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에서는 깨달음의 방식으로 ‘줄탁동시(ㅁ+卒啄同時)’ 란 콘셉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날 때 밖에서는 어미닭이 껍질을 쪼고 안에서는 병아리가 껍질을 깨려고 합니다.
어느 한쪽의 힘만으로는 결코 알을 깰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안과 밖이 시기를 맞춰 동시에 작용하지 않으면 또한 알을 깰 수 없습니다.
교육의 원리로 하면 학생과 선생이 선후 없이 타이밍을 맞춰서 가르치고 배우는 호흡이 일치해야 된다는 원리입니다.
줄탁동시가 영어권으로 오면 ‘깨다’ ‘눈뜨다’의 뜻인 ‘어웨이크(awake)'와 비슷한 말이 됩니다. 사전을 찾아봅시다. 이 동사는 자동사이면서 동시에 타동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뜬다는 것은 내부에서 눈을 뜨려고 하는 의지와 밖에서 잠을 깨우는 자극이 동시에 가해졌음을 말해 주는 것이지요.
-이어령. <젊음의 탄생> 중에서 -
'졸탁동시(ㅁ+卒,啄,同,時)는 줄탁동시 또는 쵀탁동시라고 하기도 합니다만 이 말의 어원은 임제종(臨濟宗)의 공안집(公案集:화두집)이자 선종(禪宗)의 대표적인 불서(佛書)인 송(宋)나라 때의 《벽암록(碧巖錄)》에 공안으로 등장하면서 불가(佛家)의 중요한 공안이 되었습니다.
벽암(碧巖) 16측 공안에 “승(僧)이 경청(鏡淸)에게 묻기를 학인은 ‘졸’하고, 스승은 ‘탁’한다”라는 말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그 의미는 달걀이 어미 닭의 따뜻한 품속에서 부화를 시작하고서 21일째, 껍질 속의 병아리는 안쪽에서 껍질을 쫍니다. 이것을 ‘졸’이라 하고, 이에 호응해서 어미 닭이 밖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탁’이라 합니다.
새끼와 어미가 동시에 알을 쪼지만, 그렇다고 어미가 새끼를 나오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미는 다만 알을 깨고 나오는 데 작은 도움만 줄 뿐,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새끼 자신입니다. 만약 어미 닭이 껍질을 깨어주게 되면 병아리는 건강을 잃고 얼마 후 죽게 됩니다. 이는 만약 부모로서 자식을 자신의 가치관 속으로 밀어넣게 되면 자식의 마음(정신력)은 곧 죽게 됩니다.
졸탁동시가 주는 메시지는 선(불가)에서 말하는 자기라는 껍질(我相)을 깨고 나와야 비로소 온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도 있지만,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닌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졸’과 ‘탁’이 조화롭게 잘 이루어진다면, 화목한 가정, 분규 없는 기업문화, 사제 간에 하나가 되는 바람직한 교육 풍토, 이념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가 제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졸탁동시」의 분위기를 조성하게 되면 사회는 밝고 희망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아래와 같은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첫 번째 내가 먼저 변화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우리들은 남의 집 살림에는 콩내라 팥내라 하면서 입방아를 짓지만 정작 자기 살림살이는 엉망인 채 팽개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남에게 입방아 지을 그 시간에 자기 집 살림살이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남을 배려하고 도와준다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하겠습니까!
두 번째는 경청하는 자세입니다.
어미닭이 아기 병아리가 부화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알려면 또 어느 부위를 두드릴 것인지를 알려면 시그널(signal)을 잘 듣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기 위해서는 우선 관심을 가지고 경청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타이밍입니다.
아무리 좋은 변화와 혁신이라도 상대방이 갈망하고 있는 때를 잘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귀를 막고 있는 사람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듣기지 않을 것입니다. 담배피우는 사람에게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 피우지 말라고 하면 담배를 끊겠습니까. 먼저 동기가 부여되고 그리고 open-mind가 되어야 비로소 천시(天時)가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지속적인 변화와 혁신입니다.
내가 알의 안쪽을 쪼았다고 반드시 상대방이 바깥쪽을 쪼아주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에 최선의 노력을 기우려야 할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오직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할 따름입니다.
자기 혁신의 출발점은 자기라는 껍질을 깨고 나오는 순간이며, 그 순간 보다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좋은글 가슴에 새시며 새해에도 변함없는 관심보내 주시길 바라며 ..예쁜 몸매보다는 건강한 몸매가 삶을 복되게 한다는 사실을 유념 많이많이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