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1일- 고린도전서 14:34-40
시편 73:1-9/ 찬송 214장
품위 있고 질서 있게
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
36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은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
38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한 자니라
39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40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바울은 14장을 마무리하면서 신앙공동체의 예배 질서를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바울의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34)와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35)는 말은 오해를 살 만합니다.
물론 바울의 발언은 여성의 말과 언어를 절대 금지한 것이 아닙니다. 앞서 바울은 여성이 기도하고 예언하는 사실을 이미 인정한 바 있습니다.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고전 11:5).
그러므로 “잠잠하라”는 바울의 말의 맥락은 여성의 발언에 대한 금기가 아니라, 당시 예배 가운데 나타난 무질서를 제한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와 하나님의 말씀을 특별한 사람이나, 집단이 독점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36).
따라서 바울의 강조점은 신앙공동체 예배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안에 자신을 특별히 영적인 사람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었지만, 바울은 참된 영성은 공동체 질서를 무너뜨리는 데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거듭거듭 사도의 권위로 말하는 배경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편지하는 이 글이 주의 명령인 줄 알라”(37).
그러면서도 바울은 은사 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39).
중요한 것은 은사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느냐입니다.
예배는 혼란과 과시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평화가 드러나는 자리여야 합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40).
☀ 바울 앤솔로지
163)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
참된 영성은 무질서한 열광이 아니라, 서로를 세우는 품위와 화평 속에서 나타납니다.
교회의 예배는 각자의 감정을 쏟아내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함께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지 않고, 성령의 역사가 공동체 안에서 바르게 드러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억누르는 규칙이 아니라, 공동체를 살리는 사랑의 질서를 강조합니다.
교회의 예배는 품위와 질서 가운데 드리며, 이를 통해 세상 앞에 하나님의 평화를 증언합니다.
샬롬샬롬
첫댓글 "바울의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34)와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35)는 말은 오해를 살 만합니다.."
너무 오랫동안 바울의 발언은 교회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말에 근거해서 여성성과 여성의 역할이 규정되어왔습니다. 여성 안수도 주지 않았고, 여성의 모성을 공동체 리더십이 아니라 사적인 영역에 제한해 왔습니다. 잔다르크가 화형당한 이유는 그녀가 남성옷을 입고 남성의 영역에 도전했기때문이었습니다. 여전히 교회의 리더십은 남성의 영역입니다. 여성들에게 암묵적으로 잠잠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내가 받은 은사가 교회의 덕을 이루고 하나님의 평화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기 원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주신 은사 앞에 경건과 절제 그리고 자신을 내려 놓고 남을 먼저 배려하며 경쟁이 아닌 주님 중심의 서로 존중하는 화평한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도록 함께 힘쓰는 우리 공동체 되도록 이끌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