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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세상 사람들...
이른 새벽부터 일부 사람들이 깨어나서 부스럭대는 소리를 냈다.
이미 깨어있던 인야도 그게 귀에 거슬려 짜증이 났는데, 그러다가 7시에 인야도 일어났다.
전날 널어놓았던 빨래를 걷으러 건물 밖에 나갔더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비가 내린 건 얼마 되지 않은 듯 빨래가 많이 젖어있진 않아, 다행이었다.
짐을 챙기면서는 비에 대비한 방수카바도 덮는 등, 대비를 했는데...
인야는 요란하지 않은 선에서, 어젯밤 저녁 식사를 함께 했던 젊은이들과 헤어졌다. 그들도 떠날 준비에 바빴기 때문에, 석별의 정을 나눌 여유는 없었다. 다만, 거꾸로 간다는 인야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아쉬워하는 그들의) 시선은 느낄 수 있었지만.
이제 인야는 철 십자가가 있는 산을 향해서, 그들은 도시인 뽄페라다를 향해서 가면 되었다.
마을을 지나는데 가로등 아래에 달팽이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내리는 빗물에 젖은 달팽이가, 길바닥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너나 나나... 짐을 짊어지고 느릿느릿 하염없이 걸어가야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인야는 그 새벽에 달팽이 한 마리의 사진을 찍어두기도 했다.
마을을 벗어나면서부터는 아직도 컴컴한 길이어서, 인야는 드디어 손전등을 사용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더구나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두운 산길을 올라야 했기에, 손전등은 정말 요긴한 필수품일 수밖에 없었다. 폰페라다를 지나오면서, 중국인 가게에 들러 값싼 손전등을 샀던 게... 이럴 때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편리한데, 어제까지 손전등도 없이 어떻게 견뎌냈다지? 참, 사람의 변덕이란... 신기하기까지 하네......'
그만큼 인야는 만족하기도 할뿐더러, 손전등이 든든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인야는 그날도 어김없이(?) 길을 잃었다. 더구나 어두컴컴한 산길에서.
겨우 제 길을 찾아 '리에고 데 암브로스(Riego de Ambros)' 마을로 올라가는데, 한 한국 여학생을 만났다. 이쁘장한 모습에 이런 음침한 빗길을 혼자 내려가는 게, 어쩐지 위태로워보... 인야 자신처럼 거꾸로 가는 건 아니니, 큰 문제는 없을 거라며... 안심시켜 내려 보냈다.
그런데 비가 내려, 그 여학생의 인적사항을 적을 수가 없었다. 겨우 사진을 찍으면서, 인야는 자신의 카페 주소를 알려주면서... 나중에 서울로 돌아가서, 먼저 인적사항을 남기면... 사진을 보내주면서, 식사초대를 하겠다고 말하며 헤어졌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사진도 보내주지 못했다.)
그리고 터덕터덕 다시 산길을 올라, 이제 '엘 아세보(El Acebo)' 마을의 나무 십자가가 보이는데... 인야는 조금 감상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비도 왔고 계속 올라오느라(길을 잃기도 했고) 쉬지 않았더니, 어깨가 어찌나 아픈지... 그곳 자전거로 왔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독일인의 묘비가 있는 곳 옆 건물의 조그만 지붕이 있는 곳에서... 인야는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매번 이곳을 지날 때마다 인야는 고인의 명복을 빌곤 했는데,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었다. 그러니 그냥 지날 수도 없고, 또 다소 감상적이 아니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길을 가다가 사고로 죽은 이여, 어느새 네 번째 당신과 마주하게 되는군요. 그런데, 다음엔 이 길을 걷지 않을 것이니(?)...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네요......'
사실 인야는 아침에 좋은 생각이 많이 떠올라서, 여기 지붕이 있는 공간이라 쉬면서... 글도 좀 쓰려고 했었다.
그런데 막상 글을 끄집어내려고 하니, 아무 생각도 잡혀오질 않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괜히 뭔가 잃어버린 것 같기도 했고... 머쓱한 기분이면서, 아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에이, 날씨가 이러니... 글 쓰는 것도 쉽지가 않네......'
마을을 벗어나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안개는 여전한데 빗방울은 다소 누그러진 듯했다.
그래서 앞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사진도 두어 컷 찍을 여유도 생겼다. 그렇다고 사진을 찍는 게 수월했던 것만은 아니었지만.
게다가 경사가 급해서, 인야는 숨이 막혀왔다.
그래서 고개를 숙인 채 한꺼번에 스물씩 반복적으로 세면서, 올라가는 방법을 써먹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걷는 데에만 정신을 집중할 수가 있어서, 진도가 빨리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길을 걷다 보니, 그런...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던 걷는 방법도 저절로 몸으로 습득했던 것이다.
그런 뒤, 두 팀의 한국 사람들을 또 만났다.
오늘따라 한국 사람들과 자주 만나기도 하고, 이 길에는 상당히 많은 한국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걸 직접 눈으로 보는 날이기도 했다.
그들과도 빠짐없이 겨우 사진을 찍고 헤어졌는데, 고지에 올라 한참을 걷다가 문득... 지난 봄 길을 가다가 여기 어디쯤 맑은 빗물에 고인 길 웅덩이에, '와야해'라는 한국말이 적혀 있던 기억을 떠올렸다. (책, '아마폴라의 유혹' 참조) 그건 인야 자신의 카페 부카페지기인 ○○님과의 얘기이기도 해서, 인야는 문득 장난이 치고 싶어졌다.
이런 일을 그 누가 상상이라도 하랴만, 인야는 그와 비슷한 웅덩이를 찾아보니 바로 보이질 않아... 조금 얕긴 했지만 한 웅덩이를 지나면서는(웅덩이도 아닌 물이 고인 곳) '가야해'라고 지팡이로 써넣었다.
아마, 누군가 이 길을 가다가... 지난번의 인야처럼, 한국말이 적혀 있는 걸 보면... 각자 알아서 그 글에서의 사연을 상상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 글씨로 인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그건 인야 자신이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일 수도 있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영역까지 어떻게 어림잡을 수 있단 말인가...... 이번엔 거꾸로 가기 때문에, 지난번과 달리... '가야해'를 적어놓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어찌 그런 것까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도 장난이니까......'
인야는 그 글씨를 적어놓으면서, 스스로 웃고 있었다.
그 얼마 뒤, 또다시 세 명의 한국 여자들을 만났다.
그래서 이번에도 인야는 아까 방식으로, 비가 오니까 각자의 인적사항을 적지 못했기에... 자신의 카페 이름을 불러주면서 거기에 그녀들의 이름이라도 먼저 남겨두면, 나중에 사진을 보내주면서 식사 초대를 할 것이라고 하자,
그 중의 하나가, 자기가 바로 인야의 카페 회원이라는 것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인야는 다른 때와는 그 입장이 사뭇 달라졌다.
'내 카페 회원이라니......'
인야는 마치 식구거나, 친구 등을 만난 것처럼... 너무 반가워서 정말 뭔가 의미 있는(?) 퍼포먼스라도 만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처자를 꽉 껴안고 발을 동동 구르기라도 할 기분이었는데,
"?..."
그 쪽은 아닌가 보았다.
그저 그런 표정인데다, 어쩌면 오히려 그렇지 않은 다른 사람보다 더 냉랭한 자세였던 것이다.
그러니 인야만, 그저 좋다가 만 꼴이었다.
물론 그들과도 사진을 찍기는 했다. 그런데 어쩐지 마음 한쪽이 뻥 뚫려버린 느낌이었다.
'몇 년 동안, 내가 카페를 그렇게 성의 없이 유지했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물론 내가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딴에는 정성을 들여 진솔하게는 운영해왔던 것 같은데... 이 먼 스페인까지 와서, 내 카페의 회원을 만났는데... 정말 껴안고 벌쩍벌쩍 뛰고도 싶은 심정인데, 상대방은 떫떠름한 표정이라니......"
인야는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당황하기까지 했다.
그런 와중에 때마침 안경 핀이 문제가 생겨, 그들이 조금 큰 옷핀을 하나 챙겨줘서... 바꿔 끼는 것까진 좋았는데, 인야는 제풀에 지쳐(?)... 정말 '속만 보인(?)' 사람처럼, 민망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렇담 카페를 만들어 몇 년을 유지시켜온 사람으로서, 난... 그들에게 뭐란 말인가?'
그들과 헤어져서 돌아서면서(그것도 인야 쪽에선 아직도 뭔가 미련이 남아 미적미적대는데, 그쪽은... "빨리 가자!" 하면서 돌아서니) 뭔가 가슴에 멍이 생긴 것 같은, 진한 섭섭함과 서글픔마저 몰려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인야는, 이들은 틀림없이 한국에 돌아가 카페에 인적사항을 남길 줄 알았는데(왜냐면 카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회원이라는 경상도 ○○ 여자까지도...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아무튼 인야는 바로 이 까미노에서, 자신이 까미노에 관계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에... 심한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몇 년째 온 정성을 들여 카페 운영을 했던 것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 그래도 성의껏은 운영해왔다고 자부해 왔는데...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야?'
인야의 다리에선 힘이 좍 빠져나가고 있었다. 심한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허기야, 어떤 사람들에겐... 그저 한 번 휙! 둘러보고는, '별 거 없네!' 하며 지나치는 공간에 불과할지도 모르니까......'
비는 여전히 구질게 내렸고, 인야의 발걸음도 무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만하린(Manjarin)'도 지났는데, 다른 때 같았으면 최소한 사진 한 장이라도 찍었을 텐데... 그날은 그럴 심정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이젠 '철 십자가'를 지나야 할 시점인데, 그날따라 왜 이리 만하린에서 철십자가까지가 멀게 느껴지는지... 아무리 올라도 도대체 철십자가의 모습은 보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다 인야의 입에서 단내가 날 무렵에야, 겨우 뿌옇게 그 실체를 드러냈는데... 인야는 심통이 나 있었다.
'지가 보여주기 싫으면, 관두라지. 나에게 이젠, 니가 더 이상 신비의 대상은 아니란다......'
그렇게 철 십자가에 닿긴 했는데, 무엇보다도 인야는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옆의 한 휴식처 처마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물도 다 떨어져, 그냥 눅눅한 빵에 초리소를 얹어 보까딜료를 만들어... 우직우직 씹어 먹었을 뿐이다.
그래도 배가 고파선지, 맛은 있었다.
그 와중에도 철 십자가 사진이라도 찍으려는데, 안개비 때문에 사진 찍기도 너무 불편해서...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뭐든, 다 운명이다......'
그는 어느새 운명론자가 돼 있었다.
그렇게 철 십자가를 지나 터덜터덜 내려가는데, 앞에 웬 노부부가 그의 앞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인야를 발견하고는 아주 반가운 얼굴로, 길을 잃었다며... 그래서 다시 마을(폰세바돈)로 내려간 다음 확인하고 올라가려던 참이라던 것이었다.
그래서 인야는, 지금 내려오는 길이 맞고... 조금 더 가면 철십자가가 있다고 자세하게 안내를 했더니, 너무 고마워하며... 되돌아 올라가는 것이었다.
허기야 인야는 그 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매일 반복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도, 길을 잃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폰세바돈(Foncebadon)도 지났다.
거기도 알베르게가 있긴 했지만, 인야는 그냥 지나쳤다.
이제 내리막길이었다.
그런데 인야는 쉽게 생각했던 내리막에서도 다시 길을 잃을 뻔했다. 마침 한 사람이 올라오고 있어서, 그 쪽 방향으로 찾아갈 수 있었던 게 불행중 다행이었다.
그러면서 다시 한국 여자를 만났는데, 여기 스페인의 '말라가(Malaga)'에 산다는 것이었다.
그런 뒤 또 두 한국 젊은이들도 만났다.
그런데 그들은 인야가 거꾸로 걷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약간은 흥분한 모습으로 사진도 함께 찍었는데... 그러면서 '이 인야'라고 밝히자, 너무 반가워하며...
"영광입니다!!" 하고, 인야의 손을 덥썩 잡기까지 했다.
무엇보다도 그 중 한 청년은 자신이 갖고 있던 좋은 카메라를 배낭에서 일부러 꺼내(사진을 전공하는 듯한 좋은 카메라였다.), 인야의 개인 사진도 몇 컷 찍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쉬운 이별을 했는데,
그는 인야에게 사진을 보내준다고 했는데, 빗속이라 그들의 메일 주소도 적을 수 없어... 인야는 자신의 까페 주소를 알려주는 것으로, 그들의 소식만 기다렸는데... 한국에 돌아온 뒤 인야가 찍었던 그들과의 사진도 보내 줄 수가 없었다. 더욱 아쉬운 건, 그들이 찍어간 인야의 사진이었다. 인야에게는 그 사진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정면에서도 찍었고 또 뒤돌아 떠나는 모습도 찍혔는데), 그들 역시 인야의 카페에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아... 그 또한 허탕치고 말았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