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ㅡ<내 속에 편의점 음식이 있다> /김아름
가난한 대학 시절, 여동생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대학시절이라고 해도 십 년도 지나지 않은 일이지만 보통의 대학생이 그렇듯 늘 궁핍했다. 동생이 집과 가까운 곳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그것도 저녁 시간 때 한다는 것은 학점을 A받는 것 만큼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전공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는 작은 설렘이 따라다녔다. '오늘은 어떤 상품을 덤으로 받을까?' 오늘은 폐기되는 삼각김밥이 몇 개나 있을까? 신상품이 있나? 불량으로 반품된 간식이 있으면 좋겠다......' 버스에서 내려 편의점까지 걸어가면서 운이 좋을 상상을 했다.
검은 봉지에 먹거리를 담아 걸어갈 때 기쁨은 봉지 무게에 비례했다. 물론 매일매일 공짜만 가득 담아온 건 아니다. 아무리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이라도 손님으로서의 의무를 하긴 했다. 저렴한 빵이나 껌, 사탕이라도 샀다. 하지만 그마저도 주머니가 허락치 않을 때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언니 역할도 충분히 한 것이다.
버려지는 김밥 속 쌀 한 알도 농가에서 애정과 정성을 쏟아 키워낸 결과물이 아닌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을수록 더욱이 한국인으로서 지구인으로서의 소명을 해나갔다.
폐기될 뻔 한 양식들은 맛있었다. 내가 대학생이라서 꿀맛이었고, 아버지께서 실직한 상태라서 더 소중했다. 어머니께서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와 아버지, 일을 끝내고 온 동생까지 셋이서 자주 편의점 식단으로 저녁을 먹었다.
"이건 맨날 안 팔리는 이유가 있네."
"역시 삼각김밥은 세븐일레븐이 낫고. GS는 별로야."
"GS는 도시락이 괜찮고, CU는 음료 종류랑 자잘한 간
식이 많아서 좋지."
"아니야, 자잘한 건 미니스톱도 많아. 행사도 많이 하
고."
"행사는 GS가 더......"
"이마트 24시도 있거든?"
아버지와 동생, 그리고 나는 편의점 음식을(정확하게는 폐기 음식) 평가하고 편의점을 마음 내키는대로 생각해서 의견을 말하곤 했다. 마치 웹툰 속 인물들처럼 궁상인 영화 속 장면들처럼 말이다. 그 순간순간 음식들을 다 먹어치워야 했고, 가끔 맛없는 음식이 있어도 맛있는 척을 해야 했다. 맛이 없다고 한소리 하는 순간 성격이 부드럽지 않은 동생은 더 필요로 하는 동네 친구나 지나가는 동네 개에게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먹었다. 편의점 음식을 지지고 볶으며 셋이서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동생이 편의점을 그만두게 되었을 때, 아버지와 나는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께서는 작은 직장에 새 일자리를 얻었고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다행이다.
지금은 편의점 폐기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지 않을 정도로 먹고 살 만하다. 일하다가 시간이 없어서 편의점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먹어야 한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어쨌든 날짜가 지난 음식은 먹지 않아도 되니 다행스럽다.
편의점에 들릴 때나 편의점을 지나갈 때마다 생각이 난다. 그 때의 음식들이 나와 우리 가족을 살찌게 했구나. 그 때는 내가 가까운 미래에 뭘하게 될지 예상을 못했다. 새로 나온 삼각김밥의 포장을 뜯고 한 입 베어 물기까지 무슨 맛인지 모르는 것처럼 삶이란 한 입 베어물기까지, 다 먹을 때까지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맛이 없었더라도 어쩌겠는가. 그 재료와 양념들은 결국 내가 되었는데......
지금의 나도 동생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었던 시절이 만들어낸 나다. 이제는 웃을만한 기억이 되었지만 참 달았고, 고소했으며 씁쓸했지만 배 부르던 나날들이었다.