이산화탄소 90% 줄여
혹시 강원도나 제주도를 여행할 때 커다란 선풍기처럼 생긴 풍력발전기를 본 적 있나요? 바람의 힘으로 커다란 프로펠러를 돌리면 운동에너지가 만들어지고, 이를 전기에너지로 바꿔 우리가 쓰는 전기를 만드는 거예요. 풍력발전기도 인공위성과 비슷하게 튼튼하고 가벼워야 해요. 강한 바람도 버텨내야 하는 몸통은 단단한 강철로 만들었어요. 또 바람에 따라 빙글빙글 돌아야 하는 프로펠러엔 가벼운 탄소섬유나 알루미늄 재료를 썼어요.
그런데 최근엔 나무로 만들어진 풍력발전기가 등장했습니다. 스타트업 '모드비온'이 스웨덴 베스트라예탈란드주 스카라시 숲에 세계 최초로 목재로 만든 풍력발전기를 세운 겁니다. 친환경적이라는 것이 장점이에요. 나무는 자라는 과정에서 지구 온난화 문제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합니다. 또 나무는 가볍기 때문에 재료를 운반할 때 연료가 적게 들어 환경에 도움이 돼요.
나무로 만들더라도 기존 재료에 못지않게 단단해야 하겠죠? 우선 나무로 얇은 판을 만들어 144겹씩 쌓아 붙여요. 여기에 열과 압력을 가해 밀도를 높여 단단함을 키웠죠. 마지막으로 비바람이나 화재 등에 훼손되지 않게 가장 바깥 부분에 두꺼운 페인트를 칠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이렇게 만든 나무 합판은 높이가 105m에 이르는 거대한 발전기의 몸체가 됐답니다. 강철과 콘크리트만큼 단단하면서도, 건설 공사 중 이산화탄소 배출이 90% 줄어서 친환경적이라고 해요.
고층 빌딩 지을 때도 단열 효과 더 좋아
현재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 콘크리트 건물로 이뤄져 있어요. 19세기 중반 이후 철근과 콘크리트가 건축 재료로 각광받아 왔거든요. 더 단단하고 불에도 강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오래전 조상들이 짓고 살던 집을 보면 나무로 지은 집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왕이 머물던 궁까지도 나무 건축물이었죠.
나무는 현대 도시 건축의 '대세 재료'로 다시 떠오르는 추세예요. 앞서 봤듯이 나무 재료는 친환경적이면서도 가공을 거치면 단단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나무는 열을 밖으로 빼앗기지 않거나 안으로 들어오지 않게 하는 단열 효과가 좋아요. 건물에 필요한 냉난방 에너지를 적게 쓸 수 있어 친환경적이에요.
세계 곳곳에선 나무로 초고층 빌딩을 짓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답니다. 대표적으로 오스트리아 빈에는 24층짜리 초고층 목조 빌딩 '호호 빈'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나무로 만든 건축물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경기 수원에 있는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유전자원부 연구동은 지상 4층의 목조 건축물이랍니다.
이윤선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장근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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