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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맥
김 영 수
1
병원 문은 열어놓았지만, 환자를 안 본 지가 벌써 어제 오늘 이틀째다.
이틀 동안 아무런 환자가 와도, 이박사는 간호부를 시켜, 늘
“어디 왕진 나갔다 그러우.”
해서 따버렸다.*
병원에서도 그러했지만 언제나 집 안에서는 더욱 말이 없는 이박사의 태도가 어제오늘 지간에 더욱 확 변한 것 같았다.
병원 안채가 바로 살림집이니까 웬만치 익숙해진 환자들은 간호부가 말려도 듣지 않고 으레껏 한 번씩은 안으로 들어와서 ‘선생님’을 찾았다.
이런 경우를 당할 때마다, 제일 난처한 것은 박사의 부인 안씨였다.
번연히 건넌방에 있는 남편을 없다고 따자니 버적버적 땀이 날 지경이었다. 차라리 어디로 휙 나가고 정말 없기나 했으면, 거짓말을 해도 힘이 안 들겠는데, 뻔히 있으면서 없다고 하자니 힘이 들고 성가셨다.
오늘도 벌써 오정이 가까워오는데, 건넌방에선 역시 잠잠하다. 아침 밥상을 가져오란 말도 없다.
안씨부인은 인제 더럭 겁이 났다. 공연히 자꾸 마음이 불안해갔다. 젊은 사람과 달라, 낼모레면 육십의 고개를 넘어설, 노경에 든 남편이다.
‘저러다가 정말 병이나 나서 누우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또는
‘아마 저이가 요새 기호 때문에 맘이 변했나봐.’
하는 생각에, 늘 마음은 불안할 대로 불안해만 갔다.
기호(基昊)란, 이들 틈에서 난 외아들의 이름이다.
아버지의 뒤를 따라 모 의학전문학교에 들어가, 벌써 졸업이 몇 달 안 남은 장성한 아들이다.
웬일인지 기호가 집을 나가서, 통 소식도 없이 외숙을 하는 지가 오늘째 십여 일이 넘는다. 전에는 없던 버릇이었다. 동무끼리 어울려서 딴 데서 저녁 한 끼를 먹게 되어도, 기호는 언제나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던 기호다. 그러던 아들이 십여 일씩 나가서 종무소식이니, 첫번에는 벌컥 집안이 뒤집혀서 무슨 큰 소동이나 난 집 같았다.
그러나 여기저기 기호의 동무들을 찾아보고, 요즘 기호가 무슨 ×× 학생동맹의 일 때문에, 거기 빠져서 이리저리 싸다니느라 집에도 못 들어온다는 것을 안 연후에야, 그제서야 어머니는 얼마간 안심을 해오던 참이다. 그러나 한편 불안하고 궁금한 마음은, 자나깨나 그림자같이 안씨부인을 따랐다.
‘필시 기호 때문에 저이가 저러지.’
어제오늘 사이에 유난히 달라진 남편을 의심하자면, 다만 생각키는 것은 기호 일건*뿐이었다.
이렇게 생각이 되니, 대체 나가서 요즘 그 녀석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건 모르겠지만, 우선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남편 앞에서 이런 기색을 할 수도 없다. 한 번 화만 나면 물불을 헤아릴 줄 모르는 남편의 성미다.
그러니까, 어제오늘 그저 눈치만 보아올 뿐이다.
바지지 바지지, 풍로에 올려놓은 찌개가 졸아붙는 모양이다. 안씨 부인은 또 아까같이 풍로에서 찌 개냄 비를 내려놓으려니까
“여보.”
하고 건넌방에서 남편의 부르는 소리가 났다.
네 소리도 채 할 틈 없이, 안씨부인은 우선 안방 문을 열고 첫마디에
“진짓상 디려오?”
하였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남편은 나직이
“이리 좀 건너오우.”
할 뿐, 목소리꺼정 힘이 없다.
안씨부인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왜 그런지 자꾸 불길한 생각만 들어갔다.
방금, 불길한 그 무엇이 건넌방에 벌어져 있는 것만 같이 생각되었다.
“좀 오래니까…….”
한 번 더 남편의 소리를 듣고서야, 안씨부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나직한 목소리다. 나직한 목소리니까 더욱 마음이 선뜩해진다. 차라리 버럭 화를 내든지, 거칠게 고함이라도 질러주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아내는 가만히 남편의 방문을 열었다. 이렇게 남편의 처소로 들어가기가 조심스럽고 두려운 것은 처음이었다.
2
날씨가 흐린 탓도 있지만 대체 얼마나 피웠는지 담배 연기가 자욱해서, 얼른 남편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거기 좀 앉우.”
하는 소리에, 안씨부인은 간신히 남편의 곁으로 가서 앉으면서
“진진 안 자시우?”
했지만, 역시 이것도 허청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우선 그는 남편의 기색을 살펐다.
팔짱을 끼고, 눈을 감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 뿐. 약간 몸을 좌우로 흔드는 것은, 언제나 남편이 무슨 깊은 궁리에 빠졌을 때 하는 버릇이었다.
“무슨 궁릴 그렇게 허시우?”
그러나 이 말에는 대답 않고
“이것 좀 읽어보우.”
하며 손바닥만한 종잇조각 하나를 내어 밀었다.
삐라였다.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요즘 거리에만 나가면, 하루에도 몇 장씩 구경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삐라였다.
“삼국외상회의절대지지(三國外#目會議絶對支持)”
우선 첫 줄에 커단 글자로 쓴 이것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잔 글자로 뭐라고 썼는지, 채 그것은 읽지도 않고, 우선 아까보다 얼마간 마음이 가라앉은 안씨부인은
“뭐 이런 걸 처음 보시우?”
하며 아주 천연스럽게, 이까짓 걸 가지고 뭘 그렇게 걱정이냐는 뜻의 태연한 표정을 해 보였다. 그리고 또, 얼른
“난 웨 그러신다구, 어서 진지나 자세요.”
하고 농조로 한마디를 덧붙여보았다.
하나, 남편은 역시 눈을 감은 채로
“글씨 자세 좀 봐.”
하며 약간 말끝에 노기를 띠었다. 역시 나직한 목소리였으나 말 끝에 힘을 주는 품이 방금이라도 버럭 큰소리가 터질 것을 억지로 참는 것이 분명 하였다.
심상치가 않았다. 필시 무슨 곡절이 있는 삐라구나 생각되었다.
아내는 얼른 종이쪽을 눈앞으로 도로 가져갔다. 그리고 이번에는 끝에서부터 훑어 읽었다. 아니, 채 읽어 올라가기 전에 안씨부인의 시선은 딱 끝의 줄에서 멈추고 말았다.
“× × 醫學專門學校 代表 李基昊”
더 더 눈을 크게 뜨고 보아도, ‘× ×의학전문학교 대표 이기호’가 또렷하다. 그러하고 이상하게도 도장까지 찍혀 있다.
대체 이게 어찌 된 까닭일까. 딴 글자는 모두 뿌옇게 되어 점점 없어지고, ‘李基昊’ 란 이름 석 자만이 뚜렷하게 두드러진다.
삐라 끝에다가 무슨 학교 누구라고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은 것이다.
심상치가 않았다. 곡절이 있어도 이만저만할 성싶지 않았다.
삐라를 든 채로 안씨부인은 부들부들 손을 떨었다. 가슴속에서 두근거리는 소리가 바로 귀밑에서 나는 것 같다. 그러자 별안간 콧날이 시큰해지며 눈앞이 희미해왔다.
다시 눈을 씻고 보아도, 벌써 집을 나가서 십여 일이 넘는 기호가 틀림없다. 기호 이름 옆에도, 대여섯 줄로 학교와 학생의 이름이 가지런히 적혀 있었다. 이것만은 모두 박은 것이 아니고 저마다 붓을 가지고 쓴 것을 보면 보통 그런 종류의 삐라와는 얼른 보아도 심상치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슨 군호* 속이 있는 종이쪽이 분명하였다. 그리고 역시 이름마다 도장이 찍혀 있었다.
“이눔이, 이눔이, 미쳤담.”
안씨부인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몇 번이고 자꾸 되풀이해 나올 뿐,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할 말이 없고, 들을 말이 없었다.
산부인과 의학박사 이필호(李弼浩) △△ 우익정당의 요직에 있는 사람이요, 그뿐 아니라 우익정당 전체를 통헤서도 현재 이만치 철저한 우익정객이 없음은 요즘에 와선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바로 며칠 전만 하더라도, 삼국외상회의를 지지한다는 좌익정당을 통렬히 비난하고 힐책한 논문을 각 신문에다 발표한 이필호 이박사다.
신탁 지지를 죽음으로써 반대한다는 성명서의 원고를, 손수 붓을 들고 쓴 이박사다.
삼국외상회의를 지지하는 것은 매국노의 행위라고 부르짖고 나선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이필호 박사다.
이런 집안에, 이런 테두리 안에, 이런 상서롭지 못한 일이 나다니, 안씨부인은 금방 눈앞이 캄캄해지며, 금방 그 자리에 픽 쓰러질 것만 같은 것을, 억지로 입술을 깨물며 진정하였다.
“여태 우리가 범의 새끼를 길렀어.”
그제서야 이박사도 이렇게 한마디를 하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3
이튿날은 서울운동장으로 열 시까지 대 가야 된다고 하며, 이박사는 아침도 몇 술 뜨는 둥 마는 둥 하고 나갔다.
아내가 무슨 일이냐고 물어도 시원스럽게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남편이 며칠 만에 처음으로 외출한 후, 방을 치우다가 그제서야 신문을 보고, 아내는 오늘 신탁통치반대 시위운동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저녁 늦게야 남편이 돌아오리란 것도 짐작하였다.
안씨부인은 간호부더러 집 좀 보아달라 부탁을 하고, 남편의 뒤를 따라 나섰다. 어디를 가자는 정망*도 없었다. 그저 허청대고* 나선 것이었다. 나서기만 하면 어떻게 하든지 기호를 만나게 되겠지 하는 생각에 집을 나섰다.
우선 마음 키는 데가 돈암정 산다는 기호의 동무 길수의 집이었다. 전부터 늘 친한 동무랬으니까 그리 가서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전차를 몇씩 기다려도 탈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냥 걸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돈암정까지만 가면, 가서 기호의 동무인 길수만 찾는다면, 기호가 대관절 지금 어디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헛수고였다. 돈암정이란 데가 그렇게 넓고, 그렇게 집이 많이 들어앉은 줄은 몰랐다.
동소문 밖만 나서면 되겠거니 하고 나섰던 것이지만, 어느 틈에 헐렸는지 동소문은커녕 동소문이 있던 터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서울 장안이 속속들이 변하도록 조금도 모르고 집 속에 틀어박혀서 머리가 반백이 되도록 허송세월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났다. 허청대고 아무 데나 가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다시 오던 길을 돌아서서 종로 사정목까지 왔을 때였다. 동대문 쪽으로부터 군악대 소리와 만세 소리와 아우성 소리가 한데 뒤범벅이 되어 들려 왔다.
아우성 소리는 점점 이쪽으로 가까워지며, 깃발과 사람과, 또 깃발과 사람과, 그칠 줄을 모르고 떼를 지어서 파도같이 자꾸자꾸 이쪽으로 몰려왔다.
“信託統治 絶對反對” 라고 쓴 깃발이 하늘에서 펄럭이며 자꾸 이쪽으로 휩쓸려 왔다. 손에 손에 깃발을 든 사람들이 모두 저마다, 노래를 부르며 만세를 부르며 힘차게들 행진을 하여 갔다.
어린아이들도 있고, 여학생도 있고, 애 업은 어머니도 있고…… 행렬 속에는 어른 아이도 없고, 빈부귀천의 구별도 없는 것 같았다. 누구나 조선 사람이면 따라나가는 행렬 같았다. 이렇게만 생각되었다. 아니, 서울 장안에 있는 어른 아이가 모두 따라나선 것 같았다. 온 서울 장안이 온통 들끓어 나온 것 같았다.
‘그놈이 필시 미쳤어.’
안씨부인은 여기서 불쑥 기호의 생각이 또 났다.
이렇게 온 장안 사람이 들끓고 야단인데, 그놈이 어쩌자고 저 혼자 동떨어져서 딴 길로 나갈까.
안씨부인은 이렇게 생각이 들자 꼭 자기가 지금 무슨 큰 죄나 저지른 사람같이 생각되어, 그 자리에 더 마음놓고 서서, 태연하게 구경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얼른 발길을 돌이켰다. 하나 사람 때문에 마음대로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나가려고 하면 밀리고 밀리고 할 뿐이다.
그때다. 안씨부인이 바로 걸어나온 동소문 쪽으로부터 트럭 한 대가 화살같이 이쪽 행길을 향하고 달려나왔다. 트럭은 행렬 중간을 무지르며* 거침없이 길 저편으로 건너서자, 삐라 뭉텅이를 여기저기 꽃송이 같이 뿌리었다.
손바닥만한 종이쪽은 행렬의 위를 뒤덮고, 거리에서 낙화같이 흩어졌다.
모두가 학생들이었다. 아니, 태반은 모자를 안 쓰고, 흰 수건으로 질끈질끈 머리를 동여매어서 잘 모르겠으나 태반은 사각모를 쓴 학생들이었다.
“앗, 기호야!”
안씨부인의 입에서는, 트럭을 바라본 순간, 이런 소리가 나왔지만 아우성 소리가 하늘을 덮고, 땅을 뒤흔드는 이 판에서, 아무도 이 소리를 들을 사람은 없었다.
기호였다. 그는 분명히 기호였다. 맨 뒤에 서서 방금 광고지 뭉텅이를 이쪽 행렬을 향해서 호기있게 뿌리고 간 웃통을 벗고 사각모를 쓴 학생, 그는 분명히 기호였다. 기호가 틀림없었다.
안씨부인은 사람들의 발길을 혜치고 간신히 삐라 한 장을 집어 보았다.
“三國外相會議絶對支持”
첫눈에 첫 줄이 뜨였다. 그는 단숨에 훑어 읽었다.
그렇다. 끝에 무슨 학교 이기호란 이름이 씌어 있던 아까 아침에 집에서 본 바로 그 삐라다.
그는 얼른 삐라를 손아귀에 말아쥐고 발돋움을 해가며 트럭이 달려간 곳을 바라보았다. 벌써 어디로 어떻게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행렬 속으로부터는
“저눔을 잡아라!”
“저눔들을 잡아 죽여라!”
하는 소리가 홍수같이 일어났다.
어떤 사람은 당장 달려가서 트럭을 잡아낚기나 할 듯이, 행렬에서 빠져서 몇 걸음 앞으로 달려나가며 소리소리 지르기도 했다.
안씨부인은 정신이 아찔해지며, 오금이 떨어지질 않아 그냥 옆에 있는 전선주를 붙들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지금껏 그렇게 파도소리같이 힘차게 들리던 행렬의 노랫소리가, 저 멀리 멀리서 아주 가늘게 들려왔다.
4
어떻게 어디로 길을 돌아서 집까지 왔는지 몰랐다.
안씨부인은 방 안에 들어서자, 채 옷도 벗을 틈 없이, 그냥 펄썩 주저앉아 울었다. 목을 놓고 울었다. 땅을 치며 얼마를 울어도 시원치 않았다. 그냥 나오는 울음이요, 그냥 나오는 눈물이었다.
‘저 놈들을 잡아 죽여라!’
‘저놈들을 잡아라!’
하고들 고함을 치는, 군중들의 성난 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 했다.
만약 아까 그 자리에서 그들한테 잡히기만 하였더라면, 기호는 틀림 없이 그들에게 맞아죽었을 것이다.
남한테 맞아죽을 짓을 하고 다니는 아들을 내가 낳았던가 하는 서글픈 탄식이 우선 앞을 섰다.
아니, 남은 둘째치고라도, 첫째 집안에서 어떻게 남편을 대하랴. 어떻게 남편의 얼굴을 쳐다볼 수 있으랴. 이런 생각도 났다.
한참 목을 놓고 울고 나니 인제 눈물도 안 나왔다. 그저 멍하니, 정신나간 사람같이 얼마든지 그렇게 앉아 있고만 싶었다.
아무 생각도 안 났다. 한동안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죽은 자식…….’
아무리 생각해도 필시 지금쯤은 어디 가서 뭇매에 맞아죽었을 것만 같았다.
‘죽은 자식야…….’
다만 이런 생각만이 억세게도 안씨부인의 정신을 뒤흔들어놓고 놓고 하였다.
해가 뉘엿뉘엿, 벌써 저녁때가 된 모양이었다. 옷을 간신히 갈아입고 부엌으로 내려서려는테 남편이 들어왔다.
한 손에 태극기를 들고, 얼굴이 우럭우럭 달아서 들어오는 것을 보면, 여태껏 끝판까지 남편은 따라다닌 모양이었다.
허어허 하며 역시 숨소리만은 가쁘다. 이박사는 쿵 하고, 마루에 가 걸터앉더니
“여보, 나 냉수 한 그릇 주!”
한다.
“아니, 여태 따라다니셌수?”
“그럼.”
“아이 참, 웬만침 돌구 들오시지.”
“웬만치? 흥, 그렇게 어름어름헐 게 따루 있지.”
하며 남편은 아직도 홍분이 사라지지 않은 듯 더운 김이 무럭무럭 나는 이맛전을 수건으로 씻으며
“참, 이것 좀 봐.”
하고 주머니에서 삐라 한 장을 내어주었다. 보지 않아도 아까 그 삐라였다. 손에 받아들기도 마음이 선뜩한 종이쪽이었다. 그래서
“아까 봤에요.”
하고 받을 생각도 않고, 머뭇머뭇하고 있으려니까, 그냥 이박사는 마루 위에다 휙 내어던지며
“바루 그눔야. 그눔이 맞었어.”
하였다.
‘그눔’이 누구란 말을 남편이 구태여 하지 않아도, 안씨부인은 그것이 누구인 것을 곧 알 수가 있었다.
무어라고 말을 해야 옳을까.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다만 딱딱딱 아래윗니만이 맞부딪 칠 뿐이다.
남편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동안 말이 없다. 말없이 땅만 굽어보고 있다. 그래도 약간 두 어깨가 들먹거리는 것을 보면, 남편 역시 울분을 인내하고 참느라고 무진 애를 쓰는 모양이다.
이렇게 고요하고, 그러나 자못 서글프고 외로운 표정이 한동안 잊어버린 듯이 얼마를 계속하였다.
5
그날 밤.
밤늦게 시작한 눈이, 이슥해지면서 더욱 퍼부었고, 게다가 바람까지 윙윙 소리를 치며 불었다.
이박사는 하루 종일 싸다닌지라 자리에 누우니, 다리·팔·허리 안 아픈 데가 없었다.
안방에서 새로 두시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잠은 안 온다. 잠은커녕 점 점 눈이 말똥말똥해질 뿐이다.
안방에서도 잠이 안 든 듯 이따금 아내의 기침소리가 났다.
암만해도 잠은 올 성싶지 않아, 이박사는 일어나서 불을 켜고, 의자에 가서 걸어앉아보았다. 그리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문득 책상 위를 바라보니, 삐라가 눈에 띄었다. 이박사는 얼른 눈을 감았다. 여태 잊어버리려고 무진 애를 쓰던 것이 아니냐.
‘그 자식은 내 자식이 아니야. 무슨 원수로 태어난 자식야……’
여태 이렇게 단념하고 저주하던 자식이었다.
‘자식 하나 안 난 셈 치지. 자식 없는 셈 치면 되지……’
여태 이렇게 어지러운 감정을 정리하려고, 얼마든지 마음을 독하게 먹어온 박사였다.
그렇게 단념하고 마음을 진정한 기호의 생각이, 별안간 삐라를 바라보자, 마치 확 불을 지르듯 와락 치밀었다.
금방 가슴이 울렁거리며 얼굴이 우럭우럭 달아올랐다.
‘죽일 놈 같으니라구!’
박사의 입에서는 저절로 이런 소리가 몇 번이고 흘러나왔다.
‘내 죄지. 내 죄야!’
동시에 이런 서글픈 생각이 나기도 했다. 병원 일 때문에, 또는 정당 일 때문에 자식의 독서경향이며, 드나드는 동무 같은 것을 좀 눈여겨보고 감독을 못한 것이 이제 와서는 한없이 뉘우쳐졌다.
기호가 집을 나가기 바로 며칠 전. 그날도 이박사는 몇몇 친구들끼리 모이어, 날이 갈수록 엉클어만 가는 정당 얘기며, 탁치 반대에 관한 구체적인 투쟁방침이며를 얘기하다가,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일이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기호가 쓰고 있는 아랫방에는, 아직도 자지 않고 있는 듯, 불이 환히 켜 있었다.
아마 늦도록 공부를 하나보다 생각하고, 이박사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마악 옷을 벗고 앉으려니까
“아버지, 늦으셨군요.”
하며 기호가 들어 왔다.
“아, 여태 안 잤니? 요샌 어째 네 얼굴이 좀 못된 것 같구나.”
하며 박사는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오래간만에 보는 아들의 얼굴이었다.
“게 앉거라.”
박사가 자리를 가리켜도, 기호는 웬일인지
“네.”
하고 대답만 할 뿐, 그냥 손을 맞잡고 선 채로다.
힐끗 박사는 다시 한번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심상치 않은 표정이었다. 필시 무슨 곡절이 있는 게다 생각되었다.
“아, 앉어라.”
그래도 그냥 서 있을 뿐.
“왜 용돈이 없니?”
전에 용돈을 와서 달라려면 아들은 곧잘 이런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지금도 이박사는 그저 이쯤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말에는 대답도 않고, 기호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아버지.”
하고 말끝에 힘을 주어서 불렀다.
“……”
이번엔 박사가 말없이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조금 전에 남편의 기척을 듣고 안방에서 자다가 건너온 안씨부인도, 어쩐 영문을 몰라, 그냥 한편 구석에 가서 쭈크리고 앉아 있을 뿐.
“왜 무슨 헐 말이 있니?”
박사는 아들의 긴장된 표정을 바라보며, 나직이 다시 한번 더 말을 건네었다.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
“아버지.”
“왜.”
“아버지 직업이 무엇입니까?”
“뭐라니?”
벌써 첫마디가 귀에 거슬린다. 이박사의 어조도 자연 거칠어졌다.
“아니 그게 별안간 무슨 소리냐, 응?”
하고 이박사는 이번에는 좀 눈을 크게 뜨고 아버지로서의 위엄을 갖추려 하였다.
그러나 기호는 역시 부동의 자세로
“의사시면 의사 노릇만 허세요!”
하고 더 굵게 힘을 주어서 뱉듯 단숨에 토했다. 이것은 분명 명령에 가까운 말투였다. 여태 한번도 아버지의 앞에서 이런 노기를 띤 말투를 해본 적이 없는 아들이었다. 이런 괘씸한 소리를 여지껏 아들의 입에서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아버지였다.
‘괘씸한 놈!’
이 박사는 주먹과 무릎이 한꺼번에 부르르 떨리었다.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옆에서 여태 듣고만 있던 안씨부인이 두 사람의 사이로 나서려 했지만, 기호는 얼른 한 팔로 어머니를 막으며
“아버지가 요즘 정당에 드나드시는 것은 탈선얘요.”
하였다.
“탈선?”
“탈선입니다.”
“아니 이놈아, 네가 이를테면 애비헌테 훈겔 허는 셈이냐.”
억지로 분을 참자니 말이 자꾸 탁탁 막힌다. 이박사는 다만 무릎을 들먹거릴 뿐, 초조할 대로 초조했다.
“선량헌 인민에게 해독을 끼치는 행동을 아버지가 취허실 땐, 자식으로서도 가만있을 수는 없어요.”
“해독?”
버럭 소리를 지르며, 이박사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씨부인도 따라 일어나서, 아들의 가슴을 밀며 밖으로 나가라고 하였지만, 바위같이 버티고 섰는 아들의 두 다리가 꼼짝할 리가 없었다.
“아버지가 지금 다니시는 데가 어딥니까. 가서 뭘 허세요. 허시는 게 뭐얘요?”
기호의 언성은 얼마든지 높고 거칠었다. 이박사도 인제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다만 주먹을 쥐며
“인마, 인마, 그래, 네가, 네가……”
하고 가쁘게 숨을 쉬며 대들 뿐이었다.
“아버지 같으신 분이 계시니까 민족은 통일되지 못하고, 불쌍헌 인민만이 생활을 유린당허구 있는 것입니다.”
“뭐 어쩌구 어째, 인마 네가 뭘 안다구……”
“모르시는 건 아버지십니다. 조선의 노동자·농민이 지금 무엇을 요구허구 있구, 어떠한 정부를 바라구 있다는 걸 아버지는 모르십니다. 인민을 무시허구 정당도 정부도 성립 안됩니다.”
“아니, 그래 인마, 신탁통치를 지지헌다는 놈들과 통일을 해. 그런 놈들허구…….”
“대체 신탁이란 말이 어서 나온 말입니까. 이렇게밖에 번역 안됩니까. 가장 진보적인 민주주의 독립국가를 이루도록 연합국이 후원을 해주는 것 입니다.”
“아니 인마, 옳지, 인제 보니까, 네가 바루 그, 그, 공산당 패구나. 그놈들 패야.”
하며 아버지는 이윽고 아들의 멱살을 붙들었다. 그리고 뺨을 치려고 할 순간, 안씨부인이 대들어 남편의 팔을 붙들었다. 동시에 아들의 가슴을 밀며 밀며 밖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저놈이 공산당 패야.”
이박사는 한동안은 정말이지 어쩔 줄을 몰랐다. 분했다. 우선 분했다.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내 자식의 입으로부터 이런 소리를 듣고 나니, 울고 싶도록 분하고 또 분했다.
’여태 범의 새끼를 길렀구나!’
이박사가 비로소 이런 생각을 하고, 아들에 대한 지금까지의 기대도 희망도 무진 애를 써가며 단념하기 시작한 것도, 따져보면 이날 밤이 일이 있은 후부터였다.
벌써 십여 일이 넘은 일이지만, 아직도 어젯일같이 생생하게 기억에 떠올랐다.
안에서는 벌써 세시를 쳤고 네시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죄지, 내 죄야.”
박사는 가만히 눈을 감고 팔짱을 끼고서 그대로 얼마든지 앉아 있었다. 이대로 그냥 밤을 밝히고 싶었다.
6
훤히 먼동이 터왔다. 그동안 박사는 깜빡 앉은 채로 잠이 들었던지, 눈을 떠보니 미닫이가 훤했다. 정말 앉은 채로 밤을 밝힌 것이었다. 머리가 무겁고 어깨가 결리고 다리가 아팠다.
‘인제 늙었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났다.
손발이 시리고, 등이 서늘해왔다. 다시 인제부터 이불 속으로 들어가 한잠을 잘까 하고 일어서려는데
“선생님, 선생님.”
하고 밖에서 간호부가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몹시 당황해하는 것이 목소리만 듣고서도 짐작이 갔다.
“선생님, 주무세요?”
미닫이 바로 앞에서 황급히 부르는 목소리다.
“환자요?”
환자겠지 생각이 가서, 이박사는 내다보지도 않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하니까, 간호부는 이번에는 미닫이를 열고
“선생님, 얼른 좀 나오세요. 얼른…….”
하였다. 그러나 간호부가 그러면 그럴수록 이박사는 아주 태연하게
“환자믄 딴 데루 가라 그러우.”
하고 누워버렸다. 그래도 간호부는
“선생님, 얼른 좀 나오세요. 급헌 환자얘요.”
하며 숨이 턱에 차서 어쩔 줄을 모르는 태도였다.
“급헌 환자락게!”
하며 안씨부인도 마루로 나왔다. 안씨부인을 보자, 간호부는 마루 앞으로 가서
“학생 얘요. 기호씨 얘요.”
하였다.
“기호?”
“기호?”
같은 순간에 같은 말소리가 아내와 남편의 입에서 똑같이 나왔다.
“얼굴에 맨 피투성이얘요. 동무들이 시방 업구 왔에요.”
간호부는 연신 뒤를 돌아다보며, 정말 초조해하며 어쩌나 어쩌나 하는 표정이었다.
“피?”
피 소리에 안씨부인은 거듭 놀랐다. 안씨부인은 그냥 버선발로 마루 아래로 내려서자, 병원으로 뛰어나갔다. 그러나 이박사는 약간 상반신을 일으키고 앉았을 뿐 일어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간호부에게는 너무도 안타까웠다. 너무도 초조하였다.
“선생님, 선생님.”
연해 불러도 끄떡 않는다.
“그 자식은 내 자식이 아뇨. 어서 나가보우.”
다만 이박사는 이렇게 한마디를 하고 미닫이를 닫았다.
그러자 밖으로부터 안씨부인이 앞장을 서고, 기호를 업고 온 듯한 학생 하나가 급하게 뛰어들어왔다. 모두 급하고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여보!”
하고 남편의 방문을 연 안씨부인의 말소리는 금방 탁 막히며, 얼른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었다.
“선생님!”
하고 이번에는 따라들어온 학생이 미닫이 앞으로 나섰다. 셔츠 바람에 모자만 쓴, 어깨가 떡 벌어진,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건장한 학생이었다.
“선생님, 저는 기호군의 동무입니다. 모처에서 동무들이 모여 회의를 하다가 어떤 놈들헌테 습격을 당했습니다. 좀 나가 봐주세요. 선생님.”
“습격을 당허닥게?”
이박사도 이 말에는 얼마간 놀라는 얼굴이고, 말투였다. 몸의 중심을 잠시 잃었다.
“테러단얘요. 우리도 첨에는 맞서 봤지만, 원체 저편에는 무기가 있으니 어쩝니까. 좀 어서 나가 봐주세요.”
“……”
“머리를 상했나봐요. 얼굴에 맨 피예요.”
“……”
“네, 선생님!”
“……”
“선생님.”
“……”
두 팔로 문지방을 짚고 들여다보며 재촉을 하던 학생도 그제서야 이박사의 심중을 눈치채었던지 옆에 서 있는 간호부를 보고
“나갑시다.”
한마디를 하고 먼저 앞장을 서서, 씩씩 분을 참으며 병원으로 나갔다. 간호부도 훌쩍거리며 학생의 뒤를 따라나갔다.
피투성이가 되어 정신을 잃고, 진찰대 위에 사지를 늘어트리고 누워 있는 아들의 얼굴이 역력히 박사의 눈앞에 둥실둥실 떠올랐다.
그러나 이미 애비를 배반하고 집안을 저주하고 나간 자식이 아니냐. 벌써 저 갈 곳을 찾아서, 제 세계를 찾아서 날아간 참새가 아니냐. 애비의 사상을 부정하고, 애비의 행동을 멸시하고 나간 자식이 아니냐. 그것은 자식이 아니고 남이었다.
미닫이를 닫고 앉은 채 박사는 눈을 꼭 감고 이런 생각을 하였다.
그러자 또다시 미닫이가 가만히 열리었다. 박사는 얼른 눈을 떴다. 그리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것은 아내였다.
아내는 미닫이를 열었을 뿐 말이 없다. 없는 게 아니라 하지를 못했다.
“헉!”
소리를 치며, 아내는 별안간 문지방 위에다 가슴을 걸치고 픽 쓰러졌다. 그리고 그냥 흑흑 느껴가며 울었다.
육십 평생에 아내에게서 이런 꼴을 발견하기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퍼벌을 하고* 우는 아내를 보기는 처음이었다.
박사는 자기도 모르게 푸시시 일어났다. 왜, 어쩌자고,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몰랐다. 저절로 일어서졌고, 저절로 일어선 것이었다.
박사는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섰다. 이것도 저절로 나서진 것이요, 저절로 발길이 내킨 것이었다.
저쪽 문지방 위에서 엎드려 우는 아내가 또 눈에 띄었다. 박사는 얼른 눈을 감고, 잠시 기둥을 의지하고 서서 정신을 수습하였다. 얼마를 그렇게 서 있었다.
그리고 마루 아래로 내려와 천천히 병원으로 나갔다. 이것도 저절로 나가지는 것이요, 저절로 걸음이 내키는 것이었다.
“간호원.”
“간호원.”
이박사는 간호부를 부르며, 병원 복도로 들어섰다.
『대조』 2호(1946. 7)
김 영 수
김영수(金永壽)는 191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동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영문과를 중퇴 했다. 초기애는 사실주의 극에 영향을 받아 민족의 궁핍함을 다룬 희곡을 쓰다가 차츰 대중소설과 방송 드라마를 많이 썼다. 소설로는 193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복」으로 등단했다. 도시 변두리에 사는 하층민의 곤궁한 삶을 그린 희곡 「단층」을 발표한 뒤, 해방 직후 좌우익 갈등이 심할 때 이념이 다른 부자간의 갈등을 섬세하게 그린 소설 「혈맥」 외에 「밤」 「해면」 「범주」 등을 발표했다. 1977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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