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 10월 16일 아일랜드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태어났다. 오스카 와일드에게는 ‘세기말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세기말은 각 1000년마다 그 끝 부분을 이루는 마지막 시기를 일컫는 용어로, 특히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세태로 몸살을 앓던 19세기 유럽을 의미할 때 주로 사용된다.
산업혁명으로 유럽인들은 삶의 편의와 풍요도 누렸지만, 잔혹한 식민지 경영과 노동자들에 대한 극심한 탄압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져 내리는 현상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즉 세기말은 그 참담한 소외감疏外感을 ‘말末’이라는 한 글자 안에 절묘하게 담고 있다. 영어로는 A Century’s End의 end라는 한 단어가 인류의 밑바닥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채택된 것이다.
오스타 와일드라면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떠오른다. 1891년 발표작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그에게 ‘세기말의 작가’라는 호칭이 따라다니는 까닭을 잘 보여준다. 주인공 도리언은 너무나 뛰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청년이다. 그의 초상화를 화가 배질 홀워드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그려준다.
배질의 친구인 쾌락주의적 유미주의자 헨리 워튼 경이 도리언에게 사상적 감화를 준다. “아름다움은 유한하다. 언젠가는 당신도 추하게 늙어 볼품없이 될 것”이라는 헨리 워튼의 말에 그레이는 충격을 받는다. 그레이는 ‘나를 대신해서 저 초상화가 늙어준다면 나는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라고 맹세한다.
그레이의 결별 선언에 절망한 여인이 자살한다. 그레이는 초상화의 표정이 잔인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놀란 그레이는 초상화를 방에 집어넣고 문을 폐쇄한다. 화가 배질이 멀리 떠난다면서 인사차 찾아왔다가 변모한 초상화를 보고 화를 낸다. 다툼 끝에 그레이가 배질을 살해한다.
그림 속의 인물은 더욱 흉악한 몰골로 변한다. 그레이는 앞으로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고심 끝에 배질을 죽일 때 사용했던 칼로 자신의 얼굴을 찌른다. 비명소리에 사람들이 달려가 보니 그레이가 죽어서 뒹굴고 있고, 너무나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가 벽에서 빛나고 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태어나고 42년 지난 1934년 이상의 시 <거울>이 사람들 앞에 출현했다.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거울>은 흔히 “인간 자아의 모순이 빚어내는 비극적 자의식을 노래한 초현실주의의 작품(두산백과)”으로 평가받는다. 아침마다 거울을 본다. 혹시 ‘외로운 사업에 골몰’하느라 아름답지 못한 표정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날마다 반성하면서.
이 글은 현진건학교가 펴내는 월간 '빼앗긴 고향'에 수록하기 위해 쓴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투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