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역에서 JR 구레선을 타고 30분을 가서 구레(吳)역에 내리면 '야마토 뮤지엄'이라는 일종의 군사박물관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과거 태평양전쟁시 썼던 비행기,어뢰,군함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 있는데 단연코 인기 품목은 야마토함의 1/10 모형입니다. <야마토함의 모형과 제국해군의 깃발이었던 욱일기가 보인다>(사진;한라일보 전재) 야마토 함은 그곳 구레의 해군조선소에서 1937년 부터 짓기 시작합니다. 야마토란 이름에서 보듯이 일본의 모든 소망이 담겨있는 함선이었고 그래서 그들은 '전함 야마토'라고 특별히 불렀습니다. 야마토의 스펙을 보면 대단합니다. 7만2천톤에 길이는 263미터 속도는 무려 27노트에 달합니다. 온갖 포를 장착하고 승선인원이 3300여명 이나 됩니다.
(사진;위키백과 전재) 윗 사진은 건조중의 모습이고 뒷 배경은 구레시와 해군항의 풍경입니다. 당시 구레에는 해군진수부가 설치됐고 해군공작창이 있어 군함을 짓고 히로시마에는 제2사령부가 있어 실질적으로 태평양전쟁을 지휘합니다. 히로시마는 전쟁과 관련이 깊은데요, 청일전쟁 시에는 대본영(大本營)이 설치되 명치천황이 거의 상주하면서 전쟁을 지휘하고 중일전쟁 이후에는 온갖 군수공장,인근 구레(吳)에는 해군지휘부가 들어섭니다. 또 한곳,나가사키에도 미쓰비시 조선소에서 군함을 대거 만드는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나란히 원폭을 맞는 비운의 도시가 된건 우연은 아니었습니다. 두 도시에서 원폭에 의한 한국인들의 희생이 많았던 것도 근로정신대와 노동자로 끌려간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1941년 부터 야마토호는 작전에 투입됩니다. 인류가 만든 전무후무한 사이즈와 스펙을 가진 포함(砲艦)인 야마토에 거는 일본인들의 기대는 어땠을까요?
하지만 기대와 달리 야마토는 획기적인 전과를 올리지 못합니다. 전세가 기울면서 충분히 기름을 확보하지 못한 일본군은 기름을 많이 쓰는 야마토호를 잘 쓰지도 못하고 구레항에 정박해 둡니다. 1945년 초 미군이 오키나와에 가까이 이르자 일본은 야마토를 출격시키라는 여론이 들끓게 됩니다. 드디어 1945년 4월 6일, 편도분의 기름만 실은 야마토는 3300명의 일본군을 태운채 죽음의 항해를 떠납니다. 오키나와에도 가기 전에 미군과 조우하는데 막상 미군은 항공기 공격으로 나옵니다. 야마토 갑판에 있는 엄청난 함포는 비행기의 방향으로 신속히 조준이 어려워 계속 난타를 당하고 어뢰를 맞은 야마토는 기울기 시작합니다. 4월 7일,야마토는 자체 폭탄이 대폭발을 일으키고 3300명 중 297명만 살아남고 큐슈 남서쪽 200km 지점에 침몰합니다. 거대 공룡 같던 야마토의 침몰 이후 어떤 나라도 이런 큰 함선은 만들지 않습니다. 이미 시대는 항공기를 싣고 다니며 전투를 치루는 항공모함의 시대로 넘어간거죠. '전함 야마토'의 침몰은 곧 일본과 일본정신의 침몰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냉전시대의 필요와 한국전쟁의 특수를 통해 일본은 부활하게 되고 일본인들은 침몰한 그들의 요체인 야마토를 부활시킵니다...つづく
|
첫댓글 일어방이 불이 꺼져 있어서 안타까웠는데 역시 당산님이 불밝혀 주셨네요
자세하게 올려주신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ㅎ
읽어 주신분이 계시고 댓글까지.... 감사합니다. 언제까지 불쏘시게 역활을 할수 있으려나??????
활활 타올라야 하는데...
どうも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파크골프 가서 홀인원에 신나게 두들기고 오니 일출님이...
이방에서 자주뵈유....
홀인원 ᆢ 추카추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